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91
55장. 안배
뻐어어엉!
폭발음과도 비슷한 소리였다.
총에 맞은 서리거인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거인의 배에는 대포라도 맞은 양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였다.
다른 거인들이 즉시 총을 든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압도적인 덩치 차이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사내는 마치 설산에 둘러싸인 것만 같았다.
바위만 한 주먹이 몸을 으깨버릴 기세로 덮쳐 왔지만, 사내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하얀 옷자락만이 쇄도하는 거인들의 주먹에 거칠게 휘날릴 뿐이었다.
뻐어엉!
뻐어어엉!
뻐어엉!
사내가 쥔 총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그에 따라 달려들던 거인들은 하나둘 속이 뻥 뚫린 채로 무릎을 꿇었다.
희게 얼붙은 서리거인의 몸에 불길이 일렁이는 꼴이 몹시도 기이했다.
-당신들의 주인과 척을 질 생각은 없습니다.
널브러진 거인들의 잔해를 훑은 사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서리거인들의 부서진 잔해 사이에 홀로 선 모습이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할 테니 묠니르를 넘겨주시지요.
나직한 목소리에 표정 없는 얼굴은 흡사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단상(斷想)과 함께 가네샤는 눈을 떴다.
가부좌를 튼 몸 주위로 검은 문자들이 빼곡했다.
얽히고 얽힌 인과의 고리를 읽어 보다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주술이었다.
그는 오딘과의 거래에 따라 묠니르를 찾던 차였다.
뇌신의 힘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가네샤가 그것을 찾아냈을 때는 누군가 이미 손에 쥔 다음이었다.
눈처럼 흰옷을 걸친 사내.
한반도의 염라가 대동하던 인간 도사였다.
신이 굳이 인간을 곁에 두는 게 다소 독특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이 범상했기에.
한데 한발 떨어져서 지켜본 놈은 첫인상과 많이 달랐다.
‘힘을 감추고 있었나?’
가네샤는 제가 본 광경을 찬찬히 곱씹었다.
헬의 힘을 빌린 드워프들은 그 힘으로 서리거인을 만들어 냈다.
신화전의 승리 조건인 ‘묠니르 수호’를 위해 필드를 전개한 신앙과 카르마의 구 할 이상을 사용한 법칙이었다.
함에도 인간 도사는 별 어려움 없이 모든 거인을 쓰러트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놈에게는 서리거인에 맞설 법칙을 설계할 자원이 하나도 없었다.
‘신앙도, 카르마 포인트도 없는 상태에서 서리거인을 쓰러트린 것은 그 이상한 총 덕이야.’
인간 도사가 쓰던 총.
총이라기엔 터무니없는 화력을 가진 몹시 기이한 주구(呪具).
서리거인과 상극인 힘을 담은 불의 주술이 아니었다면 놈은 그것들을 쓰러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주술을 놈이 어떻게 준비했느냐인데.’
가부좌를 튼 무릎을 툭툭 건드리며 가네샤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술의 위력은 제약에 비례한다.
그 인간 도사는 처음부터 오직 묠니르를 지키는 서리거인만 상대하겠다는 제약을 걸고 주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의 한정적 사용.
주술의 제약을 그리 지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 범상한 주술사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제약을 실현하는 일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력을 보건대 놈이 주술에 건 제약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리거인을 맞닥뜨릴 장소, 쓰러뜨릴 서리거인의 수, 그들이 달려들어 올 방향, 연달아 발사할 총알의 수, 총을 쏠 각도, 발사의 간격…….
한마디로 총을 쏘는 그 순간을 찍은 듯이 묘사해서 제약을 걸었을 거란 뜻이다.
‘……인간에게 그런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하려면 주술을 만들어 낼 당시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상황을 예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쯤 되면 차라리 미래에 벌어질 일로부터 과거가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서리거인들을 총으로 쓰러트리는 미래가 확정되었기에 총을 완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체 어떤 놈이 판을 엎었나 했더니, 인간이었다고.’
어처구니없어진 가네샤는 헛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본 것마저 부정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믿지 못할 작금의 상황을 한창 되씹을 때였다.
파아아앙!
돌연 검은 신성이 번쩍였다.
【와하핫!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달갑지 않게 호방한 웃음소리가 불청객처럼 그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들어 보라고, 코쟁아! 우리 코쟁이 아니었으면 나 진짜 꼴까닥 뒤질 뻔했다니까!】
허공을 찢고 나타난 야마였다.
그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가네샤의 등짝을 때려댔다.
솥뚜껑 같은 손이 얇은 살가죽을 내려칠 때마다 전기가 튀는 양 따가웠지만, 딴에는 고마움과 친애의 표현일 터였다.
가네샤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야마를 흘겨보며 한숨을 쉬었다.
야마가 사용한 것은 가네샤와 야마를 연결해 두고 위기 상황에 상대의 위치로 곧장 이동시키는 주술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네샤도 야마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무수한 세월을 함께하면서 가네샤가 그 주술을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사고 친 야마가 잽싸게 가네샤의 옆으로 도망쳐 올 뿐.
【하, 정말! 그 곱상한 놈한테 그런 힘이 있었을 줄이야!】
짧은 사이 피칠갑이 되어 돌아온 야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왕의 신성을 증폭하는 힘이라니. 우리 코쟁이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지!】
“그것참 안타깝게 되었군요. 애초에 혼자서 싸돌아다니지 않으셨다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야마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가네샤를 잠시 뚱하니 보다가 걸레짝이 된 팔을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거 좀 봐봐, 코쟁이!】
“네, 네, 많이 아프셨겠군요.”
【아니, 아픈 거 말고.】
여전히 건성건성 이어지는 대답에 야마가 보란 듯이 팔을 흔들었다.
【이번 몸이 꽤나 불량하더란 말이지.】
“불량이라면?”
【도시락을 많이 먹으니까 배가 터지겠더라고.】
“흐음.”
가네샤는 그제야 검은 문자를 피워 내며 야마의 몸을 살폈다.
“신성만 모자란 게 아니라 육체에도 오류가 있네요.”
【역시 잘못된 것 맞지? 신나게 도시락 먹다가 뒤질 뻔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야마가 팔을 거두며 계속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네, 확실히 이상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가네샤는 그가 이 땅에 내려오고서 보낸 2만 4천 년의 세월을 곱씹었다.
“유해교반만 틀어진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한반도에서 준비한 모든 것이 어긋났다고 봐야겠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다시금 얼굴을 굳혔다.
“……아, 그러고 보니.”
가네샤가 낮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찾았습니다.”
【찾다니, 뭘?】
“유해교반에서 인드라를 가로챈 자 말입니다.”
【오~ 그때 우리 코쟁이 속상하게 한 놈?】
당시에도 나름대로 흥미를 보였던 야마가 콧김을 불더니,
【혹시 그 하얀 옷인가?】
대뜸 정답을 꺼냈다.
“알고 계셨습니까?”
【별로 안 세 보이는데 이상하게 신경 쓰였거든.】
가네샤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야마는 여상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인간 따위가 내 눈길을 끌다니. 범상한 놈이 아니구나 했지.】
몹시 자기중심적인 해석이었지만 가네샤는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야마가 가진 육감.
대상의 인과를 정교하게 읽어 결론짓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또 다른 예지였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야마를 내버려 두는 것도 그 육감을 염두에 둔 조치였으니까.
‘물론 열에 아홉은 단순히 사고만 치고 돌아왔지만.’
기실 그 능력이 아니라면 가네샤가 막대한 피곤을 감수해 가며 야마와 다닐 이유도 없었다.
【근데 도사잖아. 등선 앞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니까 더 이상한 겁니다.”
가네샤는 미간을 구겼다.
“그만한 놈이 왜 아직도 땅에 발을 붙이고 있냐고요.”
【흐으음.】
야마는 생각에 잠기듯 턱을 매만졌다.
【뭘 또 복잡하게 생각해.】
그러나 금세 관심을 거두고 지루한 얼굴을 했다.
【쳐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막는 놈도 있는 거지.】
“막는 놈이요?”
【코쟁이처럼 2만 4천 년 동안 땅을 뒤집어 놓는 놈이 있으면, 그놈을 막을 놈도 준비하는 게 우주 아니겠어?】
“하…….”
예사로운 태도에 가네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 도사가 이번 우주의 안배라면…….”
그는 다시금 흰옷의 인간 도사를 떠올렸다.
다소 뛰어난 수준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경지.
그럼에도 등선할 생각은 없어 보였던 도사를 떠올리자 뒤이어 그를 곁에 둔 앳된 신에 생각이 미쳤다.
그만한 역량을 지닌 인간이 굳이 뒤를 따르는 것을 고집하는, 그 어리고 모자란 신이.
“그래, 그런 거였군요.”
인간 같지 않은 도사와 신 같지 않은 왕.
맑고도 깊은 신의 눈동자 위로 한 줄기 광망이 스쳐 지나갔다.
***
컨베이어 벨트 곳곳이 무너진 인형 공장.
“단군…….”
천천히 내게 다가오면서 그는 여느 때처럼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망치는 선명한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으나 나는 단번에 그것이 묠니르임을 알아보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가 묠니르를 내밀며 말했다.
선물을 건네듯 다정한 손짓이었지만, 나는 차마 곧바로 받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신화전의 전개 상황을 알리는 팝업창이 뒤늦게 눈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 ‘지혜로운 자’ 필드가 신화전을 진행 중입니다. ]– 승리 조건 : 묠니르 회수
– 지배도 : 93%
방금 전까지만 해도 1%에 불과했던 지배도는 93%에 달했다.
단군이 승리 조건인 묠니르의 회수를 거의 완수했기에 그렇다.
그는 어떻게 묠니르를 손에 넣은 걸까.
상대의 자원이 이 신화전의 핵심을 지키기 위해 집중된 반면, 우리에겐 자원이 일절 없었다.
심지어 뿔뿔이 흩어진 이후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운이 좋았다고?
고작 운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함에도 단군은 나를 위해 해냈다.
그 사실을 의식할수록 눈앞의 남자가 점점 더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하리라 생각했음에도 눈을 떠버렸을 때부터.
-제 시간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그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울려서, 좀처럼 묠니르를 건네받을 수가 없었다.
“이 신화전은 묠니르가 수장의 손에 온전히 들어가야만 종료됩니다.”
단군은 잠자코 서 있는 내 손에 직접 망치를 쥐여주며 말했다.
“혹여 묠니르를 뺏기더라도 수장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도로 회수할 기회를 안배한 것이죠.”
말씨는 부드러웠고, 미소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을까요?”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에 입술을 달싹였다.
“아뇨, 고맙……습니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끌어올렸으나 거북함은 미처 갈무리되지 못했다.
하나 단군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내게서 한 발 물러섰다.
[ ‘지혜로운 자’ 필드가 신화전에서 승리했습니다! ] [ 신화전이 남긴 카르마가 재구성됩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500,000’ 획득합니다! ] [ 신앙을 ‘100,000’ 획득합니다! ]신화전의 승리를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55장. 안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