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15
64장. 네 번째 천벌(2)
네 번째 천벌.
34,248명을 위협하는 재앙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구름 사이로 천천히 드러나는 거체에 숨을 죽이고 화면을 주시했다.
화면 너머에서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의 비명이 쇄도했다.
“저게 뭐지?”
호구별성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게? 뭔가 생긴 게 꼭 게 같은데.”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수영장을 가득 메울 만큼 거대한 몸에 산이라도 자를 듯한 집게발, 단단한 갑피는 분명 게를 연상시켰다.
촤아아악!
콰아아아앙!
천벌의 육중한 몸이 떨어진 수영장에서 해일 같은 물결이 일었다.
주몽이 미리 폭우를 내린 덕에 풀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출렁이는 물속에서 천벌이 거대한 집게발을 달칵거렸다.
촤아아아악!
천벌을 중심으로 물기둥 여덟 개가 용오름처럼 솟아올랐다.
-꺄아악!
-아악!
사방으로 튀는 물세례는 유리 파편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천벌이 불러낸 물기둥은 흉흉했지만, 기실 거대한 게를 장벽처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천벌의 비현실적인 거체와 흉포하게 요동치는 물기둥의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떨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촤아악!
촤아아악!
그때 내리는 빗물 사이로 슬라임처럼 투명한 무언가가 출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비눗방울처럼 보였던 그것은 허리를 곧추세우면서 점차 정교해졌는데, 투구에 상체를 철갑으로 휘감고 말까지 탄 병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굳이 불러낸 자의 뜻대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지만, 갑옷으로 무장하고 일렬로 선 그것들은 확실히 교과서에서 봤던 고구려 시대의 기병과 닮아 있었다.
-뭐야?!
-저건 또 뭐야?!
-아악!
천벌에 이은 기병의 등장에 사람들이 더욱 경악했다.
말을 탄 병사들은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컸으며, 저마다 기다란 포승줄을 휘두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갔다.
“미친놈 아냐? 저게 납치하는 거랑 뭐가 달라?”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손가락질하며 황당해했다.
커다란 병사들은 물로 만든 포승줄로 사람들을 줄줄이 묶어서 천벌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 천벌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는 사람들은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급박한 상황이니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천벌이 발생했으니 대피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말 정도는 전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 일단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마음이 맞는 파트너는 아니었다.
촤아아악!
기병들이 한창 사람들을 옮길 즈음.
천벌 주변에서 용솟음치던 물기둥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아앙!
물기둥이 움직이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으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수영장의 벽이며 타일이 부서지면서 이리저리 파편이 튀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물기둥이 뿌리는 잔해만으로도 사상자가 나왔을 규모였다.
“뭔가 또 다른 게 나오는구나.”
사라가 팔짱을 끼며 화면을 응시했다.
기병들이 흩어진 자리에 새로이 물이 고이더니 투명한 덩어리가 금세 형태를 갖추었다.
일반 병사보다 더욱 정교한 갑옷을 갖춘 장수의 모습이었다.
“저자가…… 주몽인가.”
화면 속 장수를 살피며 업경에 집중했다.
분명 물로 빚어낸 병사들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업경은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인간을 읽어 냈다.
앞선 보여준 것이 물로 가짜 병사를 소환하는 주술이라면, 이번에 펼친 것은 주몽 본인이 천벌 앞으로 이동하는 주술인 것 같았다.
다만 업경의 권능을 높여도 안에 인간이 있다는 이상의 정보는 읽히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한없이 깊은 물.
어떤 형태로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물의 권능이었다.
“뭔가 더 하려나 본데? 밑에 뭐가 생겼어.”
호구별성이 가늘어진 눈으로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의 발밑으로 흐르는 빗물이 어느새 크고 복잡한 방진을 그리고 있었다.
파아아앙!
완성된 방진으로부터 푸른빛의 신성이 퍼졌다.
촤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천벌과 주몽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쩌어어엉!
하늘을 찌를 기세로 치솟았던 파도는 마치 장막처럼 주몽과 천벌을 감싸더니, 그의 손짓 한 번에 곧장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인간들의 눈을 가렸군.”
지켜보던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벌을 비추던 화면에는 주몽이 세운 얼음벽만 비칠 뿐, 안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본래라면 천벌을 가렸어도 소리는 새어 나왔을 터였다.
한데 그마저도 주몽이 조치를 취했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대왕님 준비 끝났어용 o(≧∇≦)o
주몽이 다시금 빗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금방 이동시켜드릴 테니 천벌 저놈 한 방에 콱 죽여주세용 o(≧∇≦)o
메시지와 동시에 우리의 발밑에서 빗물이 방진을 그렸다.
“염병, 진짜 준비해 뒀네, 이동 주술.”
방진을 내려다본 호구별성이 질린 얼굴을 했다.
주몽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우리를 천벌 앞으로 부를 거란 사실은 이미 바리가 예지했지만, 막상 그가 짜놓은 판대로 움직이자니 영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파아아앙!
푸른 신성이 번쩍이면서 곧장 이동 주술이 발동되었다.
“……!”
눈 깜짝할 사이 천벌의 거체가 코앞에 나타났다.
촤아아악.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우람한 집게발이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대왕님!”
강림 형의 외침을 들으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콰아아앙!
몸을 뺀 직후 천벌의 집게발이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철퇴처럼 내리꽂혔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양 깊게 팬 땅에 긴장을 높이는데, 불현듯 뒤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실수했어요. ]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주몽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는데도 말하는 투는 묘하게 나긋나긋했다.
[ 고의는 아니었답니다, 대왕님. ]촤아아악.
사과에 반응할 새도 없이 곧장 천벌이 공격해 왔다.
채애애앵!
이번에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검으로 그것을 받아쳤다.
대상의 공격을 흡수해서 그대로 방출하는 진광대왕님의 대검이었다.
집게발 하나가 내 몸에 필적할 만큼 컸지만, 진광대왕님의 힘이 담긴 검은 그것을 물처럼 흘려내었다.
[ 공격을 열두 번 받아 내시는 거죠? ]채애앵!
채애애애앵!
채애앵!
몇 번 더 천벌과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주몽이 계속해서 말했다.
[ 열두 번 다 채우면 내가 저놈을 묶어드릴게요. ]내게 진광대왕님의 검과 도산지옥 스킬이 있는 이상 천벌의 공략법은 정해져 있었다.
나를 천벌 앞으로 소환한 주몽 역시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채애애애앵!
열두 번째 공격을 받아침과 동시에 천벌 위로 푸른 신성이 번쩍였다.
파아앙!
푸른 신성은 마치 벼락처럼 천벌의 몸 위로 떨어지더니.
쩌어어엉!
천벌의 거대한 몸을 순식간에 하얗게 얼려버렸다.
[ 휴, 내 힘으로는 이게 끝이에요. ]천벌을 얼린 주몽이 말을 이었다.
[ 남은 마력 다 쥐어짠 건데, 아마 몇 분 못 버틸걸요? 저런 거 때려잡는 건 우리 대왕님이나 도혁이한테만 가능한 거지. ]낄낄거리는 가벼운 웃음까지 흘리면서.
[ 아, 사람들은 멀리 이동시켰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수영장에 미리 방진을 짜놨거든. ]그러더니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 그래 봐야 천벌 필드 밖으로는 못 나가지만, 그래도 이 얼음벽 밖에서 꽤 넓게 움직이실 수 있을 거예요. ]대답 없이 천벌만 상대하고 있는데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대왕님? ]귀에 닿는 웃음을 흘려들으며 곧바로 필드를 전개했다.
[ (!) 당신의 전설이 공간의 지배법칙을 바꿉니다. ]저승의 전설로 전개하는 필드.
해당 전설에 속한 모든 풍문의 힘을 조합해 공간의 법칙을 새로이 바꿀 수 있는 필드였다.
[ (!) 당신의 전설이 ‘도산지옥(E)’의 풍문을 불러옵니다. ]나는 지금 가장 필요한 풍문을 사용했다.
파아앙!
황금빛이 번쩍이면서 푸른 잎이 열린 작은 나무가 솟아올랐다.
어느새 제법 키가 자란 도산지옥의 나무가 그대로 필드에 복제된 것이다.
세 번째 천벌 때보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현시점에서도 도산지옥의 힘을 어느 정도 증폭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부족했다.
[ 세계수의 씨앗(L) ]– 세계수의 정기가 담긴 씨앗.
– 해당 개체에 세계수의 정기를 담아 효과를 증폭시킨다.
복제된 도산지옥의 나무에 북유럽에서 얻은 세계수의 씨앗을 더했다.
[ (!) ‘도산지옥(E)’의 나무가 세계수의 정기를 흡수합니다. ] [ (!) 세계수의 정기를 흡수한 ‘도산지옥(E)’의 나무가 맹렬한 기세로 성장합니다. ]파아앙!
황금빛이 번쩍이며 도산지옥의 나무를 중심으로 막대한 신성이 번졌다.
파장창!
파장창창!
주위를 둘러싼 얼음벽이 깨지면서 황금빛 도산지옥의 나무들이 솟구쳤다.
주몽이 소환한 얼음벽 대신 울창한 도산지옥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우리를 둘러쌌다.
[ 이야, 역시 근사하네요. ]뒤쪽에서 주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하얀 얼음벽을 깨트리며 나타난 황금 숲이라니. ]“거 새끼, 겁나 쫑알거리네.”
결국 참다 못한 호구별성이 한 소리 했지만 주몽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 지옥의 숲을 직접 보게 되어 영광이에요. ]물론 그가 뭐라고 떠들든 천벌을 처치하는 것이 먼저였다.
곧장 팔을 뻗어 도산지옥 스킬을 사용했다.
[ (!) 당신의 전설 ‘도산지옥(E)’이 당신의 권능 ‘도산지옥(L)’과 공명합니다. ]파아-아아아앙!
우리를 둘러싼 도산지옥의 숲에서 황금빛 신성이 빛을 발하며 나와 똑같이 닮은 분신을 만들어 냈다.
천벌의 타깃이 된 모든 이들을 지키기 위한 34,248개의 분신들이었다.
길게 끌 것 없이 분신들과 함께 얼어붙은 천벌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아악!
열두 배로 증폭된 천벌의 힘을 3만이 넘는 분신들이 되돌려주는 공격 앞에, 얼어붙었던 천벌은 집게발 한번 움직여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진광대왕님의 검과 도산지옥 스킬은 지켜야 할 이가 많을수록 강력해지는 힘.
도산지옥의 스킬을 최대로 발휘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한반도에서 천벌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 있다.
“하…….”
사라져 가는 천벌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토해 냈다.
네 번째 천벌의 끝이었다.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결국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로 끝났다.
그것은 나만의 공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 하나 전투에 휘말리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건 주몽이 적절한 조치를 취한 덕이니까.
“…….”
천벌이 사라진 자리에서 잠시간 아무 말 않고 서 있었다.
천벌이 사려져도 천벌의 중계는 몇 분간 더 이어진다.
지난 천벌 때는 그 시간을 이용해 흑탑을 치겠다고 만인에게 예고한 바 있었다.
하나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아도, 어차피 내 힘을 알아본 사람들은 염라와 네 번째 천벌에 대해 알아서 떠들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마침내 천벌의 중계가 완전히 끝났을 때.
[ 에이,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주몽이 말을 걸었다.
[ 이번에는 또 무슨 명언을 남기실까 기대했는데. ]“…….”
나는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처음과 같이 커다란 투구와 갑옷으로 모습을 완전히 감춘 상태였다.
그렇다 한들 물로 빚어낸 병사들을 본 사람들은 그가 고구려의 주몽인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한반도의 모든 이들이 주몽과 염라가 천벌을 막았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사실 이미 주몽을 제거하려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의도한 것을 상기하며, 단군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10년이 좀 넘었죠.
-딱히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그만한 도사가 결국 전설을 손에 넣었다는 게 신경이 쓰였거든요.
모든 것에 초연한 남자가 굳이 먼저 손을 쓰려고 했던 자.
-한데 제가 그를 치기 전에 그가 먼저 우주에 청했습니다.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단군이 주몽을 죽이지 못하게 해달라고.
-그 결과 한반도 전역에서 일제히 1827개의 크고 작은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그와의 일을 말하며 단군은 드물게도 피곤한 얼굴을 했다.
-천부인의 조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할 규모였지요.
-1800개의 참사를 동시에 살피고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에게 손댈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제가 그때 직접 천부인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백만 명이 넘는 자들이 그대로 사망했을 테니까.
담담히 말하면서도 짙은 피로를 숨기지 못하던 수려한 얼굴이 떠올랐다.
[ 흐음, 천벌도 끝났는데 왜 계속 표정이 안 좋아요? ]그때 주몽이 다시 말을 걸었다.
[ 혹시 나 불편해요? 왜지? 난 오늘 보여드린 내 첫인상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백만 명의 목숨을 걸었다는 남자치고는 고약하리만치 가벼운 어투였다.
[ 아하, 알겠다. 도혁이가 또 내 험담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