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4
68장. 하늘의 신화(4)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다 단군과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그가 중앙에 선 염정도령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무심결에 그를 따라 돌아보자, 연회를 진행하던 염정도령이 그새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벽하원군과 주단군이 천거를 받았소.】
도전자를 갈무리하는 신언에 천신들의 시선이 신과 인간에게로 집중되었다.
【이제 두 도전자와 함께 하늘의 시험을 받을 지원자를 받겠소.】
“오, 바다 때랑 비슷한가 봐?”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한마디 했다.
“그때처럼 던전이 열리는 건가?”
그녀도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태산의 태산부군과 보탑의 수호자 탁탑천왕이 나를 도울 거야.】
벽하원군이 먼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천거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예를 보이지 않는 어투였다.
몇몇 천신들의 불만스러운 웅성거림에 그녀를 천거한 별의 자식들만 다소 무안한 얼굴을 했다.
【아, 그리고 여기 강의 신 이랑진군도.】
벽하원군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옆에 선 신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짓에 이랑진군이 제법 고상하게 연회장의 천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병풍처럼 서 있는 다른 두 신과 달리 확실하게 생기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저 안에 든 것이 사실은 한반도의 도사 주몽이라는 걸 상기하면 무척 기묘한 그림이었지만.
인상을 찌푸리며 이랑진군을 주시했다.
업경은 여전히 그가 내가 아는 주몽이라고 전했다.
함에도 그는 정말로 신의 흉내를 내며 능청스레 신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꼴을 보자니 태연한 주몽보다도 벽하원군에게 더 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떤 경위로 그를 만난 것이며,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에게 신의 이름을 주고 곁에 두는지가.
【조력자는 넷까지 지원이 가능하오.】
염정도령이 벽하원군과 그녀를 지지하는 천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벽하원군과 함께 하늘의 시험을 받을 이는 손을 드시오.】
마지막 지원자를 묻는 말에 별의 자식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계승전이 던전을 공략하는 방식이라면 응당 신성이 강한 신이 참여하는 것이 유리할 터였다.
한데도 천계에서 손에 꼽히는 신성을 가진 그들은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다들 몸을 사리느라 대륙의 신까지 불러온 양반들이었으니까.
어쩌면 저런 반응이야말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휴, 북두칠성 이름이 아깝다.”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쯧쯧 혀를 찼다.
그녀도 대강 어떤 상황인지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파군성의 파군낭자가 하늘의 시험을 받겠소.】
길게 이어진 눈치싸움이 끝에 파군성의 자식이 손을 들었다.
시간을 끈 게 무안하긴 했는지 어느새 화려하게 빛나는 별의 신성을 휘감은 채였다.
전장의 승패를 관장한다는 파군성의 자식답게 강맹한 기운이었다.
【아니, 필요 없어.】
한데 그때 벽하원군이 던지듯이 툭 내뱉었다.
【내 조력자는 셋으로 충분해.】
손은 어느새 팔짱까지 낀 채였다.
【필요도 없는데 굳이 넷을 다 채울 필요는 없겠지?】
그녀가 턱까지 조금 쳐들며 염정도령에게 물었다.
“갈수록 가관이군.”
지켜보던 강림 형이 한마디 했다.
“저런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저들에게 손을 벌리다니.”
벽하원군이 별의 자식들에게 일부러 수치스럽게 했음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별의 조력을 받을 생각이 없었음에도 그저 망신을 줄 요량으로 그들이 나설 때까지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리라.
“염병, 보고 있으니까 왠지 짜증 나네.”
호구별성이 꽁하게 말했다.
“우리 집 등신 새끼들이 남의 집에서 등쳐 먹히는 기분이야. 둘 다 빡쳐.”
별의 자식들을 아니꼽게 여기는 것과 별개로 대륙의 신에게 그들이 농락당하는 것은 영 보기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불왕 삼신이 하늘의 시험을 받겠소.】
그때 삼신이 가볍게 손을 들며 말했다.
크게 힘을 싣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묵직한 신언이었다.
생불왕이 입을 열자 벽하원군 때문에 다소 껄끄러워졌던 분위기가 다시금 고양되기 시작했다.
【수명신 사만이가 하늘의 시험을 받겠소.】
모기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삼신의 신언을 뒤따랐다.
삼신의 뒤에 서 있던 수명신 사만이였다.
손을 들었을 터임에도 그는 삼신에게 가려져 손끝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작은 키에 비해 풍채는 상당해서 후덕한 팔뚝과 허벅지가 튀어나온 모양이 꼭 삼신이 둥근 공 앞에 선 것 같았다.
“이야, 사만이 저놈도 참 오랜만이네.”
호구별성이 낄낄 웃으며 강림 형을 돌아봤다.
“우리 강림차사께서 손수 신으로 만들어준 놈이잖아, 저거.”
먼 옛날 사만이한테서 뇌물을 받은 강림 형이 그의 수명을 삼십(三十)살에서 삼천(三千)살로 고쳐준 것을 꼬집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삼천 년을 살게 된 사만이는 그 세월을 사는 동안 저승차사를 피하는 법마저 깨우치고는 삼천 년을 넘어 사만 년을 살게 되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수명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니 사만이가 신이 된 것은 결국 처음 수명을 고쳐준 강림 형의 덕이라는 뜻이다.
“말이 많다, 흉물.”
호구별성의 놀림이 부끄러웠는지 강림 형이 눈을 흘겼다.
형이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런 형의 반응이 재밌어서 소리를 낮추어 웃었다.
“아…….”
한데 가만히 웃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만이의 명부를 고쳐버리는 사고를 친 것도 강림차사였고,
차사들을 농락하며 사만 년을 버틴 사만이를 손수 붙잡아온 것도 강림차사였다.
사만이가 사만 년이나 죽음을 빗겨 가자 난감해진 염라가 강림에게 사만이를 잡아올 것을 명했고,
그에 강림은 냇가에 앉아 숯을 씻는 흉내를 내어 사만이를 꾀어냈다.
냇가를 지나던 사만이가 강림에게 왜 숯을 씻고 있냐고 묻자,
강림은 태연하게 검은 숯을 씻어 하얀 숯으로 만드는 중이라고 답했고,
그 대답에 사만이가 내가 사만 년을 살았는데도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고 껄껄 웃는 바람에 강림한테 잡혀버렸다는 게 수명신 사만이의 신화였다.
하나 그렇게 되면 천 살이 겨우 넘은 강림 형이 사만 년을 살았다는 사만이의 수명을 고쳐준 것인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반도의 신들은 아무도 사만이와 강림 형의 신화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부끄러워하는 형이 재밌다고 웃던 나조차도, 이제야 겨우 그 모순을 깨달았을 뿐.
【복록신 감은장아기가 하늘의 시험을 받겠소.】
그 모순을 미처 다 곱씹기 전에 감은장아기가 계승전에 자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복록신임에도 가난뱅이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비단옷을 입은 다른 신들과 달리 다 해진 무명옷 차림이었는데, 눈빛만큼은 어떤 보석보다도 선명한 빛을 띠었다.
【녹존성의 녹존낭자가 하늘의 시험을 받겠소.】
세 운명신에 이어 녹존성의 자식도 시험에 자원했다.
복을 내리는 만큼 화도 감당해야 한다는 녹존성의 자식이어서 그런지 어딘가 살벌하게 날 선 신성이 느껴졌다.
“그래도 저쪽은 얘기가 되어 있었네?”
호구별성이 코웃음을 치며 벽하원군 쪽을 돌아봤다.
녹존성의 자식이 별다른 잡음 없이 자원한 것이 극명하게 비교되었기 때문일 터.
유력한 신들이 단군의 조력자로 모이자 그를 지지하는 파벌의 천신들도 한층 더 고무되는 게 보였다.
“…….”
그들과 달리 나는 조금 묘한 기분으로 단군과 조력자들을 바라보았다.
조력자는 넷까지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렇게 되면 단군은 네 신의 도움을 받아 하늘의 신화 계승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는 전부터 줄곧 내가 그를 도울 필요는 없다고 했으니, 어쩌면 한반도에 돌아온 직후부터 삼신과 이미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내가 그를 도와줄 셈으로 천계에 온 것과 별개로 내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데도 나란히 선 삼신과 단군을 보자니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뭔가를 놓치고 있다기보다는, 어떤 기억들이.
지금껏 다시 떠올린 적이 없던 삼신과의 기억들이 어느 샌가부터 자꾸만 머릿속을 메우고 있었다.
-인간이 원천강을 탐내기 전에 내가 원천강의 전설을 회수해야 해.
-새 염라, 네놈도 당장 원천강을 처리하러 가야겠다.
굳이 내게 원천강의 신화를 찾아야 한다던 삼신의 목소리가.
[ ‘사계절을 품은 강.’ ]– 분류 : 풍문(E)
– 권능 : 천기(天機)
– 내용 : 하늘에는 사계절을 품은 강이 있을지니.
– 효과 : 하늘의 신화에 대한 도전 자격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손에 넣었던 원천강의 풍문과.
-도전자는 천기(天機)의 권능이 깃든 풍문을 하나 이상 지녀야 하며, 셋 이상의 천신에게 천거를 받아야 하오.
하늘의 신화에 도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들이.
-염치없는 놈들이지. 먼저 문곡성을 외면한 건 그쪽이면서 말이다.
또한 내가 인연을 맺은 문곡성이 하필 두 도전자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플래시가 터지듯 그것들이 연이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나는 그 일련의 흐름이 결국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하나로 규합하여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는 업경의 통찰임을 직감했다.
그래, 삼신은 결국 나를 원천강으로 데려갔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이렇게 되기를 의도하고 내게 원천강의 풍문을 주었던 것이라고.
“저…….”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곧장 신들을 향해 손을 올렸다.
“생불왕의 아들 염라가 하늘의 신화에 도전합니다.”
그 많은 신들 중에서도 오직 삼신과 단군만을 바라보면서.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는 그들은,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면서.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바다의 신화 계승전과 같은 방식이라면,
그때처럼 여러 던전을 공략해서 자원을 모아야 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나와 단군이 동맹을 맺으면 두 배로 빠르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으니,
벽하원군을 상대로 충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겠지.
“아.”
한데 그런 계산을 하면서도 불쑥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끼어들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네요.”
천거를 받기도 전에 냅다 손부터 들어버린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삼신과 단군의 설계를 알아채자마자 행동한답시고 저지른 실수였다.
“혹시 저 천거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
뒤늦게 좌우의 천신들을 돌아보며 물었을 때였다.
“하하하!”
불현듯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래, 내 이래서 우리 왕을 참 좋아하지.”
언제나 한결같이 내 뜻을 따라주었던 신하가 몹시 즐거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가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것은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이.
【서천꽃감관 사라수대왕이 저승의 염라를 천거하오.】
새하얀 서천의 신성을 휘감은 그가 곧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흐흥, 우리 새 염라가 갑자기 잔망을 거하게 떠는구나.”
옆에 앉은 자청비가 가늘게 눈을 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나 이 자청비가 또 이런 재밌는 잔망을 좋아하지.”
딱히 언질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사라처럼 곧바로 내 장단을 맞춰주겠다는 반응이었다.
【농경신 자청비가 저승의 염라를 천거하오.】
그녀가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황금색 신성을 발하며 사라의 뒤를 따랐다.
“으음…….”
사라에 이어 자청비마저 나를 천거하자 문도령이 조금 앓는 소리를 냈다.
문곡성은 쭉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니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상화하목 부창부수(上和下睦 婦唱夫隨)인데 지아비가 되어 어찌 지어미를 따르지 않으리오…….”
함에도 그는 그저 한숨만 한 번 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청비의 사내 문도령이 저승의 염라를 천거하오.】
뭔지는 몰라도 일단은 무조건 부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