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7
69장. 동맹(1)
북극점.
우주질서보존회 지구 본부.
지구청장 조옥희는 책상 앞에 앉아 팔짱을 꼈다.
반달처럼 둥근 책상 앞으로는 크고 작은 화면들이 조각보처럼 흩어져 있었다.
지구 전역의 경광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는 창이었다.
“흐음…….”
화면을 살피던 그녀가 문득 턱을 감싸 쥐었다.
새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우주의 화신은 유독 하나의 화면을 주시했다.
그녀의 시야에 한반도의 하늘을 관리하는 행정공무원 122팀이 비쳤다.
-하늘의 신화 계승전 진짜 하는 거야?
-어제 그렇게 됐으니까 오늘은 진짜로 던전 열 것 같던데.
-에휴, 이 새가슴들 진짜 징글맞게 끄네.
-하늘에 살아서 새가슴들인가 보지, 뭐.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툴툴거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무사히 잘 넘어가야 할 텐데. 저번에 바다에서 지랄 났잖아.
-아~ 유해교반?
-바다에 버그가 넘치긴 했는데 시스템을 그렇게까지 엎어 놓을 줄이야.
-담당자 잘렸다며?
-진짜? 좋겠다. 나도 잘리고 싶다.
한반도의 바다 던전을 다른 신화의 던전으로 바꿔 놓았던 전대미문의 버그를 언급하며 그들이 서로를 돌아봤다.
-근데 그거 범인은 찾긴 찾았어?
-찾았어. 가네샤.
-가네샤?
이름을 들은 공무원이 흥미를 보였다.
-가네샤였구만. 지구 수준에 그게 가능한가 했는데 역시 천인은 다르네.
-다르지. 지금도 벽이고 뭐고 다 깨부수고 인과율 흡수하고 있을걸?
-아, 어쩐지! 접때 보니까 서아시아 애들은 벌써 다 은퇴했더라고.
은퇴라는 말에 대화에 끼지 않았던 공무원들도 그쪽을 돌아보았다.
-진짜? 겁나 부럽네.
-천인 양반들 한반도는 언제 온대?
-몰라. 이제 북아메리카로 간다는 것 같던데.
-왜 또 북아메리카야! 한반도랑 정반대잖아!
-빨리 한반도로 와서 제발 나도 은퇴시켜 줬으면…….
“한반도는 한동안 오지 않을 테지.”
화면 속 공무원들의 말을 받으며 조옥희가 등을 쭉 폈다.
“천인이라면 누구보다 인과의 왜곡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니까.”
크고 작은 화면들로 나뉘었던 화면들이 불현듯 하나의 거대한 창으로 합쳐졌다.
“그 왜곡이 무엇 때문인지도 알 테고 말이야.”
하나로 합쳐진 창에 우주의 첫 번째 버그가 비쳤다.
23년 전 한 인간의 명부를 찢음으로써 지구 전체의 시공간에 오류를 일으킨 최초의 버그.
그가 한반도의 하늘에 머무는 중이었다.
천인들이 북아메리카로 간 것은 한반도의 하늘에서 왜곡이 불거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유해교반 사태를 입에 담는 122팀을 떠올리며 그녀가 웃었다.
하늘의 신화 던전은 정상적인 형태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조옥희는 당황한 인간들처럼 책상을 뒤엎으며 난리를 칠 우주의 화신들을 떠올리며 제법 즐거워졌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감상마저도 무척 인간을 닮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
이른 아침이었다.
세 번째 도전자가 된 나는 일행들과 함께 천궁으로 향했다.
본래라면 어제 있었던 연회에서 곧바로 계승전이 시작되어야 했다.
하나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천신들이 혼란에 빠지는 바람에 오늘로 미뤄진 참이었다.
도전자와 조력자들은 새로이 천궁의 궁원(宮苑)에 모여 하늘의 신화 계승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천궁의 보물은 또 뭘지 궁금하네.”
천궁의 궁원을 걸으며 호구별성이 입을 열었다.
천지왕의 정원답게 길마다 희귀한 힘이 깃든 나무와 꽃들이 풍성했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 짙은 향기가 코를 적셨다.
“용궁의 보물은 그냥 영감탱이들 비늘이었잖아.”
그녀가 아직도 황당하다며 투덜거렸다.
바다의 신화 던전은 용궁의 보물이라던 용왕의 비늘이 모여 열렸다.
하늘의 신화 던전도 똑같이 천궁의 보물로 열린다고 했으니, 이번에야말로 보물다운 보물을 기대하는 듯했다.
“저기 염정도령이 있구나.”
사라가 궁원의 안쪽을 가리켰다.
도전자의 천거를 받던 염정도령이 곧게 서서 도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을 여는 데 무언가 의식이 필요한지 정교한 문양을 새긴 제단이 눈에 띄었다.
“천궁의 궁원에 저런 것이 있었군.”
강림 형이 제단을 보며 말했다.
제단의 모서리에는 각각 천지왕을 비호하는 네 충신들이 붉은 함을 들고 섰다.
따로 설명은 없었으나 천궁의 보물이 든 함일 것이다.
“이쪽이오, 염라.”
나와 일행들을 맞이한 염정도령이 천지왕의 충신들을 가리켰다.
“어떤 보물이든 다르지 않소. 다른 도전자들과 함께 보물을 제단에 올리면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시작될 것이오.”
그의 안내에 따라 천지왕의 충신들을 돌아보았다.
가장 가까이에 서있던 풍우도사에게 다가가자 그가 함을 열어 보여주었다.
어제부터 그는 줄곧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행동하기만 했다.
“……?”
그런데 문득 함보다도 먼저 풍우도사가 내 시선을 당겼다.
바람을 관장하는 그에게서는 분명 풍신다운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지나치게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이었다.
……뭐라고 할까.
겉만 거센 바람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정작 그의 안은 텅 비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천계의 기가 흐트러져 천지왕이 더 이상 현현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
천지왕의 네 충신마저도 이미 신성이 크게 무너져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무슨 문제가 있소, 염라?”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염정도령이 나를 재촉했다.
“아뇨, 아닙니다.”
더 머뭇거리지 않고 보물이 담긴 함을 내려다봤다.
“깃털…….”
용궁의 보물이 용왕의 비늘이었다면 천궁의 보물은 깃털인 모양이었다.
함의 가운데에는 은빛을 발하는 깃털이 놓였으며 주위로는 4개의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깃털과 똑같이 은은한 신성을 발하는 것이 평범한 보석은 아니었다.
“이건 조력자들의 몫인가요?”
“그렇소, 그대의 조력자들에게 건네주시오.”
염정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몫의 깃털을 쥐고는 차사들과 바리에게 나머지 보석들을 차례로 건네주었다.
“이래서 조력자는 네 명까지만 가능하다고 했군.”
보석을 받은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오, 그래도 이건 좀 보물 같네.”
호구별성이 보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크기는 쬐그매도 꼭 작은 별을 따온 것 같잖아.”
용왕들의 비늘보다는 보석이 마음에 든 얼굴이었다.
“그치, 바리야?”
보석을 든 호구별성이 불쑥 옆에 선 바리에게 물었다.
깊고 검은 눈으로 차분히 보석을 살피던 바리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드물게도 조금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
호구별성에게 눈을 깜빡이던 바리가 불현듯 희미하게 웃었다.
“네. 예뻐요, 별처럼.”
보석에 담긴 신성을 살필 때는 나이에 맞지 않게 초연했던 얼굴이, 순수하게 보석이 예쁘다고 하는 순간에는 평범한 소녀 같았다.
나는 그런 바리가 새삼 반가워서 호구별성과 바리를 보며 조금 웃었다.
“저기 생불왕께서도 오시는구나.”
마지막으로 보석을 챙긴 사라가 궁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
그의 말에 시선을 돌리자 나란히 걷는 삼신과 단군이 보였다.
연회가 끝나서인지 둘 다 예복을 벗고 평소와 같은 차림으로 돌아와 있었다.
삼신은 남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었으며, 단군의 곧은 몸에는 항상 걸치던 천부인의 하얀 두루마기 코트가 나부꼈다.
“뭘 또 멍청하게 보고만 있어.”
제단 앞에 다다른 삼신이 불쑥 나를 핀잔했다.
그녀의 뒤로는 조력자인 수명신 사만이와 복록신 감은장아기, 녹존성의 녹존낭자가 호위처럼 조용히 서있다.
“내 이름 팔아서 하늘에 끼어든 놈이 고맙다는 말 하나 없고.”
“앗…….”
퉁명스러운 말에 그제야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로 모셨음에도 여전히 그녀를 마주하면 괜히 어색해서 제대로 된 인사가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어머니로 모신 나보다도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켜온 단군이 그녀와 더 가까워 보일 정도였으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염라.”
그때 단군이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를 핀잔하던 삼신이 쯧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나는 삼신에게 다시 한번 멋쩍게 고개를 숙이고는 단군의 인사를 받았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인사를 받자 나를 향한 그의 눈이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그 눈을 마주하자니 문득 전날의 대화가 곱씹혔다.
-공군 덕분에 살성이 폭주하는 별의 꼭대기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어요.
그의 신수 공군을 돌려보내기 위해 말을 걸었을 때였다.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그때도 그는 변함없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군은 당분간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염라.
돌려보내겠다는 공군을 끝내 내 곁에 남기면서.
-하늘 위로 올라왔으니까요. 날개가 달린 친구가 곁을 지켜주면 분명 쓸모가 있을 테지요.
그가 그리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미래를 봤다는 뜻일 터였다.
-제가 벽하원군을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신다고 하셨지요. 공군이 당신의 곁에 남는 것이 결국 제게도 이로운 일이 될 겁니다.
그런 말까지 덧붙이니 계속 공군을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쓸모를 위해 내게 공군을 남긴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른 도전자들도 오고 있군요.”
단군이 벼락장군이 든 함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보물을 쥐는 것을 지켜보며 이후의 일을 생각했다.
공군을 내게 남기겠다고 한 것을 보아 그는 앞으로 열릴 던전마저도 이미 어느 정도 읽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다의 신화를 두고 남해용왕과 겨루었던 유해교반의 경우 108개의 던전 중에서 중요한 던전을 골라 공략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라면 그때처럼 그가 설계한 루트를 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와 같은 신화에 소속된 상태가 아닌지라 전음을 통해 실시간으로 말을 나눌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우리가 제일 늦었네?”
그때 마지막으로 궁원에 도착한 벽하원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게 됐어, 기다리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궁원에 모인 이들을 돌아본 그녀가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먼저 왔느냐로 새삼 기 싸움을 벌일 만한 이들은 아니었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굳이 더 반응을 떠보지 않고 바로 번개장군이 든 함을 돌아보았다.
“이게 하늘의 열쇠로군?”
보물을 쥔 벽하원군이 곧장 자신의 조력자들에게 보석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녀가 태산부군과 탁탑천왕에 이어 이랑진군에게로 손을 뻗는 것을 지켜보며 문득 인상을 썼다.
저 안에 든 것은 분명 단군의 형이었다.
내가 그가 주몽인 것을 알아봤으니 아마 단군도 그를 꿰뚫어 보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형제는 정말로 남인 것처럼 아는 척 한번 하지 않고 서있을 뿐이다.
정체를 감춘 주몽은 그렇다 쳐도, 내색하지 않는 단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반도 내에서도 대립하고 있는 형이 하늘에서도 기어이 다른 신화의 신과 손을 잡고 방해를 하는 참이 아닌가.
“이제 도전자들은 제단의 앞에 서시오.”
염정도령이 지시했다.
그의 말에 따라 제단 앞에 서자 일렬로 새겨진 깃털 문양이 보였다.
내가 쥔 깃털과 크기가 꼭 들어맞는 것을 보아 그 위에 깃털을 올려놓으면 던전이 열리는 듯했다.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시작되면.”
문양 위로 깃털을 올리려는 때.
“부디 제가 고른 던전을 첫 번째로 공략해주십시오, 염라.”
단군이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나는 그가 이렇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줄 몰라 조금 놀라서 그를 돌아봤다.
“불쾌한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는 내가 당황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불쾌한 일?
……위험한 일이 아니라?
무언가 표현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찰나.
나도 모르게 반대편의 벽하원군에게로 시선이 갔다.
아니, 정확히는 벽하원군의 뒤에 서있는 이랑진군에게로…….
깃털을 내려놓으며 그의 변검 가면 너머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 (!) 천궁의 베몄냇벙륵뢍뮌빎 일곱 별의 하늘을 베뱀릊밍듈렷뤠꽥딩땟흐흐. ] [ (!) 천궁의 베몄냇벙륵뢍뮌빎 일곱 별의 하늘을 베뱀릊밍듈렷뤠꽥딩땟흐흐. ] [ (!) 천궁의 베몄냇벙륵뢍뮌빎 일곱 별의 하늘을 베뱀릊밍듈렷뤠꽥딩땟흐흐. ]……
수많은 오류창이 연달아 번쩍이면서 천궁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