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49
71장. 여우골(6)
숨어 있던 괴한이 매구의 목을 베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
파아아앙!
검푸른 신성이 번쩍이면서 그를 쳐냈다.
“비겁한 수를 쓰는군.”
발설지옥의 권능으로 괴한을 막아낸 강림 형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
나는 숨을 삼키며 옆에 앉은 단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느 때처럼 차분히 괴한을 직시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그가 괴한의 출현을 예지했는지 알 수 없었다.
“헛!”
호구별성이 손을 뻗어 괴한을 가리켰다.
“저거 사람 아닌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괴한에게 집중되었다.
발설지옥의 신성에 당해서 바닥을 구르던 그것이 기이하게 팔을 꺾었다.
찢어진 소매 사이로 보이는 관절의 마디마디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각지고 뚜렷했다.
“인형……?”
연회에서 봤던 천신 인형처럼 이번에도 목각 인형이었다.
호구별성은 인상을 쓰고 그것을 노려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또 인형…… 어?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야?!”
삐걱거리며 몸을 일으킨 인형의 발밑에 정체불명의 방진이 나타났다.
츠츠츠!
츠츠츠츠!
방진 위로 붉은 문자들이 도장을 찍는 것처럼 서로 겹치며 산개하더니.
인형의 주위로도 검붉은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까맣게 그을렸던 매구가 푸른 불꽃을 발하며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던 다리가 곧게 펴지고 밤송이처럼 곤두선 털도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빛깔을 되찾았다.
삽시간에 불어난 매구의 여우불이 성벽처럼 빼곡하게 어둠을 메웠다.
“설마 쟤 지금 매구한테 힐 쓰는 거야?”
상황을 파악한 호구별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다.
“매구만 회복시키는 게 아니에요.”
바리가 인형을 마저 살피며 말했다.
“무언가를 부르고 있어요.”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인형의 방진 주위로 다시 몇 개의 방진이 그려졌다.
파아아앙!
검붉은 빛이 번쩍이면서 나무로 만든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와 주둥이가 뾰족하고 네 발로 땅을 짚는 것을 보아 여우를 본떠 만든 인형이었다.
소환된 여우 인형들이 매구의 여우불 아래로 모여들었다.
“꽤 재미있게 나오는군요.”
단군이 문자를 흘리며 말했다.
“매구가 인형들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문득 대나무숲에서 맞닥뜨렸던 죽엽군의 왕을 떠올렸다.
문곡성 던전의 보스였던 왕은 철상지옥의 못과 도전자의 조력자들이 지니는 보석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여우골의 보스 매구도 그런 식으로 부리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네 번째 도전자는 대체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조종해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
화르르르륵!
여우불을 두른 여우 인형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앙!
검푸른 신성을 휘감은 강림 형이 즉시 앞줄의 여우를 쳐냈다.
퍼어어엉!
형의 신성에 당한 여우 인형이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근접 공격은 위험하겠군요.”
단군이 폭발하는 여우 인형들을 훑으며 말했다.
“인형의 소환진도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바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여우 인형을 소환한 괴한 인형을 주시했다.
“저대로 두면 계속해서 여우 인형을 소환할 거예요.”
“염병, 갑자기 몬스터가 떼거지로 더 생긴 꼴이잖아!”
바리의 말에 호구별성이 짜증을 냈다.
“단군, 매구의 공략법은 그대로인가요?”
나는 다시 일어난 매구를 살피며 물었다.
“네, 매구의 목을 베어야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내 물음에 단군이 인과를 읽어 대답했다.
파아아앙!
퍼어어어엉!
우리가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강림 형의 신성은 여우 인형들을 쉴 새 없이 쳐내고 있었다.
매구를 호위하는 여우 인형들 때문에 이대로는 매구에게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전력을 나누는 게 좋겠어요.”
잠시 생각을 고르고 강림 형을 돌아보았다.
“형, 형이 매구의 목을 베어주세요.”
주로 쓰는 것이 발설지옥의 신성일 뿐, 그는 시왕지옥의 모든 세례를 받은 으뜸차사였다.
형이라면 매구의 목을 베는 것도 무리가 없으리라.
“저는 괴한 인형을 맡을게요. 여우 인형을 계속해서 소환하는 것을 보면 저 인형도 우주퇴적물로 동력을 공급받을 확률이 높아요.”
정말로 우주퇴적물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해체할 수 있는 내가 상대해야 했다.
“누나랑 단군은 형이 매구를 벨 수 있게 여우 인형들을 잡아주세요. 다만 여우 인형이 자꾸 폭발하니까 도령님은 형이 다치지 않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둘에게 여우 인형을 맡긴 후 마지막으로 사라에게 당부하는 순간이었다.
“대왕님을 보필해라, 노괴.”
형이 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나는 신성으로 몸을 고칠 수 있으니 대왕님께 집중해.”
“형…….”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너희는 잘 싸우기나 해라.”
내가 형에게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사라가 퉁명스럽게 정리했다.
“피곤한 놈들.”
“…….”
나는 형이 사라를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것을 보며 조금 웃다가 마지막으로 바리에게 말했다.
“바리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해줄 거라고 생각해.”
매구를 잡는 형을 돕든, 괴한 인형을 잡는 나를 돕든 바리라면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어느 쪽이든 어시스트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걱정 마세요, 오빠.”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바리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가 보죠.”
검을 고쳐 쥐며 괴한 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붉은 방진 위에 어설픈 자세로 서있던 인형이 나를 보고는 관절을 삐걱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츠츠츠!
츠츠츠츠!
새로운 여우 인형들이 소환되면서 일제히 내게 아가리를 벌렸다.
인형들의 뾰족한 나무 이빨이 나를 물어뜯으려는 찰나.
파아아앙!
금빛 신성이 번쩍이더니 손바닥만 한 토우가 여우 인형들의 배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퍼어어엉!
토우에 당한 여우 인형들이 나무 파편을 날리며 폭발했다.
흙의 권능을 가진 바리가 토우를 소환해서 나를 도운 것이다.
나는 여우 인형들을 바리에게 맡기고 괴한 인형에게 집중해서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허리를 크게 베어내자 인형의 관절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
그런데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쪽이 아니야.”
우주퇴적물을 동력으로 품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 것과 달리 괴한 인형에게서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업경의 권능에 집중했다.
직후 이때껏 알아채지 못했던 무언가가 선명하게 읽히기 시작했다.
“실…….”
인형의 몸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투명한 실.
지난번처럼 동력을 직접 품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인형을 조종하면서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놓치지 않아.”
업경에 힘을 더하며 보이지 않는 실을 추적했다.
“그쪽이구나……!”
뒤엉킨 실의 끝에 감각이 곤두서는 순간 그것을 향해 힘껏 땅을 박찼다.
“오빠?!”
“누군가 더 있어, 바리!”
놀란 바리가 영문을 모르고 나를 불렀으나 제대로 답할 새가 없었다.
내 추적을 알아챈 상대가 즉시 인형과의 연결을 끊고 달아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형이 아니라 분명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동안은 인형만 보내어 뒤를 캘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저자가 대나무숲에서 메시지를 남긴 그 남자일지도 몰랐다.
업경이 이끄는 대로 집중하며 쫓자,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있던 자가 곧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채애애애앵!
쇠와 쇠가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채애애앵!
채앵!
채애애애앵!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 검을 휘두르며 눈에 들어오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길게 기른 백발이 바람에 거칠게 휘날렸다.
몸에 걸친 옷도 희어 잡히지 않는 하얀 연기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섭게 부딪쳐 오는 검과 달리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움직임 때문에 더욱더 그리 느껴졌다.
검을 휘두르는 몸짓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건만 검에 실린 힘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여자…….”
나는 그녀와 합을 섞으며 미간을 좁혔다.
대나무숲에서 메시지를 남긴 것은 남자였으니 눈앞의 상대는 그자가 아니었다.
하나 그자처럼 인형을 다루는 이상 필히 깊은 관련이 있을 터였다.
휘날리는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귀에서 조력자들이 지니는 보석이 장식처럼 반짝였다.
“…….”
섬세한 이목구비에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
내게 맞서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에 문득 묘한 인상을 받았다.
홍채의 색이 지나치게 옅어서 흡사 흰자위만 남은 듯한 눈이었다.
몇 번이고 검을 섞어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불현듯 저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눈으로 보는 대신 감각으로 내 검에 맞서고 있었다.
채애애애앵!
부딪친 두 개의 검에서 길게 불꽃이 튀었다.
옷도, 머리도, 눈동자마저도 하얘서일까.
아니면 그저 가느다란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아서일까.
눈앞의 그녀가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날카롭게 벼려진 쇠처럼 느껴졌다.
쇠.
차갑게 응축된 금속의 기운.
그것을 의식한 순간 불현듯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백탑의 탑주.”
살벌하게 내 목을 노리는 금기(金氣)에 그리 말하는 순간.
채애애애앵!
그녀의 검이 폭발적인 힘으로 나를 덮쳐오면서.
그녀에게 집중된 업경의 권능이 그녀가 품은 강맹한 전설의 형태를 읽어냈다.
오행을 다루는 다섯 방위의 수호신 중 하나.
날카롭게 벼린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새하얀 백호였다.
-비로소 당신을 뵙는군요.
그때 입을 다문 그녀에게서 그녀의 목소리가 선연하게 전해졌다.
-권선과 징악의 신이시여.
내가 업경으로 그녀를 읽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자신의 속내를 전하는 것이었다.
“…….”
나는 그녀가 업경을 통해 말을 건네는 것보다도, 그녀가 그런 식으로밖에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고 숨을 삼켰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코는 냄새도 맡을 수 없고, 혀는 어떠한 맛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된 것은 그녀 스스로의 의지였다.
다른 감각을 포기하는 대신 쇠의 기운을 품은 혼으로 모든 것을 느끼는 여섯 번째 감각에 집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스스로 업경이 된 것과 같았다.
그녀가 품은 날카로운 금기가 나를 훑고 내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물론 내가 가진 업경처럼 그녀가 정말로 상대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아는 개념 중에서 그녀를 가장 가깝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업경이었다.
……백탑의 탑주가 천계에 있었다니.
나는 그녀를 마주하며 생각을 곱씹었다.
단군은 대나무숲에서 메시지를 남긴 도사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천계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천상의 화원을 습격했다던 인간들은 백탑이었을까?
당시 천계는 문곡성의 희생으로 천계는 인간들의 침략을 막아내었다.
한데 백탑의 도사들이 천계에서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면 기실 그들의 목적은 당장의 침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대왕님!”
그때 뒤쪽에서 강림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아앙!
검푸른 신성을 발한 그가 곧장 내 앞을 가로막으며 백탑주와 대치했다.
“무엇 하는 놈이냐.”
형이 낮은 목소리로 추궁하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자세를 잡았다.
-던전의 공략이 끝났군요.
형의 적의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가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로 목적을 달성했으니 지금은 이쯤 하도록 하지요.
“목적을 달성했다고?”
나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기껏 던전에 숨어 들어서 매구를 길들이려 했으나, 매구는 결국 우리 손에 쓰러졌다.
조력자의 증표를 가지고 있으니 그녀 또한 하늘의 신화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입장인데 대체 무엇을 이뤘다는 것일까?
하나 그녀는 입꼬리를 당겨 옅게 웃고는.
파아아앙!
날카로운 금기가 섞인 새하얀 신성을 발하며 사라져버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