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3
72장. 천궁(4)
마침내 완성한 떡을 시장에 팔러 가려던 때였다.
-어흐으응!
갑작스러운 맹수의 울음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떡을 챙겨 가는 와중에 호랑이 소리라니, 자연히 머릿속을 스치는 설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를 시험하는 이야기가 자식들을 시험하는 이야기로 바뀐 이유가 있었나 봐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라면 어린 자식들이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말을 꺼냈더니 호구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그건 마지막에 오누이가 해랑 달이 되는 얘기 아니었어? 여기는 이미 해도 달도 다 있잖아.”
설화가 뒤섞여서인지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어쩌면 해와 달이 정말로 둘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단군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천궁의 마지막 던전은 수명장자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수명장자라면 소별왕과 대별왕이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가지기도 전에 세상에 혼란을 몰고 왔다는 악인의 이름이었다.
수명장자가 세상을 어지럽힐 당시,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두 개라서 낮은 너무 뜨겁고 밤은 너무 추웠다던가.
수명장자는 인간의 몸으로 억겁의 세월을 살면서 교만하게도 하늘의 천지왕에게 도전했다는 자였다.
그러하니 그의 이야기가 천궁의 던전을 전개할 법도 했다.
하늘의 옥좌를 지켜야 한다던 마지막 퀘스트가 수명장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저건 또 뭐야?”
그때 호랑이를 돌아본 호구별성이 문득 인상을 썼다.
우리 앞에 나타난 호랑이는 꽤나 독특한 모습이었다.
일단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호랑이 주제에 왜 담배를 들고 있어!”
미간을 찌푸린 호구별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호랑이를 가리켰다.
길게 기른 눈썹과 수염이 근사한 호랑이는 어째서인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채였는데 손에는 기다란 곰방대까지 쥐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있다는 뜻일까?
-여기 있었구나!
곰방대를 쥔 호랑이가 두 발로 휘적휘적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너희 아빠 친구 호 서방이란다. 너희가 잘 지내는지 보러 왔지.
“응? 우리 애비가 보낸 거야?”
호 서방의 말에 호구별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살폈다.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호랑이가 남매의 어머니로 변장하고 찾아왔었지요.”
지켜보던 단군이 목소리를 낮추어 만류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의 설명에 호구별성이 팔짱을 꼈다.
“호랑이가 옷 입고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진짜 애비 친구인 줄 알았잖아.”
기실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는 호 서방이 너무 자연스럽긴 했다.
설화를 알았어도 혹시나 싶었겠지.
호구별성을 막은 단군이 그녀 대신 호 서방의 말을 받았다.
“그러셨군요. 아버님께서 저희가 많이 걱정되셨나 봅니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쌀 한 되로 한 달을 버티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여우골 던전에서도 그랬지만 단군은 제법 던전의 역할극에 충실했다.
던전의 몬스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문자를 흘리는 것을 보면 그가 나누는 대화도 공략의 일부 같기는 했지만.
-한데 내가 아침부터 여기 오느라 끼니를 건너뛰어서 말일세. 뭔가 요기할 만한 게 있겠나?
호 서방이 껄껄 웃으며 곰방대를 튕겼다.
“염병할 놈이 쌀 한 되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집에서 밥을 달라네.”
호 서방의 말에 호구별성이 꽁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든 말든 단군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호 서방에게 떡판을 내밀었다.
조왕신의 가호가 깃들어 고소하고 말랑말랑한 인절미였다.
“안 그래도 갓 지은 떡이 좀 있습니다만.”
-떡? 떡 좋지.
떡판을 본 호 서방이 군침이 돈다는 듯이 혀로 입가를 핥았다.
-물론 싱싱한 고기가 더 좋지만.
“…….”
어째 호 서방이 벌써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하며 나도 장단을 맞췄다.
“그러면 떡을 좀 나누어드릴 테니 잠시 들어가서 기다리시겠어요?”
-오오! 이거 참 고맙구만!
내 말에 호 서방이 코를 벌름거리며 초가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환하게 해가 떴던 마을이 호 서방이 집으로 들어선 순간 다시 어둑어둑해졌다.
하늘에는 어느새 또 옥토끼들이 하염없이 바라보던 보름달이 떠 있었다.
“아무래도 시장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단군이 문자를 흘리며 주변의 인과를 살폈다.
“부엌에 새로운 인과가 있군요.”
“호 서방과 연결되어 있어요. 호 서방을 약하게 만드나 봐요.”
바리도 똑같이 문자를 흘리며 말을 보탰다.
-여보게들, 떡은 아직 멀었나?
안방에 들어간 호 서방이 창호지 너머로 커다란 그림자를 비추며 물었다.
“호 서방 몰래 부엌에서 아이템을 가져와야 합니다.”
발소리를 죽인 단군이 조용히 앞장섰다.
우리도 그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간간이 호 서방이 떡은 언제 주냐고 물었지만 태연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더니 별다른 방해는 없었다.
“손도끼랑 참기름이다.”
부엌에 들어선 호구별성이 눈을 빛냈다.
“이걸로 도망치는 거 맞지?”
“네, 호랑이한테서 도망칠 때 손도끼로 찍어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는 기름으로 호랑이를 미끄러트렸죠.”
그녀의 말을 받으며 손도끼와 참기름을 챙겼을 때였다.
[ (!) 배고픈 호 서방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합니다. ] [ (!) 배고픈 호 서방이 사냥에 나섭니다. ]새로운 팝업창과 함께.
-여보게들! 부엌에서 무얼 하는가!
호 서방이 안방에서 나와 성큼성큼 마당을 휘젓는 기척이 들렸다.
“뭐야! 벌써 찾아왔어?!”
깜짝 놀란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으며 부엌의 문을 나섰다.
“아무래도 참기름은 곧장 쓰는 것이 좋겠군요.”
단군이 대문으로 손짓하며 내게 말했다.
“곧장이요?”
“호 서방이 나오려고 할 때 대문에 던지시면 됩니다.”
설화대로라면 나무에 올라간 다음 호랑이더러 너도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오면 된다고 속이는 데 썼을 텐데…….
나는 설화를 곱씹으며 단군이 시키는 대로 참기름을 대문에 던졌다.
파장창!
참기름병이 깨지면서 호 서방의 커다란 몸을 흠뻑 적실 만큼 기름이 쏟아졌다.
[ (!) 배고픈 호 서방이 기름에 미끄러집니다. ]-아구구!
기름에 젖은 호 서방이 그대로 넘어져서는 헤엄치듯이 땅 위를 허우적거렸다.
“이 틈에 서둘러야 합니다.”
호 서방이 넘어지는 것을 확인한 단군이 재차 문자를 흘리며 말했다.
“나무에 올라 호 서방으로부터 도망치죠.”
그의 말을 따라 우리는 마을을 한복판을 달리며 올라갈 나무를 찾았다.
마을에는 기이하게도 나무가 도통 보이질 않았기에 제법 한참을 달리고서야 높다란 나무를 한 그루 찾을 수 있었다.
“저기 우물가!”
앞서가던 호구별성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우물가에 나무 있어! 저거 원래 없었지?”
조왕신에게 바칠 물을 떴던 우물가에 못 보던 나무가 서있었다.
하늘로 쭉 뻗은 가지에 금가루를 뿌린 양 꽃송이가 만발한 꽃나무였다.
흐드러진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진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밀려들었다.
“금목서로구나.”
사라가 나지막이 말했다.
“향이 만 리를 간다고 하여 만리향이라고도 부르지.”
가까이 갈수록 진해지는 향기에 금색 꽃잎마저도 더욱 선연히 보이는 듯했다.
없던 나무가 새로이 생겨서일까, 보름달이 뜬 우물가에 꽃이 난개한 금목서는 빛을 녹여 그린 것처럼 신비로웠다.
“다른 이름으로는 계수나무라고 하지요.”
옆에 선 단군이 부드럽게 눈을 휘며 덧붙였다.
“제대로 찾은 것 같습니다, 염라.”
무언가를 읽고 있는지 어느새 금색 문자가 흘러나왔다.
금목서에 다다라서인지 꼭 금목서의 꽃잎을 그도 똑같이 흘리는 것 같았다.
“제법 높군.”
금목서 앞에 선 강림 형이 서늘한 눈으로 나무를 살폈다.
“다만 맨손으로 오르는 것이 힘들어 보이진 않습니다, 대왕님.”
나무를 훑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발설지옥 차사의 시선과 일반적인 시선은 조금 다르다는 게 느껴져 작게 웃음이 났다.
“그래도 설화에서는 이걸로 나무를 찍어서 올라갔었죠?”
나는 부엌에서 챙겼던 손도끼로 나무를 찍었다.
[ (!) 계수나무가 도끼날에 화들짝 놀랍니다. ]한데 나무를 찍자마자 팝업창이 떴다.
[ (!) 도끼날에 놀란 계수나무가 황급히 계단을 만듭니다. ]직후 거칠거칠한 나무 기둥에서 납작한 잎사귀들이 뿅뿅 튀어나왔다.
“앗…… 나무가 직접 계단을 만들어주는 거였어?”
새로 나온 잎사귀들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밟아보았다.
잎사귀는 평범한 잎과는 달라서 내 발을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진짜 계단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짜고짜 도끼로 찍지 말고 말부터 걸어볼 걸 그랬나?
조금 미안함을 느끼며 잎사귀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내가 먼저 금목서의 꼭대기에 오르니 다른 일행들도 잎사귀를 밟고 천천히 나무로 올라왔다.
어쩌다 보니 내 바로 뒤에는 단군이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는 뒤이어 올라오는 바리의 손을 잡아서 좀 더 쉽게 올라올 수 있게 도와주고는 늘 그러했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제일 마지막 순서였던 강림 형이 나무에 오르기 시작할 즈음에는 참기름에 미끄러졌던 호 서방이 그새 우물 바로 앞까지 따라온 상태였다.
-이놈들! 한입에 삼켜버릴 테다!
비단옷이 엉망이 된 호 서방은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나무를 붙잡았다.
“이런, 벌써 따라왔네!”
잔뜩 약이 오른 호 서방이 나무를 오르려는 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 어떡하지? 설화대로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 되나?”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는데 단군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걸로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까요.”
그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을 꺼내 보였다.
“부엌에 참기름과 손도끼 말고도 이런 것이 있더군요.”
“어… 곶감……이요?”
굴비처럼 알알이 꿰어서 말린 곶감들이었다.
그런 게 나올 줄 몰라서 멍청히 보고 있으려니, 단군은 그것을 장난스럽게 몇 번 흔들고는 그대로 호 서방한테 던졌다.
[ (!) 잠자던 곶감 동자들이 깨어납니다. ]호 서방과 부딪친 곶감들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 (!) 곶감 동자들이 천적 호랑이를 발견합니다. ]빛에 휩싸였던 곶감들은 놀랍게도 만두 머리처럼 머리 양옆에 곶감을 단 동자들로 변했다.
[ (!) 곶감 동자들이 천적 호랑이를 혼쭐냅니다. ]호 서방을 둘러싼 곶감 동자들은 일제히 작은 팔다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퍽퍽!
곶감동자들의 주먹이 힘차게 바람을 갈랐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명성에 걸맞게 호랑이도 벌벌 떨게 만들 만큼 매서운 기세였다.
“재밌는 인과가 읽혀서 가져왔습니다만, 기대 이상이네요.”
곶감동자들을 내려다보던 단군이 쿡쿡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곶감이 호 서방을 상대하는 동안 달나라와 연락을 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의 말에 잊고 있었던 옥토끼들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달나라에 데려다 달라던 옥토끼들이 아이템으로 변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곧바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옥토끼들도 우물가에서 금목서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게 아닐까?
“저기 그…… 여기에 달나라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토끼들이 있는데요.”
다만 내가 외계인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달나라와 교신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서.
일단은 인벤토리에서 옥토끼들을 꺼내 무작정 달에 대고 물었을 때였다.
“이 토끼들이 달나라에 돌아갈 수 있게 동아줄 좀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 (!) 달나라에서 당신이 달에 오를 자격이 있는지 시험합니다. ]한데 내 정성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우르르릉!
콰아아아앙!
팝업창과 함께 뜻밖에도 우리가 올라탄 금목서에 벼락이 꽂혀버렸다.
화르르륵!
벼락을 맞은 금목서는 급기야 불까지 붙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라…….”
나는 불타기 시작한 금목서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나 혹시…… 사고 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