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6
73장. 창귀(1)
마침내 시작된 ‘천궁-주방’ 던전의 최종 스테이지.
창귀가 된 하인을 쓰러트린 우리는 잠시 마을의 입구에 섰다.
하늘에 걸린 그믐달 때문인지 장승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유독 스산했다.
“마을 전체가 무언가의 인과로 연결되어 있군요.”
안쪽을 살피던 단군이 문자를 흘리며 말했다.
“추인(貙人) 호 서방을 절차에 따라 봉인하는 게 던전의 공략인 것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호환을 당했으니 호식장(虎食葬)을 치르는 게 과제일 수도 있겠어요.”
바리가 단군과 똑같이 인과를 읽으며 덧붙였다.
“호환을 당한 이는 호식장으로 넋을 달래주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어쩌면 마을에 호식총(虎食塚)을 만들어서 호 서방을 봉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단군도 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식장은 호랑이한테 잡아먹혀 창귀가 된 이를 기리는 장례고,
호식총은 호식장을 치른 이들이 묻히는 특별한 무덤이었다.
호식터는 호환에 당한 시신이 발견된 터를 말하며, 호환을 당한 시신은 집으로 모시지 않고 호식터에서 바로 화장을 한다.
화장한 재는 함에 넣어 호식터에 매장하는데 위로는 돌무덤을 쌓고 구멍이 뚫린 찜 그릇 시루를 덮은 뒤 시루의 구멍에 식칼을 꽂는다.
불에 태우는 것은 창귀의 한을 태우는 것이고,
돌무덤을 쌓는 것은 창귀의 부정을 억누르는 것이며,
식칼을 꽂는 것은 마침내 호랑이에게 묶인 넋을 풀어주는 것이니.
이 던전의 공략도 호식총을 만들어 호 서방을 봉하고 창귀가 된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성불시키는 게 되리라는 추측이었다.
“이제 보니 입구에 매화나무를 심었군요.”
단군이 주변을 좀 더 살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드물게 높이 자란 나무가 여럿이었다.
어두워서 내 눈으로는 무슨 나무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으나 그는 매화나무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문자를 흘리는 게 아마 나무의 인과를 읽은 모양이었다.
“매실을 조금 따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조언했다.
“호환이 닥친 마을에 매화나무를 심어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화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로 나무에 맺힌 매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창귀는 신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
지켜보던 사라가 한마디 보탰다.
“여차하면 창귀를 매실로 꾀어낼 수도 있을 테니 챙기거라.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게다.”
그도 매화나무에 무언가 역할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듯했다.
나는 커다란 매화나무 앞에 서서 반사적으로 까치발을 했다가 이걸로는 열매에 손을 닿을 리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흠흠, 역시 상당히 높네요. 이러면 매실이 열린 것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겠어요.”
“아마 일부러 그리했을 테죠. 공략에 사용할 히든 아이템이 되도록.”
단군이 마저 조언했다.
“공군의 힘을 빌려 매실을 따는 게 좋겠군요. 과육이 상하지 않게 잘 가져다줄 겁니다.”
그의 말마따나 하늘을 나는 공군이라면 저렇게 높이 열린 매실에도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터였다.
파아앙!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었는지 공군은 연녹색 신성을 번쩍이며 스스로 밖으로 나왔다.
“공군, 매실을 좀 따다 줄래요?”
내 머리 위를 빙글 도는 공군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펄럭!
공군은 인사라도 하듯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고는 곧장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는 부리로 매실을 따는 공군을 지켜보다가 단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우골에서도 공군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그러네요.”
단군이 내게 공군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맡겼던 사실을 짚으며 말을 꺼냈다.
그가 예견한 공군의 도움이 여우골에서의 도움이었을지를 넌지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적절히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단군이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이곳은 하늘이니 날개 달린 친구를 계속 곁에 두는 게 좋으시겠지요.”
단순히 언제 쓰일지 모르는 날개를 위해 공군을 데리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결국 아직도 내게 공군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단 뜻이었다.
그에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다시 공군을 바라보았다.
펄럭!
그새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진 공군이 매실을 잔뜩 물고 돌아왔다.
볼이 볼록해서인지 귀에 꽂은 꽃핀이 유독 앙증맞아 보였다.
[ 매실(D) ]-신맛이 나는 매실.
“아이템이 맞네요. 역할이 있나 봐요.”
나는 공군이 챙겨준 매실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고마워요, 공군.”
감사의 인사를 표하자 공군은 언제나처럼 멋지게 날개를 펄럭이고는 내 가슴 속으로 복귀했다.
단군은 공군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는 마을을 가리켰다.
“세부적인 공략 과정은 마을에 들어가서 살펴보죠.”
“네, 그럼 이제 들어가요.”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마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흐응!
그런데 마을에 막 들어서는 순간.
“아…….”
귓가에서 울리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몸 안쪽까지 뒤흔드는 듯한 선명한 울음에 멈칫하며 뒤를 돌았다.
하나 소리를 들은 것은 나뿐이었는지 다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대왕님.”
눈이 마주친 강림 형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아, 아뇨…… 그냥, 뭔가 들은 것 같은데.”
나는 형이 걱정할까 봐 황급히 손을 내젓고는 형의 어깨 너머로 우리가 넘어온 마을의 입구를 올려다봤다.
“호랑이 이빨…….”
울음소리가 착각이 아니었는지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이 언뜻 희미하게 겹쳐 보였다.
다만 이빨이 보이는 것은 아주 찰나였을 뿐, 눈을 깜빡이자 금세 사라져버렸다.
“아, 업경이구나.”
한발 늦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업경이 호랑이가 남긴 기운을 읽었나 봐요. 근데 어딘가…….”
말꼬리를 흐리며 호랑이의 강맹한 울음과 서슬 퍼런 이빨을 곱씹었다.
잘 벼려진 쇠처럼 날카로운 이빨에 백호의 금기(金氣)를 품었던 백탑주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다만 그것이 정보를 규합하여 최선의 결론을 내리는 업경의 통찰이었는가 하면 그렇다 단언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방금 읽은 게 정말로 백탑주의 흔적인지는 확신하지 못한 채 그냥 고개를 젓고 말았다.
“주의하는 게 좋겠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 말에 일행들은 별다른 대꾸 없이 재차 나아갔다.
“안 그래도 분위기가 살벌하다, 야.”
마을에 들어선 호구별성이 집들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호환이 휩쓸어서인지 집집마다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호랑이는 인간을 잡아먹어도 머리는 남겨둔다고 하니 어쩌면 꽤나 섬뜩한 꼴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기척이 느껴집니다, 대왕님.”
옆에 선 강림 형이 가까운 집들을 살피며 말했다.
“모든 집이 빈 것은 아니군요.”
그가 유독 한 집을 주시할 때였다.
-아이구, 도련님들 오셨습니까?
핏자국이 남은 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걸어 나왔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파리한 안색에 등이 굽은 할머니였다.
손에는 커다란 소쿠리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찐 감자가 가득했다.
먹을 사람도 없는데 음식만 한가득인 것이 오히려 기이하게 느껴졌다.
-보시다시피 마을에 횡액이 휩쓸어 난리가 났습니다.
할머니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영감도 쓰러져서 이 감자를 먹여 살리려고 한답니다.
“뭐야, 세상에 감자 먹고 살아나는 인간도 있어?”
호구별성이 영 미심쩍다는 듯이 할머니를 살폈다.
호환에서 살아남았다는 설정인가 싶으면서도 썩 믿음이 가지 않는 듯했다.
앞에서 봤던 하인도 멀쩡한 인간인 척하는 창귀였으니까.
나도 유심히 할머니를 살피니 문득 소쿠리를 쥔 손에 검은 줄이 보였다.
“앗, 누나! 그 할머니도 호랑이예요……!”
깜짝 놀라서 외치는데 할머니가 호구별성을 향해 커다란 앞발을 휘둘렀다.
파아앙!
거의 동시에 암녹색 신성이 번쩍였고, 직후 할머니가 흰옷을 입은 호랑이로 변했다.
“염병,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호구별성이 쓰러진 호랑이를 내려다보며 독기를 뿜었다.
역병의 권능에 당한 호랑이는 순식간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문드러졌다.
호구별성은 그것이 완전히 썩어 없어지는 것을 보고는 팔짱을 꼈다.
“이거 계속 창귀들이 인간인 척 수작을 거나 보네?”
“일단은 길을 따라 쭉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단군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훑으며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모르겠습니다만 길의 인과가 하나로 연결되는군요. 끝에 서 있는 건 크고 화려한 기와집입니다. 아마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는 집일 테지요.”
그의 말에 호구별성이 꽁하니 팔짱을 꼈다.
“헹, 기껏 집에 돌아갔더니 맞아준 가족들이 죄다 창귀였다는 전개구나.”
“그런가 봐요. 창귀는 원래 잘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유혹하니까.”
나는 멋쩍게 말을 받으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기와집으로 향하는 도중.
우리는 인간 행세를 하는 창귀들과 계속해서 마주쳤다.
하나는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이었는데.
시부모님이 위독하셔서 약수를 먹여 구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약수를 뜬 여인의 치마 밑으로 호랑이 꼬리가 보였기에 창귀인 걸 알고 곧장 손을 썼다.
다시 길을 가니 이번에는 농부가 한 명 걸어 나왔다.
부모님과 아내가 위독하여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한데 길을 걷는 농부의 바지 뒤로 호랑이 꼬리가 튀어나와서 이번에도 곧장 창귀를 처리했다.
그렇게 쓰러진 가족들을 구하러 간다는 창귀들을 하나둘 쓰러트리며 나아가자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이야기가 있었다.
“유복이와 금강산 호랑이 설화네요.”
설화의 주인공 유복이는 정말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유복자라서 이름이 유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랑이도 여럿 잡은 아주 뛰어난 사냥꾼이었지만.
보통의 호랑이보다도 몇 배나 더 큰 금강산 호랑이를 잡겠다고 나섰다가 그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복이의 어머니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복이를 최고의 사냥꾼으로 키워냈으니.
유복이가 장성하자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유복이를 시험하길, 너의 아버지는 10리 밖에서도 내가 지고 있는 물동이를 화살로 쏴서 구멍을 내고는 그 구멍에 다시 화살을 맞추어 물이 새지 않았다고 했다.
놀랍게도 유복이는 기어이 그 시험을 통과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어머니가 말하길, 사실 마을 제일가는 사냥꾼이었던 유복이의 아버지도 그런 재주는 없었다며 아버지를 능가하였으니 이제 복수할 때가 되었다고 유복이를 금강산으로 보냈다.
금강산에 당도한 유복이는 사람으로 위장한 창귀들을 화살로 쏘아 죽이는데 그 순서가 꼭 우리가 방금 마주친 창귀들과 같았다.
그리하여 유복이는 마침내 아버지의 원수인 금강산 호랑이를 마주쳤다.
그렇게나 활을 쏘는 재주가 뛰어났음에도 호랑이의 두꺼운 가죽은 유복이가 쏜 화살을 모두 튕겨내고 말았다.
함에도 유복이는 포기하지 않고 호랑이의 눈에만 집중적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호랑이의 무시무시한 눈은 그마저도 튕겨내고는 유복이를 한입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통째로 삼켜진 유복이는 호랑이 뱃속에서 전날 잡아먹힌 부잣집 딸과 만났고, 부잣집 딸이 쥐여준 칼로 호랑이의 뱃속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배가 아파진 호랑이가 지혜로운 곰을 찾아가서 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곰은 호랑이가 배탈이 난 줄 알고 금강산의 영험한 과일과 약수를 마시라고 조언했다.
호랑이가 조언에 따라 과일과 약수를 마셨더니 유복이도 호랑이 뱃속에서 그것을 따라 먹었고,
과일과 약수로 더욱 힘을 내어 마침내 호랑이 배를 가르고 나와서 부잣집 딸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호식총 외에 창귀을 해방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집안의 자손이 호랑이의 간을 씹어먹는 것이지요. 적절한 설화겠군요.”
단군이 내 말에 동의했다.
“네, 근데 그러면…….”
나는 어느새 다다른 기와집을 올려다보며 마저 말했다.
“우리도 일단은 호 서방한테 한 번 잡아먹히게 되는 걸까요?”
말을 꺼낸 순간.
-어흐으응!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 들었던 호랑이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머릿속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