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9
74장. 나무 감옥(1)
“윽…….”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사방이 어두운 와중에 창살처럼 드리운 나뭇가지가 보였다.
등을 기댄 벽에서 몸을 떼려는데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부적……?”
불편함에 내려다보자 그새 몸 곳곳에 정체불명의 부적이 붙어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그새 의식이 끊겼던 것일까.
[ 이제연 (염라) ]* 권능 – 권선, 징악, 죽음, 사후세계, 오행 ː 수(水)
* 스킬 – [L]업경 [L]명부, [L]도산지옥, [L]화탕지옥, [L]한빙지옥……
* 체력 1/1
* 근력 1/1
* 마력 1/1
* ……
상태창을 확인하니 스탯마저 전부 1이 되어 있었다.
“그때와 같아…….”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굽혀보며 인상을 썼다.
“그때…… 혼을 이동시키는 함정에 걸렸을 때.”
흑탑주와의 싸움 직후 정체불명의 몸에서 눈을 뜨던 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낯선 곳에서 그 남자와 다시 마주쳤을 때.
-도와드리러 온 것이니까요.
적탑의 도혁주로 나를 찾아왔던 단군을 떠올리자.
뒤이어 네 번째 천벌 직후 주몽이 했던 말도 함께 곱씹혔다.
-그때 흑탑 본거지에 잡혀가지 않았어요?
-갑자기 몸이 막 터지면서 영체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던 주술, 그거 누가 그랬게요?
“이 몸도 단군의 짓인가…….”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직시했다.
-제가 이곳의 또 다른 창귀였습니다, 염라.
그리 말한 이상 그가 나를 이 상황으로 유도한 것은 명백했다.
“하긴 식칼도 내가 써야 한다고 했었지.”
-식칼은 당신께서 지니시는 게 좋겠습니다, 염라.
-식칼의 인과도 던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략에 필요한 것은 분명하나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귀속 아이템이군요.
그가 어떻게 내가 식칼을 챙기도록 유도했는지 떠올리자 새삼 쓴웃음이 났다.
“정말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구나…….”
던전의 공략 때문에 내가 식칼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식칼에 걸린 주술 때문이었다니.
-여우골에서 당신은 삼신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상황을 곱씹자 주술에 걸리기 직전 그가 왜 그런 말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삼신을 믿는 만큼 계속해서 그를 믿으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삼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를 의심하지 않는 나를 조롱하는 것이었을까.
혹은 줄곧 내 믿음을 시험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내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재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새삼 단군에 대한 내 믿음이 꽤나 굳건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그를 의심하기보다는 무언가 사정이 있을지 모를지부터 상정하다니.
하나 꼭 그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뿐만이 아니더라도, 삼신이 인간에게 속아서 뜻을 같이한다는 것은 역시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 상대가 설령 한반도 최고의 실력자인 단군일지라도 그러했다.
차라리 그 신과 인간이 합심하여…… 나를 속이고 있다면 모를까.
-저는 당신이 ……니다.
다만 제대로 듣지 못한 그의 마지막 말.
그 말에 담긴 밀도 높은 감정만은 자꾸만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업경이 감지한 것은 아주 찰나였음에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북유럽에서 한 차례 마주했던 그의 증오였다.
기이하리만치 차갑게 식어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팽창하던 증오.
그는 내게 그 증오까지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끝내 내게 닿지 못한 그 말을 전하는 순간 그 자신조차도 그것을 억누르지 못하고 내보이고야 만 것일까.
결국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은, 그의 말을 덮어버릴 만큼 강렬했던 그 깊은 증오 때문이었거늘.
“……형이 걱정할 텐데.”
상념 끝에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단군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가 악의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리하여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 단군과 삼신의 뜻이라면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터였다.
당장은, 작금의 상황부터 직시해야 했다.
그리 결론을 내리며 주변을 살폈다.
“……나무로 만든, 감옥?”
눈에 들어온 것은 나를 가둔 나뭇가지들이었다.
팔뚝만큼 굵은 가지들이 새장처럼 좁은 감옥을 만든 형태였다.
천장이 낮아서 몸을 굽히거나 무릎으로 기어야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마저도 몹시 좁아서 새우처럼 웅크려야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파스스.
주변을 살피는 와중 얼핏 기척이 들렸다.
파스스.
파스스스.
기척을 따라 나뭇가지 틈새로 바짝 얼굴을 가져갔다.
“……!”
그 순간 똑같이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무언가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인형?”
눈이 마주친 그것은 얼굴에 나뭇결이 선명한 목각인형이었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까만 눈동자가 불쑥 나를 향하더니 인형의 턱이 벌어졌다.
가각!
가가각!
경고라도 하듯이 인형이 턱을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아…….”
나는 인형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지옥의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철상지옥의 못으로 조종하는 인형이야.”
하면 나를 가둔 것이 줄곧 천계를 어지럽혔던 네 번째 도전자라는 뜻이었다.
-조만간 뵙겠습니다, 권선과 징악의 신이시여.
대나무숲 던전에서 메시지를 남겼을 때부터 이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을까.
파스스.
파스스스.
다시 들려오는 기척에 긴장하며 감옥 밖을 살폈다.
한두 개가 아닌 목각인형들이 삐걱거리며 이열로 서는 게 보였다.
인형 나름의 정중함이 느껴지는 움직임은 마치 주인이라도 맞이하는 모양새였다.
“기다리시게 했군요.”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탑주 주진환이 새로운 저승의 왕을 뵙습니다.”
“청탑주……?”
뜻밖의 말에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어두웠던 공간에 작은 전구라도 켠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상대의 모습만 겨우 확인할 만큼의 희미한 빛이었다.
“말씀을 나누기 위해 잠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
이어지는 말에는 한층 긴장하며 상대를 주시했다.
정중한 어투였지만 힘을 빼놓고 말을 나누겠다는 것부터 수틀리면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뜻이었다.
하나 형편없는 몸에 갇힌 이상 당장은 대화를 하자는 요구에 맞추는 시늉을 해야 할 터였다.
나는 적의를 드러내는 대신 침착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당신이…… 청탑의 탑주라고요.”
차분하게 뒤로 넘긴 머리에 외알 안경을 낀 남자였다.
손에는 두꺼운 책을 몇 권 들고 있어 얼핏 학자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하늘이었음에도 마법사처럼 로브를 걸친 기이한 모습이었다.
청탑의 탑주에…… 또 주 씨라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가 도사인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돌림자가 다른 것을 보면 단군의 형제자매들과는 항렬이 다른 것일까?
도사는 육체가 고정되는지라 겉모습만으로는 몇 살인지 알아볼 수 없다.
대신 업경에 집중하자 그가 쉰 살의 단군이나 칠순의 주몽보다도 훨씬 더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읽을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그에게서는 인간이 버틸 수 없는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졌다.
나무를 다루는 청룡의 전설.
힘의 근원이 나무여서일까, 그는 꼭 인간의 형태를 한 고목 같았다.
“큿…….”
불현듯 머릿속을 흔드는 현기증에 작게 신음했다.
우주의 시간이 담긴 원천강을 직시했을 때와 비슷한 현기증이었다.
업경이 읽어내는 수많은 정보가 과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고작해야 수백 년이었다.
그가 품은 시간의 깊이는 당연히 원천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함에도 신도 아닌 인간이 이만한 시간을 품었다는 비정상적인 상황 자체가 정보의 과부하를 일으켰다.
아무리 도사가 늙지 않고 신과 같은 권능을 부릴 수 있다 한들, 신도 아닌 인간이 이렇게나 긴 세월을 윤회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이상했다.
“후후후.”
그때 청탑주가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어떠십니까, 제가 품은 인간의 역사는.”
이어지는 말과 동시에 나를 어지럽히던 정보의 과부하가 촛불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촛불의 심지 위로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한 줌의 잔상만 남긴 채.
아무래도 그는 일부러 나를 자신의 시간으로 압박한 것 같았다.
내가 그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해서.
그것을 깨닫자 도사 특유의 검고 깊은 눈에서 문득 낯설지 않은 욕망을 느꼈다.
수로왕의 무고에 갇혀 있을 때 수많은 도사들에게서 느꼈던, 신의 자리에 대한 욕망이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그 욕망을 알아채고 물었더니 청탑주가 외알 안경을 번쩍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셨군요.”
내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다.
“어울렸던 이들도 전부 당신처럼 좋은 집에서 태어난 이들뿐이었고요.”
주몽이 그러했듯이 그는 그새 내 과거를 읽고 있었다.
“저도 속세에 나갔을 적에는 비슷한 이들을 겪었습니다. 좋은 집안, 좋은 학교, 이대로 세상의 기득권이 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 그런 게 참 재미있었죠.”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끝까지 선택받은 자라고 믿는 게.”
그 웃음만으로도 나는 그가 내게 무척 불편한 상대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게 바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더 듣지 못하고 끊어내자 그는 그것도 재미있다는 듯이 더욱 선연하게 웃었다.
“그들의 믿음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지요.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선택받은 소수의 손으로 이어져 왔으니까요. 하나뿐인 목숨은 똑같이 귀하다지만 한 명, 한 명이 인간 역사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각기 다르지 않았습니까.”
말을 잇던 그가 불쑥 나를 가둔 나무 감옥을 건드렸다.
촤르르륵.
그가 손을 대자 창살처럼 드리웠던 나뭇가지가 블라인드처럼 위로 걷혔다.
“우주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역사를 움직여 왔지요. 부와 권력을 갖춘 기득권의 손으로,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도사들의 손으로.”
나무 감옥을 걷어낸 그가 한 발 더 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받은 소수의 인간도, 타고난 권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신도 사실 그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가온 그가 바닥에 주저앉은 내게 맞추어 자신도 무릎을 굽혔다.
“신도, 도사도 결국 우주가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기 위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 제가 인간의 세월을 한없이 유랑한 끝에 얻어낸 진리입니다.”
그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자 그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입술을 비틀며 마저 말했다.
“도사인 나도, 신인 당신도 결국 우주가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나한테 바라는 게 그겁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물었다.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참고 물었더니, 그가 만족스럽게 입술을 비틀었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이 손에 넣은 권선과 징악의 권능으로 함께 인간을 가장 합리적인 역사로 이끌어주십시오.”
이어지는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나는 그가 왜 당신을 원하는지 알아요, 염라.
-권선과 징악의 신인 당신이 내리는 벌은 결국 신의 뜻이 될 테니까요. 인간은 그것에 감히 의문을 표하지 않을 테니까요.
언젠가 적탑주가 내게 남겼던 경고.
-그래서 나는 당신과 그 남자가 손잡은 세상이 오는 게 무서워요.
-그 세상은 그 남자가 선택한 세상을, 그 남자가 그의 능력 안에서 가장 많은 인간을 위해 선택한 가장 합리적인 세상을 거부하면 악이 될 테니까.
청탑주는 그때 적탑주가 두려워했던 세상을 말하고 있었다.
“우주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에 가까운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존재와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품은 권선과 징악의 신을 동시에 내놓은 것은, 분명 그를 위해서겠지요.”
말을 마친 청탑주가 대답을 기다리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내게 당신을 보낸 것입니다.”
그 말의 끝에 나를 이곳으로 유도한 남자를 덧붙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