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94
83장. 왕좌에서 당신은 영원히(1)
이대로 청탑주를 벨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오래전에 예정되었던 결말을 내 손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품어서는 안 될 욕망에 피눈물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뭐지?”
한 장의 사진처럼 멈춰 있던 청탑주가 눈을 부릅떴다.
“당신, 뭘 하려고 했지?”
도사인 그는 내 눈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그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막대한 심판을 각오하고서라도 자신을 해치려 들었다고 여긴 것이다.
“큭……크큭.”
그 꼴을 보자 나는 되레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당신이 내게 남긴 말. 시간을 거스르기 직전에 미처 듣지 못한 당신의 그 말이 궁금했는데.
이제야 내가 무슨 말을 남겼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라고 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할 그에게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뱉었을 그 말을 토해내었다.
“나라고 해서 당신을 베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어…….”
[ (!) 공간의 지배법칙을 해제하였습니다. ]청탑주의 몸에 번진 왜곡을 베어내고 카르마 등급 필드를 거두었다.
“대왕님!”
“전하!”
“대왕!”
차사들이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렇게 다쳤어?!”
호구별성이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다가오는 찰나.
파아앙!
새하얀 신성이 비단처럼 몸을 휘감았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불티처럼 반짝이는 문자들이 섞여 들었다.
서천의 권능으로 내 몸을 치료한 사라가 굳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신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잠깐의 순간.
나는 그가 이 상처의 원인을 알아봤다는 걸 직감했다.
하나 설명을 요하는 그에게는 그저 입술만 달싹일 수밖에 없었다.
“대왕님!”
강림 형이 큰 몸으로 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섰다.
때맞춰 나와 사라 사이에 가림막처럼 드리우는 형을 핑계로, 나는 그의 팔뚝을 붙잡고 말을 돌렸다.
“형, 저 진짜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슬러서는 안 될 것을 욕망해 봤자 끝은 비참할 뿐이다.】
하나 그런 나를 몰아세우기라도 하듯 곧장 사라의 신언이 이어졌다.
도망칠 수 없게 칼침처럼 깊이 파고드는 신의 목소리였다.
형의 너른 어깨에 가려진 신의 시선마저 그대로 내게 쏘아지는 듯했다.
“뭐야, 영감?”
사라의 신언에 호구별성이 먼저 반응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그녀가 재차 물었지만 사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강림 형만 미약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살피듯이 내 얼굴을 훑을 뿐이었다.
형이 사라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운 것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그의 팔을 조금 밀며 고개를 돌렸다.
“형, 정말로 괜찮으니까 비켜주세요.”
형은 이내 별다른 말 없이 옆으로 몸을 조금 물렸다.
나는 일부러 형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청탑주를 사이에 두고 주술을 시전하는 바리와 단군를 바라보았다.
츠츠츠!
츠츠츠츠!
때마침 두 도사의 주술이 완성되어 검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필드가 해제되면서 그대로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 청탑주의 하반신은 이미 검게 침식되어 있었다.
그를 반쯤 삼킨 소용돌이 주위로 크고 작은 문자들이 불티처럼 검붉게 흩날렸다.
“무슨……!”
경악한 청탑주가 늪에 빠진 듯이 허우적거릴 때였다.
파아아악!
어느 순간 소용돌이가 폭발하는 화산처럼 새까만 문자를 뿜었다.
“안……!”
문자에 파묻힌 청탑주가 위로 뻗은 손만 허망하게 꿈틀거렸다.
하나 겨우 뻗었던 손마저도 순식간에 화산재처럼 쌓이는 검은 문자들에 파묻혔다.
먹이를 소화시키는 생물의 위장인 양 부풀어 올랐던 소용돌이는 몇 번 더 요동치다가 그대로 푹 꺼져버렸다.
[ (!) 대상의 승리 벨득흐흐건이 확인되지 않벨까뇩받듬흐흐흐다. ] [ (!) 대상의 승리 벨득흐흐건이 확인되지 않벨까뇩받듬흐흐흐다. ] [ (!) 대상의 승리 벨득흐흐건이 확인되지 않벨까뇩받듬흐흐흐다. ]……
오래전에 예정된 결말이었다.
청탑주가 사라짐과 동시에 오류가 섞인 팝업창이 우리를 중심으로 무한히 번쩍였다.
파지직.
파지지직.
무수히 이어지던 팝업창은 길게 스파크를 남기며 한순간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파장창창!
오류창이 깨짐과 동시에 다시 새로운 팝업창이 떴다.
[ ‘역천(逆天)4’ 필드가 해체베뀌땍귿듬흐흐흐습니다! ]청탑주의 필드가 해체되었다는 안내였지만 신화전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신화전이 비정상적으로 종료되면서 승리 판정으로 이어지지 않은 듯했다.
물론 내게도 그런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 된 거야?”
호구별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필드가 닫히자 우리는 어느새 다시 붉은 장미가 핀 적탑의 성역이었다.
공간을 검게 메웠던 소용돌이들도 한순간에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여러 겹의 방진을 뚫고 비로소 성역의 중심부에 다다랐기 때문일까.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았던 붉은 탑은 이제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탑의 주인 적탑주는 탑의 지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네 번째 신화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염라.”
주술을 갈무리한 단군이 차분히 말을 건넸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뿐입니다.”
“…….”
여상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나는 순간 주먹을 쥐었다.
나와 시선을 맞대는 얼굴 위로 순간 청탑주를 베려고 했을 때 보았던 우주가 겹쳤다.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 되씹히면서 그가 나의 이해를 바랐던 모든 것들이 울컥 목구멍에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나요.”
충동적으로 내뱉은 물음에 그는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심연처럼 깊고 검은 눈과 시선을 맞대며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그가 내게 강요한 이해를 어떻게든 나도 씹어 삼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지금껏 그런 걸 보고 있던 건가요.”
폭이 좁아지는 길로 나를 몰아넣은 그가, 어쩌면 그도 먼저 폭이 좁아지는 길로 내몰리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여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
단군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당신을 원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영원 같은 찰나 끝에 돌아오는 답은 똑같이 나를 왕좌로 내모는 단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기대를 벗어난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조차 몰라 신음을 삼켰다.
적어도 단군은 나와 달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닌가.
결국 나는 그의 대답에 어떠한 만족도 느끼지 못한 채로 다시금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나를 왕으로 받아들여준 차사들도, 나를 은인으로 삼아준 바리와 도깨비들도 그저 내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탈해.”
그것을 실감하며 나를 위해 싸워주었던 탈해의 태권도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네 번째 신화전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어요.”
내 인사에 태권도 로봇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대왕님. 모두가 당신을 올려다보는 밤을 저희 역시 고대하겠습니다.
앞서 지나쳐 온 용신들과 천신들처럼 도깨비들도 염라의 시대를 입에 담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사들과 두 도사에게 말했다.
“바로 적탑주를 치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고 먼저 붉은 탑 쪽으로 등을 돌렸을 때였다.
“염라.”
뒤쪽에서 단군이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미리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말해야 할 때이기에 비로소 입 밖에 내는 듯한 태도였다.
“적탑의 지하에는 아주 오랫동안 설계된 주술이 있지요. 당신은 이제 그것을 없애주셔야 합니다.”
***
“이런, 서둘러야겠는데.”
주도진은 작게 웃으며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적탑주가 머무는 붉은 탑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오랜 세월 쌓여 온 수많은 방진이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거미줄처럼 달라붙었다.
그는 그것을 손끝으로 가볍게 튕겨내며 안쪽으로 깊숙이 이어진 인과를 읽었다.
“대단하긴 하네. 지금도 계속해서 덩치를 불리고 있잖아. 이런 게 정말 주술이라니.”
탑의 지하에는 수많은 도사들이 수천 년간 설계한 주술이 있었다.
언젠가는 신의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염원 하나로 이름 앞에 빌 주(呪)를 붙였던 자들이 무수한 평생을 바쳐 낳은 욕망의 결정체였다.
또한 날 때부터 모든 도사들을 내려다봤던 주도진이 당연히 자신의 것으로 여긴 숙원이기도 했다.
물론 우주가 안배한 그의 반쪽 주도영도 그것이 그녀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을 손에 넣는 것으로 우주가 부여한 모든 사명이 끝나버릴지라도.
“지옥의 심판자께서 행차하시기 전에 얼른 레드 카펫을 깔아드려야지.”
콧노래를 부른 주도진이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주도영이 그를 위해 마련해 놓은 길을 따라왔음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녀가 초대한 길목은 결국 40여 년 전에 동력을 잃고 멈추고 말았던 그와 그녀의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오직 저 하나만을 막기 위해 설계된 방진들이었다.
그것을 해체하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설 때마다, 주도진은 끊임없이 악의적으로 발을 걸고넘어지는 고약한 인과에 약간의 황홀감마저 느꼈다.
주도진과 주도영은 오래전에 이리해야 했으니까.
안간힘을 써서 서로의 앞에 도달하여 마침내 가까스로 상대의 목을 쳐야 했으니까.
그리하여 한 쌍의 날개로 안배된 반쪽을 꺾고 끝없이 치솟던 날갯짓을 멈추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석필 영감님이 먼저 가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문득 스치는 생각에 그는 가볍게 웃었다.
적탑의 중심부로 향하는 내내 그는 염라의 손에 쓰러지는 도사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염라에게 쓰러지는 게 주도영일지, 주도진일지가 몹시도 궁금했다.
-넌 정말 오래 살겠군, 주도진.
벌써 40년도 훌쩍 지난 일이었다.
언젠가 마주친 황탑주 주석필이 그런 말을 했다.
부나방처럼 예정된 파멸에 뛰어드는 도사들 중 드물게도 백 살을 훌쩍 넘긴 노인의 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젊은 주도진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모든 도사는 우주가 부여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멸한다.
그렇기에 도사가 오래 산다는 것은 내내 그 욕망을 삭이고 억눌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주도혁을 죽이는 것을 포기한 주도진의 40여 년은 그런 세월이었다.
“딱히 억울할 건 없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되겠어.”
그러니 부나방처럼 불타 없어진 도사들의 최후는 그다지 비극이 아닐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도사가 칠순이면 살 만큼 살았어.”
그런 의미에서 주도진이 오래 살 것이라는 주석필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눈앞의 방진을 향해 신성을 번쩍였다.
파아아앙!
화기를 품은 신성과 수기를 품은 신성이 맹렬하게 맞부딪쳤다.
마지막 방진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보석처럼 빛나는 파편을 흩뿌렸다.
40여 년 만에 들끓는 흥분 때문일까, 주도진은 그 광경마저도 퍽 아름답게 느꼈다.
“그래, 우리 도영이는 칠순 잔치도 못 해 볼 텐데.”
마침내 지하에 들어선 주도진이 옥좌에 걸터앉은 주도영을 눈에 담았다.
“내가 옛날에 석필 영감님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 왜 굳이 그런 모습이냐고.”
그녀를 향해 반원처럼 눈을 휘며 주도진이 물었다.
“그랬더니 그 영감이 뭐라고 했게?”
그의 물음에도 그녀는 그저 건조하게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가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노인의 모습으로 무덤에 들어가는 것만큼 인간에게 무사안일한 게 어딨냐더군.”
대답하지 않는 그녀를 향해 그가 낄낄 웃었다.
“여기가 주 씨들의 무덤이구나, 도영아.”
소리 내어 웃은 그가 자신의 반쪽을 향해 푸른 신성을 발했다.
“콩가루 집안, 내 언젠가 자기네들끼리 싸우다 망할 줄 알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