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or of an Alien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
15. 후계자 (2)
김세인은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투자 목록을 열람했다. 주요 IT기업이나 블루칩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워렌 버키트가 주로 투자를 했다고 알려진 제조업 종목도 상당수가 있었다.
“10여 년 전 IT기업에 투자하여 큰 이득을 봤다고 하셨죠?”
“꽤나 투자하여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까지 정리를 했지. 후배들의 소개로 직접 투자도 했고 상장한 종목도 매입하고. 그 때 제대로 빠져나왔기에 투자한 금액의 5배 가까이 벌 수가 있었다. 사실 그전에 사업하면서 번 것은 그리 크지가 않아.”
회사 자산의 변동이 나타나 있는데 95년 이후에 급격하게 자산이 증가했고 1999년에 증가폭이 엄청났다. 보수주의적인 관점에서 매도를 한 후에 장부에 반영한 면도 있었다.
“이번 금융위기 때는 손해를 보지 않았어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투자회사인 드림호프도 손실을 봤을 수 있었다.
“2007년부터 위험한 것 같아 주식을 대부분 정리했어. 그 덕분에 크게 손해는 보지 않았지. 2008년이나 작년에는 약간 적자를 봤지만 저가에 다시 매수한 종목도 많이 있고 지금은 원금의 30% 정도 불어났다.”
회사에 있는 주식의 가치만 수십억 달러에 달했고 회사가 보유한 현금만 해도 15억 달러에 달하고 있었다. 2007년에 매도하고 아직까지 투자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현금도 곳곳에 수많은 계좌에 분산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런 자산을 다 자신이 물려받는다고 하니 기쁘다가도 부담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왠지 뙤놈들은 믿음이 가지 않아 고민이다.”
그러면서 몇 개의 보고서를 들고 왔다. 그것을 살피던 김세인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느낀 중국의 갑질은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의 투자전문가들도 그런 것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었다.
“미국의 업체는 아직까지 함부로 건들지 않지만 한국의 업체만 해도 재산 다 뺏기고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몇 년 더 지나면 미국 업체라고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 돌지만 미국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
“그럴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거대 재벌마저 중국에 쩔쩔매는 판국인데요. 시간이 지나면 유럽과 미국기업으로 확산이 될 것입니다. 대책 없이 중국 갔다가는 돈, 기술, 다 털립니다.”
김세인은 중국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볼 것 같아 반대를 했다. 들어갈 때야 환영이지만 과실을 송금하려고 하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방해했다.
“굳이 골치 아픈 상황을 초래할 필요는 없지. 한국 기업에 그런 짓을 한다면 나중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할 것이니. 그러면 어떤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전히 IT나 바이오가 좋을까?”
김세인은 평범한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요 며칠 사이에 머리가 좋아졌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조금 명석한 수준이었다. 중국 문제야 워낙 문제가 되고 있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말했지만 다른 것은 달랐다.
고모할머니가 묻는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했다. 아마도 김세인의 식견이나 판단능력이 어떤지 보려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IT 분야가 유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침은 있을 것입니다. 분야도 워낙 다양하기에 한 분야가 잘 된다고 하여 다른 분야까지 잘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투자라는 것이 그렇지. 알았다. 그렇다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보류하고 일본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일본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실물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워낙 배타적이라 해외 자본이 투자되는 순간 따돌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데 배당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면 유동성에 기인한 시세차익을 노려야 하는데 장기침체로 인해 별로 매력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정도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평가였고 대체로 그런 평가가 정석이었다. 재테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렵군. 당분간 지금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군. 그렇다고 유럽에 투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니. 워낙 엉망이라 투자한 것도 빼야 할 판국이니.”
“확실하지 않으면 관망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투자현황만 살핀 후에 적당히 마무리를 지었다. 사실 그런 정보는 저택에서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고 그곳을 방문한 진짜 목적은 팀장급 이상의 간부들에게 김세인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 드림호프의 주요 간부 10여 명들과 인사를 했고 회장인 넬리 킴의 유일한 가족으로 소개가 되었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김세인이 그들의 보스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라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구나 아직 대학생이고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영주권을 신청했고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 안에 시민권도 획득할 예정이란 사실을 알려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도 했다.
오전에 LA에서 일을 보고 점심을 먹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고모할머니의 건강을 고려하여 중간에 휴게소에서 몇 번 쉬기도 해서 이동시간이 5시간이나 걸렸다. 비행기로 가면 한 시간 거리인데 너무나 긴 시간 동안 이동해야 해서 피곤했다.
물론 관광도 겸한다고 하지만 처음에야 관심이 갔지만 나중에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자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저택도 큰가요?”
차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편했다. 더구나 한국어로 말하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다.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마련한 것이고 당시에는 경비나 경호원이 많은 것은 아니기에 부속건물이 많지 않았다. 본관과 별관 두 채, 총 세 채만 있다.”
저택은 새너제이 외곽에 위치했다. 샌프란시스코 저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한참 떨어진 새너제이 지역에 속한다고 했다. 부지는 대략 1에이커 정도 되었다. 저택의 가격으로 따지면 지금 사는 저택의 배 정도 높았다. 거기는 건축물의 가격보다 부지의 가격이 높다고 했다.
“부지가 상당히 넓은 편이네요. 도시라 땅값도 엄청나게 비쌀 것인데. 여기는 얼마 정도 해요?”
“서울 어지간한 지역의 평당 단가가 2천만 원인데 여긴 그 정도는 가지 않고 대략 5백만 원, 4~5천 달러 정도라고 보면 된다. 시 외곽이라 조금 싸지. 2천4백 평 정도이니 1천만 달러 정도라고 보면 되겠지.”
“주변의 다른 주택에 비해 부지가 넓은 것도 같네요.”
“처음에는 이 집 밖에 없었지. 나중에 주변에 집이 들어섰고 60년대 중반에 자리를 잡았어. 다 낮은 단독저택들이지. 여긴 굳이 높게 짓지를 않아. 중심가 일부만 고층 아파트가 있지.”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옆이지만 당시에는 그저 허허벌판이었다고 했다. 도시의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광역권으로 고급 주택단지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마침내 저택에 당도했고 본관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고모할머니의 침실 바로 옆에 잠자리를 배정받았다. 본관이라 하지만 면적이 넓은 1층 건물이었다.
“지진이 많은 곳이라 튼튼하게 지었다. 2층으로 지으려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단층으로 지었지. 당시에는 건축비도 꽤나 차이가 있고.”
김세인도 지진이 크게 났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수지도 지진이 날 것이라 경고한 것이 기억났다. LA에 비해서는 지진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지진 때문에도 지금 집으로 갔지. 89년도에도 꽤나 크게 지진이 났었지. 그래서 포기했어. 더구나 여기는 옆집도 좀 가까이 있어 조금 불편한 면도 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여러 곳에 거대한 저택을 갖고 있으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정도는 감당이 되니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
“1년에 몇 번 오기도 했어. 2~3년 전부터는 기력이 딸려 한두 번 오기도 버겁지만. 특별히 올 일도 없고. 지금은 레이튼 집사가 다니면서 일을 보는 편이지.”
간단히 식사를 하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장도 같이 움직인 상황이었다. 다른 차로 이동한 상황이라 식사를 할 때에야 알게 되었다.
“너는 한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좀 호화로운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정도 생활을 하는데 드는 돈은 내가 버는 것의 10%도 되지 않는다.”
“10%요? 그러면 얼마나 번다는 말씀이죠?”
“내가 1년에 많이 써야 1천만 달러 정도 쓰는 정도이다. 그것도 투자회사에서 배당을 받지 않고 개인 자산에서 나오는 돈이다. 그리고 그 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렇기에 매년 돈이 쌓이고 있다.”
“그래요?”
“농장도 사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일종의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별장 개념으로 보유한 면도 있다. 아울러 유사시를 대비한 보호막이기도 하다. 공격을 받으면 농장으로 대피할 수도 있다.”
김세인이 불안해하는 것을 아는지 그런 말로 안심시켜 주려고 했다. 김세인의 집안도 부유한 편이었지만 슈퍼리치의 삶은 살아보지 않아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재산을 너에게 주는 것은 너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흥청망청 돈을 탕진하는 것도 문제지만 돈이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면 그 얼마나 멍청한 일이냐? 나도 벌기만 하고 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김세인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에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고모할머니의 재산을 받아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재산을 줄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샌프란시스코 주변 관광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고모할머니 소유의 빌딩을 방문하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식사도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대화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얼마나 다르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싶고. 나이를 먹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 만에 움직인 거예요?”
“한 3년 동안은 오지 않았지. 봐도 매번 비슷하니. 일이 있으면 레이튼이 방문했고. 대부분 전화 통화를 하면 되고 필요하면 농장장이나 직원을 오라고 하면 되고.”
“저 때문에 움직인 거예요?”
“그렇지. 너만 보내면 그렇잖아. 같이 움직여야지.”
“힘들 텐데 이렇게 같이 다니고. 감사합니다.”
“나도 재미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다니면 동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일하러 출장 다니는 기분이지. 캐시하고 다녀도 직원이라서 그런지 업무를 하는 것 같고. 같은 곳이라도 너에게 보여주러 간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기도 해.”
김세인은 고모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직원들은 같이 대화를 나누어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직원들도 편하게 대하지 못할 것이니 형식적인 대화만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나이 차이는 나도 말하기가 참 편해. 이게 피붙이인 거겠지. 그래도 죽기 전에 이렇게 만나서 참 좋구나.”
부모님이 죽고 사실상 친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김세인도 고모할머니가 유일한 친척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