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41
주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필건이 출두했다고요?”
“예.”
“근데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 형사님 느낌이 맞습니다. 아닙니다.”
인아의 설명에 주연은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확신했다. 대답이 ‘아닐 겁니다’가 아니고 ‘아닙니다’이다.
그녀는 직감했다, 주연의 그 신기(神氣)가 발동하는 것을.
“그럼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조필건이요.”
“예?”
방금 느낌이 맞다고 했는데, 조필건이라고? 이건 또 무슨 말이지?
“그 사람이 조필건인 건 사실일 겁니다. 다만, 우리가 쫓고 있던 사람의 진짜 이름은 조필건이라 아니라 노건형입니다.”
“노건형?”
“예. 조필건은 노건형이 만든 존재이고, 오늘 서에 출두한 사람은 그저 조필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일 뿐입니다.”
인아는 다시 묻기 전에 주연의 설명을 곱씹었다.
“그렇다는 말은 노건형이라는 자가 조필건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씀이신가요?”
“짧게는 그게 요지인데,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합니다.”
조필건은 노건형의 또 다른 인격 같은 것이었다.
“그럼 혹시 이중인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그쪽으로 전문가가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중인격이라······. 인아는 갑자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주연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뭘 해야 할지 그는 안다.
“일단 주 형사님과 차 형사님은 부산으로 가주세요.”
“부산이요?”
“예. 노건형이 거기 있습니다.”
“부산에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석이 되물었지만, 인아의 눈은 반짝였다.
그리웠다, 주연의 이 모습이.
“그럼 저희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위치는 문자로 보내주세요.”
“주 형사님.”
“예.”
“가시기 전에 괜찮으시면, 제가 주 형사님 전화를 잠시 빌려도 될까요?”
“예? 아, 예.”
인아에게 전화를 빌린 주연은 잠시 망설이다 1301번을 눌렀다.
“송재현 부장님 사무실 좀 연결해주실 수 있을까요?”
노건형 (5)
서초동, 대검찰청, 716호.
“어제 용인서에 출두한 조필건이라는 노인은 가짜입니다. 진짜는 부산에 있습니다.”
송재현은 당황스러웠다. 듣기로는 분명 다섯 시간 이상 생매장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는데, 자신 앞에 서 있는 나주연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병원에 있어야 할 놈이 급하게 보고할 것이 있다면 들어온다고 했을 때, 보면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먼저 다독여야 할지, 고민하던 송재현은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제 걱정을 하시는 것이면, 저는 괜찮습니다. 오기 전에 의사하고 검사 결과들 확인하고 왔는데, 기적이랍니다.”
“허.”
감찰부 부장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말투는 진지한데, 표정에는 장난기가 얼핏 보인다.
“우리 주위에 기적 같은 일들은 늘 벌어지니까요, 후훗. 그보다는 조필건을 잡아들이는 게 우선일 듯싶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래도 자세히 보니 전보다 핼쑥해졌다. 큰 눈이 더 커 보인다. 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 ‘특별한 눈’을 반짝이며 다짜고짜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는 어린 후배 검사.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놈은 그날 거기에 혼자 간 거지? 그리고 도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대체 이놈은 뭐지?
그 역시 이은채, 주인아만큼 의문스러운 것이 많았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은 잠시 미뤄둔다. 놈이 앞으로 진행해야 할 일들에 먼저 집중하잔다.
“그래서? 조필건이 대역을 세웠다는 거야?”
“예.”
“너무 유치한데. 그런 단순한 거짓말이 검찰 조사에서도 통할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대로 두면 통할 겁니다. 설사 거짓말을 밝혀내도 대역을 타고 진짜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애초에 조필건이라는 인물은 그자가 만들어낸 인격입니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의 대역을 세운 거니까, 조필건을 쫓는다면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원래 저희가 쫓고 있는 인물, 그러니까 황승준, 변영상, 김현준 등을 사주해서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자의 본명은 노건형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조필건은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이고요.”
“또 다른 인격? 이중인격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예.”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이야기에 송재현은 잠시 보고 내용을 곱씹었다.
“자, 나 프로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중인격을 가진 사이코가 그 거대한 조직을 부리고 있었다는 말이야?”
“예.”
믿기 어려운 정보였다.
“그게 가능해? 그거 정신병이잖아.”
“요새는 다들 정신병 하나둘쯤은 달고 살지 않나요? 분노조절장애, 강박, 중독···. 해리성 정체감 장애 역시 많게는 인구의 1% 이상이 경험했다고 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증상의 경도나 개인에 따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폭력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사회생활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
“아, 요새는 다중인격이라는 말 대신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보통 유년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한다고 알려졌는데, 노건형이 역시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조필건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
“예. 노건형의 부친이 극장을 운영했었는데, 당시 조폭들하고도 왕래가 있었던 부친이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은 뒤 집안이 힘들어졌습니다. 정확한 정황은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노건형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일을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편의적인데.”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게 다른 건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굳이 변호하자면, 원래 태어나기를 조용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그 일을 겪으면서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고, 학교도 많이 옮겨 다녔습니다. 성격 때문에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따돌림도 당하고. 물론 말씀하셨듯이 그 정도 일을 겪고도 올바르게 자라는 아이가 대부분이라면, 노건형같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송재현은 방금 들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노건형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고 조필건이라는 가짜 인격을 만들어냈는데, 그 인격이 지금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야? 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사실 미디어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마치 접신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인물에 빙의하는 것처럼 묘사해서 그렇지. 사실은 일종의 가면을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 우리도 자신 없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본성과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가면 쓰지 않습니까? 노건형 역시 조필건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자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소드 연기라고도 하죠,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되어서 하는 것을. 노건형은 지금 자신이 만들어낸 조필건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연은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송재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던 그는 한 발짝 물러서 다른 포인트를 언급했다.
“지금 나 프로가 말한 것들이 사실이라면, 법원에서 그 자식에게 유리하게 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만, 노건형은 조필건의 존재와 행위, 성격 등을 전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법원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변론으로 들고나온다면 충분히 깨부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미 복잡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좋아, 그렇다 치자고. 어떤 이중인격 소시오패스가 이 모든 범죄를 전부 지휘했다고 치자고. 이놈 지금 어디 있는데?”
너무나 많은 정보에 주연이 들어와서 처음으로 말한 내용을 잠시 잊어버렸다.
“부산에 있습니다.”
“부산?”
“네. 부산 기장에 있습니다. 이미 주 형사한테 체포를 지시했습니다.”
“이미?”
“예.”
그러고 보니 궁금해진다. 이놈은 도대체 이 모든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아냈을까? 조필건이든 노건형이든, 이름이야 어쨌건 그 사이코 놈이 땅속에 묻기 전에 다 말해준 것일까? 상대가 자백자판기라서?
“허어, 참.”
설마, 그 일로 머리를 다친 것은 아니겠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신기해서 그랬어. 한 가지만 묻지?”
“예?”
“나 검사는 방금 그걸 다 어떻게 알아낸 거야?”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주연은 준비해간 대답을 말했다.
“제가 심리학과를 졸업해서요.”
송재현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 3년 전, 그의 인사기록 카드 내용이. 심리분석 전문으로 특별채용되어 대검 과학수사부로 발령인 났던 주연이었다는 것을.
“허허- 참. 앞으로 심리학과 출신들을 더 임용해야겠네. 좋아. 그건 그렇고, 나 프로, 계획에 변경이 생겼어. 나 프로가 그놈한테 당하고 의식이 없다길래, 총장님에게 김길주 관련 여부를 말씀드렸어. 초반에는 특임검사 중심으로 수사가 흘러가겠지만, 분명히 특검 얘기가 나올 거야. 이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여론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야.”
전면전이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김길주부터 떨어뜨리죠 뭐.”
—*—
부산, 기장.
해운대 달맞이길을 지나 해안도로를 타고 4, 50분 십 분쯤 달리면 학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이 한적한 마을 어귀, 바다가 바라보이는 작은 언덕에 노건형의 또 다른 집이 있다.
징징- 징징-
징징- 징징-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오래된 전화기가 아까부터 울리고 있는데도 노건형은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어르신, 뜨- 전화오는 뜨으- 데요.”
중년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말을 더듬는다. 노건형은 웃으며 그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바다를 본다.
“용찬아, 오늘 저녁은 무어냐?”
“뭐가 뜨- 잡수시고 싶은 뜨으- 데요?”
“음···오늘은 그냥 생선이나 한 마리 구워서 있는 찬이랑 먹자.”
“어제도 그렇게 먹었는데. 뜨으-”
“왜? 싫어? 그런 너는 뭐가 먹고 싶은데?”
“뜨- 짜장면 으- 이요.”
“짜장면? 저녁에? 짜장면은 내일 점심으로 먹고, 오늘 저녁은 그렇게 먹자.”
“예에. 뜨으-.”
용찬이라는 남자의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하다. 그런 그가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찬아.”
“예에- 으, 어르신.”
전화기를 확인한 노건형이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동전 하나 갖고 있니?”
갖고 있다. 용찬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십 원짜리 동전을 꺼내 노건형에게 건넸다.
“아이쿠, 이 귀한 걸···. 오랜만이네. 자, 찬아, 이걸로 내기를 하자꾸나.”
“내기 뜨으- 요?”
“이걸 던져서 여기 숫자가 나오면 내 말대로 생선구이를 먹고, 여기 이 다보탑이 나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짜장면을 시켜 먹자. 어떠냐?”
“좋아요. 뜨으-”
“자, 그럼 던진다.”
“예!”
팅-그르르르.
노인이 던진 동전에 공중으로 1m쯤 떠올랐다가 탁자 위에 떨어진다. 심하게 요동치던 동전이 잠잠해지고 떨리던 면이 선명해진다.
“아—.”
다시 한번 실망하는 용찬의 얼굴.
그에 반해 노건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흐허허허. 허허.”
“가서 뜨으- 저녁 준비하겠 으- 습니다. 뜨으.”
용찬은 동전을 주워들고 뒤뚱뒤뚱 부엌으로 향했고,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노건형은 다시 바닷가를 바라봤다. 무언가 결심한 모양이다.
50분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