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74
“빨랑 말해!”
“놈들이 이시하라 상을 납치했다고 합니다.”
‘만지’ 히로가 바둑살롱에 직접 나타났을 때만 해도 멋지게 다시 복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꿈이 박살 나버리게 생겼다.
사이토 히데토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사토는 뭐래?”
“마사키 상은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아예 밀어버리는 게 낫다고 우리 애들을 집합시키라고 했습니다.”
“아-.”
사이토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할까요? 잇세이 녀석은 이미 지시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잇세이는 야마켄구미 소속으로 야마가와카이에 흡수되는 것에 찬성했던 파의 부두목이었다.
사이토는 눈을 감았다. 결정을 해야 했다. 야마가와카이의 지시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전설을 믿을 것인지.
“지금 간사이연합 애들은 어디 있어?”
“그놈들이 자주 이용했던 아이린 지구의 폐건물에 있다고 합니다.”
“잇세이는?”
“아마도 히로 상을 만나러 간 것 같습니다.”
“어디 있는 줄 알고? 얼굴도 본 적이 없으면서.”
“그건···.”
“멍청이 새끼. 그래도 한때는 조직의 부두목이었다는 놈이 심부름꾼이나 하고, 쯧. 이러려고 야마가와카이에 흡수된 건가? 한심한 새끼.”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형님.”
사이토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다.”
전설을 믿기로.
징징- 징징-
“여보세요?”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 케이코 어디 있어?
스즈시로 히로 (4)
“사장 스즈시로 히데오. 어이- 너무 그럴싸하잖아. 하하.”
“왜 놀리고 그러십니까, 형님.”
“놀리는 거 아니야. 진심이라고.”
십 년이 걸렸다. 조직을 청산하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세탁해서 이렇게 멀쩡한 회사를 차리기까지. 계획은 진작에 세웠지만, 과거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지’ 히로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지워나갔다. 그림자 속에 숨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변하는 세상을 공부했고 다가올 세상을 준비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십니까?”
“응? 아- 교회에.”
“교회요?”
“그런 게 있어. 아, 집은 어떻게 됐어? 구했어?”
“그때 말씀하신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를 구매했습니다.”
“잘했어.”
“형님, 그런데 진짜 가실 건가요?”
“너는 몇 년을 얘기해도 같은 질문이냐.”
앞으로는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사방에 카메라가 있고 휴대폰으로 위치까지 추적이 가능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불사인 그가 필멸인 인간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저한테 다 맡기고 가시면···.”
“히데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해. 네가 있어야 내가 산다.”
“한국에 가시면 뭘 하려고 하십니까?”
“일단은 공부를 좀 해볼까 해.”
“공부요?”
“왜? 이상해?”
“아니요. 형님은 머리가 좋으시니까, 뭐든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냥 ‘공부’, ‘학교’ 이런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서···.”
“신분증하고 기록들도 다 준비하고 있는 거지?”
“예. 적당한 인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분증 하나만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니라서요. 꼼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역시, 사장답네.”
“아 또 왜 그러십니까, 형님.”
“사업도 그렇게 해봐. 혹시 알아? 일본 제일의 기업이 될 수도 있을지. 그래, 이 휴대폰 관련 일을 해봐. 앞으로는 이 스마트폰인지 하는 게 대세가 될 것 같으니까.”
“저희는 수출입 물류회사인데요?”
“소니의 시작도 라디오 수리점이었어.”
솔직히 못 할 것도 없다.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이 어마어마했기에 그가 드라이브를 건다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형님이 하시죠?”
“됐어. 네가 해.”
“제가 전면에 설 테니, 형님은 뒤에서 시키시기만···.”
“너 지금 나더러 네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하는 거냐?”
“네에?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농담이야, 농담, 히데오. 귀찮아. 다음 생은 좀 평범하게 살자.”
“네, 알겠습니다.”
“말 몇 마디에 위축되기는···. 사장이 그래서 되겠어?”
“주의하겠습니다.”
“크크큭. 넌 그 나이가 되도 변함이 없구나. 그래서 난 네가 좋다. 밥 먹으러 가자.”
“네!”
어디에 나서도 험상궂은 얼굴로 치자면, 뒤지지 않을 만한 스즈시로 히데오는 ‘만지’ 히로의 제의에 말 잘 듣는 셰퍼드처럼 책상 뒤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으면 같이 일어나 나가려던 히로는,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불청객으로 인해 도로 소파에 앉아만 했다.
비서의 만류에도 사장실 안으로 쳐들어온 열두 명의 야쿠자 조직원. 야마켄구미의 잇세이 야마모토와 그의 심복들이었다.
“너 이 새끼들 뭐야?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쳐들어와.”
스즈시로 히데오는 겁에 질린 비서를 내보내고 잇세이 야마모토에게 물었다.
“스즈시로 상, 다 정리하고 회사를 차렸다고 하더니만, 정말이었네. 그래도 부하 하나 없이 이렇게 혼자 하는 게 되겠어요? 위험하지 않나? 야쿠자가 갑자기 사업한다고 기업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크크큭.”
“너 누구야?”
지나가다 한두 번 본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히데오나 히로 둘 다 잇세이 야마모토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났다.
“야마가와카이 오사카지부 행동대장 잇세이 야마모토다.”
“어이-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얼핏 기억나는 것도 같은데. 너 사이토 밑에 있었던 꼬붕이 아니냐? 언제부터 야마켄구미가 야마가와카이 행동대장 노릇이나 하는 건데? 넌 자존심도 없냐?”
“시끄러워, 이 노인네야!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닥치고 히로, 그 할아방탱이가 어디 있는지 말해.”
잇세이 야마모토는 ‘만지’ 히로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눈앞에 그가 앉아있었지만, 자기보다도 어리게 생긴 젊은 남자가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의 1대 조장과 한판 붙었다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스즈시로 히데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를 타일렀다.
“그 입 조심하지 않으면 오늘 제삿날을 보는 건 너일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생긴다는 건 과거를 잘 지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히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이- 스즈시로 상, 예의 갖춰줄 때, 얼른 말해. 안 그러면 당신도 치바 꼴이 날 수 있어.”
조금 전까지 여유로웠던 히로와 히데오.
잇세이의 마지막 말에 둘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아직 소식 못 들었나 보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치바가 어떻게 됐는데?”
“크크큭. 가셨어.”
“!”
“멀리, 저 머얼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서. 크크큭.”
그 모습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히로가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는,
“케이코는 어떻게 됐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넌? 저 노인네 따까리야?”
“다시 묻는다. 케이코는 어떻게 됐지?”
“뭐야, 이 새끼. 흥, 뭐가 어떻게는 어떻게 돼. 좆 된 거지. 그러니까, 히로 그 노인네가 어디 있는지 빨랑 말하라···.”
쿵!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녀석의 얼굴은 소파 테이블로 처박혔다.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사무실 안에 서 있던 나머지 열한 명은 자신들의 두목이 공격당했음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곧장 이해하지 못하고 몇 초간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
오사카, 닛코 호텔, 스위트룸.
사토 마사키는 본부에 있는 회장과 통화 중이다.
“네. 이번 주 중으로 신사이바시 클럽 일은 해결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해결되는 대로 곧바로 건물 안에 있는 다른 가게들도 내보낼 겁니다. 스케줄대로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딸깍.
통화를 끊은 사토 마사키가 이번에는 동경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나야. 별일 없지? 이츠키는? 그래? 다행이네. 이츠키 옆에 있어? 잠깐 바꿔봐. 이츠키! 아빠야. 뭐 하고 있었어?”
회장과 통화할 때는 사뭇 다른 말투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게 영락없이 요새 아빠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아들과 유선상으로 교감을 나눈 그가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부하가 그에게 존경을 표시한다.
“대단하십니다.”
“뭐가?”
“본부장님은 확실히 엘리트한 게 있으십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형님들은 조직밖에 모르는데, 본부장님은 조직에서 인정받으시지만, 뭐랄까 가정도 잘 꾸리시고···. 아무튼 존경합니다, 본부장님. 닮고 싶습니다.”
“마사타카.”
“네, 본부장님.”
“야쿠자도 직업이야.”
“예?”
“조직은 회사가 되고 우리는 직원이 돼야 한다는 말이지. 일하면서도 가족도 꾸리고, 돈도 벌고 놀기도 하고.”
“그렇군요. 역시 대학을 나오신 분이라 다르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세상을 다르게 볼 줄 아는 시선을 가지려면. 알겠어, 마사타카?”
“네, 알겠습니다!”
“짜식. 아, 그래서 야마켄구미 애들은 어떻게 됐어? ‘전설’을 찾으러 간 건가?”
“잇세이 파 애들은 그 히로라는 자 밑에 오래 있었던 스즈시로 히데오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토모야 밑에 있는 놈들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히데토시 상이 야마켄구미 옛 사무실에 다녀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토모야가 사이토를 잘 따랐지 아마?”
“예.”
“후훗, 전설을 믿기로 했나 보네. 쯧쯧, 사람은 늙으면 아둔해져. 어쩔 수 없지 뭐. 일이 잘 마무리되면 그래도 한자리 내주려고 했는데,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구먼.”
“우리 애들을 보낼까요?”
“아니야, 됐어.”
“조직도 다 정리한 할아버지들 하나 해결 못 하겠어? 밑에 데리고 있던 애들도 진작에 다 내보냈다면서?”
“네. 클럽 에 있던 애들이 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거를 왜 여태까지 뭉그적거린 거지?”
“워낙 정보가 없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야마켄구미 애들이 불가침 조약에 괜히 벌벌 떨어서···.”
“그러니까 말이야, 옛날이야기는 옛날이야기로 들어야지, 그걸 믿고 그러면 쓰나, 다 큰 어른 들이. 어찌 됐건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피하는 게 좋아. 치바라는 그놈은 전과도 있으니까, 경찰에서도 대충 넘어가겠지만, 간사이연합 애들에게 그 마마는 건드리지 말라고 해. 건드려봤자, 시끄러울 일밖에 없어.”
“예, 알겠습니다.”
“아- 일 좀 끝내고 빨랑 도쿄로 돌아가고 싶네. 우리 아들놈 얼굴도 좀 보게.”
—*—
오사카, 우메다.
유한회사 니시키 사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