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201
“젊었을 때는 부러웠을 것도 같은데···. 결혼하고 애를 낳아보니까···.”
“안쓰럽다고?”
“이런 세상에서 혼자만 늙지 않는 것도 감당하기 쉬운 능력은 아닐 것 같다.”
외로워지겠지.
“돈도 많은데, 세상이나 돌아다니면서 10년을 1년처럼 살아보지 뭐.”
하지만 아직은 그런 쓸쓸한 감정보다는 설렘이 훨씬 더 크다.
“뭐? 그 다이아몬드? 다 팔면 한 70억이라고 했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처분하려고? 은채 씨랑도 헤어졌는데.”
방법이 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말고도 재산이 더 있다.
“방법이 생겼어.”
“어떻게?”
“그때 그 금고에 있었던 웹사이트 말이야······.”
—*—
「“여사님, 그러면 혹시 히로 씨께서 신을 만났다고 한 적은 없나요?”
“신이요? 애초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요?”
“네. 신이 있다면 그런 일들을···. 아, 잠깐. 근데, 10년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조금 평소답지 않은 점은 있었어요. 내가 오사카에 있었을 때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을 찾았어요.”
“그래요? 그러면, 혹시 그때 그 오사카의 교회에 계셨다던 목사님이 지금 어디에 계신 줄은 아시나요?”
“아니요. 그때도 히로 상 요청으로 알아봤지만, 어디 가셨는지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아···.”
“지나가는 투로 물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상했네요. 그 사람이 성경책까지 들고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는 신을 믿었을 수도 있겠네요.”
“성경책이요?”
“네. 그 목사님이 주신 성경책이라면서 들고 있더라고요.”」
정체불명 웹사이트의 패스워드는 그 성경책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성경책은 수많은 책과 함께 거실 책상에 꽂혀있었다.
「For God loved the world in this way: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
모든 퍼즐이 그렇듯이 다 알고 보면 답이 눈앞에 있는 경우가 많다. 패스워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고의 오른쪽 다이얼 번호였던 16-03-04가 힌트였다.
네 번째 복음서라고 알려진 요한복음 3장의 16절을 거꾸로 타입해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정의는 아이디 입력창에 “Hiro”라고 타입한 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영문 버전을 거꾸로 입력했다.
그러자, 스즈시로 히데오가 히로를 위해 전 세계 조세회피처에 숨겨놓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산 목록과 함께 그 재산들을 사용할 수 있는 페이퍼컴퍼니들 및 차명 계좌, 디지털 신분들이 폴더들이 화면에 로딩된다.
에필로그-법조타운 유니버스 (1)
「모두가 다 검찰 측 패소를 예측했던 사건. 판사는 예상외로 자살교사·방조죄가 있다고 판결을 내린다.
“피고인을 징역 18년에 처한다.”
분을 이기지 못한 피고인석의 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삿대질하며 고함을 친다.
“말도 안 돼! 이게 더 너 때문이야, 이 새끼야! 변호사 주제에 사기나 치려고 들고. 그러고도 네가 변호사냐! 너나 나나 다른 게 뭐야, 이 개새끼야!”
방청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린 손녀. 카메라는 이제 검사석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의 얼굴에 고정된다.
잠시 뒤 화면은 검정색 서류 가방을 든 채 법원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남자 주인공 검사와 그 옆을 따라가는 건강미 넘치는 여자 형사를 보여준다.
“검사님 말씀이 옳았네요, 세상은 아직 정의롭다는 말.”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끈적한 눈빛을 교환한 둘은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계단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짝짝짝짝짝-
*
또 1년이 흘러 2023년, 여름.
여의도 CGV, 영화 「정의로운 검사」 제작 발표회 현장.
시사회 직후, 임헌영 감독과 대한민국 최상급의 배우들이 인터뷰하고 있다.
–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대박 스멜이 영화 내내 뿜뿜 흘러나오던데. 제일 먼저 임헌영 감독님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제가 실제로 만나 뵌 아주 정의로운 검사님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 혹시, 그분이 누구신지 말씀해주실 수는 있나요?
“아, 그건 그분께 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요. 다만, 대한민국에도 아직 그런 검사가 있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진짜 더 궁금하네요. 그러면 혹시 이 한 가지는 확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분이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있으신 거는 아니죠?
“하하하. 아닙니다. 그건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 아, 아쉽네요. 검사님들이 그런 능력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이세훈 MC는 순수하신 분인 것 같네요. 어떤 분은 저한테 그런 능력이 없어서 현실의 검사들이 저 모양인데, 검사들이 그런 능력까지 있으면 더 권력을 쥐고 흔들지 않겠냐면서 걱정을 하시던데.”
– 아, 듣고 보니 또 그렇네요. 하긴 힘은 에서 그랬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자, 그러면 이번에 주인공을 맡으신 여진수 씨에 질문을 드려볼게요. 검사 연기가 처음이신 걸로 아는데,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으셨나요?
“사실 검사 역이라고 해서 대사가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촬영해보니까. 액션신(scene)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공판부.
“손 프로, 다음 주부터 출산휴간가?”
“네, 부장님.”
“하던 사건들 다 정리된 거지? 공판 스케줄 차질 없지?”
“그게요, 부장님···.”
“왜?”
“차질 없게 인수인계하려고 제가 기일 스케줄을 다 정리했는데···.”
“했는데?”
“다 끝난 줄 알았던 사건 하나가 갑자기 기일이 잡히는 바람에.”
“뭐?”
“양인호 씨 살인사건이요.”
“그거 판결선고만 남은 거 아니었어?”
“그랬는데, 피고인이 갑자기 변호인 변경 신청을 내면서 변론 재개가 되었어요. 법원에서 갑자기 기일을 잡았어요. 끝난 건 줄 알고 그 건은 재배당 안 하고 그냥 뒀거든요.”
“다음 주로?”
“네, 다음 주 목요일이요.”
“아— 그 사건 중요한데. 변호인하고 얘기해서 재판부에 기일 변경 요청해보지, 그래?.”
“안 그래도 이미 그랬죠.”
“안 된대?”
“재판부에서 살인사건이라고 꼭 기일을 다음 주에 열겠다고···.”
“쩝. 그럼 어쩔 수 없네. 하긴 변경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지금 누구한테 당장 재배당하는 것도 그러니까. 그 사건 원래 수사했던 검사가 누구지?”
“형사3부 최윤형 검사요.”
“알았어. 내가 오 부장하고 얘기해볼게.”
“감사합니다, 부장님.”
“아, 근데 변론까지 종결 난 판국에 변호사를 바꾸고. 뭐 새로운 증거라도 발견한 건가···. 바뀐 변호인이 누구야?”
“법무법인 OO의 OOO이요.”
“누구?”
“OOO 변호사요. 왜 그 저번 달 리걸타임즈 표지에···.”
“아- 그 석사용 논문으로 뉴욕대 로스쿨 박사 학위 받았다는 놈?”
“네. 사진 보니까 키도 진짜 크고 외모적으로 완벽하던데.”
—*—
서부지원에 기일이 있었던 흥식이 점심때 찾아와 근처 중식당을 찾았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오늘 아침에 뉴스 보니까 관객 팔백만 넘었다고 하던데요. 천만 갈 것 같습니다. 에이, 아닙니다. 감독님이 워낙 영화를 잘 만드셔서 성공한 거죠. 제가 뭐 한 거 있나요. 아, 네. 네. 저야 좋죠. 아, 그리고 그때 말씀드린 친구, 윤기라고. 아, 벌써 연락이 왔어요? 그랬구나. 네, 건너 건너 아는 친구인데 대학 때부터 누아르 쪽에 관심이 진짜 많았던 친구예요. 괜찮은 아이디어가 꽤 많은 친구라서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이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죠. 네, 그러면 언제 감독님 시간 편하실 때 연락주십시오. 네, 들어가십시오.”
딸깍.
“누구? 그 영화감독?”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흥식이 물었다.
“응. 영화 봤냐?”
“아직.”
“아- 진짜 보라니까. 내가 모델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재미있어. 잘 만들었어.”
“야, 너도 애 낳아서 키워 봐. 극장은커녕 TV 볼 시간도 없어.”
“그래도 친구가 주인공인 영화를···. 나오면 바로바로 보러 가 줘야지.”
“알았어, 알았어. 주말에 엄마한테 애 맡기고 보러 갔다 올게.”
“정혜도 좀 육아에서 쉬게 해줘야지.”
“정혜 핑계는···. 지 영화니까 보라고 하는 거면서. 아무튼 영화는 대박친 거 같더라. 팔백만? OTT 유행하고 최근에 천만 넘은 영화 없었잖아?”
“응. 천만 갈 것 같아.”
“이야- 그 감독님은 너 때문에 제대로 복귀했네. 그 감독님이 그때 그 감독님이잖아, 도박으로 걸려들어 온.”
“응, 맞아. 경호파 사건 때도 도와주셨고.”
“사람 인연이란 참···. 아, 맞다. 그럼 너도 이참에 검사 관두고 배우나 하는 게 어때? 검사 일 해볼 만큼 했잖아?”
“야, 이 몸으로?”
“의외로 괜찮을 수 있어. 오히려 배우니까, 관리를 잘해서 안 늙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 분장도 할 수 있고.”
“듣고 보니 묘하게 설득력 있다.”
“그렇다니까. 할리우드 배우들 보니까 오히려 삼십 대 때 관리를 더 안 해서 오십 대 때 더 나은 배우들도 있더라. 그래, 자레드 레토인가도 그렇고 아! 사무엘 L. 잭슨은 한 30년 동안 똑같아. 변한 게 없어. 얼굴색이 짙어서 그런가?”
“그건 좀 위험한 발언인데.”
“뭐가 위험해? 그냥 안 늙어 보인다는 건데, 칭찬이지. 아무튼 오히려 배우도 괜찮을 수 있어.”
“올- 너 이 주제에 대해 은근 많이 생각해본 것 같다.”
“응? 아. 뭐. 좀 생각해봤지. 그리고 배우가 진짜 괜찮을 수 있는 게. 배우 따라 성형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러니까 배우 생활 한 30년 하고 은퇴한 다음에는 비슷하게 성형한 사람처럼 살면 되잖아. 진짜 좋은 생각 아니냐?”
“음···. 뭐 한 100년쯤 안 늙고 살다가 죽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다음에는 어쩔 건데?”
“응?”
“몇십 년 전이면 모를까, 요새 같은 세상에 기록들 다 저장돼서 유튜브에 쫙 깔리면 매번 ‘저 진짜 아녜요.’ ‘비슷하게 성형한 거예요.’라고 설명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은데. 그냥 차라리 처음부터 안 유명해지고 숨어 사는 게 쉽지.”
“아- 100년 넘게 산다라······.”
역시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녀석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다.
“그러지 말고 내가 제의한 거 생각해봤어?”
“뭐? 로펌?”
흥식에게 내가 돈을 댈 테니 로펌을 차리라고 제안했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럴싸한 회사가 필요했다. 배트맨에게 가 있고, 아이언맨에게 있듯이, 카메라가 사방에 있는 21세기에 영생을 숨기고 살려면 가림막이 되어줄 법인이 필요하다.
“검사 돈을 받아서 로펌을 차리라고? 이 새끼가 이제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라고 하네.”
“니가 변호사니까 로펌을 차리라고 한 거지. 내가 무슨 딴 뜻이 있어서 그랬냐. 그게 정 그러면 엔터 회사를 차리던가.”
“참나- 배우가 꿈이었던 놈은 검사를 하고, 법조인이 꿈이었던 나는 이제 엔터 회사를 차리라고? 싫어. 난 그냥 변호사 할 거야.”
“그러면 로펌을 차려. 내가 니네 로펌에서 하는 사건엔 개입 안 할 테니까. 그냥 나중에 내 신분이나 좀 숨겨 줘.”
“아, 이 새끼가 진짜. 이제는 대놓고 지 시다바리를 시키려고 하네.”
“야, 시다바리가 뭐냐. 격 떨어지게. 좋은 한국말 놔두고.”
“시다바리가 시다바리지. 좋은 한국말 뭐?”
“집사.”
“이 새끼가 진짜···.”
“도 집사, 가서 단무지 좀 더 가지고 와.”
—*—
서울서부지방검찰청, 형사3부 부장실.
“부르셨습니까?”
“어, 왔어. 앉아.”
출근하기가 무섭게 오도경 부장의 호출이 떨어져, 부장실로 올라갔다.
“다른 게 아니고 말이야.”
오 부장은 형사3부 최윤형 검사가 수사한 양인호 살인사건 1심 공판 출석을 부탁했다. 공판부에서 맡고 있는 사건이었으나, 담당 공판검사가 출산휴가라 수사검사에게 직접 출석으로 부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 수사검사가 어제 교통사고를 당해 출석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최 검사님은 괜찮으신가요?”
“다리가 부러졌는데, 다른 데는 괜찮대. 그래서 내가 웬만하면 출퇴근길에는 자전거 타지 말라고 했더니만. 쯧쯧.”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최윤형 검사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셨는데, 어제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