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83
백장미 (3)
“혼자세요?”
백장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난 토요일보다 화장이 짙다.
“네?”
“지난번에는 아시는 형님하고 같이 오셨잖아요.”
“아, 예-. 오늘은 조금 있다가 아는 동생이 오기로 했어요.”
“그러시구나. 그러면 차 보러 갈까요?”
주연은 백장미와 신철을 따라 “준비된” 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지하 전시장으로 향했다.
“다이아몬드 감정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격증이 필요한 건가요?”
“이런 거 질문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얼마나 버나요? 하긴 젊은 나이에 외제차 모실 정도면 연봉이 후덜덜하시겠죠?”
“혹시 주위 분 중에 원하시는 차종이 있으시면 저 소개해주세요. 제가 그래도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차면 삼일 안에 가져올 수 있거든요.”
둘은 가는 동안에도 연신 질문을 해대고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것이 그들의 수법 중 하나였다. 고객을 정신없게 만들어놓기.
그러면서 막상 도착한 곳에는,
“이건가요?”
계약한 차량과 다른 매물이 준비되어 있다.
“이거는 제가 계약한 차가 아닌데요.”
이미 예상했지만, 주연은 실망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이 차가 맞아요.”
“사이트에 올린 차가 이 차가 맞다고요?”
“네.”
백장미가 눈짓을 보내자, 신철이 재빨리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사이트에 올라간 해당 차량을 찾아 들이밀었다.
“자, 보세요.”
그사이에 차가 바뀌어 있다.
“이거 아닌데. 제가 본 거는 이건데.”
주연은 핸드폰을 꺼내 캡처해놓은 스크린숏들을 증거로 내밀었다.
“이 차가 이 차예요.”
“이 차가 이 차라고요?”
백장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둘러댔다. 거짓말 하나가 통하지 않으면 바로 다음 거짓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네.”
“전체적인 색도 다르고. 펜더 부분도 사진 속 차는 검정인데 이 차는 녹색인데요.”
“그게, 옛날 사진이라고 그래요. 저희도 주말에 알아채서 바로 업데이트했어요. 근데 같은 차예요.”
“연식도 다른 것 같은데.”
“아니에요. 왜? 마음에 안 드세요.”
“들 리가 있나요, 완전히 다른 차인데.”
주연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차 맞는데. 그래도 한번 타보세요. 타면 느낌이 다를 거예요.”
“별로 타고 싶지 않은데요.”
“아, 진짜요? 어쩌지? 이거 인천 사장님이 꼭 사겠다는 거, 제가 우리 팀 박 이사한테 억지로 빼앗아 온 건데······.”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니죠.”
주연이 화가 난 연기를 하자,
“아···어쩐다.”
백장미도 곤란한 연기를 한다.
“그냥 제 차 돌려주세요.”
“그래도 한번 운전대만이라도 잡아보지 않으시겠어요? 잡으면 생각이 달라지실 수도···.”
“아니요. 됐습니다.”
“아···그래요···. 그러면 그냥 계약 파기하실 건가요?”
이제 아쉬운 연기를 하는 그녀.
“계약 파기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 인천분이 계약한 거를 제가 빼내 온 거라. 저희가 그쪽 위약금을 물어드렸거든요.”
“저는 사진 속의 랭글러를 계약한 거지, 이 차를 계약한 게 아닌데요. 그 위약금을 제가 왜 물죠?”
주연의 말투가 계속 매몰차니, 백장미도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세요. 2015/2016년형 그린 칼라 랭글러 루비콘을 구해달라고 하는 조건으로 계약하신 거잖아요. 신 실장?”
백장미의 말에 신철이 이번에는 계약서 사본 한 장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계약서. 그런데 거기에는 주연이 준 인감이 찍혀있다.
이것들 봐라. 인감을 이렇게 부정사용했다 이거지.
「형법 제239조 1항,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항,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타인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행사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니들은 무조건 징역형이야.
“이걸 제가 찍었다고요?”
“무슨 소리세요? 토요일날 찍으셨잖아요. 그랬지, 신 실장?”
“제 친구도 있었는데, 거짓말하실 건가요?”
“친구분 잠깐 화장실 다녀오실 때, 찍으셨잖아요.”
“하하. 내가 이걸 찍었다? 오케이. 일단 하나 걸었으니까 됐고, 내 차는 어딨어?”
주연의 말이 갑자기 짧아지자, 백장미와 신철 모두 표정이 굳는다.
“고객님, 아무리 기분이 나쁘시더라도 그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하죠.”
“내 차 어디 있냐니까? 그것도 벌써 팔아치웠니?”
“계약하신 랭글러랑 트레이드인 하시겠다고 담보로 주셨잖아요. 운이 좋게 빨리 팔 수 있어서, 저희가 주말에 처분했어요. 사고 이력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희가 시가보다 한 10% 더 올려받아서, 삼천삼백만 원에 처분했어요.”
“엔카에 내놔도 오천은 족히 받을 수 있는 차를 삼천삼백만 원에 처분하셨다? 와- 이 새끼들 이거 진짜 나쁜 새끼들이네.”
“어이, 너 말이 계속 짧다.”
결국 먼저 폭발한 신철이 끼어들었다.
“어허, 신 실장. 고객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죄송해요. 그래요. 주말 사이에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가끔 계세요. 이해합니다. 그러면 계약 파기하는 걸로 하고 벤츠 판 돈만 돌려드릴게요. 근데 저희도 손실한 비용이 있으니까. 담보로 맡기신 벤츠 E350을 처분하고 받은 대금에서 위약금으로 삼백만 원 제하고 삼천만 원을 돌려드리면 되는 거죠?”
정해진 루틴. 하나는 험악한 척, 다른 하나는 나이스한 척.
시가 오천만 원짜리 차를 맡겼는데, 이틀 만에 이천만 원을 해 먹으려 든다.
주연은 같잖은 표정으로 둘을 보며 혀끝을 찼다.
“쯧쯧. 미친년.”
“어머, 뭐라고요?”
“너 뭐라고 했어, 이 새끼야.”
“둘이 같이 일한 지 얼마 안 되나 봐? 연기 합이 별로 좋지 않네. 저기는 너무 흥분하고 여기는 너무 능글맞고. 아줌마, 연기가 좀 뭐랄까? 더러워.”
“허!”
연기가 더럽다는 말에 백장미는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심 상처받았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연기자를 꿈꾼 적이 있던 그녀였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재수 없어. 반반하게 생겨서 잘해주려고 했더니. 어디서 꼴값을 떨어.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알지. 쓰레기 사기꾼인 거. 알고 준 건데.”
“야, 신 실장, 안 되겠다. 진상 하나 붙은 거 같은데, 박 이사한테 전화해서 이리로 좀 오라고 해.”
그렇지, 다 불러라. 번거롭게 잡으러 가기 귀찮으니까.
“박 이사가 그 눈썹 없는 두꺼운 아저씨지?”
백장미는 순간 당황스럽다.
‘이놈이 박 이사를 어떻게 아는 거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가능성을 떠올려 보는데, 멀리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런데 박 이사보다도 더 큰 그 남자의 몸매가 낯이 익다.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몸매가 아니다. 저 몸을 어디서 봤더라······.
‘형사?’
“나 검사님, 창고 위치 찾았습니다. 어이, 백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저 기억나시죠? 예전에 서초서에서 한번 뵀는데.”
“검사?”
순간 놀란 토끼 눈으로 주연을 쳐다보는 사기꾼 역에 백장미.
쑥스러운 미소로 그녀의 시선에 답례하는 검사 역에 나주연.
“니들은 다 죽었어. 야, 어디 사기 칠 사람이 없어서. 검사한테 사기를 치려고······.”
앞으로 펼쳐진 그녀의 운명을 확인사살해주는 형사 역에 차동석.
“아이, 씨발 X됐네.”
그녀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탄식의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
서초, 방배순대국.
“이모, 여기 머리고기하고 토종순대 섞어서 한 접시랑 내장탕 두 그릇 주세요.”
“술은 괜찮으세요?”
“하고 싶기는 한데, 들어가서 그놈들 조서 써야 해서요. 대신 괜찮으시면 나중에 한잔 사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백장미 일당을 체포한 뒤, 주연은 서초서 차동석 경장과 함께 근처 순댓국집에 왔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아세요? 뭐, 나름 유명한 집이기는 하지만···.”
“주 경위님하고 한번 왔었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나저나 들어가서 조서 쓰시려면 야근하셔야겠네요.”
“일이죠, 뭐. 그래도 몇 년 전부터 목에 가시 같은 놈들이었는데, 검사님 덕분에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만약에 놈들이 ‘함정수사였네’ 하면서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한번 말해볼 테니까요.”
“검사님.”
“예?”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검사님은 참 다른 검사님들하고 다르시네요. 다른 분들은 ‘더 수사해봐라’ 한마디하고는 신경도 잘 안 쓰시던데. 보면 볼수록 특이하신 분 같아요.”
“그런가요? 초동 수사가 중요하니까요. 저도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럼요.”
“키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요? 193cm입니다.”
“몸무게는 한 100kg 나가시나요?”
“120kg이요.”
“헉.”
탄성이 절로 나오는 피지컬이다.
“너, 내가 100kg 대로 빼라고 했지.”
바로 그때, 가게 안으로 들어온 주인아가 차동석의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치며 자리에 앉았다.
“아!”
“엄살은···.”
“경위님 오셨어요.”
“아, 네. 오늘 두 분이 양재 오토갤러리 사기꾼들 잡으셨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네요.”
“검사님도 참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네요.”
“경위님은 황승준 이사 만나러 가셨다면서요.”
주인아는 강남경찰서 비리 사건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사촌오빠가 얽힌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비리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어두운 면이라 신경이 쓰였다.
그 중 특히 황승준이라는 인물이 거슬렸다.
“어때요? 뭐 건진 게 좀 있나요?”
동석이 물었다.
“없어.”
“소송 중이지 않나요?”
이번에는 주연이 물었다. 이미 소송 중인데 더 조사할 것이 있냐는 취지였다.
“그냥요. 검찰에서 잘 조사했겠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한 게 있어서요. 제 느낌은 거기가 ‘키맨’ 같은데, 뉴스는 계속 강남서 형사팀만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혼자 조사 중이다.
“황승준이를 잡아야, 그 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냥 제 느낌이 그렇다고요.”
주연도 ‘황 이사’라는 인물을 클라우드 가라오케 임현수 실장의 기억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비밀스러운 인물이라고 여기기는 했지만, 별도의 수사팀이 꾸려진 사건을 그가 들쑤시고 다닐 수 없었기에 그만두었다.
그래도······.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아니요. 수고 끼쳐드리려고 말씀드린 거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궁금해서요. 그리고 오늘 차 경장님에게 도움받은 것도 있고.”
“도움은 무슨 도움이에요. 원래 하는 일인 건데.”
“그래도요.”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