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or Kim Seo-jin RAW novel - Chapter (163)
검사 김서진-163화(163/250)
<다를 게 없다 (2)>
“여기예요.”
서진은 진유경 형사와 함께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거리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은 조금 지난 시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로 돌아갔지만 아직 거리는 한산하지 않았다.
복잡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놓인 CCTV.
이런 번화가에서 청산가리를 이용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사망 장소는 저기고요.”
서진의 시선이 진유경 형사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틀어졌다.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곳은 버스 정류장 앞.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네.”
서진이 주변을 살피며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여성.
‘출산 후 남편에게 아기를 맡긴 후…….’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을 잡고 이곳에 왔다.
사건 당일은 주말.
당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인파가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거다.
‘약속 장소는 거리 안쪽에 있는 파스타 가게.’
서진은 파스타 가게로 이동했다.
테이블이 일곱 개 놓인 작은 가게지만 손님들로 꽉 찬 게 창밖에서 보일 정도.
진유경 형사의 말에 따르면 ‘맛집’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피해자는 창가에 앉아 친구와 반가움을 나눴고…….’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서진은 피해자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 걸었다.
멈춰 선 곳은 유일하게 피해자의 모습이 잡히지 않은 곳.
CCTV가 없는 골목이다.
20미터가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골목이 비밀을 숨기고 있다.
서진이 멈춰 서자 진유경 형사가 태블릿 PC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보시겠어요?”
태블릿 PC에는 CCTV 영상이 담겨 있었다.
서진이 영상을 재생하자 진유경 형사가 첨언했다.
“피해자가 파스타 집에서 나간 시간은 2시 17분. 가게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성인 걸음으로 2분. 이 골목을 지나는 시간은 길게 잡아야 1분.”
파스타 가게의 CCTV를 보면 피해자는 가게에서 나온 후 곧장 친구와 헤어졌다.
“그런데 피해자가 골목에서 빠져나온 시간은 8분이 지난 후였어요.”
정상적인 이동이었다면 가게에서 나와 이곳을 지날 때까지 3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 짧은 골목에서 5분을 지체했다.
“그리고 CCTV 화면을 보면 피해자가 골목에서 나오는 순간 그동안 없었던 커피를 손에 쥐고 있어요. 여기서 누군가에게 커피를 받았다는 거죠. 5분간 대화도 나눴을 테고요.”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 사건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골목에 CCTV는 없다.
서진은 진유경 형사의 말을 들으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지금껏 사망한 사람은 열한 명.’
사건 발생 시기에는 어떤 규칙성도 없다.
장소도 마찬가지.
서울과 경기도 전역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를 노린 사건도 아니다.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
그래서 이상하다.
“형사님은 모르는 사람이 건넨 커피를 받아 마실 수 있나요?”
진유경 형사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다는 의심까지는 안 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의 호의는 부담스럽죠. 쿠폰을 준다면 모를까, 커피를 준다고 하면 거절할 거예요.”
그게 일반적일 거다.
그런데 피해자는 커피를 받았고 마시기까지 했다.
‘면식범.’
당장 의심되는 사람은 이곳에서 피해자와 약속을 잡은 친구.
하지만 그 친구의 알리바이는 명확하다.
피해자와 헤어진 후 곧장 택시에 올랐다.
‘그게 아니면…….’
피해자가 이 골목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할 동선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
또는 항상 피해자의 뒤를 쫓는 스토커 같은 놈.
‘우발적이 아닌 철저한 계획 속에서 이뤄진 살인.’
놈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몇 번이나 사건 현장을 답사했을 게 분명하다.
‘이게 모두 가능한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면식범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서진이 저벅저벅 골목을 나섰다.
“형사님, 피해자들 휴대폰 기록 그리고 재산 사항과 인적 사항 등 조사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 줄 수 있을까요?”
“면식범을 의심하는 거죠? 저희도 처음에는 그쪽으로 생각하고…….”
“알아요. 그래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고 싶어요.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이 사건 담당했던 형사님요, 퇴근 후에라도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다시 훑어본다는데 할 말은 없다.
게다가 서진의 깡치 해결 능력은 이미 경찰에서도 소문이 난 상태.
경찰이 놓친 것을 찾아 파고들 가능성도 있다.
진유경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진유경 형사의 답을 들으며 서진이 시선을 틀어 빠져 나온 골목을 바라봤다.
‘한 달…….’
그 안에 놈을 잡아야 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해결하지 않으면…….
‘어?’
생각을 이어 가던 서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만, 한 달이라고? 이거…… 김영준의 지시잖아?’
경찰이 2년 동안 쫓았지만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한 달 안에 해결하라는 무리한 지시.
각국의 정치인과 기업인이 모이는 자리에 똥물을 뿌리지 말라는 명분은 좋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은 김영준 총장의 스타일이 아니다.
김영준 총장은 이런 식의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게다가…….’
김영준 총장은 여당과 야당의 이권 다툼에 관심이 없다.
몇 개월 후 총장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를 생각하며 세력 확장에만 신경 쓰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이번 회담에 관심을 둔다고?’
이상했다.
지금껏 증거 없는 살인과 기한 제한이라는 장막에 가려 생각하지 못한 의중.
분명 꿍꿍이가 있었다.
***
그 시각, 강남의 한정식집.
정준우 부장검사는 야당의 국회의원과 마주 앉아 있었다.
국회의원이 턱을 쓸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걸로 회담을 망치자?”
“네, 어차피 남의 집 잔치 아닙니까? 소문난 잔치라 먹을 것도 없는데 독극물까지 나왔다고 하면 여당의 이미지는 망가질 겁니다. 외신에서 조금만 떠들어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습니까? 나라 망신시켰다고. 그걸 이용하면 충분히 대선에서 이겨 낼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런데…….”
국회의원이 내려 두었던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대선 정국이다.
하나의 실수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지금은 돌다리도 일일이 두들기며 건너야 할 시간.
그런데 회담을 망치는 과정에서 자칫 실수라도 나온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럼, 정권을 먹지 못할 테고, 빌어먹을 5년을 또 버텨 내야 한다.
한참 생각을 이어 가던 국회의원이 눈동자만 움직여 정준우 부장검사를 살폈다.
그러고는 쥐고 있던 술잔을 탁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는 이사를 목표로 한다고 했지?”
“네, 남은 삶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각오를 볼 수 있을까?”
“네? 각오요?’
정준우 부장검사가 눈동자를 굴릴 때, 충격적인 소리가 던져졌다.
“자네가 고발자가 되도록 해.”
“……!”
정준우 부장검사의 눈이 떨려 왔다.
야당에서 움직일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고발자라니.
하지만 국회의원은 정준우 부장검사의 감정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고작 시, 도의원이 되려고 수억을 내는 사람도 많아. 하지만 자네는 여의도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그 정도 수고는 해 줘야지.”
“의, 의원님! 그럼 저는……!”
“나도 넋 놓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게야. 뒤에서 힘써 주지.”
정준우 부장검사의 얼굴이 식겁하게 변해 갔다.
고발자의 최후가 좋았던 적은 없다.
그 끝은 언제나 후회다.
이 나라는 고발자에게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 말해. 검찰과 여당이 국민의 안전을 등한시한다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쑈를 한다고! 뒷일은 걱정하지 마. 여론이 돌아서면 우리가 움직일 테니까.”
자기 손에는 구정물 하나 묻히지 않고 떨어지는 떡이나 먹겠다는 뜻.
가만히 지켜보다가 여론의 동향을 파악한 다음 움직이겠다는 것.
더럽고 치사한 일.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못 하겠다는 말은 하지 마.”
국회의원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멈칫거리면 국회의원은 김영준 총장을 만날 거다.
그리고 지금껏 내뱉은 말을 전할 게 분명했다.
김영준 총장의 성격에 정준우 부장검사를 가만 놔둘 리 없다.
국회의원이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 처참해진 정준우 부장검사의 얼굴을 보며 끌끌 웃었다.
“정 검사, 고민도 하지 마. 돌아갈 길은 끊겼어. 그리고 망설이지도 마.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여의도로 올 수 있어. 정치란 험로를 걸어야 성공하는 법이야.”
정준우 부장검사는 입술을 씹었다.
나름 머리를 썼지만 협잡질은 국회의원이 몇 수나 위였다.
***
서진은 김영준 총장을 찾았다.
김영준 총장은 분명 꿍꿍이가 있다.
그 생각을 모른 채 김영준 총장의 손바닥 위에서 굴러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이럴 때는 조카라는 게 참 좋네.’
검찰 총장실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
일개 평검사라면 더더욱.
하지만 서진은 조카, 약속만 잡으면 언제든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그리고 서진을 본 김영준 총장이 찻잔을 입에 대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사건을 맡았다고?”
“네.”
김영준 총장은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웃었고 서진은 그 미소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비공개 사건이라고 지시하셨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두신 게 궁금해서요.”
김영준 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답해 줬다.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믿고 있다.
능력 있는 조카이며 충실한 사냥개로 생각하고 있다.
“회담이라는 포장지. 게다가 기한까지 정해진 특수 사건. 검찰의 입이 저렇게 많은데 밖으로 새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김영준 총장은 지금의 사건이 흘러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알겠지만…… 내가 검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년도 안 남았어. 정권이 바뀌면 나도 물러나야 하지. 그런데 그 뒤에 어떤 놈이 내 등에 칼을 꽂을지 알 수 없는 일이야.”
김영준 총장은 칼을 숨기고 있는 놈들을 사전에 색출해 내려 한다.
색출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은 없다.
적당히 몇 놈 잡아 박살 내 두면 언제나 너희를 감시하고 있다는 경고가 될 수 있다.
즉 검찰을 장악하고 다시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없게 만들려 하는 거다.
“서진아, 너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야.”
김영준 총장이 다른 검사의 손에 끌려 내려오게 되면, 서진도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다.
법에는 없지만 국민 정서에는 삼족은 물론 구족까지 멸하는 연좌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카라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지어야 할지도 몰라.”
서진을 시기하는 사람 중에는 ‘작은아버지 빽 믿고 설친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도 있다.
연대책임을 우려할 만한 일은 여기저기 존재한다.
서진은 얼굴을 쓸었다.
‘이건 고맙네…….’
정말 고마웠다.
마녀사냥을 방지해 주는 것이 고마운 게 아니라 김영준 총장이 다른 사람 손에 잡혀 갈 일이 없다는 사실이.
‘넌 내 손에 끌려가야 해.’
서진이 감정을 숨긴 채 천천히 김영준 총장을 바라봤다.
눈을 마주친 김영준 총장이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사건에만 집중해. 만약에 네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널 영웅으로 만들어 줄 거야.”
물론 서진이 예뻐서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김영준 총장의 계획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김영준 총장은 정치계를 노리고 있는 사람.
자신의 핏줄과 가문이 대단할수록, 그런 상징성이 놀라운 지지율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뭐, 서진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신경 쓰지 말라고? 사건에만 집중하라고?’
그럴 생각이다.
더러운 복마전에 얽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미래를 향해 있을수록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과거를 들여다보기가 편해진다.
그 과거가 김영준 총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확실히 틀어질 수 있도록 탐스러운 미끼 하나를 툭 던지기로 했다.
“작은아버지, 의심 가는 검사가 한 명 있어요.”
“……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