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08
01007 [외출] =========================
네아가 황혼과 망각을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거짓된 천국.
지구인들에게는 그저 가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만 알려진 곳이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세계라고 해도 될 만한 장소다.
“이곳은 항상 사람들이 많네요.”
“자주 오시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른 분들과 함께가 아니면 뭔가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그렇군요.”
새로운 종족이 업데이트 되면서 쏟아지던 관심은, 화성에서도 이 게임에 아무 문제없이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다시 한 번 불타올랐다.
본래 행성간 데이터 통신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영화나 만화 같은 매체에서야 수십 광년 떨어진 곳에서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식의 모습이 나오곤 하지만, 실제로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에서 촬영한 사진이 극초단파를 이용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15분 내외. 물론 이것도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고 자전과 공전으로 인한 상대거리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된다. 영상 통화를 한다 치면, 한마디 건넨 다음 상대의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15분 동안이나 멀뚱거리면서 상대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된 천국에 접속하게 되면, 그런 식의 시간차 없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화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상대의 얼굴을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보고 포옹을 하고 특수한 설정을 가하면 입을 맞추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하지만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기절할 듯이 놀란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뼈저리게 이해해 버린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해냈다. 미라지 코어가 초광속 항해의 성공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초광속 항해의 기술을 통신에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은 단순히 초광속 항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물질을 날려 보내는 것이라면 몰라도, 전파나 빛 같은 건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를 장착할 수도 없고 실어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니까.
-어쩌면, 미라지 코어는 이미 웜홀 같은 것조차 이미 구현해 버린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 거짓된 천국을 방문한 이 두 여성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중 한 명이 사실상의, 하지만 웜홀보다 더 안정되고 강력한 효용을 발휘하는 황혼의 권능을 가진 여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다.
둘은 곧바로 옷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 요?”
반사적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가게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는 순간 그대로 홀려 버릴 듯한 미모의 여성도 놀랍지만, 그 뒤를 머뭇거리며 따라서 들어오고 있는 인물 또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황혼과 망각님?”
“저를… 아세요?”
대번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상대의 모습에 이번에는 여신이 놀라버렸다.
“아는 분이세요?”
“그게…”
네아의 물음에 황혼과 망각은 공연히 허둥거렸다. 그녀 역시 거짓된 천국은 물론이고 이곳의 상점을 이용해 본 일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가게 주인이 자신을 알아보는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닌 편안한 분위기의 남성 모습을 한 가게 주인은 그런 둘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못 알아보셔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황혼과 망각님과는 달리, 저는 별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잡다한 신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니까요.”
이번에는 네아가 놀랄 차례다.
“네? 아니, 저기… 그러니까… 신이셨어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황혼과 망각은 물론이고, 네아 역시 거짓된 천국에서 신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탑 같은 곳에서 허세와 망상을 도와 무언가를 연구하는 쪽의 일이지, 이런 식으로 가게를 열고 무언가를 팔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탑에서 개발한 무언가라면 몰라도 평범한 옷가게라니, 정말 영문 모를 일이다.
“놀라셨나 보군요. 일단 이리로 와서 앉으시죠.”
여신과 네아는 머뭇거리며 주인이 안내하는 대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허세와 망상님이…”
머뭇거리며 질문을 던지는 황혼과 망각의 말에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시킨 일은 아닙니다. 아, 물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 분 밑에서 일했었지만요.”
“그럼…”
“음… 뭐랄까. 이쪽 일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요.”
“…”
아무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에 가게 주인은 피식 웃어버렸다.
“간단한 얘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공헌도 역시 벌 수 있으니,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죠.”
“아…”
그렇다. 거짓된 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 가운데 하나인 캐시의 정체는 사실 신들이 사용하는 힘의 근원 가운데 공헌도에 해당된다. 애초에 이곳이 만들어진 이유부터가 바로 그것을 벌어들이기 위함이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허세와 망상님처럼 대단한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신들처럼 영웅 놀이에 뛰어들기도 애매한 저로서는 이게 최선이거든요.”
“그런 얘기였군요.”
“그런 얘기입니다.”
그제서야 둘은 납득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다른 신들처럼 투쟁이나 싸움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과는 다르지만 세상에는 싸우는 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황혼과 망각 자신도 누군가와 싸워본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어차피 신은 굳이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라면 또 모르지만, 지금처럼 신들이 엘리시온 밖으로 나와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기반이 되어줄 공헌도를 쌓고 있는 상황이라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조금 늦게 가느냐 조금 빠르게 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나 할까. 물론 형진처럼 무지막지한 속도로 확장을 거듭하는 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신이라면 치열한 경쟁이 수반되는 레드 오션으로 뛰어들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만약 그 분야에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희망과 생명이 여배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것과 같은 식의 명예와 지명도가 따라붙게 될 테니 교단이나 신도를 모으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신의 지위를 지닌 자가 보통의 인간들과 경쟁하는 입장이 되는 것은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 끝나자, 주인은 방문한 두 여성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옷을 사러요.”
“하긴, 옷가게에 볼 일이라고는 그것뿐이겠죠. 마음에 드실 만한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감사합니다.”
가게 주인이 신이라고 생각하니 옷들도 뭔가 특별해 보이는 느낌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구와 타나토스 같은 여러 세계의 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융합되어 일반적인 옷가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꽤 독특한 분위기의 옷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형진의 아내들은 여신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구와 타나토스 출신들이다. 그런 이들이 참석하는 모임이라면, 이렇게 두 곳의 문화가 섞인 스타일의 옷차림도 꽤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유저들을 대상으로 공헌도를 모으기 위해 차린 가게이다보니 여러모로 돌잔치에 입고 갈 만한 곳은 찾기가 어렵다는 정도.
스타일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뭔가 좀 애매한 느낌이라 머뭇거리는 둘의 모습을 보고 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따로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그게…”
네아가 조심스럽게 옷을 사러 온 이유를 말하자, 주인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왕자님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미처 거기까지는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돌잔치라.”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주인은 몸을 돌리며 안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따로 준비된 물품이 있습니다.”
“그래요?”
“네. 사실 외부에 진열된 옷들은 유저들을 위해 마련한 것들이니까요.”
안쪽으로 들어가자, 게임 상에서나 입을 만한 코스튬 같은 것이 아닌 일상복이나 정장, 드레스 같은 것은 물론이고 각양각색의 속옷 같은 것들이 망라되어 있다.
“사실 이쪽이 제가 만들고 싶은 옷들입니다만, 아무래도 입지를 생각하면 고객 취향이란 걸 무시할 수가 없는 터라.”
“아… 그렇군요.”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들어가 옷을 살폈다. 외부 진열대의 옷들도 그랬지만 이곳의 옷들 역시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거 어때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저기… 죄송하지만 한 번 입어 봐도 될까요?”
여신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네아가 그렇게 묻자 주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조금 손을 봐야 할 것 같군요.”
“네?”
“사이즈는 자동으로 맞춰지니 문제가 없지만 등쪽은 날개를 생각하면 따로 처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겠네요.”
“잠시만요. 금방 고쳐드리겠습니다.”
곧바로 날개가 돋아나 있는 위치를 가늠해서 수선을 가한다. 누가 신 아니랄까봐 순식간에 일을 마쳐 버리는 주인의 모습에 네아는 놀라 버리고 말았다.
“와… 대단해요.”
“별 말씀을. 일단… 완전히 등을 드러내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망사 같은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 봤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아는 기쁜 표정으로 주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얼른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 어때요?”
조금 수줍은 느낌으로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자 여신과 가게 주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요.”
“아름다우시네요.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 옷을 홍보하기 위한 모델이 되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아하하…”
물론 그 한 벌로 바로 낙착을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네아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고 황혼과 망각 역시 여신이긴 하지만 옷을 고를 때 시간이 걸리는 건 평범한 다른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우우… 고민 되네요.”
황혼과 망각마저 네아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 옷 저 옷을 입다 보니 꽤 시간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결정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 같아서야 전부 사버리고 싶지만, 일개 추종자에 불과한 네아로서는 그런 식의 졸부식 쇼핑을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마침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던 황혼과 망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들면… 제가 사드려도 될까요?”
“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황혼과 망각은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 보답이라고나 할까. 이, 이래봬도 일단은 대신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기도 하고… 하지만 네아님이 부담되시면, 그러니까…”
우물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여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네아는 기쁘게 웃으며 황혼과 망각을 꽉 껴안았다.
“고마워요! 여신님! 정말로 고마워요!”
“그럼… 받아주시는 건가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무슨?”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은 옷을 덥석 받아버리는 건 염치가 없는 일이니까… 일단은 제가 여신님께 공헌도를 빌리는 걸로 할게요. 갚으려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지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안 돼요. 그리고 갚아가는 도중에는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별로 도움은 안 되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게요.”
사실 황혼과 망각을 쇼핑에 데리고 온 가장 큰 이유는 어쩐지 처연한 느낌이 전해지는 이 여신을 가만히 놔두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야 친구가 되어서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명색이 여신인데 그런 식으로 맞먹을 수는 없는 일. 때문에 네아는 스스로 빚을 만들어서 그녀의 도우미를 자청하기로 한 것이다.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다니까요. 자, 그럼 이 얘기는 이걸로 끝!”
“…”
가게 주인은 그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꺼내놓은 옷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건네주었다.
“아, 맞다.”
옷 꾸러미를 건네받던 네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주인의 말에 네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한데요. 제가 신님의 이름을 잘 몰라서.”
“아…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아직 말 안했군요.”
가게 주인은 상큼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흔쾌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망사와 레이스입니다.”
“…”
그러고 보니… 안쪽 진열대의 반수 이상은 속옷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대부분 꽤 대담한 스타일의. 사실은 그쪽이 진짜였던건가.
========== 작품 후기 ==========
근황보고입니다.
책을 읽었습니다.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는데 요며칠 동안 백권은 안 되도 꽤 많이 읽은 것 같네요. 한번 책을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지 않는 쪽이라 ㅎㅎ;
건강검진도 받았습니다. 하는 김에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복부초음파 같은 것도 싹 받았습니다. 결과는… 이곳저곳 조금씩 안좋은 곳이 있고,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운동부족이라네요. 물론 현대인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지만, 최근 몇년간 글쓰는데 집중하다보니 슬슬 조금씩 삐걱거리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루 두번 꼬박꼬박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그저 기원할 뿐입니다. 술담배도 단박에 끊어버렸던 저지만, 이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술담배는 그냥 안하면 그뿐이지만, 운동은 안하던걸 해야하는 거니까 더 난이도가 높은 것 같아요.
당분간은 독서와 운동에 열중하면서 이북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신작은 아마 쌓아두기만 했던 책이 동이 나고, 이북작업도 정리가 되면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안식년이므로 이전과 같은 불꽃 연재는 자제할 생각입니다만, 또 막상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겠죠.
그럼, 편안한 휴일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