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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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아니면, 전부?
꿀꺽.
형진은 사방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미엘의 체향에 정신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엘이 형진의 체향에 정신이 혼미해졌던 것과 같은 증상이, 지금 이 순간 본격적으로 발정에 들어가기 시작한 미엘에 의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 잠깐! 잠깐만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얼이 빠져 있던 유아가 그제서야 기겁하며 얼른 형진에게로 뛰어들며 그렇게 말했다.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듯한 결사적인 그런 유아의 모습에 미엘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진님의 정기를 지금까지 가장 많이 갈취한 분이 바로 유아님이시죠.”
“네?”
갈취라니. 자신이 무슨 음마도 아니고.
하지만 유아가 달리 그 외의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나긋한 손길 하나가 그녀의 몸을 휘감더니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꺅! 무,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긴요. 조금 나누어 달라는 것 뿐입니다.”
“읍! 무, 무슨!”
어느 틈엔가 미엘의 몸은 감싸 안은 두 명의 미엘이 앞 다투어 유아의 입술을 훔치기 시작한다.
꿀꺽.
형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다시 한 번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가 얼른 고개를 붕붕 저으며 미엘에게 물었다.
“전부라니… 그냥 단순한 분신이 아닌 겁니까?”
유아에게서 손을 떼라는 말이 나올 거라 예상하며 어떻게 이 상황을 활용할까 생각하던 미엘은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리고 말았다.
“구, 궁금한 게… 그건가요?”
“네. 뭔가 문제라도?”
“…”
이 남자. 도대체 뭐지. 자신의 정인이 지금 눈앞에서 강제로 입술을 빼앗기며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미엘은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형진의 질문에 답했다.
“진님은 제 본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거대한 흑요호?”
형진의 대답에 미엘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럼요?”
“제 본신은, 바로 진님이 꼬리라고 생각하시는 그것입니다. 정확히는 진님이 거대한 흑요호라고 말씀하신 형상조차도 꼬리 가운데 하나가 모습을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즉, 제 본신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검은 여우가 아니라, 열 개의 꼬리 바로 그 자체라 할 수 있죠.”
사실 이건 매우 중대한 비밀이다. 하다못해 제랄딘조차 미엘의 본신을 꼬리 아홉 개 달린 흑요호라고 알고 있을 정도니까. 어떻게 보면 미엘은 이런 중대한 비밀을 형진에게 털어 놓음으로서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말을 하는 당사자도 듣는 인물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다른 동물로는 변하지 못하니 여우의 모습이 제 본신과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아요. 정확히는 여우가 맞는지도 미묘하긴 하지만요.”
“아하.”
확실히 이쯤 되면 여우와 닮았다고 해서 무조건 여우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인지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불가사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결국… 지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열 명 모두가 본신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군요.”
“그런 셈이죠. 물론 이렇게 열 명 모두를 드러내 보이는 경우는 저도 처음이에요.”
“하긴.”
단순히 미엘이 꼬리 아홉 개를 달고 있는 듯한 형상만으로도 어지간한 존재는 그 힘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모든 꼬리가 형상을 갖추어 일제히 공격을 가하게 된다면 감히 그것을 당해낼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일까. 일 더하기 일은 보통 이라고 계산되지만, 지금 자신의 주위에 모습을 드러낸 열 명의 미엘은 그런 단순한 계산으로 환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다.
모르긴 해도 미엘은 라야바르트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의 집행자를 넘어 세상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손꼽을 정도의 강자일 것이다. 물론 그녀의 동족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미엘은 공포와 죽음의 집행자이기까지 하니 동등한 힘을 지닌 신의 추종자가 아니라면 동족이라도 감당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이 세계에도 드래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드래곤과 맞짱을 떠도 될 만한 무력이 아닐까.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형진이 피부로 느끼는 미엘의 강함은 그 정도로 엄청났다.
어쩌면 그토록 귀찮고 번거로운 번식 과정이 필요한 이유 자체가 이런 강력한 힘을 지닌 종족이 무한대로 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다른 종족의 정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받아 그것을 통해 잉태를 해야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그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함께 지내고 정을 들인다면 차마 자신의 배우자가 속한 다른 종족들에게 함부로 손을 쓰지는 못할 테니까.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겠지만.
또한 번식을 위해 정기를 흡수하는 동안에는 자의든 타의든 배우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그것은 일정 시간 동안 반강제적으로 활동에 제한을 받는다는 얘기다.
“흑…”
“유, 유아님. 울어요?”
“미, 미안해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그냥 샘이 나서 조금 놀려주려고 그랬던 것뿐인데…”
“…”
방금 전까지 강압적으로 입술을 훔치던 두 명의 미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유아를 달래기 시작한다. 유아는 억울한지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다가 이내 형진의 품에 와락 안기더니 미엘을 원망어린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한다.
“풉.”
형진은 미엘에게서 들은 내용을 종합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가, 그런 유아와 미엘들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보통 이런 치정 싸움은 험악해지기 마련.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아의 우는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는 미엘이나, 울먹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상황에서도 자기 것이라는 듯이 형진을 꼭 껴안고 있는 유아 모두 귀엽다는 느낌만 전해질 뿐이다.
솔직히 자기 좋다고 이렇게 두 여자가 달려드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형진은 그렇게 잠시 흐뭇하게 둘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한 가지 사악한 계획을 떠올리고는 미엘을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엘님.”
“네?”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형진은 씩 웃으며 유아와 미엘을 번갈아 바라보며 설명했다.
“간단한 얘깁니다. 유아에게 전해진 정기를 받아도 되는 거라면,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유아로서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좀 급하시더라도 일단 그렇게 타협을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뭔가 좀 난감하다. 때문에 미엘은 잠시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오히려 유아가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형진의 의견에 동의의 뜻을 밝혔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전 자신 있어요!”
자신이 있다니. 뭔가 얘기를 엉뚱하게 받아들인 것 같기는 하지만 형진은 씩 웃으며 다시 물었다.
“괜찮겠어? 정말로?”
“무, 물론이에요! 저도 예전의 유아가 아니라고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혹시 최근 잠자리에서 조금이나마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 때문에 생긴 자신감은 아닐까 싶다.
형진은 대견하다는 듯이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바로 선언했다.
“좋아. 그럼 우리들의 뜨거운 애정을 미엘님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하자.”
“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응?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꺅!”
“뭐긴 뭐야. 이런 거지.”
“잠깐! 지금 미엘님이… 흐악! 꺄흐앗!”
미엘은 눈앞에서 형진이 대놓고 유아를 덮치기 시작하자 얼빠진 표정이 되었고, 이내 본격적으로 둘이 격렬한 정사에 돌입하자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형진의 억센 손길에 이끌려 미엘은 유아 옆에 나란히 눕고 말았다.
“뭐해요. 어서 정기를 받아들여야지.”
“그, 그게…”
미엘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존재조차 잊은 듯이 형진의 손길에 이끌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고 있는 유아의 모습은 물론이고, 그런 그녀를 밀어붙이고 있는 형진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땀과 열기와 다른 모든 것들이 미엘의 이성을 날려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몸 안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견디지 못한 미엘은 그대로 형진과 유아를 덮쳤다.
서로 조금씩 다른 모습의, 열 명이나 되는 미엘이 형진과 유아에게 달라붙어 그들의 몸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언하트를 발동한 채 자신을 열렬하게 공략해 들어오는 형진의 몸짓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유아는 전신에 가해지는 그 격렬한 키스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냐면, 상당히 노력해야만 최대 크기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가슴이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을 정도다.
“윽!”
결국 전신에 가해지는 쾌락을 견디지 못한 유아가 그대로 까무러치자, 무섭게 조여오는 그녀의 육체를 감당하지 못하고 형진 역시 정을 분출했다.
“후우… 어때요. 이 정도면…”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형진은 눈앞에서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열 명의 미엘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부족해.”
“부족해요.”
“부족합니다.”
“부족…”
마치 무슨 주문이나 저주처럼 부족하다는 말을 저마다 다른 톤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미엘의 모습에 형진은 흠칫 놀랐다.
그리고 깨달했다.
뭔가 일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형진은 상황을 인지하자 다급하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크흠… 일단 진정하시고, 우리 차분하게…”
그러자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던 미엘 중 하나가 정말로 차분하게 형진에게 대답했다.
“그래요.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고 침착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선 도핑부터 하세요.”
“네?”
이게 무슨 소린가. 형진은 당황했다. 도핑이라니?
“그거 있잖아요. 요리나 가공 할 때 전심전력을 내도록 만들어주는 거.”
“그, 그게…”
“자, 어서요. 잠시라도 제 이성이 남아 있는 동안… 어서…”
“…”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엘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은 더욱더 그 세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꿀꺽.
이건 농담이 아니다. 도핑을 안 한 상태로 저 열명을 다 상대했다가는 정말 뼈골 하나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위기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자칫하면 이 세계에서의 생활 자체가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는 그런 아주 심각한 위기다. 그것을 깨닫자 형진은 얼른 허겁지겁 인벤토리에서 음식을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체하겠어요. 자, 물도 좀 마시고.”
“감사합니다.”
한편에서는 그렇게 꼭꼭 씹어먹으라고 말하며 도핑을 돕는 미엘이 있는가 하면,
“후아아아…”
“참아.”
“일단 먹게 내버려둬.”
“하지만… 저 냄새가…”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말하며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또 다른 미엘들을 필사적으로 말리는 미엘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제각기 반응은 달라도, 그녀들의 목적은 결국 하나였다. 형진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완벽한 도핑이 끝났을 때, 완전하게 무르익은 그의 정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 바로 미엘들에게 당면한 과제였던 것이다.
형진이 모든 음식을 먹고 도핑을 끝낼 때까지 미엘들은 서로의 허벅지를 쥐어 뜯으며 필사적으로 버텼고, 마침내 도핑이 끝나자 열 명의 미엘들은 목줄이 풀린 성난 들개들처럼 형진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으악!”
“괜찮아요. 미엘한테 다 맡겨요.”
“그래요. 다 맡겨요. 어흥!”
하지만 모두 경황중에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방음 결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