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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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도전
처음 형진이 라이언하트를 배웠을 때는 뭐 이런 스킬이 다 있나 싶었다. 히든 스킬이래서 배우긴 했는데, 스킬을 써도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라이언하트의 진가는 단순히 화려한 이펙트나 강렬한 타격 등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진에게 너무나 부족했던 여러 가지, 이를테면 전투와 관련된 감각이나 지능을 보충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라이언하트라는 스킬이 지닌 진짜 효능이었다.
더 간단하게 바꿔 말하자면, 라이언하트는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공략집과도 같은 스킬이었던 것이다.
일단 효용을 깨닫고 난 뒤, 형진의 발전은 눈부셨다. 단순히 앞뒤 안 가리고 인스턴트 킬만 믿은 채 덤벼드는 식이었던 전투 양상이 훨씬 지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미엘과의 일을 겪으면서 마의 30레벨 고지를 넘어선 라이언하트는 어느새 마스터 레벨에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렇다. 이번 전투는 형진의 라이언하트가 30레벨을 넘어선 뒤 겪는 첫 번째 전투였다. 그래서 형진도 그것의 효용이 얼마나 더 강력하고 눈부시게 바뀌었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까지도.
지옥 토끼. 정확한 이름은 필드 보스 미스틱.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불길 같은 눈빛을 뿜어내는 작달막한 토끼의 모습을 한 이 존재가 마치 시야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가 나타나며 구사한 회축은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방금 전 보였던 용오름처럼, 발차기가 시전 되는 순간 그 주위로 격렬한 기운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며 그 힘을 해방하기 위해 타격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치열한 힘의 반응들은 형진으로 하여금 타격을 저지하기 위한 기회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보였다가도 이내 다른 힘의 반응에 뒤섞여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니 기존의 방법으로는 그 약점을 찔러 공격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이 그렇게 난해하고 복잡한 것임을 인지하는 순간, 한 단계 위로 벽을 넘어선 라이언하트가 스스로 그 기술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기괴한 이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한 형진의 갈망이 라이언하트와 반응하는 순간, 형진의 몸은 이미 그 의지를 받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단검을 쥔 손이 느릿하게 내밀어진다.
그 손의 움직임은 너무나 정적이어서 격렬한 힘의 불꽃들과 반응하며 날아드는 회축을 무효화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순간 형진이 깨달은 것은, 빠른 것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 무조건 빠른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 한없이 느려 보이는 것이라도, 위치와 적기만 제대로 잡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빠름보다도 더 강력해 질 수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쩡!
마치 빙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차가운 바다로 떨어지는 듯한 격렬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형진과 토끼 사이의 공기가 둘의 격돌로 인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파열하며 내지른 비명.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교환된 것이 얼마나 격렬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큭!”
형진은 되돌아온 반작용으로 인해 팔이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토끼놈 역시 충돌로 인한 반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지듯 뒤로 물러난 것이다.
누군가 둘의 격돌을 코앞에서 본 자가 있었다면, 마치 토끼의 발이 스스로 형진의 단검을 향해 내밀어진 것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던 형진의 단검은 실제로는 세차게 진동하며 토끼의 발끝에 맺힌 채 격렬하게 반응하는 힘의 흐름에 대응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그 굉음은 사실 귀로 인지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터져 나온 연속적인 폭음의 집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완전하지 않았다. 아무리 라이언하트가 대단한 스킬이어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상대가 그저 그런 존재라면 몰라도, 필드 보스쯤 되는 놈이 상대여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스턴트 킬! ‘폭렬차기의 파편 Lv.42’가 소멸했습니다!] [인스턴트 킬! ‘폭렬차기의 파편 Lv.42’가 소멸했습니다!] [인스턴트 킬! ‘폭렬차기의 파편 Lv.42’가 소멸했습니다!] [인스턴트 킬! ‘폭렬차기…“칫.”
형진은 눈앞에서 주르륵 올라가는 메시지를 보고는 혀를 찼다. 거의 완벽하게 공격을 저지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저릿해지는 반작용에 걸린 또 한 가지 이유. 그것은 방금 전 공격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 아닌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힘의 파편에 현혹되어 거기에만 집중한 탓이다. 물론 힘의 파편이라 해도 명중하는 순간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팔이 저릿해지는 감각에 잠시 형진이 멈춰서 있는 동안, 토끼 녀석 또한 공격 저지로 인한 경직을 해소하고 다시금 공격을 가해온다.
휙! 휙! 휙!
앞서의 회축이 형진의 방어로 파훼되었던 것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두 발을 연달아 자리를 바꾸며 급속하게 접근해 온다. 어느 쪽 발이 진짜 공격인지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페인트의 연속. 아니, 어쩌면 그런 발의 움직임에 현혹되어 거기에만 집중하는 동안 진짜 공격은 주먹이나 다른 부위의 신체로 가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진은 느릿하게 단검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수시로 바뀌는 놈의 무게 중심에 반응하며 내밀어진 칼끝은 예리하게 흔들리다가 느닷없이 터져 나온 놈의 주먹과 다시 한 번 격돌했다.
두 발이 위치를 바꾸는 순간, 마치 등 뒤에서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는 듯한 놈의 작달막한 주먹이 형진이 내민 단검과 다시 한 번 격돌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공격의 중심점을 제대로 파악했다. 형진은 곁가지로 날아드는 힘의 파편보다는 중심점으로부터 가해지는 가장 강력한 타격을 노려 단검을 찔렀다.
해냈다!
힘의 파편이 날아들어 예리한 칼날처럼 살갗을 찢는 상황에서도 형진은 똑바로 단검을 내밀어 정확히 중심점을 타격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단검에 전해진 힘의 강도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 공격 자체가 애초에 기만이었던 것이다!
진짜 공격은 반대편에서 날아드는 앞발이었고, 그것은 단검을 쥐고 있는 형진의 손등을 향하고 있었다.
“큭!”
놈의 공격이 적중한다면 형진은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공격의 수단을 상실해 버린다. 역시나 필드 보스. 형진이 라이언하트를 통해 공격의 허실을 파악해낸 것처럼, 놈 역시 형진이 지닌 능력의 허실을 간파한 것이다.
훅!
하지만 놈의 일격이 형진의 손에 적중되기 직전, 그의 모습은 한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환영의 반딧불이 발동하여 이 치명적인 일격을 회피한 것이다.
콰가가가가!
온전히 체중이 실린, 마치 훅을 연상시키는 놈의 펀치가 대기를 훑고 지나가는 순간 대기가 갈가리 찢겨지며 거대한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폭발이 스쳐 지나간 허공으로부터 형진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찌릿!
지옥 토끼는 다시 나타난 형진을 향해 그 이름처럼 지옥의 불길을 연상시키는 시선을 던졌다. 순간 형진의 시야에 다시 한 번 초열 시선의 효과에 저항하는데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비어있던 손이 허공으로부터 뛰쳐나온 것만 같은 피리처럼 보이는 막대기를 움켜 쥐었다.
“열려라! 망상필드!”
그것은, 바로 어제 요정들에게서 갈취한 바 있는 허세와 망상의 신물인 망상구현의 단장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도저히 무기로 쓰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작달막한 막대기에 불과한 이 아이템은, 무려 신성급의 힘을 지닌 신기였다!
형진의 외침에 따라, 주위의 풍경이 기이하게 뒤바뀌기 시작한다. 험한 산세와 거칠게 드러난 사면이 사라지고,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풍경으로 바뀌었다.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는 바다와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은 자그마한 지옥 토끼의 몸 따위는 단숨에 휩쓸고 지나갈 것처럼 보였다.
미스틱이라는 이름을 지닌 필드 보스는 순간 갑작스럽게 돌변한 주위 환경에 멈칫했고, 그 찰나의 머뭇거림 속에서 형진의 존재감은 주위에 휘몰아치는 폭풍 속으로 숨어들었다. 곧바로 은신과 잠행을 펼쳐 이미 구현된 망상필드 안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은신과 잠행은 물론이고 망상필드를 만들어낸 망상구현의 단장 또한 신의 힘이 깃든 물건. 제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필드 보스라도, 신이 지닌 강대한 힘이 두 가지나 뒤섞인 이 상황에서 형진의 위치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놈은 당황하는 대신 파도 위로 솟구쳐 오르며 두 주먹을 연신 사방으로 뻗어냈다. 마치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격렬한 힘을 지닌 펀치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꽝! 꽝! 꽝!
용오름이 솟아오르고, 벼락이 내리치며, 사방에 천둥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하나하나의 일격이 모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에 이를 정도로 강렬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고, 어느 순간 토끼는 자신의 감각에 무언가가 잡히는 것을 느꼈다.
꽈과광!
무언가 감지되기가 무섭게 놈의 작달막한 앞발이 연속으로 교차하듯 뻗어 나가자, 마치 기관포처럼 격렬한 힘이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쏘아진다. 그것은 이를테면, 집중포격이라는 말을 연상시킬 정도로 격렬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놈의 등 뒤로 다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감각에 걸린 무언가를 향해 무차별적인 집중포격을 가하고 있던 토끼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엄습하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급히 몸을 뒤틀어 그것을 향해 발차기를 시도했다.
퍽!
하지만 놈의 발끝에 걸린 그것은, 겨우 사람의 주먹 크기나 될까 말까한 작은 돌멩이였다.
물론, 평범한 돌멩이는 아니다. 급하게 새기긴 했어도, 그곳에는 엄연히 형진이 심혈을 기울여 파 넣은 세공의 힘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찰나의 순간 토끼의 붉은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진 것인지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에게는 후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스륵.
마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처럼, 검은 색의 두건을 뒤집어 쓴 한 사람의 모습이 놈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바로 속삭이듯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체크메이트.”
순간 등 뒤에서 허깨비처럼 모습을 드러낸 형진은, 급하게 몸을 뒤틀어 강렬한 발차기를 날리는 바람에 완전히 역동작에 걸려버린 놈의 뒷목에 드러난 약점에 가차 없이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푹!
형진의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를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 순간,
[인스턴트 킬! 필드 보스 ‘미스틱’이 죽었습니다!]한 줄의 메시지가 나타나며 지금까지 사방을 초토화시키고 있던 괴물 토끼의 움직임이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정지화면을 누른 것처럼 우뚝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필드 보스라도 인스턴트 킬의 위력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그리고 뒤이어, 놈의 몸으로부터 형진의 눈앞에 무려 다섯 개나 되는 황금빛 룻이 후두둑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