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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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금은 노오오력이 필요할 때.
난이도가 높은 바퀴는 일단 뒤로 미뤄두고 일단 손수레의 골격부터 만든다. 바퀴는 실질적으로 소모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라 규격에 맞춰서 여분까지 몇 개를 함께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의 가공 레벨로는 이런 일괄 생산은 아직 좀 힘에 부친다.
일단 간단하게 도면을 그리고 형태를 구상한다. 도면에 맞게 손수레의 부품이 될 각목과 판자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푸딩의 버프 효과 덕분인지 경험치가 쑥쑥 오른다.
[가공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가공 기술이 증가하였습니다!] [가공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가공 경험치가 상승…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성장이 빠르면 그만큼 흥이 나기 마련이다.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간에 거침없이 쑥쑥 발전하는 느낌이 나면 그만큼 즐겁게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것은 게임 역시 마찬가지여서 레벨이 쑥쑥 오르는 초반에는 시간 가는줄 모르게 열중하다가 밤을 세우기 일쑤지만, 레벨업이 고단해지는 나중에는 한두 시간만으로도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냥터의 효율이고 뭐고 다 떠나서 얼마나 오래 사냥을 지속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
형진은 사냥러가 아닌 생활러지만,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 사냥에 비하면 관점에 따라서는 생활이 훨씬 더 지루하고 피곤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완성시킬 때의 쾌감이 없다면 형진 스스로도 이걸 도대체 어떻게 계속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도핑은 슬럼프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이런…”
한창 신명나게 톱질과 대패질을 이어가던 형진은 버프 효과가 사라짐과 동시에 경험치 속도가 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뜨렸다. 버프든 도핑이든 처음부터 안쓰면 모르겠는데, 일단 쓰다가 안 쓰는 건 쉽지 않다. 뭘 하나 해도 답답하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도핑이 무작정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의욕이 뚝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떠오른 해를 보니 대충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몸에 붙은 톱밥과 대팻밥을 털어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다시 인기척과 함께 옆집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씨, 있어요?”
“네. 있습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자 역시나 쟁반을 받쳐 들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쟁반 위에는 샌드위치로 보이는 물건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것저것 시험해 본다는 것이 그만 너무 많이 만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어쩌죠?”
난처하다는 듯이 혀를 살짝 내밀고는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 은근 귀엽다. 이 아줌마, 누굴 홀리려고.
“크흠. 괜찮습니다. 한창 힘 쓸 나이 아닌가요. 아하하하… 하…”
“어머.”
그냥 받아친다는 것이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 해놓고도 어색해져서 공연히 헛기침을 하자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어색해 하면 어떻게 해요?”
“그, 그게… 그런가요?”
“아무튼 받아주세요. 팔 아파요.”
“아, 죄송합니다.”
어쩐지 페이스가 말리는 느낌이다. 이러다 정말 야수로 돌변한 아줌마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어쨌든 쟁반을 받아서 안쪽으로 내려놓자, 아줌마는 냄비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이것만 먹으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어제 먹다 남은 토끼 고기 스튜를 좀 데워 봤어요.”
“어휴,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어제 먹었던 맛이 떠올라 금새 입 안에 침이 흥건하게 고인다. 큰일이다. 벌써 조건 반사의 단계까지 와버린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바로 설거지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바쁘신 것 같은데 따로 부르지 마시고 이곳에 내놔 주세요. 제가 보고 알아서 가져 갈 테니.”
“죄송스러워서.”
“죄송스럽긴요. 돈 받은 값은 해야죠. 후후.”
그렇게 대화를 나눈 뒤 일단 음식을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 분류를 한다.
“어디보자… 이거 종류가 다양해서 겹쳐지려나 모르겠네.”
자신을 생각해서 열심히 해준 것까지는 좋은데 이렇게 되면 인벤토리에 쟁여놓기가 난감해진다.
아줌마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는 안에 들어간 햄과 소스의 종류에 따라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었다. 일단 적당히 분류를 한 다음 하나씩 시식을 해보니 가장 효과가 좋은 건 로스트비프를 주재료로 만든 샌드위치였다. 효과는 무려 채집 속도 증가에 더해 채집 성공률 증가까지. 여기에 토끼 고기 스튜를 곁들이자 식사가 끝날 무렵 형진은 무려 네 가지나 되는 버프 효과를 얻게 되었다.
“후아… 잘 먹었다. 이크! 이럴 때가 아니지.”
음식 버프의 또다른 장점 하나. 버프 효과가 아까워서 느긋하게 쉴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 이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인가.
일단 샌드위치를 깨끗한 나뭇잎으로 잘 싸서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은 뒤, 쟁반과 냄비를 잘 씻어서 울타리 근처에 놓인 선반에 올려두고는 급히 산에 올라갈 채비를 했다.
“어디보자. 임무가…”
[물자 조달] -임무를 수행중인 형제로부터 물자 조달의 임무가 들어왔다.-필요한 물자: 자작나무 껍질.
-수량: 30개.
-제한계급: 하급성도
-보수: 반트 동화 3개, 팩션 공헌도 2.
(주의) 수량이 좀 많습니다. 두께가 일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이라. 잘 됐네. 어차피 여기저기 쓸 데가 많아서 좀 캐볼까 하던 참인데.”
자작나무 껍질은 최고의 불쏘시개다. 비가 막 내린 다음에 벗겨서 사용해도 바로 불이 붙을 정도라서 악천후일 때 부득이 불을 피워야 한다면 이것만큼 훌륭한 불쏘시개도 없을 정도다. 더구나 자체적으로 부패 방지 효과도 있어서 음식 같은 것을 보관할 때 포장지 대용으로 사용해도 좋고, 얇게 벗겨서 종이 대신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도구 등의 손잡이 등을 감는 용도로 쓸 수도 있다.
도끼와 단검, 그리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약초를 캐기 위한 호미 등을 챙기고 망태기 하나를 짊어진 채 산으로 향한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 도착하자 주위를 살피고자 사냥개 코장식을 착용했는데, 곧바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느껴진다.
“이건… 설마?”
이 비릿한 쇳가루 냄새 같은 향기는… 피 냄새다.
형진은 곧바로 허리춤에 차고 있단 단검을 뽑아들고는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하자, 이 피냄새가 생각보다 상당히 흐릿하고 또한 조금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지금 막 풍기기 시작한 냄새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긴가.”
얼핏 봐서는 잘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아주 적은 양의 피가 자작나무 껍질에 묻어 있었다. 이미 시간이 좀 지났는지 검게 변해서 얼룩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냥개 코장식의 놀라운 효과는 이 흔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또한 형진에게 알려주었다.
“발자국이군.”
냄새의 흔적을 살핀 결과, 형진은 흐릿하게 남은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땅을 훑은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무거운 것을 짊어졌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또렷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발의 폭이 생각보다 다소 작아 보인다는 것 정도.
발자국을 따라가자 이내 무언가를 암매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형진은 일단 파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안에 뭐가 있을지는 대충 짐작이 되지만 그래도 일단 파서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예상대로 안에서는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 하나가 나왔다. 특이한 점은 옷이나 장비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
“으…”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런 처참한 꼴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냄새 때문에 좀 고역이었을 뿐, 달리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처참한 시체를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니. 전에 통로에서 기사의 목 없는 시체라든가, 목이 반쯤 잘린 채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녀들의 시체를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아직 이 세계의 일을 게임이라고 인식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때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주정뱅이가 남겨준 책자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죄라는 이름의 가치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이 형상화된 것이 곧 공포이며, 죽음은 이러한 공포를 해소하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수단으로 정의된다던가.
막상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어쩐지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공포에 대한 심리학적인 고찰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 공포가 어떻게 정의되고, 그것을 주재하는 신의 영향력이 각인의 집행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대충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요컨대 형진이 처참한 시체를 보고도 달리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러한 죽음이나 그것으로부터 유발되는 공포에 대해 일종의 면역 특성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낙인에는 강건한 정신, 불굴의 의지, 정신 공격 저항 증가 등의 효과가 부여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음? 잠깐만. 그건 전직 퀘스트 완료 전의 일 아니었나?”
통로에서 시체들을 봤을 때는 낙인을 받기 전의 일이라는 점이 다시 떠올랐지만, 전직 퀘스트를 부여하며 뭔가 대비를 해두었거나 이 세계로 오는 과정에서 따로 처치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기야 공포와 죽음의 성도라는 이들이 시체를 보고 벌벌 떨어서야 말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그런 감정에 저항력이 있기에 성도로서 일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테고.
“그렇다면 문제는… 왜 이런 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느냐 하는 점인데.”
그렇지 않아도 코장식을 착용한 상태라 냄새에 민감한 상태로 부패한 시체를 뒤적여 신원을 확인하는 건 확실히 고역이다. 공포 이전에 냄새와 혐오감 때문에 돌아가실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렇게 꾹 눌러 참고 시체를 뒤져본 결과 문장이 새겨진 단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
단검 자체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 문제는 손잡이에 새겨진 문장.
형진은 손등을 들어 그곳에 새겨진 공포와 죽음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단검에 새겨진 문장은 바로 그것이었다.
“설마… 형제란 말인가?”
일면식도 없는 자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자신과 같은 각인의 집행자라면 문제가 있다. 이 자를 이곳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손길이 자신에게도 뻗쳐 올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근래에 인근에서 각인의 집행자에 의해 치러진 암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황자의 약혼자였던 귀족 영애에 대한 암살이다. 하지만 그 귀족 영애의 암살은 누가 봐도 명예로운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 만약 해당 가문에서 땅에 떨어진 명예에 대한 복수로서 집행자에게 칼날을 겨눈 것이라면?
“…”
형진은 일단 시체를 다시 그 자리에 묻어 놓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은 다음, 조심스럽게 흔적을 지우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혹시라도 지켜보는 자가 없나 하고 코장식을 통해 주위를 살펴봤지만, 다행이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군.”
손등의 각인은 같은 집행자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가 있으니 일단 가려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