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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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기르카
“읏차!”
형진은 잠시 놈의 숨골에 박아 넣은 단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그것을 뽑아내며 훌쩍 뛰어 바닥에 착지했다. 그림자곰은 마치 박제된 것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이내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우선 룻부터 집어 들어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이템정보
명칭 : 치명적인 곰가죽 중절모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그림자곰의 가죽으로 만든 중절모. 곰가죽 트렌치코트와 함께 입으면 추가로 매력이 상승한다.
효과 : 치명타 확률 상승, 치명타 피해 상승, (매력 상승)
강화시 효과 : 치명타 확률 상승.
좋기는 한데, 이미 집행자의 두건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라 함께 쓰기가 좀 애매하다. 옵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인스턴트 킬을 주력으로 쓰는 자신으로서는 이것 역시 다소 애매한 느낌. 하지만 이번에 새로 얻은 폭렬차기나 용오름 같은 스킬들을 써서 싸움에 임하는 상황이라면 꽤 쓸 만할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아이템 확인을 마친 형진은 쓰러진 곰에게 다가가 피를 뽑는 작업을 했다. 아무래도 발자국에 남아 있던 습하고 어둡던 느낌의 냄새는 앞서 지나쳐 왔던 늪지에서 옮겨진 것 같다. 식재료로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가죽을 벗기고 도축을 해서 직접 요리를 해봐야 알 것 같다.
“제가 인벤토리에 담을까요?”
부창부수라던가. 이제는 미엘도 척하면 척이다.
하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어차피 사려고 했던 거니까, 이참에 사버리지 뭐.”
“무게요?”
“응.”
다른 사람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낭비라고 생각하며 말렸겠지만, 형진에게 무지막지한 양의 공헌도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엘로서는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무게 1을 올리는데 필요한 공헌도의 양은 10. 이번 탐색 의뢰가 제법 공헌도 보상이 후함에도 불구하고 고작 40밖에 되지 않는 걸 감안하면, 무지막지하게 비싼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형진에게 이 정도의 공헌도는 별 것 아니다. 무게 1만을 사도 고작해야 10만 밖에 안 되니까.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한 달 동안 딴 거 아무것도 안 하고 사제들에게 빨대를 꼽아서 벌어들이는 공헌도의 양만 삼사백만에 달하는 형진에게 있어서 10만 정도는 정말 껌값 밖에는 안 된다.
“얼마나 샀어요?”
“십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형진의 말에 미엘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십만 공헌도면… 무게 1만을 산거에요? 세상에.”
하지만 형진은 그런 미엘의 모습을 보며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공헌도 십만을 썼다는 얘기가 아니라, 무게 십만을 샀다고.”
“헉!”
무게 십만이면 공헌도로 따져서 백만을 단숨에 들이부었다는 소리다. 이쯤 되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걸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말도 안 되는 씀씀이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미엘을 놔둔 채, 형진은 그림자곰의 사체로 다가가 그것을 그대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일단 첫 번째 목표인 그림자곰에 대한 처리가 끝나자 형진은 놈이 웅크리고 있던 나무 둥치 안을 살폈지만 별 다른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어쩌지?”
“글쎄요.”
딱히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궁화의 조짐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렇게 그림자곰이나 현자 토끼가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미쳐서 나왔다는 얘기가 오히려 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
“쳇, 공헌도를 많이 주는 이유가 있었어.”
투덜대는 형진의 모습에 미엘은 다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어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아무래도 이 자세에 맛을 들인 모양이다.
형진은 미엘은 안은 채 다시 산책하듯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직 그들이 들어선 곳은 고작해야 숲의 초입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말 무지막지하게 크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솟아오른 나무들로 인해 주위가 어둑해 보일 지경이다. 이런 곳이라면 해가 조금만 기울어도 금방 밤이 되어 버릴 것 같다.
“하늘 위에서 살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좋겠어.”
이렇게 일일이 걸어서 탐색해서는 언제 끝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라, 결국 미엘은 다시 거대한 흑요호의 모습을 갖춰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서와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소녀 모습의 미엘은 그대로 남아 있고, 꼬리 가운데 하나를 거대 흑요호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그렇게 나한테 안겨 있는 게 좋아?”
놀리는 투로 말을 건넸지만, 미엘은 씩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여우 모습으로 목에 감겨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부끄러움이 느껴졌는지 살짝 볼이 상기된다. 나원참. 백년 묵은 구미호 주제에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건가.
“이런 어리광쟁이.”
“킥.”
그렇게 노닥거리며 둘은 거대한 흑요호의 등에 오른 채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작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숲이 발아래 펼쳐진다. 이게 작은 숲이면, 큰 숲은 도대체 얼마나 엄청나다는 걸까.
숲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는 냄새를 통한 탐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감각에 의지해야 했다. 나무 위를 스쳐 지나가며 이상한 징후가 없는지 살피기를 얼마나 했을까.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하는 모양새라 이 정도로 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이 되어서야 미엘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결계에요.”
“이런 곳에?”
“네. 범위는 그리 넓지 않지만 꽤 실력 좋은 마법사가 펼친 것 같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예상과는 달리 던전화의 징후가 아닌 다른 현상을 발견했다. 그것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확실한. 이쯤 되면 미쳐버린 사람들과 관계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아무래도 목적하던 바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사람이라더니. 가보자.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 건지.”
“네.”
그들은 곧바로 경고조차 없이 결계를 부수며 안쪽으로 난입했다. 미엘이 상당히 강력한 결계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흑요호는 그런 결계를 그냥 이빨로 물어뜯어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닌 환수다. 애초에 급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결계가 부서지자 곧바로 통나무로 벽을 두른 작은 규모의 요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성채라고 하기엔 너무 규모가 적고 초소라고 하기엔 제법 규모가 있는 느낌. 물론 그렇다 해도 최소 백여명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별다른 징후도 없이 요새를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숨겨주고 있던 시각 결계가 파괴되고, 곧이어 척 보기에도 뭔가 대단해 보이는 환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종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함께 무장한 병력들이 목책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봐도 산적 같지는 않지?”
“그러네요. 좀 허름하긴 해도 정규군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미엘의 말대로 조금 허름한 느낌에, 겉에 털가죽 같은 것을 잔뜩 두르고 있기는 해도 갑옷이나 기타 다른 장비들은 제법 통일된 느낌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환수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일사불란하게 목책 위로 올라와 전투 준비에 돌입하는 모습은 정규군 수준의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곳에 정규군이라. 뭔가 얘기가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혀를 차며 형진이 말하자, 미엘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것이 귀찮으시면 그냥 간단한 결말을 내는 방법도 있긴 해요.”
“흠.”
미엘의 말대로 예전에 산을 날려버렸던 그녀의 필살기를 쓰면 이런 작은 요새 따위 단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쓸어버리면 어쩐지 후회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미엘도 정말 형진이 그런 선택을 하리라 예상하고 말을 꺼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재확인시켜주는 정도의 의미라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싶다.
어쨌든 요새를 내려다 보며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목책 위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고귀한 일족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희들을 놀라게 하신 겁니까.”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사내다. 갑주를 챙겨 입기는 했어도 분위기로 봐서는 마법사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 자가 방금 전까지 요새를 에워싸고 있던 결계를 만든 장본인이리라.
형진은 미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엘의 일족은 꽤 유명한가봐?”
아무래도 저들의 위치가 흑요호보다 아래쪽이다 보니 등에 타고 있는 형진과 미엘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엘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형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럴 리가요. 공격을 않고 있으니 한 번 떠보려는 거겠죠.”
“그런가.”
“아마도요. 하지만 확신은 못하겠네요.”
하기야 상대의 지식수준을 몇 마디 말로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과연 이 숲에서 벌어진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나 하는 점.
“그럼 좀 특별한 방법을 써야겠군.”
그렇게 말하며 형진이 피리를 닮은 막대기 하나를 꺼내 보이자 미엘은 그의 의도를 깨닫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못 말려.”
“반할 거 같아?”
“여기서 더 이상 반하기를 원하는 거에요? 욕심도 많으셔라.”
“어라, 얘기가 그렇게 되나. 꿈 깨라고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줄까요.”
“참아줘. 이래봬도 계속 꿈꾸고 싶은 나이라고.”
“킥.”
형진은 긴장감 없는 모습으로 그렇게 미엘과 얘기를 나누고는, 손에 쥐고 있던 막대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열려라, 망상 필드.”
하나의 파동이 주위를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별다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헉!”
“이, 이, 이건…”
“사방에서 몰려온다!”
“이럴 수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곧바로 사방에서 일일이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환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형진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생물들이다. 파도로 몸을 휘감은 수룡이라든가, 거대한 갑오징어 모양의 해양 괴수, 하늘을 나는 고래와 불을 뿜어내는 청동 거인, 그리고 구름 위를 달리는 호랑이 같은 각양각색의 괴수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요새를 완전히 포위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쯤 되자, 지금까지 나름대로 엄정한 군기를 보여주고 있던 병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대번에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딱히 착란이나 혼란을 일으키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몰려들어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괴수들의 모습만으로도 패닉에 빠져 버린 것이다.
“어디 보자. 어떤 놈이 좋을까.”
형진은 잠시 자신이 불러낸 괴수들을 돌아보다가, 제법 근엄하게 생긴 청동 거인을 골랐다. 푸른빛의 청동 갑주 안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들어찬 모습이기는 해도 일단 인간의 형상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묻겠다!
마치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에 병사들은 영락없이 신이라고 생각했는지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한다.
확실히 신이 상대여서야 답이 없긴 하다. 잠깐, 혹시 이러다 신을 사칭했다고 벌 받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형진은 그런 잡생각을 머릿속 한 켠으로 치워버리며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어째서 이곳에서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병사들은 차마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엎드려 빌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효과가 좋기는 한데, 너무 좋아서 난리다. 하기야 이래봬도 신성급 아이템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묻지 않는가!
형진이 다시 한 번 고함을 치자, 그제서야 앞서의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설마 이곳이 파괴와 재생에 속한 땅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량을 베풀어 주신다면,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세요!”
사과를 하는 것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뜬금없이 흘러나온 신의 이름에 형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가만히 그 모든 것을 그의 품에 안겨 지켜보고 있던 미엘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지금 쟤들이 뭐라고 한 거지? 파괴와 재생? 설마 날 지금 미친놈 취급 하고 있는 거야?”
“킥킥. 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