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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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힘겹게 잡았던 족제비도 횟수가 늘어갈수록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패턴도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레벨과 맷집의 상승으로 피통이 늘면서 어느 정도 상대하기가 편해진 것이다. 물론 피투성이가 되는 건 여전했지만, 죽지만 않는다면야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도 족제비 사냥이 익숙해지자 그는 자신만만하게 여우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비록 족제비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초보존의 몹인 여우에게 맞아죽는 참사가 일어나 버린 것이다.
문자 그대로 참사다. 초보존은 말 그대로 초보들에게 전투란 어떻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장소. 사냥하다 잠든 것도 아니고 멀쩡히 두 눈 뜨고 있다가 맞아죽는 상황을 달리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킥. 저 사람 죽었어.”
“푸흡! 뭘 어떻게 해야 여우한테 맞아죽는 거지?”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전투를 했다면 조금 힘겹기는 해도 맞아죽을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난이도가 맞춰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약점이 드러나길 기다려 그것을 찔러 인스턴트 킬을 만들어내는 사냥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여우는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약점이 드러나는 빈도도 너무 짧았고, 설령 보이더라도 제대로 그것을 찌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맞아죽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이해할 리 없다. 아무리 봐도 두 눈 멀쩡히 뜨고 발버둥치다가 죽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토끼 귀를 머리에 달고 있는 걸 보고 고렙인가 했던 사람들도, 그가 허망하게 여우에게 맞아죽는 모습을 보이자 그냥 비슷한 꾸미기 템을 쓰는 변태 정도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레어템을 몸에 두른 고렙이 고작해야 여우한테 맞아죽진 않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다.
“젠장.”
생활러를 하면서 이미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는 무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초보존 안이라서 경험치나 아이템의 손실 같은 패널티가 없다는 정도일까.
부활 장소에서 다시 살아난 그는 자신의 사냥 방식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음을 이해했다. 족제비보다 강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먼저 활로 약점을 노리고 그것이 실패하면 근접전을 시작하는 방식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여우의 약점을 찌르지 못했다. 그의 민첩과 손재간 수치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히 스탯이나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오기가 나서 다시 한 번 시험해 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냥 보다 강력한 방어구를 착용하면 해결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여우를 잡는다는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잡을까 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여우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해결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접근전에 들어가기 전에 활로 단숨에 인스턴트 킬을 이끌어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공격을 해오더라도 그것을 견디며 인스턴트 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일단 활쏘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스템적인 한계라고 해야 할까. 현재의 상태로는 활쏘기의 랭크를 올리는데 제한이 있었다. 상위 직업으로 전직을 하지 않는 이상 올릴 수 있는 랭크에 제한이 있는 것이다.
계속 연습하다 보면 약점을 찌르는 것처럼 어떤 느낌이 딱 하고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점을 보는 것과 활로 그것을 맞추는 것은 역시 다른 문제였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기껏 토끼 머리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원거리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결국 하나. 어떠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약점을 찾아 찌를 수 있는 집중력을 기르는 것 뿐이다.
그는 다시 족제비를 찾았다. 이미 그의 인벤에는 족제비의 꼬리가 하나 가득 담겨 있었지만, 그는 지겨움을 무릅쓰고 다시 족제비와의 혈전에 들어갔다.
“큭! 저 사람 또 족제비랑 눈싸움한다.”
“족제비 꽤 많이 잡지 않았나? 그 정도면 여우 정도는 잡을 만할 텐데.”
“모르지. 상상도 못할 정도의 발컨이면 그럴 수도 있잖아.”
“하긴.”
사냥터를 지날 때마다 족제비에게 흠씬 얻어터지며 눈싸움을 벌이는 그는 이미 초보존에서는 제법 유명했고, 사람들은 또다시 혈전이 시작되자 피식거리며 그를 지나쳤다.
“자, 덤벼!”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족제비를 향해 도발했다.
그런데 이 족제비, 이전에 그가 상대했던 족제비들과는 뭔가 다르다. 한쪽 눈에 길게 상처가 나있는데다 생긴 것도 뭔가 상당히 험상궂은 것이…
[필드 보스 ‘카마이타치’가 당신을 공격합니다!] “헉!”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보통의 족제비를 상대하는 데도 피투성이가 될 정도인데 무려 필드 보스라니.
“제,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방패라도 드는 건데. 그는 그렇게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카마이타치는 그를 포착하고 공격을 시작한 뒤였다.
촤차차착!
명색이 필드 보스라서 그런지 공격 방식조차 보통의 족제비와는 달랐다. 단순히 물고 할퀴는 공격만이 아니라 꼬리를 휘둘러 칼바람을 날리는 원거리 공격까지 가능한 것이다.
“큭!”
공격 방식만이 아니라 들어오는 피해량도 차이가 났다. 몇 방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저 양반 저러다 또 죽겠네.”
“뭐지? 강화하다가 방어구라도 깨졌나?”
“그게 아니라… 저거 그거 아니야? 그 뭐더라. 맞아, 필드 보스.”
“뭐?”
필드 보스라는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눈이 홱 돌아갔다.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낮은 확률로 출현하는 필드 보스는 일반적인 몹들보다 훨씬 좋은 아이템을 드랍 한다. 고작해야 초보존의 몹에 불과하긴 하지만, 혹시 운이 좋으면 레어 아이템 같은 걸 드랍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내꺼다!”
“웃기는 소리!”
곧바로 사람들이 그와 카마이타치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를 거칠게 몰아붙이던 카마이타치는 고레벨 유저들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순식간에 썰려서 어육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엥? 이게 뭐야. 거지잖아.”
“쳇. 입맛만 버렸네. 레벨 차이 때문인가?”
“그런가 보네.”
그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아니 오히려 위기에서 구해줬으니 고마워하라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은 그의 곁에서 떠나갔다.
“허…”
맥이 탁 풀린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틸 당한 것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이 쩔쩔 매던 상대를 이렇게 쉽게 썰어버리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다.
물론 레벨 차이가 나니 스킬이든 스텟이든 아이템이든 위력이 다른 거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니 정말 자신이 하는 짓이 뻘짓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어 그렇게 치밀어 오르는 생각들을 떨쳐 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스턴트 킬로 잡으면 레어 아이템이 쏟아지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인스턴트 킬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똑같이 몹을 죽여도 떨어지는 템이 다른데.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초보자용 방패를 구해서 들어봤다. 하지만 족제비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그렇다 쳐도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생기는 경직이 짜증스럽다.
모처럼 인스턴트 킬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방패 경직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번번히 생기자 결국 그는 방패도 치워버렸다. 인스턴트 킬을 몸으로 익히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막상 그걸 못 쓰게 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일 아닌가.
결국은 다시 족제비의 공격을 묵묵히 견디며 인스턴트 킬의 기회를 노리는 방법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전투를 하면서도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후…”
이제는 지켜보는 사람도 없다. 처음에야 족제비와 이런 식으로 사투를 벌이는 그의 모습이 신기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뻘짓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냥 저 미친놈은 지치지도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칠 뿐이다.
다시 몇 마리의 족제비를 잡았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역시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봐야 하는 건가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려는데 급박한 전투 효과음이 울려퍼지며 메시지 하나가 나타난다.
[필드 보스 ‘카마이타치’가 당신을 공격합니다!]“엥?”
그 보기 힘들다는 필드 보스를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나게 되다니!
그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카마이타치의 칼바람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곧바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도 그렇게 신나게 얻어터지고 빈사 상태까지 몰린 상대가 아닌가. 게다가 이번에는 아까처럼 도와줄 다른 사람도 없다.
“망할.”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상소리를 내뱉으며 카마이타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놈은 마치 노려보면 어쩔 거냐는 듯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칼바람을 쏟아낸다.
“젠장!”
감히 맞으며 버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급히 몸을 피하려는 순간, 그는 날아드는 칼바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단검을 앞으로 내지른다.
확!
그리고 들려오는 메시지.
[인스턴트 킬! ‘칼바람 Lv.3’이 소멸했습니다!]“헉!”
자신이 해놓고도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연이어 날아든 칼바람에 얻어 맞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뭐였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혼란에 빠진 그는 가차 없이 퍼부어지는 카마이타치의 연타를 맞고는 다시 죽고 말았다. 하지만 여우에게 맞아 죽었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날아드는 상대의 공격 그 자체를 대상으로 인스턴트 킬을 성공시킨 것이다!
부활 장소에 드러누운 채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로그를 뒤져 그 메시지가 자신의 착각 같은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자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틀리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그가 찾던 길이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사람들은 부활 장소에 누워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쳐 갔다.
하지만 그는 한참이나 미친 듯이 웃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초보 존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필드 보스 카마이타치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칼바람을 쏟아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잡아 죽여도, 형진이 사냥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나타나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제작진의 농간이든가, 필드 보스 출현 알고리즘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 같지만 그런 건 형진에게는 어찌되든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모처럼 찾아낸 실마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열한 번을 더 죽었다. 이제는 초보존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그런가보다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형진은 열두 번째 죽음 직전에 자신만의 기술 하나를 체득하여 카마이타치를 쓰러뜨리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기술이라고 해서 시스템 상으로 지원되는 스킬인 것은 아니다.
그저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의 공격 스킬을 인스턴트 킬로 무효화시키고, 연이어 상대의 약점을 찔러 단숨에 쓰러뜨리는 방법을 찾아낸 것 뿐이다.
그는 그 기술을 ‘카운터’라고 이름 붙였다.
“하하하하하하하!”
사람들은 피투성이 모습으로 족제비를 쓰러뜨리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에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지만, 그런 것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만약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더라도 그들이 과연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들이 만약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았다면 놀라고 부러워하며 또한 질투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냐고 물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도 알려달라며 사정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게임을 접한 그 누구도,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그것을 개발한 존재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필드 보스 카마이타치 출현 조건]
1.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를 한 개 이상 보유한 유저가 특정맵 상에 존재한다.
2.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가 특정맵 안에 존재하는 개수가 늘어날수록 출현 가능성 상승.
3.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 보유자가 아직 카마이타치를 잡은 적이 없다.
4. ‘흉폭한 족제비의 꼬리’ 보유자가 만약 카마이타치를 잡은 적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잡은 시점으로부터 14시간 후 리젠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