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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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교육
“어디 보자. 어이쿠. 이건 또 대물이로군.”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보니, 마치 이것 좀 요리해 주세요 라는 느낌으로 잘 해감된 조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아주 다양하게 잘도 구색을 갖춰놨다.
“어제 형님이랑 제가 바다 속에 들어가서 잡았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까 주먹만한 것이 아주 그냥 널려 있더군요. 이야, 정말 대단했습니다.”
할이 가슴을 쭉 편 채 그렇게 자랑을 하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괜히 물속에서 많이 잡기 내기 같은 거 하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감전되고 그러는 건 아닌가 걱정인데.
“그랬군요. 오늘 아침은 원래 간단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이런 훌륭한 식재료가 있다면 써줘야죠. 유아, 확인해 봐.”
“네.”
자연에서 바로 채취한 식재료는 독이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것은 특히 식재료를 손질하는 역할을 맡은 이가 반드시 알아 둬야 하는 내용인데, 마침 유아는 신녀로 올라서면서 해독이나 독 감지의 능력 역시 갖추게 되어서 이런 점에서는 문제가 없다.
유아가 독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래도 혹시 몰라서 해독 능력까지 사용하고 나서야 형진은 조개들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도록 했다. 큰 것은 바로 구워먹고, 작은 것은 조개탕을 끓이면 딱 알맞을 것 같다.
“림, 다시마만 넣고 육수를 끓이도록 해. 밥도 안쳐 놓고”
-넵! 스승님.
“유아, 양파랑 고추, 버섯, 실파를 좀 손질해 줄래.”
“바로 준비할게요.”
오랫동안 손을 맞춘 덕분인지 척하면 척이다. 림은 바로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받아다가 큼지막한 다시마 조각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고, 밥도 안쳤다. 유아는 재료들을 씻어서 신성력으로 버무린 뒤 형진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수고했어. 이제 됐으니까 둘 다 앉아.”
“네.”
유아와 림이 자리에 앉자, 형진은 잘 손질된 양파를 들고 썰기 시작했다. 하나는 채 썰고, 다른 하나는 다진다. 그리고 고추를 어슷썰기로 썰어놓는다. 여기에 버섯과 실파를 잘게 다지듯이 썰어서 한쪽에 담아 놓으면 야채는 준비가 끝난다.
형진은 곧바로 커다란 조개 하나를 꺼내 칼을 밀어 넣어 관자를 끊어내는 식으로 껍질을 열고는, 그렇게 드러난 살을 발라냈다. 그리고 살짝 칼집을 넣어 내장을 제거한 뒤, 적당한 크기로 다져서 다시 조개껍데기 안에 담는다. 그냥 통째로 구워도 좋지만 그건 너무 간단한 느낌이라 오늘은 옛날 포장마차 느낌으로 구이를 해볼 생각이다. 하나는 버터구이, 또 하나는 양념구이.
조갯살을 손질해 껍데기에 담는 작업이 끝나자, 우선 양념장을 만들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없다. 간장과 고춧가루, 설탕, 다진 마늘, 후추를 잘 섞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
양념장의 준비가 끝나자 형진은 조갯살이 하나 가득 담겨진 껍데기들을 바로 화덕에 올렸다. 그리고 조갯살에 화이트 와인을 골고루 뿌려준 다음, 다진 양파와 고추, 버섯을 수북하게 얹었다. 반은 버터조각과 칠리소스를 얹은 다음 소금을 살짝 뿌려 간을 하고, 반은 방금 만든 양념장을 얹어서 그대로 껍데기 안에서 내용물이 보글보글 끓을 정도로 놔두면 된다.
화덕에 조개 구이를 얹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조개탕 차례다.
적당히 육수가 우러났는지 확인한 후 다시마를 건져낸다. 그리고 이제 채 썬 양파와 조개를 넣고 화이트 와인을 조금 부은 뒤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그대로 푹 끓여 주기만 하면 된다.
“와아아…”
“으음…”
화덕에 얹어둔 조개껍데기 안에서 내용물들이 보글보글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군침이 흐르기 시작한다.
물론 그건 보호와 균형도 마찬가지였다.
크루그의 눈치를 살피며 카트린을 자꾸만 훔쳐보던 것도 잠시, 보호와 균형은 자꾸만 뭔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자 눈동자가 어디를 바라봐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조개껍데기 안의 육수가 끓어오르다 넘쳐서 화덕 위에서 치익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길 때마다 그런 흔들림은 더욱더 심해진다. 저러다 사시 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
속으로 자꾸만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꾸욱 눌러 참은 채, 형진은 일단 커다란 접시에 밥을 담았다. 그 옆에 잘 익은 양념구이와 버터구이 하나씩을 담고, 작은 그릇에 조개탕 역시 담아서 얹는다. 내기 전에 양념구이에는 깨소금을, 버터구이에는 다진 실파를, 조개탕에는 어슷 썰기한 고추를 얹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피클과 샐러드를 접시의 여백에 조금 담아내면, 보기에도 군침 도는 형진판 조개 정식이 비로소 완성된다.
“자,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잘 먹겠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스푼과 포크를 들고 맹렬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 중에는 보호와 균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우우으으으으으…”
“킥킥. 여신님, 너무 웃겨.”
예전에 유아가 처음 형진의 음식을 맛보았을 때처럼, 보호와 균형이 완연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사방에 꽃이 만발한 듯한 리액션을 선보이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트린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보호와 균형은 카트린이 그렇게 옆에서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자기 몫의 음식을 탐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없이 음식을 들이키듯 먹어치우던 보호와 균형은 접시가 비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자 금새 또 울먹이기 시작한다. ‘왜 항상 좋은 시간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걸까’라는 식의 생각이 말로 표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와닿는 그런 표정이다.
“더 드릴까요?”
“더… 먹어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걸 가지고 인색하게 굴 수는 없는 일이죠.”
“아, 정말… 정말… 너무 고마워요.”
방금 전까지는 다 먹었다는 사실이 슬퍼서 울먹이더니, 이번에는 또 더 준다니까 감격해서 울먹인다. 참 여러모로 안쓰러운 여신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보호와 균형은 아침 식사로 조개 정식을 세 접시나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식사를 마쳤다.
저 작은 몸 어디에 그 많은 음식이 다 들어가는 건지. 같은 체구의 요정들이라면 배가 볼록 튀어나와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닐 텐데. 아니, 그 이전에 요정들은 그만한 양을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역시 아무리 허접해도 신은 신이라 이건가. 뭔가 쓸데없는 곳에서 신다움을 어필한다는 것이 안습하기는 하다만.
식사가 끝나고, 그 뒷정리까지 끝나자 식구들은 각자 할 일을 찾아서 다시 흩어졌다. 보호와 균형은 식사 시간 동안 깜빡하고 있던 카트린의 존재를 뒤늦게 깨닫고는 얼른 남매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그런 의도는 형진에 의해 제지되었다.
“여신님, 잠시 얘기를 좀 나눴으면 합니다만.”
“지금… 요?”
“네, 바로 지금.”
“저기,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은 급한 사정이 있어서.”
보통 훌륭한 신사라면 숙녀가 이런 말을 할 경우 굳이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고 놓아주는 것이 도리겠지만, 아쉽게도 형진은 그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신사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형진도 신사이긴 하지만, 좀 더 다른 분야의 신사라고 해야 하나.
“카트린, 참 착하고 귀여운 아이죠.”
“!”
형진의 입에서 카트린의 이름이 언급되자 보호와 균형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제 동생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만, 요즘 저런 아이도 보기 드물죠. 노래하는 목소리는 또 얼마나 예쁜지. 누군지는 몰라도 저런 아이의 섬김을 받게 될 신은 정말 복 받은 겁니다.”
“크윽…”
이미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형진의 말에 보호와 균형은 그대로 좌절하듯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그게… 그러니까…”
다 알면서 능글맞게 묻는 형진의 말에 보호와 균형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저런. 큰일이군요. 아무래도 과식하신 탓에 탈이 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안으로 들어가셔서 저와 함께 차라도 나누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네…”
보호와 균형은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마치 억지로 장기자랑에 끌려 나가는 신입사원 같은 모습으로 형진의 뒤를 따랐다.
“응? 제랄딘. 아직 회합장에 접속 안했어?”
“네. 잠깐 소화 좀 시키고 가려고요. 차 한 잔 드릴까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요즘은 미엘이 반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녀 대신 제랄딘이 차를 끓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제랄딘은 비록 지금은 메이드 행세를 하고 있지만 한때는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하던 레이디. 차를 끓인다든가 하는 식의 교양 역시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만큼 익힌 상태다.
“그럼, 전 이만.”
“응. 수고해.”
제랄딘이 회합장으로의 접속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형진과 여신은 잠시 찻잔을 가운데 두고 앉아 그녀가 타준 차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느긋하게 향기와 맛을 즐기는 형진과는 달리, 여신은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은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절부절이다.
아무래도 형진이 차만 즐길 뿐 얘길 꺼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참다 못 한 여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하실 말씀이라는 것이…”
그제서야 형진은 깜박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실례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다만 하실 말씀이 뭔지…”
“그 얘기 말씀이시군요.”
여신은 애가 닳는 표정이었지만 형진은 느긋하게 찻잔을 내려놓고서도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트린이 탐나시죠?”
“그건…”
“아닌가요? 제가 혹시 터무니없는 착각을 한 건가요?”
“그게… 그러니까…”
비록 호구성으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보호와 균형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본능적으로 이 남자가 자신 앞에 치명적인 미끼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 탐스러운 미끼를 냉큼 물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곧바로 코가 꿰여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처음부터 이 상황은 그녀에게 너무나 불리하기만 했다. 내놓을 것은 없는데, 상대는 너무나도 탐스러운 과실들을 하나 가득 손에 쥐고 있다. 어쩐지 신과 인간의 위치가 정반대로 뒤바뀌어 버린 것처럼.
“아니시라면 뭐… 예정대로 카트린은 희망과 생명의 사제로 서품을 받도록 해야겠군요. 혹시라도 여신님께서 마음에 두고 계셨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볼까 했는데.”
형진이 느믈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보호와 균형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항복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간단하게 넘어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애초에 시간을 끌만한 여력조차 그녀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았다.
“그, 그러지 말아요. 제발.”
애원하듯 말했지만,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좀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결국 보호와 균형은 울먹이며 이렇게 다시 애원했다.
“카트린을… 부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어쩐지 사위 될 사람이 처가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온 것 같은 뉘앙스. 하기야 틀린 것도 아니다. 가진 것 없고, 능력도 변변치 않은 사내가 고이 기른 예쁜 딸을 달라 청하러 왔을 때의 그런 막막함을 여신은 느끼고 있었으니까.
희망과 생명은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 신전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랄까. 굳이 비교하자면 희망과 생명은 전세계에 지점을 둔 거대 재벌이고, 보호와 균형은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무직자에 가깝다. 이쯤 되면 솔직히 카트린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과욕에 가까운 일. 보호와 균형은 스스로의 입으로 그 말을 꺼내면서 다시 한 번 처절하게 그런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톡. 톡. 톡.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보호와 균형의 마음을 후벼 판다. 마치 낙숫물이 단단한 주춧돌을 움푹 파이게 만드는 것처럼, 별것 아닌 그 작은 소리가 여신의 마음을 헤집고 있는 것이다.
“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던 형진은 문득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 한참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무슨…”
“앞서 제가 이렇게 소개했었죠. 공포와 죽음의 집행자라고.”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에겐 숨겨진 신분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숨겨진… 신분이라면?”
카트린 얘기를 하다가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어리둥절해 하는 여신을 향해, 형진은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는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이며, 또한 허세와 망상을 모시는 요정들의 왕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뢰와 헌신의 진정한 의의를 퍼뜨리는 것에 협력하고 있는 자이기도 하지요.”
“네?”
보호와 균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얘기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공포와 죽음의 집행자인 것을 넘어서 그렇게 여러 신들의 일을 맡고 있다니, 이걸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하지만 사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형진이 언급한 신들은 모두 쟁쟁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신들. 하다 못 해 그들 가운데 현재 가장 위세가 부족한 허세와 망상조차 한때는 토너먼트를 제패하며 떵떵거리던 신이다. 그런 신들의 이름을 사칭한다는 건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한 일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형진은 깍지 낀 양손으로 턱을 받친 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여신을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을 다시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려 융성시키는 일, 저에게 한 번 맡겨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