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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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천벌
수호자들은 횃불을 든 채 마차 주위에 늘어섰다. 그들이 준비를 마치자, 형진은 이번 일의 원흉들이 자리한 곳으로 통하는 요정의 문을 열었다.
KKK단을 연상시키는 우락부락한 체구의 수호자들이 횃불을 들고 수레를 몬다. 본래는 약탈한 식량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할 수레에는, 감히 신전에 이빨을 들이댄 약탈자의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늦겨울의 찬바람 나뭇가지를 흔들며 음울한 떨림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수호자들이 끄는 수레가 성 아래의 마을로 접근한다.
“저건…”
“헉… 서, 설마… 신성 폭… 읍!”
늦은 새벽, 마을 외곽을 지키고 있던 자경단원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에 나올 뻔한 신성 폭력배라는 말을,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 행동을 통해 억눌렀다.
“어째서 저들이…”
“잠깐… 저 수레 어디서 많이 본… 헉! 저건!”
“힉!”
처음에는 줄 지어 늘어서서 다가오는 신성 폭력배들의 모습에 놀라고, 그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이 이끄는 수레에 담겨진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시체다. 그것도 저 수레들을 끌고 어딘가로 나갔던 병력들의 시체.
자경단원들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본래 이런 행렬이 나타나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과 하필 그 주체가 바로 수호자들이라는 사실이 충돌을 일으키며 갈팡질팡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종을 울리고 이런 자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건만, 그랬다가는 수호자들의 눈에 띄어 저 수레 안에 담겨진 시체들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들의 이성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도, 자경단원은 인과 관계를 통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원인을 떠올렸다.
어딘가로 은밀히 출동했던 병력들. 비어있는 수레를 끌고, 곧바로 얻어질 무언가에 들뜬 듯이 희희낙락하며 수레를 몰고 가던 그 병력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도리어 수레에 담겨진 채 수호자들에 의해 돌아오고 있는 이 모습들.
그러한 앞 뒤 정황을 통해 자경단원은 깨달았다. 앞서 출동했던 병력들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되, 분명 신의 분노를 살만한 어떤 일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사태가 설명이 되질 않는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어쩌지?”
두 자경단원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고 있던 자경단원의 복장을 벗고는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괜히 여기서 의무를 다한답시고 저들의 앞을 막아봐야 개죽음일 뿐이란 것을 인정한 것이다.
자경단원들이 급히 모습을 감추었을 즈음, 느릿하게 수레를 몰고 다가서던 수호자들의 선두가 그들이 지키고 있던 외곽 초소 앞에 도착했다. 선두에서 수호자들을 이끌고 있던 아디슈는 도망치는 자경단원들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보고는 방금 전까지 그들이 지키고 있던 초소의 건물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꽝!
마치 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굉음이 어둠 가득한 산야에 울려 퍼진다. 그 일격에 이미 자경단원이 지키고 있던 초소는 마치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박살이 난 채 주저앉고 말았다.
애초에 수호자들은 은밀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죄를 지은 것은 저들이고, 그들은 그 죄를 심판하러 가는 자들. 구차하게 정체를 숨길 필요성조차 없는 것이다.
초소를 무너뜨린 수호자들은 다시 횃불을 들고 느릿하게 움직여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목책의 출입구인 책문에 도착했다.
“멈추시오! 이곳은 로우너 영주께서 다스리시는 땅! 수호자들께서는 무슨 일로…”
뻔히 이유가 다 보이는 상황임에도 책문을 지키는 향사는 그렇게 외치며 시간을 끌어 보려 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이미 이런 식의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책문을 지키는 자로서의 책임을 그 말 한 마디로나마 감당해 보려는 것일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선 수호자가 책문 앞에 놓여진 간이 목책에 주먹을 휘둘러 단숨에 박살내 버린다. 혹시 수호자의 옷차림을 흉내 낸 가짜가 아닐까 하며 지켜보던 자들의 의심은 그 한 방의 주먹에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무, 문을 열어라! 저항하지 말라! 수호자들에게 반항해선 안 된다! 서둘러!”
기겁한 향사의 외침과 함께 책문이 급히 열리고 자경단원들은 얼른 모습을 숨겼다. 아디슈는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을 들어 다시 행렬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전부 다 시체야. 세상에…”
“그 병력이 죄다 죽어 버린 거야?”
“미쳤어. 도대체 뭘 건드린 거야.”
자경단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쩐지 식량이 좀 생겼다고 헛짓 할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결국 이런 사달이 나버린 것이다.
“어쩌지?”
당장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자경단원들을 향해, 향사가 급히 말했다.
“일단 기다려봐.”
“네? 하지만.”
“생각해 봐. 저들이 우리에게 죄를 묻고자 했다면, 지금 이렇게 숨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아?”
“아… 하긴…”
그렇다. 상대는 수호자. 만약 저들이 죄를 묻고자 한다면, 이런 알량한 목책 따위로 저들을 막아설 수는 없는 일. 또한 저들이 그러고자 했다면, 이미 자신들은 피떡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저들의 목표가 자신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내 향사와 자경단원들의 시선은 마을 안쪽에 솟은 구릉 위의 성으로 옮겨 갔다. 작지만 두터운 성벽과 날카로운 첨탑이 이상적인 작은 성. 바로 로우너 자작 그랜든과 그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이슈팔 성이다.
“아차!”
그제서야 향사는 성 안에서 시녀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자칫 수호자들의 일에 딸아이가 휩쓸리기라도 하면 큰 일이 아닌가!
“미안하네만 난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가봐야겠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향사의 말에 자경단원들도 그가 말한 급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저, 저도…”
“미안, 잠시만 좀…”
결국 성에서 일하는 인척이 없는 자경단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헐레벌떡 수호자들을 앞질러 마을로 달려갔고, 뒤이어 잠잠하던 마을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자신의 가족들에게 알렸다.
물론 그런 이들 중에는 시녀들은 물론이고 성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도 있었다.
“다 죽었다고?”
마을의 친척으로부터 시체를 가득 실은 수레를 몰고 수호자들이 성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받은 보초병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저녁때까지만 해도 짬밥이 밀려 약탈 행렬에 끼지 못하고 성이나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신세를 한탄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이렇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보초병은 물론이고, 성문을 지키고 있던 지휘관들 역시 이 소식을 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결단을 내리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첩의 살을 더듬으며 곤히 잠들어 있던 로우너 자작 그랜든이 상황을 알아차린 것은, 시녀들의 숙소를 점검하던 시녀장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급히 사정을 알아본 뒤의 일이었다.
“뭐라? 수호자들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영주의 직계 가족과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몇몇 사람을 남기고는 모조리 도망쳐 버린 뒤였고, 수호자들은 마치 환영한다는 듯한 모습으로 활짝 열려버린 성문을 통해 텅텅 빈 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발코니로 달려 나가 성 안의 모습을 본 로우너 영주는 핑 하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 어째서 저들이…”
그가 노린 것은 희망과 생명의 신전이다. 신뢰와 헌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자들을 노릴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보낸 병력들은 전부 어육이 된 채 수레에 담겨 돌아왔고, 그 수레를 이끄는 자들은 다름 아닌 수호자들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란 말인가.
“영주님, 쟤들 뭐에요? 어디서 공물이라도 들어오는 건가요?”
잠이 덜 깼는지, 애첩이 다가와 코맹맹이 소리로 그렇게 묻는다. 평소라면 그런 애첩의 모습에 오냐오냐 하며 웃어 보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젠장. 비켜!”
“꺅!”
나긋한 몸짓으로 영주에게 달라붙으려던 애첩은 확 떠밀리며 엉덩방아를 찧고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하고 놀라는 것도 잠시, 애첩은 영주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도망쳐야 해.”
상황이 이렇다면 저들은 분명 자신을 가만히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저 폭력배 놈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 말로 뭘 어떻게 해보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으드득.
로우너 영주는 이를 갈았다. 저런 자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성을 지키던 자들중 단 하나도 그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 것이다. 자신이 이 영지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 작은 영지가 다른 자들에게 약탈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이 한 겨울에 배를 곯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누구 때문인데!
물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이 모든 일은 결국 되도 않을 탐욕을 부린 자신에게 있을 뿐이고, 성을 지키던 병사들도 침실 주위에서 숙위하던 시녀들도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각자 살 방도를 모색했을 뿐이다. 지금 그가 가족들의 존재를 잊고 자신만의 살 방도를 찾는 것처럼.
로우너의 자작령의 영주이며 같은 이름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랜든은 급히 자신의 집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 마련된 자신만의 비밀 금고를 찾았다. 오직 작위 계승자에게만 전해지는,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귀중한 보물들이 담겨져 있는 비밀 금고다.
급히 자물쇠를 열고 마법을 해제한 뒤 안에 담겨진 상자와 서류를 품에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담겨진 네 개의 반지를 손에 끼웠다. 서류에 담겨진 것인 영지 바깥에 은닉된 재산의 목록과 그것의 소유권이 담긴 서류이며, 손에 끼워진 네 개의 반지는 탈출 도중에 자신의 몸을 지켜줄 아티팩트다. 만약 저 망할 수호자 놈들이 영지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더라도,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
그랜든은 그제서야 작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비밀 금고의 문을 잘 닫아 숨긴 다음,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랜든은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뚜벅. 뚜벅.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집안에서 저런 식으로 발소리를 울리며 걸을 수 있는 자는 자신뿐이다. 그의 부인은 물론이고 자식들이라 해도 이 집안에서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만 한다. 그것이 이 집의, 이 성의 주인인 자신에 대한 경의가 담긴 행동이다.
그렇다면 지금 저렇게 발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인물은 누굴까. 물어볼 것도 없다. 바로 수호자들이다. 그 망할 폭력배 놈들이 자신의 집을 흙발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젠장.
그랜든은 이를 부득 갈았다. 내 성에서, 내 집 안에서 마치 주인처럼 구는 저 빌어먹을 종자들을 언젠가 세상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신의 추종자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존재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리라. 이제부터 자신의 생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게 되리라.
속으로 그렇게 다짐과 함께 신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그랜든은 급히 반대쪽으로 향했다. 탈출을 위해 성 밖으로 파놓은 비밀스런 탈출구는 지하에 존재한다. 일단은 그곳까지 가는 것이 급선무다.
급히 다시 집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혹시 몰라 마련해둔 밧줄을 꺼내 책상 다리에 묶고는 창문을 열었다. 급히 아래쪽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수호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멍청한 놈들. 자신이었다면 일단 집 주위를 먼저 에워쌌을 텐데, 역시 주먹 밖에 모르는 멍청한 폭력배 놈들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밧줄을 타고 조심스럽게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창문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어쩐지 너무 높아 보인다. 괜찮을까 싶긴 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덜덜 떨리는 팔로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던 그의 눈에 문득 이상한 것이 보인다.
“헉?”
어느 틈엔가 아래쪽에 횃불을 들고 이상한 두건을 뒤집어 쓴 수호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기겁을 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역시나 그곳에도 두건을 쓴 수호자가 버티고 서 있다.
이럴 수가. 이래서야 꼼짝없이 독안에 든 쥐가 아닌가.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문득 집무실 창가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 보던 수호자가 밧줄을 움켜 잡는 모습이 보인다.
이대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건가.
옆 창문으로라도 얼른 피해야 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
마치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이 확 떠오른다. 어떻게 반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이 뒤집히는 것을 지켜보던 그랜든은, 자신이 날카로운 첨탑의 깃대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깨닫자 머리 속이 하얗게 비어버리고 말았다.
콰득!
그랜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첨탑의 깃대에 몸이 꿰뚫리며 즉사해 버리고 말았다. 헛된 욕심을 부렸던 로우너 영지의 자작 그랜든은 그렇게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