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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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탄생
신입 점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생전 보도 못한 엄청난 진수성찬으로 신입사원 환영회란 것도 치르고, 제복이란 것도 맞춰 주는 데다, 신상을 들여놓고 매장에 성역까지 설치했다. 교육도 인사와 예절 같은 것을 먼저 엄격하게 시키길래 뭔가 대단한 사람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비싼 물건을 파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나온 대답은 가스트 주화 1개짜리 물건을 파는 일. 이래서야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소녀들은 물론이고, 나름 사람 상대하는 일을 경험해본 전직 시녀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지금 교육을 시키고 있는 오귀스트나 하마란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값싼 물건을 파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점원의 교육이나 매장의 치장 같은 것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나. 아직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없는 이 세계의 관념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형진은 이렇게 말했다.
“간단한 얘깁니다. 이건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호구신의 사제들이 쌓아온 이미지를 계승하는 일이거든요.”
“이미지라면…”
“호구스러움. 바로 그것입니다.”
브랜드가 별 건가. 어떤 이름이나 사물을 보았을 때, 무언가가 바로 딱 떠오르면 그게 바로 브랜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호구신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하나만은 확실하게 정립해 놓았다. 비록 그것이 호구라는 이름의,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이더라도 말이다.
분명히 호구라는 이미지는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생명이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또한 바로 그 호구스러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확고하게 쌓아온 이미지를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활용할 방법이.
“와, 어떻게 이런 걸 이렇게 싼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거지? 역시 호구야.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싼 가격에 파는 거지? 과연 호구스러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지닌 돈을 탈탈 털어 모조리 물건을 사들이면서도 스스로 이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고 지켜가야 할 이미지입니다.”
김밥천국도, 가스트샵도 결국은 그런 호구스러운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사업인 셈이다.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주화 한개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구스러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이들로서는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영업 전략이다. 이미 전 세계적인 물류 시스템을 확립하고, 다른 여타의 수송비를 없는 거나 다름 없는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막무가내로 이런 전략을 세웠다면,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다 한들 문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이 되었을 테니까.
오귀스트는 형진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김밥천국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점원들은 서로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가본 적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다. 성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다 마찬가지다.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 태어난 마을에서 그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 보통이다. 남자는 그래도 좀 덜한 편이지만 여자는 더욱더 그런 폐쇄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릇은 내돌리면 깨진다는 식의 얘기는 이 세계에서도 흔히 전해지는 말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제의 연회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점원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너무 맛있었어요!”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어떻게 보면 어제의 연회는 태어나서 그녀들이 처음 겪어 보는 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군침이 흐를 정도다.
오귀스트는 웃으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실은, 어제 나온 음식 가운데 반 이상은 바로 김밥천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점원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네?”
“정말요?”
그런 그녀들을 향해 오귀스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저기 계신 사제분들 중에도 그 음식을 만드는데 참여하신 분들이 있으니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세상에…”
직접 가보진 못했어도 마을의 남자들이 떠들고 다니는 얘기를 곁다리로 전해들은 적이 있다. 고작 몇 개의 주화로 천상을 노니는 듯한 기쁨을 주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식의,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얘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보나마나 신전의 사제들에게 홀려서 저러는 거라는 식으로 흘려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아무리 사제들이 호구라 해도 그런 맛있는 음식을 고작 주화 몇 개에 팔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어제 연회에서 맛 봤던 음식들 대부분이 김밥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들로 하여금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황홀감을 만끽하게 만들었던 그 음식들을 고작 주화 몇 개로 팔다니. 이쯤 되면 호구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소의 함정이 있다. 오귀스트가 말한 대로 연회에 사용된 음식의 반 이상이 세계 각지의 김밥천국에서 조금씩 만들어져서 배달된 것이지만, 점원들로 하여금 천상을 노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 본선 요리들은 대부분 형진의 손을 거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기라고 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김밥천국에서 만들어져서 배달된 음식도 숙련 이상의 요리 실력을 지닌 사제들이 만든 것이니, 그 가격대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진미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귀스트는 놀란 점원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저희들은 분명 물건을 싸게 팔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들이 파는 물건이 싸구려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물건이든 음식이든 그것을 구입한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사면 살수록 이득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주화 한 개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우리가 파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형진의 말대로 호구스러움을 표방할 수는 없는 일이라 행복으로 말을 바꾸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점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점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귀스트를 바라보며 몽롱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 순간 만큼은 하마란이라는 무서운 수호자 메이드의 존재조차 잊을 정도로 그의 모습과 말에 빠져들어 버린 것이다.
“크흠!”
“!”
하지만 그런 점원들의 몽롱한 표정은 옆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헛기침 소리에 썰물 빠지듯 사라져 버렸다. 잠시 넋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헌신의 일격을 일으킨 하마란은 역시 무서웠던 모양이다.
오귀스트는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하마란의 모습에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형진에게서 도핑용 음식을 좀 얻어 와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그날의 교육은 별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접객이 술을 따르거나 하는 식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 점원들은 보다 열성적으로 교육에 임했고, 시간마다 주어지는 맛있는 음식들은 그런 그녀들의 집중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더욱 효율을 높여 주었다.
“오늘의 교육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귀스트는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인사를 마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형진에게 따로 교육에 필요한 내용을 전해 받았고, 기사로 일할 때 나름대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맡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창 때의 아가씨나 소녀들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받으며 진행하는 수업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물론 가장 어렵고 무서운 건 옆에서 차분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하늘같은 부인님의 존재지만 말이다.
어쨌건 오귀스트가 뒤로 물러나자, 바로 하마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교육 수당을 받아 가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네?”
“교육… 수당이요?”
그런가보다 하던 아가씨들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진다.
“네. 뭔가 문제라도?”
“…”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던 신입 점원들 가운데, 전직 시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한다.
“설마… 오늘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한 수당을 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 그런 일이…”
놀란 표정을 짓는 점원들을 향해 하마란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여러분이 오늘 배운 것들은 매장의 영업을 위한 내용입니다. 즉, 모두 정상적인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일이라는 것이 저희 경영자의 생각이십니다.”
“아…”
하마란은 허리춤에서 무언가 서류를 꺼냈다.
“다만 본래 오늘은 본래 여러분이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이 아닙니다. 때문에 경영자께서는 특근 제도를 적용하여 일반적인 수당의 1.5배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금일 교육은 모두 6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여기에 교통비 약간을 포함하면 금일 여러분이 지급받게 될 수당은 모두 주화 20개입니다.”
“세, 세, 세상에…”
“꼬로록…”
신입 점원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대로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 점원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주화 20개라니. 하루 종일도 아니고 한나절 동안 잠깐 교육 받은 것 뿐인데.
하지만 하마란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 현재 물자가 부족한 영지 상황을 감안해서 필요하다면 수당 가운데 일부는 가스트샵의 물품으로 받아 가셔도 좋습니다. 단, 이 경우에는 직원 할인이 적용되니 본래 가격보다 1할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계산됩니다. 다시 말해, 원래 다른 사람들이 돈 주고 사는 것보다 1할 정도 더 덤을 받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흐어어…”
“꼬로록…”
다시 이어진 말에 남아 있던 점원 가운데 반이 다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덕분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그녀들을 잡아 일으키고 회복시키느라 한동안 소란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가스트샵에 이 한 몸을 불사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크고 작은 점원들은 눈물마저 글썽이며 그렇게 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마란은 그런 점원들은 향해 잠시 눈을 찌푸리다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파괴와 재생의 구현자들이나 기뻐할 그런 소리는 집어 치우세요.”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 뿐이니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과례는 오히려 실례인 법. 그런 말을 하실 겨를이 있다면 더 열심히 배워서 얼른 한 사람 몫을 하는 점원이 되도록 하세요.”
“넵!”
“머, 멋있다…”
쿨한 하마란의 모습에 몇몇 점원들은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조차 잊고 눈에서 하트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점원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하마란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다시 서류 하단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아, 맞다. 그리고 추가로 알려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점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하마란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채용 공고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희망과 생명, 신뢰와 헌신, 보호와 균형, 이렇게 세 분의 신을 섬기는 신도분들은 특별히 우대한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여러분이 어떤 신을 섬기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더군요. 수당을 지급받을 때 이 내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다시 전직 시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는 질문했다.
“저… 신도임을 밝히면 어떻게 되는데요?”
“좋은 질문입니다.”
하마란은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각 교단 별로 우대 내용이 달라서 제가 전부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경영자께서는 여러분을 단순한 점원으로 생각지 않으십니다. 필요하다면 각 교단의 추종자가 될 수도 있고, 원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도 주어집니다.”
“아…”
“참고로 신뢰와 헌신의 교단에서 신도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릴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하마란이 보여준 것은, 바로 헌신의 일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