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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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눈덩이
대답을 하기는 했는데 뭔가 눈치가 보인다. 게다가 지금 상황도 뭔가 이상하다. 물론 대화를 나눈다든가 회의를 할 때 게임 안에서 요리를 먹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의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로 시간에 맞춰 하는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영문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무작정 끼어들기도 뭐해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문득 카트린이 그녀를 손짓해 부른다.
“언니도 이쪽으로 와요.”
“네…”
불러서 가긴 하는데, 옆에 앉은 소년의 눈빛이 찌릿하고 전해지는 걸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해 버리고 만다. 분위기를 봐서는 남매인 것 같은데, 뭔가 풍기는 냄새는 전혀 다르다.
눈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는, 뭐랄까… 젖먹이 아가의 뺨에 볼을 가져다 댔을 때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촉감과 달짝지근한 우유 향기가 뒤섞인 그런 냄새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마치 그녀의 보디가드처럼 버티고 선 저 소년은 전혀 다르다. 날이 잘 선 단검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냄새. 아니, 은근하게 혈흔이 남은 그런 단검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저렇게 다른 분위기의 소년 소녀가 위화감 없이 남매로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그저 불가사의할 뿐이다.
수빈은 주춤주춤 다가가 소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식사에 초대를 받은 모양새이니 예의있게 행동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촤아아아악!
미리 준비를 마쳐 둔 것인지, 식구들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기름 위에 빵가루를 묻힌 고깃덩어리들이 바로 투하된다.
“앗! 카레 돈가스다! 맞죠!”
“맞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물론이죠. 후후후.”
이미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는 음식이라 그런지 카트린이 대번에 메뉴를 맞춰 버렸다. 그렇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다름 아닌 카레 돈가스, 그것도 그림자곰 고기로 만든 돈가스에 동굴곰 고기를 넣은 카레를 부은 타나토스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제 요리이다.
돈가스가 노릇하게 익자, 유아와 제랄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팅을 돕는다. 두툼한 돈가스 두 장을 깔고 거기에 카레를 부은 다음 새콤한 피클과 상큼한 샐러드, 그리고 막 지어 놓은 채로 인벤토리에 담아두었던 밥을 퍼서 담으면 끝이다.
“자, 요리 나왔습니다.”
“와아아!”
접시가 식탁에 놓여지자 이미 한 번 그 맛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식구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다.
수빈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식사를 시작하는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냥 게임 상에 구현된 맛을 잠시 즐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혹시 펫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자그마한 무언가들 역시 열심히 식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물론, 펫도 먹이를 먹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를 위해 마련된 식사에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도 없다.
“돈가스, 별로 안 좋아하십니까?”
“아뇨. 좋아해요. 잘 먹겠습니다.”
멀뚱히 다른 사람들의 식사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형진이 가만히 말을 걸자, 수빈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앞에 놓여진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두툼한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자, 순간 잘 익은 돈가스 내부에 깃들어 있던 육즙의 냄새가 확 치밀어 올라 후각을 자극한다. 스스로도 이미 요리 장인의 경지의 올라있던 수빈은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지. 방금 이 냄새는.
돼지고기? 아니다. 그렇다면 쇠고기? 그것도 아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강렬한 풍미는 가축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산야를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아 먹으며 자란, 그런 야수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그런 풍미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강렬한 풍미는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잘못 다루면 맛있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비위를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눈앞에 돈가스라는 형태의, 어떻게 보면 평범한 방식으로 요리된 이 고기에서는 그런 거슬리는 부분은 최대한 억제된 상태에서 사람의 구미를 자극하는 요소만 마치 맛이라는 이름의 목장 안에 방목되어진 것처럼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눈으로 형진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형진은 가볍게 웃으며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에게서 다시금 허락을 받은 수빈은 떨리는 손길로 포크를 든 손을 움직여 돈가스를 입에 넣었다.
“아아…”
수빈은 순간 보았다.
어둡고 컴컴한 동굴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한 마리 야수가, 어느 순간 그곳을 뛰쳐나와 포효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바삭한 튀김옷을 깨무는 순간 터져 나오는 그 풍부한 육즙의 세리머니에 절로 환희에 젖어들어야만 했다.
“쿡쿡.”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이 다시 화들짝 돌아온 것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트린이 작게 웃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화악.
순간 수빈은 온몸의 피란 피는 전부 얼굴로 쏠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수그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개를 숙이던 그녀는 또다시 활성화된 다섯 개의 버프 아이콘을 본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틀림없다. 착각이 아니었다. 눈앞에 나타난 다섯 개의 아이콘은 물론이고, 방금 전에 느꼈던 그 말도 안 되는 맛의 폭풍까지. 이건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범주의 그런 현상이다.
수빈은 다시금 전장에 나서는 듯한 비장한 모습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 강렬한 맛의 비밀을 알아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정성껏 고기를 썰어낸 뒤 카레를 묻혀 입 안으로 가져갔다.
“후아아…”
하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이번엔 돈가스 뿐만 아니라, 동굴곰 고기의 풍미가 가득 배어들어간 카레까지 더해졌으니 그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수빈은 이제 완전히 이해해 버렸다. 이들이 정말로 식사를 하는 것처럼 이렇게 모여 앉아 그의 요리를 기다린 이유를 완전히 완벽하게 절실하게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요리를 끼니 때마다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카트린이 옆에서 킥킥거리며 웃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허겁지겁 접시를 비워버린 수빈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형진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설마 달인이신가요?”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형진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숙련도 같은 건 이미 잊은지 오래지만, 등급 자체로만 본다면 아직은 장인 수준입니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이 정도의 요리를 만들어 놓고 자신과 같은 등급이라고?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그럴 리가… 농담이시죠?”
“설마요. 이런 걸로 농담할 생각은 없습니다.”
“…”
수빈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등급은 그저 기준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숙련도 같은 건 이미 잊은지 오래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더 이상 숙련도로는 측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하아…”
뭔가 허탈하다. 혹시 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던 만큼 그런 자신이 더욱더 멍청하게 느껴진다. 장인?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매달렸단 말인가. 물론 장인도 대단한 수준이긴 하지만, 지금 자신이 먹었던 이 요리를 앞에 두고도 이것을 만든 요리사가 자신과 같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빈은 적어도 그렇게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사람은 아니다.
수빈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조용히 무릎에 손을 얹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직면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달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요.”
“네?”
그러다가 다시 화들짝 정신을 차린 것은 형진이 포도주 한 잔을 따라서 그녀 앞에 내놓으며 건넨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저희 길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랬… 었죠.”
수빈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름 장인이니까, 기본 토대가 초식인 길드라면 열렬한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으며 가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지금 이순간 그녀의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다.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한심스럽다. 이렇게 초라해지는 자신이 그저 한심스럽기만 할 뿐이다.
바로 그 때였다. 어디선가 청량한 바람 한 줄기가 가만히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훑어 내고는 코 끝에 달콤한 꽃향기를 남겨 두고 사라져 간 것은.
절대로 자연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현상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어느 틈엔가 앞서 극장에서 자신을 놀라게 만들었던 작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름답다. 아까는 어두워서 제대로 그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어두워서가 아니라 그 눈빛에 홀려버리는 바람에 구체적인 외모 같은 건 알아차릴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얼핏 퇴폐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윽한 눈매, 그리고 어째서인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코 끝에 향긋한 잔향이 남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그녀의 감각을 사로잡아 버리고 있었다.
“어흠.”
그렇게 멍하니 꽃과 바람이라는 이름의 여신을 바라보고 있던 수빈은 다시금 형진이 가볍게 헛기침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죄,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사과를 하는 수빈을 향해 형진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니까요.”
“당연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아, 미처 소개를 해드리지 않았었군요.”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른한 느낌으로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여신을 가만히 손을 내밀어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꽃과 바람이라는 이름의 여신님이십니다.”
“…”
여신?
순간 수빈은 혹시 이 남자가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사람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있긴 해도, 여신이라니.
하지만 바로 그때, 살짝 나른한 느낌의 미소를 짓고 있던 꽃과 바람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꽃과 바람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
확실히 앞서 보호와 균형이 식구들을 맞이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어쩐지 듣는 순간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 거리는 듯한 이 목소리가 전해지는 순간, 수빈은 어째서인지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어두운 극장 안에서 꽃과 바람의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이미 그녀의 영혼에는 이 나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매혹적인 여신의 존재가 깊숙하게 각인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둘의 분위기를 본 형진은 어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굳이 끼어들지 않은 채 가만히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꽃과 바람은 가만히 허공을 딛으며 수빈에게 다가서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런 말씀 드리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괜찮으시다면 제 추종자가 되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이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마주치고 그 시선을 접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찌릿한 느낌이 전해지는 그런 경우. 그리고 마치 홀린 듯이 그 모습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되는 그런 경우. 보통 사람들끼리 이런 경우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한눈에 반했다는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때로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도 그런 경우가 생겨난다. 분명히 이전에는 접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서로 공명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인식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 말이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은 다른 세계의 여신인 꽃과 바람, 그리고 또 한쪽은 게임에 접속했을 뿐인 여성 유저. 본래대로라면 절대로 마주칠 일이 없어야만 하는 두 존재가 만나 어느 순간 서로에게서 운명을 느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