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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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초대
“상인들이 좋아하긴 하겠지만, 꼼수를 쓰려고 드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요.”
성물이 완성되었으므로, 여신들로 하여금 신도들에게 황혼과 망각을 소개시키는 일을 맡긴 다음 아틀리에를 빠져 나오자 제랄딘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상관없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편이나 물류 서비스의 운영에 차질이…”
“그래봐야 상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건 국내에 국한되게 마련이지.”
“그건 그렇겠죠.”
당연한 얘기지만 이 성물을 운용해서 사람들이 이동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허가가 필요하다. 또한 성물을 이용한 이동 시스템은 요정들처럼 회합장을 통해 세계 어디든 단숨에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지하철 노선처럼 각각의 성물이 선형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라고나 할까.
“만약 이 성물의 효용을 알아차린 상인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해 물품을 옮기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자고.”
우선 옮기는 물품은 사람이 들 수 있는 정도의 것으로 제한된다. 상자에 담는다고 해도 그것역시 기껏해야 사람 크게 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가축부터 시작해서 부피가 큰 원자재 같은 경우는 원천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한 사람이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하다는 제한도 의외로 걸림돌이 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어쨌든 한 번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하루를 묵어야만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리에 관계없이 활용 가능한 우편이나 물류 서비스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하룻밤을 묵는 데 필요한 숙박비와 식비 등이 고스란히 부대비용으로 추가된다.
물론 그래도 길을 따라 마차등을 이용해 운반하는 것보다야 빠르고 저렴하겠지만, 신전에서 운용하는 우편이나 물류 서비스에 비하면 시간도 비용도 더 크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짐을 나르는 식의 일은 경유해야 하는 신전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꼼수를 쓰더라도 서로 연결된 신전 사이의 교류에나 쓰이게 된다는 얘기다.
“과연. 그렇군요.”
물론 여기서 좀 더 머리를 쓰게 되면 신전이 위치한 각 지역에 상시 운용 가능한 짐꾼들을 대기시켜서 릴레이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이렇게 되면 굳이 하룻밤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바로 물품을 운송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짐꾼들이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묵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역시 거리가 늘어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형태가 되어 버린다.
아예 그런 점까지 감안해서 짐꾼들을 상시 고용하고 전용의 숙소까지 마련한다면 조금 더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체계화해서 운용할 정도라면 형진도 말릴 생각은 없다. 자기 돈 들여서 일거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줄여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성물을 이용하는 것 자체도 공짜가 아닌 마당에야.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진이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뭐가?”
“저런 성물을 신전 수만큼 만들어야 하니까요.”
기존에는 그리칸에 놓여진 성물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신전에는 도기 같은 걸로 대량생산된 작은 여신상을 성물로 만들어서 비치해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통과할 정도의 크기를 지닌 성물이라면, 그런 식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거라면 이미 대책을 세워놨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설마 작은 성물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 크기로 대량생산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형진의 대책은 그런 식의 것이 아니었다.
“미엘은 모르겠군. 실은 말이지, 거짓된 천국에서…”
얼마 전, 공포와 죽음이 거짓된 천국을 장악하고 난 뒤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그 내용은 양방향 퀘스트. 뭔가 이름은 거창하지만 결국은 유저 스스로 퀘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형진이 이용하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형진 자신이 만든 도안을 퀘스트를 통해 공개하고, 전문 이상의 가공 실력을 지닌 유저들에게 이것을 만들어 가져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캐시를 걸고 퀘스트를 만들어 뿌리면 생활러들이 좋다고 달려들어서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대단하네요. 그 유저라는 사람들은.”
“하하…”
유저들을 이쪽의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좀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생활 계통의 퀘스트를 내면서 여신의 추종자가 될 만한 사람들도 파악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말이 나온 김에 형진은 자신이 만든 조각의 형상을 담은 뒤 엘리시온의 생활러들을 대상으로 한 퀘스트를 발동했다. 처음에는 그냥 황혼과 망각의 성물만 주문할까 했지만, 이참에 다른 두 여신의 성물도 반듯한 걸로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왕창 퀘스트를 발동해 버렸다.
“어? 이거 뭐지?”
“헉! 100캐시? 퀘스트인데 캐시 보상이라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막대한 물량의 퀘스트가 발동되어 버리자 유저들은 난리가 났다.
“끙… 가공 전문 이상. 생활러 전용 퀘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가공이나 좀 올려둘걸.”
“가공 그게 올리기 얼마나 짜증나는 줄이나 알고 하는 소리냐.”
“하긴.”
가공 전문 이상의 생활러 전용 퀘라는 것을 확인하자 대부분의 유저들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활러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말도 안 되는 퀘스트에 환호하며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크윽. 대리석 매물이… 누가 쓸어간 거야!”
“젠장. 직접 캐야 하나.”
“할 수 없지. 곡괭이가 어디 있더라.”
곧바로 거래소에 올라왔던 대리석 석재 매물이 동이 나고, 한발 늦은 유저들은 직접 캐서라도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동일한 퀘스트는 한 번에 하나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대리석을 매점매석 해버린 유저는 있어도 퀘스트까지 매점매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형진은 그렇게 성물 제작 퀘스트를 엘리시온에 뿌려놓고는 유유자적 다시 섬으로 돌아왔고, 이틀 정도가 지나자 일차분의 성물이 퀘스트를 통해 입수되었다.
“오호, 이건 좀 대단한데?”
육식 유저들에게 초식 유저들이 핍박 받았던 과거 일 때문에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많은 수의 성물들이 퀘스트를 통해 수급되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퀘스트 제한을 장인으로 해놨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대부분은 형진이 올린 도안대로 거의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어 놨지만, 개중에는 자세나 표정 같은 것을 변화시켜 형진이 보기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살펴보니 형진이 만든 작품보다 한 단계 높은 명작으로 되어 있다.
“헐…”
형진은 그렇게 감탄하다가, 얼른 세공 기술을 활성화해서 해당 작품을 손보기 시작했다. 석재 가공 기술이 전문에 불과한 형진이 매번 걸작 수준의 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공 장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명작 수준의 작품을 손볼 경우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인 대작으로 완성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예쓰.”
그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하며 마침내 대작이 완성되었다. 원작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미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온 상황이기도 하고, 지금 이 신상이 지구에 소개될 일도 없으니 눈 딱 감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마음먹었다.
형진은 나머지 신상들도 세공 기술을 동원해 다듬는 작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제가 만든 것은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네? 어째서요?”
“보시다시피 다른 훌륭한 작품이 많이 생겨서 말이죠.”
“아…”
황혼과 망각은 그 말에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 성물은… 이곳에 놔두는 게 어떨까요.”
“이곳에요?”
“네… 처음 만들어진 성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좀 더 소중히 보관하고 싶어서.”
머뭇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황혼과 망각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물은 비가 맞으면 좋지 않으니 당분간은 보호와 균형께서 머무시는 집 안에 보관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보호와 균형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사실 다른 이들이 만든 작품이라고는 해도 최초에 만들었던 작품의 모조품인데다, 형진의 세공 기술도 가미가 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다른 이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가 되자, 형진은 곧바로 성물들을 각 신전에 배치하고 그것을 활성화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일단은… 엘 파르드부터 시작해야겠군.”
성물의 효과는 그 자체로 경제와 사회, 국방등 다방면에 걸쳐 커다란 반향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시행착오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일단은 엘 파르드부터 시행하는 곳이 옳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도 좋은 건 다른 나라보다 형진이 지배하는 나라에 먼저 설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라야바르트인가.”
처음 본거지로 삼았던 나라이기도 하고, 그리칸이라든가 이곳 저곳에 지인들이 많은 터라 모른 척하기도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제랄딘의 본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실은…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가 한 번 뵈었으면 하시던 참이었어요.”
“그래? 진작 말하지 그랬어.”
형진의 대답에 제랄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엘 파르드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요.”
“하긴. 공작 가문으로서는 난감하겠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엘 파르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공작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것이 신전 세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면, 당연히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인 형진이 배후라는 것도 눈치를 챘을 터.
어떻게 보면 장인의 사업에 사위가 초를 친 것일 수도 있으니, 한번쯤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럼, 모처럼 친정 나들이라도 한번 해볼까?”
“저도요?”
“왜?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결정. 림! 람!”
-넵! 스승님!
-말씀하세요! 요정왕님!
“제랄딘이 입을 드레스와 내가 입을 정장을 만들어야겠다. 맡겨도 되겠지?”
-물론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림과 람이 이끄는 요정들가 치수를 재고 나서 하루 정도 지나자 마침내 준비가 모두 끝났다. 형진은 제랄딘과 함께 요정들이 만든 옷을 입고 그리칸의 저택으로 가서 공작에게 기별을 넣었다.
간단하게 약속을 잡고 시간을 맞춰 방문하자, 어쩐지 조금 수척해진 모습의 공작이 그들을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네.”
보는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손하게 존재를 하는 걸 보니, 역시 엘 파르드에 대한 일이 전해진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작은 자리를 나누어 앉기가 무섭게 형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엘 파르드의 평정을 마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형진이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공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공식적인 발표가 없어서 조금 의아해 하던 참입니다. 하다못해 즉위식이라도 여실 거라 생각했는데.”
“딱히 필요하다고 느끼질 못해서요. 솔직히 말해서 별로 실감도 안나고.”
“국민들에게 누가 왕이 되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허례허식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하신 것인지.”
그제서야 질문을 던지는 공작에게 형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일로 인해 공작가가 손해를 좀 많이 보셨죠?”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그래서 좀 벌충을 시켜 드릴까 하고요.”
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응접실의 빈 자리에 성물 두 개를 꺼내 놓았다.
“이건…”
“황혼과 망각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여신의 성물입니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품 입니다만…”
형진은 그렇게 말한 뒤, 한쪽 성물의 거울로 걸음을 내딛었고, 곧바로 다른 성물의 거울을 통해 빠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권능을 지닌 물건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공작은 이미 형진이 보여준 시범에 얼이 빠져 있었다. 형진은 그런 공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엘 파르드에 먼저 설치 중입니다만,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장소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이 두 개를 설치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