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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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순회공연
“우선 간단하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곳은 일명 거짓된 천국, 엘리시온이라고 부르는 곳으로서…”
따지고 보면 이 자리에 모인 여성들은 타나토스라는 하나의 세계에 존재하는 결혼 적령기 또는 그에 근접한 나이대의 여성 가운데 최고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다. 모르긴 해도, 마담뚜 같은 존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았을까.
지금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장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크루그는 다른 말을 꺼냈다.
“여러분이 지닌 힘은 매우 위험하고 강력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귀중한 보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이어지는 크루그의 진지한 말에 소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그녀들은 배경만으로도 그 나이 또래 남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배경에 덧붙여서 여신의 권능까지 얻었다.
보호와 균형의 추종자가 된 여인을 신부로 맞이한다면 어떨까. 그 남자는 평생 외부의 위협과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고 살아도 될 것이다.
꽃과 바람의 추종자가 된 여인은 그 자체로 현세에 다시없을 매혹적인 분위기를 갖게 되며, 또한 바람을 자유자제로 다룬다. 미모만으로도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만약 정치가로서의 야망을 지닌 자가 있다면, 그녀가 지닌 꽃의 권능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황혼과 망각은 어떠한가. 만약 이 여신을 모시는 추종자를 반려로 맞이하게 된다면, 그 남자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제약을 완전히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업은 물론이고 군사나 정치와 같은 분야에 이르기까지, 황혼과 망각의 권능은 활용하기에 따라 그 효용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힘이다.
“하지만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나 그것을 지킬 힘이 없는 자가 보물을 지니고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있어 보물은 행복이 아닌 비극으로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레나리스의 물음에 크루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보물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면 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크루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양손을 펼쳐 허공에 무언가를 늘어놓았다. 그것은 서로 다른 수많은 스킬들을 일종의 기호로 표현한 것으로서, 본래 공포와 죽음이 지정한 특별한 인물들만이 이런 모습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오늘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공포와 죽음께 하나의 권한을 수여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킬 마스터. 다른 이에게 스킬을 전수해 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소녀들은 깜짝 놀랐다. 여신들이야 그렇다 쳐도 공포와 죽음이라니. 특히 라야바르트 왕실에 속한 레나리스는 심장이 덜컥 주저앉아 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공포와 죽음에게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곧 다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혹시… 집행자세요?”
다른 소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크루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답했다.
“네. 뭔가 문제라도?”
“아뇨. 문제라뇨.”
자신들 역시 추종자가 되기는 했어도, 집행자는 지구로 따지면 저승사자 같은 이미지다. 물론 아무나 막 죽이고 다니는 그런 존재는 아니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실의 사람조차 아무렇지 않게 죽여 버리는 그들의 존재는 역시 모시는 신의 이름처럼 공포와 죽음을 연상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소녀들은 어쩐지 조금 차가우면서도 듬직한 느낌의 이 소년이 집행자라는 것을 확인하자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시선이나 호기심을 얼른 접어두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같은 추종자라도, 집행자가 지닌 명성은 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
“녀석. 제법인데.”
형진은 근처에서 은신으로 몸을 숨긴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흔히 그런 말이 있다. 남자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여자 하나만 있으면 그 여자는 공주가 되고, 여자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남자 혼자 있으면 그 남자는 머슴이 된다던가. 물론 속설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반드시 옳은 얘기라고 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크루그가 처한 상황은 충분히 골치 아픈 것이었다.
그래서 크루그에게 이 일을 맡기면서도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에게는 역시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의외로 녀석은 어렵지 않게 소녀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반쯤은 집행자라는 이름에 기댄 결과긴 하지만, 그것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개인의 역량이다. 자칫하면 의외로 귀여운 집행자 소년 같은 이미지가 되어 반대로 농락당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쳇.”
솔직히 말하면 좀 아쉽다. 기왕이면 전자보다는 후자쪽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도대체가 귀여운 맛이 없어. 사춘기 소년이면 사춘기 소년 답게 여자들 앞에서 부끄럼도 좀 타고 내외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던 형진은 이내 염탐을 그만두고 슬그머니 잠행을 이용해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길드성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가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엘 파르드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사실상 공포와 죽음이 내려준 커다란 임무 하나를 완수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물론 나라를 평안케 하는 것은 단순히 왕위에 오르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긴 하지만, 즉위식 자체가 새로운 엘 파르드의 체계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나 다름없으니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공포와 죽음이 내린 신탁은 사실상 마무리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선 형진은 커다란 회장님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으며 공포와 죽음께 이렇게 기원했다.
엘 파르드 평정도 끝났는데 보상 없나요. 꽤 고생했는데.
그러자 공포와 죽음께서 답하신다.
[무슨 보상. 퀘스트 같은 건 준 적도 없는데.]형진은 잠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형진은 공포와 죽음에게서 엘 파르드를 평정하라고 직접적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건 아니다. 단지 망자의 대지에 대한 이상 현상을 경험한 뒤로 헤르타의 지부장이며 할의 여동생인 힐 데 마그에게 신탁을 들었을 뿐.
하지만 직접적으로 퀘스트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해도 이건 엄연히 임무다. 이제 와서 난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임무, 형진이 아니면 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집행자들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하나의 나라를 평안케 하는 일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퀘스트를 안 준 것도 보상을 미리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시끄러.]보상을 요구한다! 악덕 기업주는 물러가라!
[말이 짧다?]보상을 요구합니다!
형진은 어쩐지 공포와 죽음이 피식 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았다. 그럼 이렇게 하지.]어떻게요?
[어차피 지금의 너에게 돈이나 공헌도 같은 건 큰 의미가 없을 거다. 그건 내가 따로 주지 않아도 지금도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을 테니까.]그건 그렇다. 이전에 받은 공헌도 천만도 아직 다 쓰지 못한 상황이다. 기껏 왕성을 만드는데 백만 이상의 공헌도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지나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채워지고 말았다. 이래서야 다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번엔 조금 특별한 보상을 주도록 하겠다.]어떤 것입니까.
[일전에 만들어 놓고 쓰지 않는 스킬이 있었지? 인형술이라고 했던가.]형진은 공포와 죽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공 기술과 사념체의 결합을 통해 인형을 다루는 기술을 만들긴 했어도 적을 잠시 기만하는 정도의 용도밖에는 없는지라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단순히 적을 속이는 정도라면 그냥 통나무에 룬만 새겨도 충분하고, 그렇다고 그 이상의 격렬하거나 세심한 무언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알게 모르게 도태되어버린 것이다.
[그걸 쓸 만 하게 만들어 주마. 어떠냐.]공포와 죽음의 말에 형진은 빠르게 머리 속으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인형술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상태에서 인형술을 업그레이드시켜 각각의 분신들로 하여금 인스턴트 킬을 낼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강력한 힘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쓸모 있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진은 다시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쓸모 있게 되는지를.
공포와 죽음은 이렇게 답했다.
[아바타급.]순간 형진은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바타급이라니. 그냥 좀 튼튼하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래서 인형으로 인스턴트 킬을 낼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생각했던 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기는 대답이 아닌가!
어찌나 놀랐던지, 형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농담 아니고요? 다시 무르기 없깁니다.”
[싫으면 말고.]
“아뇨. 아뇨. 싫다뇨. 절대로 안 싫어요. 아주 좋습니다. 그걸로 하겠습니다. 네. 그 보상으로 받겠습니다. 확정. 땅땅땅.”
아바타급 분신은 단순한 인형이 아니다. 사실상 또다른 형진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물건이나 다름없다. 그런 분신을 다룰 수 있게 되면, 본신은 집에서 아기들이 빠아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분신은 요리를 하고, 또 하나의 분신은 성물을 만들고, 또다른 하나의 분신은 엘리시온에 접속해서 사냥을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세상에. 역시 공포와 죽음. 쏠 때는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쏴버리는 아주 멋진 신이시다. 사랑해요.
[보상 대신 천벌 줄까?]죄송합니다. 자중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피식 웃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런 말이 들려온다.
[거짓된 천국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념체 백 개를 모아라.]형진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과연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시온의 보스들은 일반적인 몹들과는 달리 다소의 지능과 개성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념체 때문이다.
이 사념체는 인간을 인스턴트 킬로 죽였을 때 나오는 그것보다 미약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인공지능을 구현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형진이 인형술을 처음 구현했을 때도 사념체는 인형을 동작하도록 만드는 핵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떠올리던 형진은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엘리시온의 보스급 몬스터들이 지닌 사념체는 인간을 인스턴트 킬로 죽였을 때 나오는 그것에 비해 효과가 미약하다. 다시 말해, 기왕 모을 것이라면 보스급 몬스터가 아닌 인간에게서 나온 사념체쪽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자 공포와 죽음은 다시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더 이상 분신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 그렇겠군요.”사념체가 너무 강력하면 그 자체로 자아를 지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형진의 분신이 아닌,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아니, 무언가가 되기도 전에 해리성 정신 장애 같은 증상을 일으키며 자멸해 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 여러 모로 위험한 일이라고나 할까.
하드웨어적인 측면은 이미 세공 기술이 극한에 도달했고, 재료도 엘리시온 내에서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포와 죽음께서 아바타급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주의가 분산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보호와 균형이 형진의 사냥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신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나 할까.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번에 공포와 죽음께서 제시한 보상이 얼마나 규격 외의 것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공포와 죽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시선으로 급히 사냥을 준비하는 형진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물론 형진은 그런 공포와 죽음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