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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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요리수련
콩닥콩닥. 콩닥콩닥.
유아의 가슴은 그렇게 세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한 사람이다.
처음에 마차 문을 열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자신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 와중에 오직 한 사람, 시큰둥한 시선을 보냈던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의 이 사람은 어디서 싸우다 왔는지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부어 있었고, 그나마도 반쯤은 복면 비슷한 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사제가 아닌 다른 사람, 게다가 남성과 거의 살을 맞대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밀착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정말 이 마차를 타도 좋은지. 하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애초에 그 역마차는 환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걸로 악명이 높았으니까.
역시나 그 마차에 탄 남자들은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냐고. 너의 그 몸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태연을 가장하면서도 무서웠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을 이런 식으로 밖에 대하지 못하는 것인지, 무서웠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 와중에도 달랐다. 얼마냐고 묻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계속해서 옆에서 지켜봐도 그런 식의 질문은커녕 귀찮다는 표정만 짓는다. 정말로 귀찮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귀찮음을 가장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이게 웬 걸. 왜 안 묻냐고 물었더니, 얼마냐고 묻고는 그냥 문을 닫아버린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안심이 됐다.
하룻밤이 지나자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옆 자리의 사람은 잘 만난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는데, 차창을 열어 놓고 달린 것이 문제가 됐는지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금식 기도 때를 떠올리며 하룻밤만 참아내자 하며 마굿간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깜빡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눈에 보이는 건 옆자리의 그 남자가 자신의 옷을 벗기기 위해 끙끙대고 있는 광경.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덜컥 입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범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을 찾아내 방으로 데려온 뒤 음식을 먹여 주었다. 아, 그 따뜻한 스프의 맛이라니.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두려웠는데, 어째서 아무 일도 없었는지 오히려 의아하게 느끼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자신에게도 남자 형제, 그 중에서도 오빠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문제가 생기면 툴툴거리면서도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는, 그런 조금은 듬직한 오빠.
어쨌든 그렇게 별 탈 없이 도착하나 싶었지만, 도적이 나타났다. 자신도 모르게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하필 이런 곳에서 도적을 만나다니.
바로 그때 그가 나섰다. 뭘 하려고 그러나 싶었다. 마차 바퀴를 고치고, 돌을 부수는 걸로 봐서 모험가는 아니고 장인이나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도적이 무섭지도 않은지 홀로 나가더니, 이내 말 몇 마디로 그들을 쫓아버린다.
도대체 이 사람 뭐지.
죄수의 귀를 서슴없이 잘라내는 광경에는 그녀는 물론이고 마차 안의 모든 사람이 기겁했다. 모두들 지금까지 엉망으로 얻어터진 것처럼 보였던 처음의 인상은 지우고 그저 손재주 뛰어난 사람 좋아 보이는 청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한 번의 일을 겪고 나자 모두들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죄수의 귀 하나 잘라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분명 자신은 다른 이들보다 더 험한 꼴을 당했으리라는 사실을.
마침내 그리칸에 도착했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신전에서 포션 만드는 일을 돕기 위한 것. 사정이 급하니 어서 신전에 가봐야 했지만, 어쩐지 그와 헤어지기가 싫었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내일 갈 테니 그냥 오늘 밤은 같이 있자는 그의 말에 못 이긴 척 따랐다.
그 날 밤, 그녀는 또다시 잠을 설쳤다. 처음 보는 거대한 저택과 처음 보는 침대와 처음 보는 침구가 낯설었지만 그녀의 잠을 설치게 만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저, 오늘밤이 지나면 그와 이런 식으로 같은 지붕 아래서 잠드는 것은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그녀를 데리고 신전에 갔다. 조금 서운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운명이구나 하며 신전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버렸다. 무려 그녀를 신전으로부터 돈 주고 사버린 것이다.
헐. 헤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긴 했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미처 그녀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다려줄 생각조차 없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메이드복을 맞추고, 이브닝 드레스를 사고, 꿈에도 본 적이 없는 호화로운 요리점에서 데이트를 하고, 그렇게 꿈결 같은 하루가 지나고 다시 그의 집에 도착하는 순간, 유아는 생각했다.
아, 이곳이 이제부터 내가 살 집이구나… 라고.
사람에겐 정말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구나… 라고.
유아는 자신을 꽉 껴안고 있는 형진의 커다란 체구와 단단한 근육과 완강한 힘을 몸 전체로 받아들이며,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자신을 안고 있는 이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이 남자를 안아 보려고.
하지만 미쳐 그녀의 손이 제 위치에 도착해 등을 감싸 안기도 전에, 형진은 그녀에게서 몸을 떼더니 크게 외쳤다.
“좋아! 기대 이상이다! 완벽해! 이걸로 모든 것이 갖춰졌다!”
“…”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몰라 불안해졌지만, 유아는 허공에 멈춰 있던 손을 내리며 어째서인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형진을 향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이 남자는 항상 이렇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허를 찌르는 것은 잘하면서,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는 영 제대로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 바보.
하지만 형진은 설마 이 미련 곰탱이 같은 여자가 자신을 향해 그런 천인공노할 단어를 떠올리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이제부터 갈퀴로 거둬들일 황금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자, 얼른 먹고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신성한 식충이 메이드여!”
“누가 신성한 식충이라는 건가요!”
유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자신이 이 남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채 한 나절도 가지 못했다.
“도, 도대체 이걸로 뭘 할 생각이세요?”
“뭐긴? 요리지?”
형진은 무지막지했다. 집으로 노새 등에 실어 나르면서도 도대체 저걸 다 먹을 수는 있는 걸까 싶었던 식재료를 무자비하게 모조리 손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손질 과정에서 유아가 신성력 샤워를 식재료에 퍼붓는 것은 당연한 일. 처음에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뻐서 좀 열심히 참여했던 유아도 끝없이 쏟아지는 식재료의 향연에는 이내 기가 질리고 말았다.
하지만 형진은 유아가 옆에서 질린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그렇게 다듬어진 요리로 미친 듯이 요리를 시작했다.
어차피 재료야 넘친다. 처리할 곳도 충분하다. 기왕 여건이 그렇게 갖추어졌다면, 자신이 알고 있던 레시피들을 확인하고 점검할 겸 전부 만들어 버리자!
굽고 찌고 익히고 삶고 데치는 그 모든 과정이 형진의 손에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미 식사후 디저트로 먹은 버터 쿠키와 채소 절임으로 기본 도핑은 마친 상태. 게다가 의욕마저 최고조에 이른 상태이니, 누가 있어 불이 붙어버린 형진의 손을 멈출 수 있겠는가!
“무, 무리에요. 이건 아무리 저라도 다 못 먹어요.”
유아는 결국 쏟아지는 요리의 향연에 질려서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그녀를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 마디 던졌다.
“알아.”
“안… 다고요?”
“그래. 어디보자… 재료 손질은 이만하면 됐으니까, 대충 포장해서 신전에 가져다 줘. 애들한테 먹이든, 다른 사람한테 나누어 주든 상관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고. 음, 걍 좋은 호, 아니 좋은 사람을 보내줘서 감사의 뜻으로 보내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면 되겠네.”
“…”
순간 유아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좋은 사람이라니. 에둘러 말하긴 했어도 그것이 누구를 뜻하는 것인지야 뻔한 일 아닌가.
“아, 아, 알겠습니다.”
물론 형진이야 좋은 호구라고 말하려던 것을 좋은 사람으로 고쳐 말한 것 뿐이지만, 그런 내막은 꿈에도 모르는 유아는 허공을 붕붕 떠다니는 기분으로 빠르게 음식을 포장한 뒤 노새 등에 싣고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아니, 자매님 아니세요. 그 옷차림은…”
참배객들을 맞이하던 나이 지긋한 여사제는 메이드복을 입은 채 노새를 끌고 나타난 유아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그 사람 취향이 좀…”
“아하.”
단 한 마디로 형진을 메이드복 애호가로 전락시켜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유아는 노새에 실린 음식을 사제들에게 전달했다.
“아니, 이게 다 웬 음식인가요?”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데 대해 여신께 드리는 감사의 의미라고 그 사람이 손수 요리한 것들이에요.”
“어머나 세상에! 그런 기특한 일이!”
“아이들에게 먹이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든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셔도 좋다고 전해달래요.”
“은혜로운 일입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에요.”
단지 형진이 했던 말의 앞뒤 순서가 바뀌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의미가 상당히 왜곡되어 버렸다.
곧바로 신전에 잔치가 벌어졌다.
항상 쪼들리는 살림 때문에 나무토막 내지는 스티로폼 같은 빵에 희멀건 스튜로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던 아이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요리의 향연에 유아가 그랬던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게 다 뭐에요?”
“은혜로운 어떤 분께서 기부를 해주셨답니다. 요리는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먹어도 좋아요.”
“와! 정말요? 이거 꿈 아니죠?”
“물론이죠.”
마음은 있어도 항상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한으로 남아 있던 사제들은 눈이 뒤집혀서 요리로 돌진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조금 유아가 참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두 사람의 미래를 한 마음으로 축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이, 이건…”
“그, 그게… 그 사람이 손이 좀 큰 편이라.”
아이들이 한창 열심히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는 와중에, 다시 유아가 노새의 등에 음식을 가득 싣고 찾아왔다.
여기까진 유아 말대로 손이 좀 크구나 하고 말았지만,
“그 사람이 상당히 손이 좀 큰 편이라…”
“그 사람이 무지하게 손이 큰 편이라…”
“그 사람이…”
그것이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되자, 사제들인 이것이 그냥 손 좀 크다고 여길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우어어어어… 또 새로운 요리다…”
“배, 배불러요.”
“윽… 못 일어날 것 같아…”
아이들도 처음에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미친 듯이 음식을 먹어치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지, 나중에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 이걸 어떻게 하죠?”
“아이들만으로는 무리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시다.”
사제들은 곧바로 신전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음식을 싸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이게 웬 음식이죠?”
“여신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모두에게 그 기쁨을 나누고자…”
“…”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준다니 받아서 먹어보았다.
“오오!”
“히, 힘이 솟는다!”
조금 미심쩍은 느낌에 한 입 먹어봤더니 이게 웬 걸. 몸에서 힘이 불끈 불끈 솟는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던 사람들은 여신의 은혜란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지레짐작해 버렸다.
신전에서 아주 특별한 음식을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돌자 도시 안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들렀다가 그 특별한 효능에 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과연 호구… 아니 희망과 생명의 신이시군!”
“그러게. 날씨가 쌀쌀해진다고 이런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다니.”
“아무리 호구신의 신전이라고 해도 이 정도 양과 질을 지닌 음식을 만들려면 고생 깨나 했을 텐데.”
“조금씩이라도 보태는 편이 어떨까. 음식 값을 낸다 셈치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음식 덕분에 이번 겨울은 건강하게 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정도야 당연하지.”
신전에서 나누어준 음식의 놀라운 효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여유가 되는 대로 조금씩 음식 값 대신 기부를 하고 갔다.
“이, 이게 웬 일이죠?”
“그것이… 신도 여러분이 음식 값이라면서…”
“허어…”
고사제는 눈앞에 쌓인 엄청난 액수의 돈을 보면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저희들이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들은 한 것이 없는 걸요.”
“그렇습니다. 댓가를 받아야 한다면 마땅히 그 분이어야 하지요.”
역시 호구신의 사제들. 적당히 삥땅친다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않은 채 자신들에게 전해진 그 모든 돈을 다시 음식을 실어온 유아를 통해 형진에게 보내 버렸다.
“엥? 이게 다 웬 돈이야?”
“그, 그게…”
유아는 자신이 들은 대로 자초지종을 말했다. 하지만 그걸 전해들은 형진은 표정이 미묘해졌다. 호구신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호구일 줄이야.
제대로 된 음식도 아닌 걸로 이렇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액수가 상당히 많은 걸 보니 그냥 돌려보내기도 좀 애매하다.
“크흠. 이러면 곤란하지.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럼… 돌려보낼까요?”
“그래도 보낸 사람 성의가 있으니 그건 좀 그렇고… 음식이나 더 싸 보내야겠군. 자, 얼른 포장이나 해!”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