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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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악몽
날아든 총알은 어김없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서 있던 그의 모습은, 마치 폭풍에 휘청이는 허수아비처럼 비틀거렸다.
경찰들은 그렇게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크후…”
지근거리에서 권총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기이한 소리를 내며 비틀 대다가 몸에 박힌 무언가를 길 위에 떨군다.
땡그랑.
동전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다름 아닌 권총의 탄알들.
하나만이 아니다. 그의 몸에 박혔던 총알들이 마치 시간을 되감는 것처럼 스스로 밀려나와 길바닥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둑. 마치 몸에 묻은 돌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
경찰들은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눈앞의 상황에 몸도 마음도 경직되어 버렸다. 차라리 이것이 영화 같은 것이라면, 이런 정도의 표현이야 상투적인 것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마치, 악몽과도 같은 현실.
“이게 끝인가?”
어깨가 뻐근하다는 듯이 목을 한번 휘돌리며 그렇게 묻자, 개중에 덩치 큰 경찰 하나가 샷건을 들더니 그의 머리를 향해 갈겨 버린다.
쾅!
총이라기 보다는 무슨 대포가 나가는 듯한 굉음.
이쯤 되면 아무리 피의자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도 과잉 진압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한 행동이지만, 경찰 들은 이미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뒷일을 걱정하는 것도 일단 이 자리에서 살아남고 난 뒤의 일 아니겠는가.
지근거리에서 샷건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그는 강력한 물리력을 감덩허자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경찰들은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잠시 후 그들은 다시금 일어서는 그의 모습에 경악해야만 했다.
투두두둑…
뭉개져 버린 머리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으며 그곳으로부터 샷건의 탄알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코앞에서 보는 건 아무리 담대한 자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질려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재생력.
몸이 반토막나도 다시 살아나는 재생력으로 유명한 플라나리아도 너무 잘게 잘리면 그냥 죽어 버린다. 하물며 그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 인간 같은 고등 생명체는 머리가 깨져 그 안의 내용물이 걸죽한 죽처럼 흘러내릴 정도라면 이미 살아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영화에 나오는 좀비조차도 뇌가 부서지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데 눈앞의 이 남자는 그런 상식조차 완전히 깨부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미묘하다. 샷건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면 어떻게 먹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갖도록 만드는 모습이기에.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연출된 모습에 불과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더 많은 먹이감이 몰려들도록 만들기 위한.
그는 이미 자신이 가진 재생 능력의 수준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의 한계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았고 그 세월 동안 세계에는 온갖 거대한 전쟁이 휘몰아쳤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체가 무력화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요안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기나긴 세월을 효율적으로 보내온 것이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관절로부터 들려올 것만 같은 그런 동작으로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는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듯 경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히이익!”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는 듯한, 또 한 편으로는 방금 전의 총격으로 균형을 담당하는 중추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것 아닌가 싶은 그런 기이한 모습.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경찰들은 기겁을 하며 남은 탄환 전부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작 몇 개의 탄환만이 명중했고, 그때마다 휘청거리면서도 그는 순식간에 경찰들에게 다가가 손에 들린 과도를 휘둘러댔다.
스걱!
차량의 몸체가 단숨에 반토막 나고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경찰의 몸 역시 뒤이어 몇 조각으로 나뉘어 쓰러진다. 손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무언가가 반토막 나버리는 그 모습에 경찰들은 패닉에 빠져 버렸다.
철컥! 철컥!
손에 들린 리볼버의 탄환이 이미 다 소모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던 경찰의 손이 총과 함께 잘려지고, 뒤이어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는 경찰의 성대를 과도가 가르고 지나간다. 급히 달려온 차량 세 대에 타고 있던 경찰들은 그렇게 도륙 당하고 말았다.
“후아…”
입고 있던 옷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거린다. 몸이야 재생을 통해 원래대로 되돌린다 쳐도, 옷까지 그렇게 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뒤엉켜 쓰러진 경찰들의 시체 조각에 다가가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잘려진 경찰의 얼굴이었다.
“룰룰루…”
아무리 오랜 옛날로부터 죽지 않고 살아온, 어찌 보면 망령과도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차량 블랙박스가 뭔지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다 드러내놓은 채 싸움에 임한 이유는 무얼까.
그는 잠시 잘려진 경찰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역시나 잘려진 사이드 밀러 하나를 집어 들어 자신의 얼굴을 살피더니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휘둘렀다.
툭.
그의 얼굴은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간단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뒤이어 손에 들고 있던 경찰의 얼굴이 그 자리를 대신해 달라붙었다.
“으음…”
뭔가 어색한 모습. 하지만 뒤이어 절단면으로부터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오자 경찰의 얼굴을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의 얼굴 대신 자리를 잡았다.
그의 표정이 어색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잘려나간 얼굴 자체가 원래 그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름이 의미 없는 이유도, 지문이니 인상착의니 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이유도 이래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얼굴이었던 그것은 급속하게 부패하며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봐야 역시나 다른 얼굴의 근육은 움직이지 않고 입꼬리만 올라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젠장!”
안전 가옥 부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미친 짓을 허세와 망상이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기야 그 미친놈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파편이니 미친 짓을 벌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통제력이 약화된 이 시점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해야 하나. 아니면 천벌이라도 가해서 일단 무력화시키는 것이 옳을까.
잠시 안절부절 못한 채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던 허세와 망상은,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사실 현재 공포와 죽음이 이 세계에 와있는지, 와있다면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 허세와 망상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존 도우인지 존 스미스인지 하는 그 놈팽이는 이미 자신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상태. 설령 다시 잡아 오더라도 제대로 된 칼로 써먹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어차피 데리고 있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 놈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셈 치고 공포와 죽음을 끌어내는 미끼로 써먹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그건 전략이라기 보다는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사고였지만, 허세와 망상은 뜻밖의 묘수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그게 묘수가 되려면 모습을 드러낸 공포와 죽음의 세력에 대해 전력 약화든 무력화든 시킬 계책까지 세워야 하는데도 말이다.
“할 수 없지. 그렇게라도 써먹는 수밖에.”
게다가 허세와 망상은 또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존 도우 내지 존 스미스라 불리는 인물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을 어렵사리 찾아낸 또 다른 파편의 소유자 아사드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긴, 애초에 아사드는 허세와 망상을 믿고 있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지금의 이 행동은 그런 불신에 대해 더욱 확고한 증명이었는지도 몰랐다.
한편, 그즈음 형진은 요안나와 함께 다시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땀과 소금기로 얼룩진 몸을 씻는 중이었다.
비누 거품을 잔뜩 내서 서로의 몸을 씻겨 주는 그 행위는 단순히 몸을 씻는 것을 넘어 앞서의 격렬하고 뜨거웠던 밤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후희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어머…”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신체는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금 불끈거리며 웅장한 위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요안나도 살짝 질릴 정도다.
“그래도 금방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그건…”
요안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귀밑까지 빨개진 모습으로 고개를 수그릴 뿐이다. 형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껄껄 웃으며 몸에 묻은 비누거품을 씻어 내고는 그대로 안아올려 침대로 향했다.
“다른 분들이 깰 때가 되었어요.”
펜트하우스의 다른 방에 묶고 있는 신입 길드원 사인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거라면 저 녀석이 있잖아.”
밤새도록 방 한쪽에서 매크로 체조를 하고 있는 또 한 명의 형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 녀석이라니 무엄하군. 폐하라고 불러라.”
“폐하는 얼어죽을.”
“그리고, 이건 불공평하다고. 누군 밤새도록 뜨거운 밤을 보내고 누구는 이렇게 한쪽에서 되도 않는 우스꽝스러운 체조만 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하는 거야.”
“풉.”
물론 아무리 아바타라고 해도 인격까지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이 대화는 형진 스스로 하는 자문자답이란 뜻이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요안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가서 식사 준비나 해야겠군. 쳇.”
“그래. 수고해.”
“그전에 나도 좀 씻어야지.”
형진의 또다른 아바타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비어버린 욕실로 들어가 걸치고 있던 옷을 훌훌 벗고 혼자 몸을 씻기 시작한다. 요안나는 그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겠어요.”
“응? 뭐가?”
“시트 뒤집기를 못해서요.”
“그건 그래.”
“지금이라도 해볼래요?”
“흥. 그건 상대가 완전히 잠들어 있을 때,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거라고. 이런 식으로 미리 짜맞추고 흉내만 내는 건 제대로 된 시트 뒤집기가 아니야.”
“킥.”
시트 뒤집기의 미학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형진의 모습에 요안나는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게다가, 사실 형진은 이미 그 시간에 누군가에게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트 뒤집기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능 못 일어나!”
“꺄악!”
물론 피해자는 요안나가 아닌, 이제는 다시 혼자 메이드 신세가 되어 버린 하엘이다. 설마 오늘도 같은 일을 할까 싶었던 하엘은 은신과 잠행까지 써서 다가온 형진의 만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똑같은 꼴을 당해야만 했다.
잠시 킥킥거리며 웃던 요안나는 문득 협탁 위에 올려둔 노트북을 끌어와 그것을 살폈다. 형진은 그녀의 등 뒤에 몸을 찰싹 붙인 채 어깨 너머로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어떻게 됐어?”
“음… 잠시만요.”
요안나는 간밤에 벌어진 일을 살피다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허세와 망상이 지내던 곳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소식과 첩보가 그녀의 이메일 계정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주식 시장의 혼란과 엘리시온의 제작사인 미라지 코어의 상황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벌어질 줄은 미처 몰랐던 터라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 속보와 함께 그녀의 이메일 계정에 무언가 급박한 소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복잡한 영문 이메일 내용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던 형진도, 뉴스 속보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문구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공포와 죽음이여… 나는…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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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