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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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페스타
“와우!”
“오, 이건 대단하군.”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진 제단이 단숨에 자갈더미로 변하자, 집행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도 한 가락씩 하는 강자들이지만, 이런 식으로 바위를 단숨에 부수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밴시를 처치할 때와 같은 기술인 모양인 것 같기는 한데, 원리를 모르겠군요.”
“마법도 아니고… 진님 정말 하급 성도 맞아요?”
제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부서진 잔해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미엘은 눌러쓴 두건 안쪽으로 반짝이는 눈빛이 느껴질 정도로 감탄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진님 덕분에 수고를 덜었군요.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형진은 다시 한 번 모두가 쪼그리고 앉아 바위로 만들어진 제단을 손곡괭이로 톡톡톡 깨는 장면을 연상하고는 씩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단검만 처리하면 되겠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부장 기젤은 손수건을 꺼내 제물이 된 여자의 가슴에 꽂혀 있던 단검의 손잡이를 감싼 뒤 천천히 그것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뭐라고 읊조리자, 허공에 검은 구멍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단검을 집어삼켰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부장쯤 되면 저런 것도 가능한 모양이다.
어쨌든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난다.
[그리칸 지부 인근에 발령되었던 페스타는 해제되었습니다.] [페스타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신 집행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집행자 여러분의 헌신적인 행동에 매우 기뻐하시며 포상을 내리셨습니다.]“온다.”
“이 상자도 오랜 만이네.”
페스타 상황이 해결되었다는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로 휘황찬란한 황금빛 상자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형진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어서 받으라는 듯이 눈앞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상자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뭔가 보는 것만으로도 하사 받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공포와 죽음께서는 의외로 격식을 중요시 하시는 모양이다.
[축하합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행동에 매우 흡족해 하시며 풍족한 포상을 내리셨습니다.] [포상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겔 기념 금화 1개, 가스트 주화 2000개.+3 집행자의 단검.
+3 집행자의 두건.
+3 집행자의 망토.
인벤토리 2칸.
무게 +20
팩션 공헌도 100.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헐?”
특별한 보상이라길래 어느 정도일까 하고 상자를 열었던 형진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자신의 상자를 받아들고 내용물을 확인하던 날렵한 소년 크루그는 그런 형진의 모습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랬죠? 좀 놀랐을 거에요. 공포와 죽음께서는 꽤 통이 크시거든요.”
“어… 그러네, 정말.”
통이 크다고는 해도 이건 정말 예상 밖이다. 팩션 공헌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얼마 걸리지도 않은 짧은 임무 한 방에 무려 금화 하나다. 게다가 너무 큰 고액권 화폐만 주면 쓰기 곤란할까봐 잔돈까지 챙겨주는 세심함까지.
그것만이 아니다. 귀걸이와 코장식을 제외하면 별다른 장비를 갖추지 못한 형진의 사정을 감안했는지 +3으로 강화된 집행자 세트까지 주고, 여기에 인벤토리와 무게 보너스까지 포상으로 주어졌다. 이쯤 되면 완전히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좀 궁금해졌지만, 그렇다고 물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기야 월급 명세서 같은 건 함부로 물어보는게 아니다. 세상이 다르더라도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법.
“보상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공포와 죽음께서 페스타를 중대한 사안으로 생각하시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 잊지 마시고, 이후로도 이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진님께서도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무조건 참가지. 이번처럼 보상이 나온다면 막말로 다른 일 하나도 안하고 일 년에 한 번 페스타 임무만 참가해도 먹고 살 것 같다. 과연 현명한 공포와 죽음.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어떻게 부려 먹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 모양이다.
다행이다. 희망과 생명 같은 신에게 불려왔더라면 아마 형진은 지금쯤 신전에서 열심히 포션이나 만들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한탄이나 하고 있었겠지. 하기야 그 호구신이 자신 같은 인재를 알아볼 안목이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인벤토리에 보상을 챙기고 난 그들은 느긋하게 동굴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보오람찬 이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올 듯한 기분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형진은 문득 아까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고는 그나마 안면이 있는 크루그에게 물었다.
“이봐, 소년. 그런데 아까 말했던 미친 헛소문이라는 건 뭐야?”
“아하, 그거요?”
작게 말한다고는 했는데, 워낙 조용한 동굴 속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형진의 말을 다 듣고 말았다. 문제는 형진이 그 얘기를 꺼내자, 일행 중 제라와 미엘이 못 들은 척 하며 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킥. 그렇게 신경 써줄 필요는 없는데. 하긴 누나들이 있으면 말하기 좀 곤란하긴 하지만.”
“뭐길래?”
크루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씩 웃으며 대답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뭐라더라. 막 소환된 밴시의 가슴을 빨면 소원을 들어준다던가?”
“뭐?”
밴시가 여성형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망령이다. 애초에 비실체화된 존재라 가슴을 빨기는커녕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고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야?”
어이가 없어 그렇게 묻자, 오귀스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웃긴 일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 경우엔 단순히 그 소문 때문이라기보다는 단검이 지닌 저주에 현혹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요.”
“아하…”
그제서야 제라가 밴시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남자들 어쩌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적인 판타지와 탐욕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의 카더라 통신은 지구에서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실제로 손을 일절 쓰지 않고 처녀의 입술로 잎을 딴뒤 그것을 가슴골의 바구니에 담는 식으로 수확해 판매하는 처녀차라는 것이 중국에 존재하는 걸 보면 사람들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혹시 어제 희망과 생명 신전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던 것과 진님이 관련이 있습니까?”
어차피 숨길 일도 아닌 터라 형진은 바로 대답했다.
“네. 그 음식도 제가 한 것 맞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그런데 어째서 호구신의 신전에?”
“제가 호구신의 사제 하나를 집에서 메이드로 부리고 있거든요. 그 동네 애들이 못 먹고 다니는게 불쌍해서 요리 연습하면서 남는 음식을 좀 돌렸죠.”
“아… 그런 거였군요.”
오귀스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요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목표로 하는 경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달성할 때까지는 계속 해야겠죠.”
“그럼, 혹시 만든 요리를 판매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당장은 없습니다만, 필요하시면 신전에 보낼 물량 중 얼마 정도를 나누어 드리는 건 가능할 겁니다.”
형진의 말에 오귀스트는 반색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실은 제가 작은 모험가 파티를 이끌고 있는데, 진님의 요리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가격은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아싸, 고객이다.
“저야 그래주시면 고맙죠. 다만 지금은 무리고, 내일 정오 쯤에 방문하시면 막 만든 요리들을 챙기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오,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다시 근처로 돌아온 제라가 끼어들었다.
“그 얘기, 저도 흥미가 있어요.”
완전히 영업 모드로 들어간 형진은 공손하게 응대했다.
“고객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물론 아직 제대로 점포를 열기 전이긴 하지만요.”
“음… 점심 때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오후 티타임 시간 정도가 어떨까 싶네요.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차피 내일도 하루 종일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니까요.”
“그럼, 그때 봐요.”
그런 식으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동굴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그럼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지부장 기젤이 그렇게 인사를 하자 다른 집행자들은 간단하게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진님은 아직 이동 관련한 스킬이 없으신 듯 하니, 제가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불편을 끼쳐서.”
“별 말씀을요. 다만 이동 관련 스킬들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으니 근일간 방문하셔서 습득하시길 권합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성문 근처에서 기젤과 헤어진 형진은 조금 느긋한 기분으로 밤바람을 맞으며 다시 저택에 돌아왔다.
“다 빨았다!”
참으로 절묘하게도 형진이 막 집 안으로 들어올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빨래를 마친 유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형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까 들었던 밴시의 가슴 얘기가 떠올라서 피식 웃고 말았다.
형진은 모르는 척 잠행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한 뒤, 장비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디 보자.”
대충 정리를 마친 형진은 오늘 얻은 수확물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이템정보
명칭 : 통곡의 원념.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암흑 속성
설명 : 저주받은 단검의 제물이 되어 태어난 밴시의 원념.
효과 : 치명타 발생시 일정확률로 마비, 경직, 기절 효과 중 한 가지 발동.
“나쁘지 않군.”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좀 미묘하다. 난타 계열의 스킬을 지니고 있다면 확실히 꽤 쓸만할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 형진이 해왔던 싸움 방식은 난타보다는 일격필살 쪽이기 때문이다.
전에 얻었던 비슷한 아이템인 가트의 살의와 함께 쓰면 더 좋을 것 같기도. 다만 문제는 하나의 아이템에 살의와 원념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게다가 등급도 희귀고.”
물론 세상에 가트라는 인물이 둘이 아닌 이상 가트의 살의라는 아이템 역시 둘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역시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기야 지구상의 게임에서 등장하는 유일 등급은 정말로 단 하나 뿐인 아이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희귀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라는 느낌일 뿐이니까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건 그렇다 치고.”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임무 보상으로 주어진 +3 집행자 세트.
아이템정보
명칭 : +3 집행자 단검
등급 : 전용
착용제한 : 각인의 집행자.
설명 : 집행자 가운데서도 공포와 죽음의 눈에 든 자만이 가질 수 있다고 전해지는 특별한 무구. 관련 무구를 함께 착용하면 세트 효과가 발동하여 관련 스킬의 숙련도 상승 속도가 증폭된다.
효과 : 공격력, 치명타 발생 확률, 치명타 피해 증가
강화시 효과 : 공격력 증가
“대박! 하하. 역시 멋쟁이라니까.”
아이템 자체의 성능만으로 따지자면 대단한 것이 없지만, 세트 옵션이 정말 기가 막힌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 저것 올릴 스킬이 많은 형진의 사정을 어찌 아시고 이런 멋진 부스터 아이템을 내렸으니 그야말로 감읍할 따름이다.
“아니지… 뻘짓 그만하고 전투 스킬부터 배우라는 소리일지도.”
전투 스킬은 그렇다 쳐도 확실히 이동 스킬은 가급적 빨리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오늘 기젤이나 오귀스트의 손에 이끌려 데롱데롱 끌려 갈 때 좀 팔리긴 했다. 그 잘난 척 하는 꼬맹이 녀석 보기도 좀 그렇고.
“뭐… 일단은 하던 거부터 마저 끝내야겠지만.”
그래도 잠시 동안 밤마실 다녀온 것 치고는 너무 많은 걸 얻어서 기분이 꽤 좋다. 형진은 어깨마저 들썩거리며 콧노래와 함께 꺼내놓은 아이템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마무리 짓고 비로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