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69
469====================
103. 요리 대회
잠시 경연장에 침묵이 감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일시에 동작을 딱 멈추어 버린 탓이다. 놀라기는 대상을 수상한 형진도 마찬가지. 드디어 명장을 달성했다는 생각에 성취감을 느낄 필요도 없이, 예상치도 못했던 달인 칭호가 언급되어 버렸으니 본인으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형진에게 지금 들은 것이 헛소리나 꿈이 아니라는 듯이 전해지는 메시지.
[축하합니다! ‘요리 달인’을 달성했습니다!] -달인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에게 전해지는 영예로운 칭호입니다.-달인에 등극하여 요리 버프의 중첩 확률이 크게 상승하였습니다!
-요리 ‘첫 눈 오던 날’은 엘리시온에서 최초로 요리 달인을 달성한 진님의 고유 요리로 등록됩니다.
-고유 요리는 120퍼센트 강화된 버프 효과를 지니게 됩니다.
-만약 고유 요리를 특제 요리로 완성한다면 이 효과는 150퍼센트로 상승합니다.
-고유 요리는 같은 종류의 버프 효과가 이미 존재하더라도 다른 버프 효과로 인정되므로 중첩 판정을 무시합니다.
“헐…”
그동안 효과는커녕 어떻게 습득하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던 달인의 경지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명장은 주로 왕국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콘테스트 같은 것에서 승리할 경우 부상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름난 장인이라는 뜻처럼 다른 장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명성이 높은 장인이 도달하는 등급이 바로 명장이다.
달인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명장이 일종의 상대평가 개념이라면, 달인은 절대평가 개념에 가깝다. 이미 더 이상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최고 경지라고나 할까. 엘리시온에서도 달인이라는 등급이 있다는 얘기만 전해질 뿐, 실제로 어떻게 도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다.
그 전인미답의 경지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수가…”
“설마 요리 대회 심사위원 표결에서 만장 일치로 승리하는 것이 조건이었다니.”
요리도 마찬가지지만 엘리시온의 경연 대회는 기본적으로 명장 자격을 획득하는 기회로서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출전 자격도 장인으로 제한된다. 말이 장인이지 그 정도만 되어도 해당 분야에서는 문자 그대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경지. 그런 장인들이 명장의 칭호를 두고 겨루는 것이 바로 경연 대회다.
그런 경연 대회에서, 심사 위원 전원 일치의 판정을 얻어내는 일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선호하는 음식 종류나 좋아하는 맛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심사 위원쯤 되면 저마다 다른 분야의 음식에 대한 식견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해도 좋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서 만장일치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장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들 전부를 압살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아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도 좋다. 차라리 현실에서라면 담합이든 뇌물이든 지저분한 방법을 동원하는 수단이라도 가능하지, 게임 안에서는 그런 것조차 불가능하다.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달인이라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지금 마침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러니 사람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은, 형진이 페이스트리 반죽을 하는 모습을 보고 글렀다고 생각하며 코웃음을 치던 이들이었다.
“말도 안 돼…”
“그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대상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차라리 현재 엘리시온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다. 운영자가 개입해서 일부러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엘리시온의 상황이 어떠한가. 정체불명의 해커에게 털려서 운영진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지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게다가 문제의 해커는 현재 이벤트 던전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니 이런 요리 대회 따위에 손을 쓸 이유도 없다.
공황상태에 빠진 참가자들과는 별개로, 역시나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형진에게 꼬마 공주가 앞으로 나와 트로피를 건네 주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꼬마 공주에게 트로피를 받아드는데 이 당돌한 공주가 손을 놓지 않는다.
“공주님?”
얘가 왜 이러나 싶어 그렇게 묻자, 공주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요리 너어무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
“한 번 더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어요. 부탁드려요.”
“…”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바라보니, 뒤에서 공주의 부모들인 황제와 황후는 역시 우리 공주다 라는 표정으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심사위원들 역시 앞서 먹었던 요리의 맛이 떠올랐는지 군침을 꼴깍 삼킨다.
그 모습을 보고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실 달인 칭호를 얻은 뒤의 효과에 대해서도 궁금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형진은 한 번 더 같은 요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곧바로 시종들이 움직여 단상에 조리대를 설치했다. 그러자 공황상태에 빠져 있던 다른 참가자들이 우르르 단상으로 올라와 한쪽에서 형진의 요리 장면을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럼, 시작할까.”
“네.”
유아의 도움을 받으며 형진은 다시 한 번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인 ‘첫 눈 오는 날’의 조리를 시작했다. 달인 칭호의 효과 때문인지, 앞서 한 번 만들었던 요리의 재탕이라 그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까 아래쪽에서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요리를 창조해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 대단해…”
“역시 달인.”
“뭔가… 손놀림 자체가 다르네.”
본선 참가자들 역시 장인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실력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형진의 요리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저 접시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진행요원한테 두 번 다녀왔었지.”
“하나는 식재료, 하나는 식기의 사용 허가를 받으려고 그랬던 거 아닐까.”
“그러네. 그래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던 거구나.”
실력 있는 장인은 도구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좋은 도구가 있으면 훨씬 효율이 올라가는 건 틀림없는 일이다. 때문에 참가자들인 형진이 사용하는, 일그러진 시간의 돌을 박아 넣은 접시에 눈독을 들였다.
“다 됐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요리가 끝났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형진은 같은 요리를 몇 개 더 만들어 내놓는 배려까지 보여주었고, 덕분에 본선에 남은 다른 참가자들 역시 형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이건…”
“맙소사…”
본선 참가자들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신을 통해 휘몰아치는 감동의 소용돌이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달인의 실력이란 말인가.”
“이래서야… 변명의 여지가 없네.”
모양, 빛깔, 향기, 맛, 그리고 요리에 담긴 이야기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런 일품 요리다. 과연 달인. 이렇게 확인 사살까지 당해 버리면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흠흠. 혹시 황실 요리사가 되어 보고 싶은 생각이 없나.”
그때 문득 황제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형진은 이전에 가공으로 명장의 경지에 올라 황실 조각가로 일한 적이 있다. 이렇게 황실의 직무를 맡게 되면, 달리 허가를 받지 않고도 황궁을 자유로이 출입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명성을 대량 획득할 수 있는 황실 퀘스트 또한 받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상금이나 트로피보다 이쪽이 진짜 상일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만, 달리 맡은 일이 많은지라.”
하지만 형진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해 버렸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 판에 실제 황실도 아니고 게임 안에 존재하는 황실의 일에 얽매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명색이 왕인데 황제 밑에서 요리사 노릇이나 하라니. 받아들였다가는 문자 그대로 나라 망신이다.
“그런가… 아쉽군.”
그때, 다시 꼬마 공주가 끼어들었다.
“아바마마!”
“응? 왜 그러느냐.”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꼬마 공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요리가 완성되면 황실에 가져다가 음… 뭐라고 하더라, 인… 인…”
“인증?”
“그, 그거요. 그걸 받아서 고유 요리로 등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에요.”
“아하. 그거 괜찮은 얘기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매일 그것만 먹으면 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인의 새로운 요리가 완성될 때마다 그것을 시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황실로서는 달인의 새로운 요리를 가장 처음 시식할 기회를 얻으니 좋고, 형진으로서는 고유 요리의 품목을 늘릴 기회를 얻으니 좋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재 치고 도랑 잡는 격이다.
황제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 어떤가, 달인.”
“저로서도 아주 좋은 생각인 듯 여겨집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결정하도록 하지. 허허허.”
그렇게 요리 대회는 끝을 맺었다. 형진과 유아는 황실 가족과 심사위d들에게 예를 취하고는 단상을 내려갔다. 그러자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다른 참가자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 붙으며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길드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저희 길드에…”
“최고의 대우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 길드에…”
“초식으로 생활하시기 힘드시죠? 저희 길드는 최강으로 손꼽히는 육식 길드 가운데 하나로서…”
사실 이들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실력이야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살짝 패배감 때문에 기분도 가라 앉아 있는 판에 이런 식으로 승리자를 스카웃하려고 애쓰고 싶겠는가.
하지만 최초의 달인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맛은 둘째 치고 높은 버프 중첩 효과만으로도 다른 장인급 요리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대단한 가치를 지니게 마련. 더구나 방금 전 요리를 시식했을 때, 참가자들은 미친 듯이 중첩되어 버리는 회복력 증가와 생명력 증가 버프를 보고는 완전히 질려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 모두가 다른 요리나 비약, 아이템 버프 효과와 별개로 적용되는 버프다. 이쯤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어들여야 하는 인재이니 이렇게 자존심이고 뭐고 일단 들이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길드 있습니다.”
“어딥니까?”
어디라고 대답하면 그곳보다 자신들의 길드가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피력할 속셈으로 물은 것이지만,
“타나토노트10 길드입니다.”
“…”
뒤이어 흘러나온 형진의 대답에 참가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화려한 길드 하우스를 장악한 길드이자, 그 일로 인해 벌어진 거점전에서 최강의 길드 중 하나로 손꼽히던 곳을 고작 몇 사람만으로 무참하게 발라버린, 명실상부한 엘리시온 최고의 길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참가자들의 가입 권유를 무력화시켜 버린 형진은 그대로 경연장을 빠져 나가려다, 어쩐지 뒤에서 심상치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 공간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형진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순간 그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황제 옆에 서있던 꼬마 공주였다.
꼬마 공주는 그와 눈이 마주 치자 씩 웃더니 작은 입술을 움직여 이렇게 말했다.
형진은 순간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내 꼬마 공주는 눈빛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킥.”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런 거였나.
형진은 이 남자가 또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아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키득거리며 경연장을 빠져 나갔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