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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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토벌
분신이 요안나와 함께 케빈을 집에 데려다 주는 동안, 형진은 다희에게서 비와 낭만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일단 엄마인 미엘에게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희는 굉장히 영악한 아이에요. 아닌 척 하면서 자기 몫은 확실히 챙긴다고 해야 하나요. 어떻게 보면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아이가 자길 닮았다는 소리가 이렇게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형진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럼 자고 있을 때 몰래 빼낸다든가 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건가.”
미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쉽지 않을 걸요. 비록 아직 아이들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흑요호니까요. 자기 영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반응하죠.”
“영역? 그 애들이?”
“식구들은 가족이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 거에요.”
“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막무가내로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일이고.
난감해 하는 형진의 모습에 미엘은 피식 웃더니 이렇게 조언했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할지도 몰라요.”
“어째서?”
“말했듯이 다희는 영악한 아이에요. 당신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와 승낙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을지 따질 수 있을 정도로. 그래봐야 아직 어린 아이긴 하지만, 다짜고짜 싫다고 울고 그러는 아이는 아니라는 얘기죠.”
“허어…”
형진은 왜 다희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한 건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고작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거래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대단하다고 생각해야 좋은 건가. 솔직히 부모 입장에선 좀 아쉽고 걱정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빨리 큰다는 건 그만큼 독립도 빨라진다는 뜻이니까.
어쩐지 좀 씁쓸한 기분마저 느끼며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당신 말대로 할게.”
“무운을 빌어줄게요.”
“무운?”
“영악한 다희 마왕에게서 비와 낭만님을 무사히 구출하길 빌게요. 용사님.”
“풉.”
형진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내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란히 놓여져 이는 아기 침대에서 자기 꼬리를 안은 채 뒹굴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왜 들어왔는지 목적도 잊은 채 귀여운 아기공주들의 낮잠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의 기척을 알아챈 다희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는 모습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빠아?”
“이런. 우리 공주님, 깼어요?”
“네… 후아아암…”
다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안아달라는 듯이 한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형진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팔을 뻗어 다희를 안아들다가, 초췌한 모습으로 다희의 품에 안겨 있는 비와 낭만의 모습을 발견했다.
정말 신 체면이 말이 아니다. 솔직히 그런 그의 상황을 모른 척 한 것도 있기 때문에 형진은 마음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바늘로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형진은 잠시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다희에게 말을 걸었다.
“다희야.”
“웅? 왜여?”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래?”
“부탁?”
“응.”
“먼데여?”
졸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묻는 다희의 모습에 형진은 한 번 더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와 낭만님 말인데, 잠시 같이 갈 데가 있거든.”
그러자 다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다희도 가면 안대여?”
“어… 그게 좀 위험할 수도 있어서.”
흑요호라고는 해도 아직 태어난지 일년도 안 된 아이들을 허세와 망상이 만든 공간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건 역시 뭔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후아아암…”
자다 깬 탓인지 다희는 다시 한 번 크게 하품을 하고는, 뭔가를 생각하듯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품에 꼭 끌어 안고 있던 비와 낭만을 불쑥 형진에게 내밀었다.
“자요.”
“어?”
아무렇지도 않게 비와 낭만을 건네주는 다희의 모습에 형진은 살짝 놀라버렸다.
“괜찮아?”
“갠차나여. 빠아니까.”
“크으…”
잠이 덜 깨서 고개를 꾸벅거리고 눈은 반쯤 감긴 상태임에도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꼬마 공주의 모습이라니. 형진은 순간 척추를 타고 찌릿하게 올라와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짜릿한 어떤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어야만 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엽고 깜찍한 모습이 또 있을까!
“고맙다. 다희야.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아빠가 다 들어주마.”
“음, 그럼… 뻐뻐?”
“크으윽!”
형진은 연이어 터진 카운터에 정신마저 몽롱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잠시 가슴을 움켜쥔 채 부르르 몸을 떨다가, 간신히 의식을 되찾고는 다희의 부드러운 뺨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갸하하하!”
뺨에 닿는 감촉이 간지러운지 다희는 그렇게 웃다가 이내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형진은 아차 싶은 생각에 얼른 다희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깨워서 미안. 아빠 다녀 올 테니까 푹 자. 알았지?”
“다녀오세여…”
다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내 자신의 꼬리를 안은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어 버렸다. 크윽… 이렇게 귀여울 수도 있다니.
형진은 조금 더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 나왔다.
“성공했어요?”
“응. 우리 다희가 말이지…”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엘의 말에 형진은 자랑스럽게 다희가 이랬네 저랬네 하며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엘은 그런 형진의 모습에 쓴웃음을 삼켰다.
다른 아이가 그랬다면 기특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엘이 아는 다희는 그렇게 순순히 비와 낭만을 넘겨줄 아이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어설프게 조건을 다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더 큰 이득이라는 걸 이해했다는 얘기. 지금 형진의 모습을 보라. 다희의 부탁이라면 간이든 쓸개든 다 뽑아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이쯤 되면 실로 나중이 두려워질 정도의 영악함이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럼 나 잠깐 다녀올게.”
“네.”
어쨌든 비와 낭만의 구출에 성공한 형진은 그를 데리고 엘리시온에 접속했다.
“여긴…”
정말 얼마만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오랫동안 다희의 마수에 사로 잡혀 있던 비와 낭만은 엘리시온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엘리시온입니다. 아…. 물론 진짜 엘리시온은 아니구요. 신이시니까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그럼…”
“허세와 망상이 만들어낸 거짓된 천국입니다. 토너먼트에 쓰인 기술을 응용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아하.”
다른 여신들에게 얼핏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라 비와 낭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
“실은 비와 낭만님께 추종자로 쓸만한 똘똘한 아이 하나를 소개시켜 드릴까 하구요.”
“추종자요?”
지친 표정을 짓고 있던 비와 낭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진과 컨설팅 계약을 맺으면서 각지의 신전에 그의 신상이 들어섰다. 덕분에 신앙의 힘도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는 중이지만, 아직 추종자가 없는 관계로 공헌도는 전혀 모으지 못한 상태. 차라리 다희를 추종자로 만들까 하는 생각도 떠올렸지만, 그렇게 되면 빼도 박도 못 하고 완전히 이 아기 괴수의 소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참이다.
“가, 감사합니다. 흑…”
비와 낭만은 울컥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누가 비를 관장하는 신 아니랄까봐 눈물이 무슨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마침 바깥에 나갔다 돌아오던 승희가 케빈을 데리고 길드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길마님. 혹시 얘 초대하셨어요?”
“아, 그렇지 않아도 늦는다 싶어서 바깥을 살피려던 참인데 잘 되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요.”
케빈은 쭈뼛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른 형진에게 인사를 했다.
“바,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소개를 시켜드리겠습니다.”
“네.”
아까 차안에서는 반말을 했지만, 다른 길원들도 있는 상황이라 형진은 존대를 사용했고 그런 형진의 태도에 케빈은 다시금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비와 낭만은 얼른 형진의 목덜미 근처에 모습을 숨긴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흑인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새카만 피부라든가 반곱슬의 머리카락 같은 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애초에 신에게 있어 외모란 건 어찌 보면 겉껍데기에 불과한 일이니까. 실제로 지금 후원에서 크루그의 지도 아래 스킬 수련에 여념이 없는 왕족들 중에도 흑인이 꽤 많은 편이고, 흑인까지는 아니어도 살빛이 짙은 이들 역시 상당히 많다.
후원에 들어서자 왕족들에게 스킬 수련을 시키고 있던 크루그와 그것을 구경하던 카트린이 그들을 반긴다.
“어쩐 일이에요? 기별도 없이.”
“신입 길드원이 들어와서 소개시켜 주려고.”
“아하. 이 애에요?”
딱 보기에도 귀엽고 깜찍한 카트린이 호기심을 표하자 케빈은 화들짝 놀라며 내외를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크루그의 시선이 가늘어지고 있었지만, 케빈은 미처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카트린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자, 잘 부탁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케빈은 존대를 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크루그의 가늘어졌던 눈이 더더욱 가늘어졌고, 왕족들은 공연히 흠칫 놀라며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비와 낭만님.”
“네?”
“인사 나누세요.”
“…”
케빈은 카트린에게 쩔쩔 매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자그마한 신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 하세요?”
“엣?”
펫인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화가 가능한 펫이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는데.
형진은 어리둥절해 하는 케빈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케빈.”
“네.”
“공포와 죽음이라는 이름을 아나요?”
“그야… 알죠. 당연히.”
얼마 전 형진이 최고급 권한 명령서를 통해 발동한 명령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전파되었다. 당연히 눈앞의 케빈도 그 명령을 들었고.
“그럼 얘기가 쉽겠군요. 여기 계신 분도 그런 신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름은 비와 낭만이시고요.”
“네?”
“참고로, 저희 길드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신을 모시는 추종자입니다. 당신을 이곳에 모신 것은 저희들처럼 신을 모실만한 자질이 있는 분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
케빈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하고, 그렇다고 그대로 믿기도 난감한 그런 얘기 아닌가.
잠시 우왕좌왕하던 케빈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는 형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길드 안에 죽음의 천사도 계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네? 정말요? 어디요?”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형진은 케빈을 바라보며 흑요호의 힘을 개방했다. 화악하고 검은 빛의 날개가 퍼져 나와 그의 등 뒤에 자리 잡자, 케빈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게임 안이라서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네요. 정 믿기 어려우면 직접 찾아가 드릴 수도 있습니다. 케빈군의 집이라면 이미 어딘지 잘 알고 있으니.”
“헉!”
케빈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죽음의 천사라면 확실히 멋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자신을 찾아오는 건 얘기가 전혀 다르다.
“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형진은 겁에 질린 케빈의 모습에 그렇게 말을 이었지만, 그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임무다.]“…”
느닷없이 들려온 공포와 죽음의 목소리에 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케빈의 집에 찾아갔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거나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계시는 어떤 분이 저를 급히 찾으셔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와 낭만님. 잠시 케빈군과 얘기를 나눠보세요. 저는 이 소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추종자는 신의 마음에 들어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케빈군.”
“네.”
“오늘 저녁에 뉴스를 꼭 보세요.”
“네?”
케빈의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형진은 공포와 죽음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곧바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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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