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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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낭원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물론 반대로 괴롭고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며 불안에 떠들던 사람들로서는 이렇게 프로젝트가 떨어져서 그것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그들이 먹었던 음식으로 인해 생긴 한순간의 고양감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랜만에 구조조정이라든가 재취업 같은 일에 골치를 썩이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이건?”
“이벤트 기획입니다.”
“이벤트?”
프로젝트에 대한 것을 전달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획 팀에서 바로 기획안 하나를 올렸다. 빨라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유저 참여 디자인 공모전?”
프리츠의 반문에 팀장은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해킹 사건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업데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시온이라는 게임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의미에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저 스스로 자신이 타고 다닐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기회를 부여하는 겁니다.”
“오오… 그럴 듯 하군.”
“기본적인 컨셉과 아이디어, 그리고 간단한 그림 정도만 첨부된다면,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개발부가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아이디어라는 것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특히나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게임 내의 탈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차후 그렇게 선발된 디자인이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구현된다면, 그것 역시 커다란 이슈를 불러올 수 있을 터.
“게임 내에 UCC 게시판 같은 것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간단하게나마 그림 같은 걸 그릴 수 있는 툴이 제공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좋습니다. 일단 이것에 대해서는 잠시 검토를 해봐야겠습니다. 구체적인 프로모션이 들어가게 되면 다른 부서와의 협조도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프리츠는 이 기획안을 곧바로 형진에게 알렸고, 그는 두 말 없이 바로 그것을 승인했다.
-좋군요. 새로운 경영진이 출범한 시점이니 시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포상 부분에 대해서는 한 가지 내용을 추가 할 필요가 있겠군요.
“어떤 내용입니까.”
-구현된 아이템의 지급은 당연한 거고… 해당 아이템은 일단 게임 안에서는 마탑에서 판매될 예정이니까, 그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지분 형식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마지막에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는 내용, 이 부분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리츠는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보스, 설마…”
-그렇습니다. 기념품으로 실제 구현된 그 물품을 제공하는 거죠. 간단한 시험 비행 행사와 함께.
그 말을 듣는 순간 프리츠는 어떤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맙소사… 세상이 뒤집어 지겠군요.”
-기대 되지 않습니까? 그저 사은품 증정식인 줄 알았던 행사가 세상을 뒤집어 버릴 때의 그 쾌감이.
“하하하하…”
모르긴 해도 그 ‘기념품’들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소장품이 될 것이고, 제작자는 추가 계약으로 해당 제품을 상품화하는 계약을 맺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득을 제작자가 가져가게 될 지는 실제로 제품이 제작되어 판매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모르긴 해도 그것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통과된 기획안은 간단한 그림판 기능이 갖춰진 UCC 게시판의 제작이 완료되는 즉시 공지로 게임 내에 알려졌다.
[공지사항] -안녕하세요.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상향, 엘리시온입니다…
엘리시온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던 유저들은 인게임 공지로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헐?”
“이게 뭐지? 공지사항?”
“설마 해킹 당한거 드디어 복구한건가?”
“어쩌면 해커가 올리는 걸지도 모르지.”
“조용히 해봐. 계속 나온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상향, 엘리시온입니다.
최근 여러 가지 운영상 불미스러운 일로 유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려드립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저희 엘리시온 운영진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저희들은 엘리시온의 운영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던 각종 업데이트의 신속한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운영 정상화에 발맞추어 한 가지 이벤트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엘리시온의 차기 업데이트는 바로 탈것입니다. 탈것도 그냥 탈것이 아니죠. 무려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형 탑승물을 업데이트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비행형 탑승물의 업데이트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5대 마탑을 주축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법은 잘해도 디자인에는 영 실력이 없다네요.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마법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환상적인 탈것! 여러분이 직접 디자인해 보세요!
-유저 메뉴를 살펴보시면 새로운 기능인 UCC 게시판이 있을 겁니다. 여기에 말머리로 [공모전]을 선택하신 후, 여러분이 상상하신 탈것을 간단한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세요.
-아, 물론 생물은 제외하고요. 어디까지나 마법으로 만든 탈것으로만. 한두 명 정도 탈 수 있는 사이즈로. 뭔가 제한 사항이 참 많네요. 어쩔 수 없어요. 마법사들의 능력도 생각을 해줘야죠.
“이게 뭐야?”
“공모전이라고?”
“비행형 탑승물이라니. 그럼 막 하늘도 날고 그럴 수 있다는 건가?”
한동안 운영 관련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 게임이 망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공지에 환호했다.
“어쩐지… 이벤트 던전이 갑자기 끝나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래서였나.”
“아깝다. 결국 보스는 못잡고 끝났잖아.”
“그러게. 전설 세트를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이벤트 보스를 못 잡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게임이 정상화 되었다는 사실에 더 무게를 두었다.
당연히 이 소식은 바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엘리시온 정상화. XX일 만의 서버 복구. 기념 이벤트 실시… 신났군.”
“덕분에 주가도 꽤 올랐대요.”
요안나가 건네주는 커피잔을 받아들며 형진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렸다. 사실 주가 같은 건 별로 신경 쓸 만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자기 명의의 재산이 늘어났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 사고 자체가 조작일지도 모른다고 떠드는 사람은 없어?”
“해커와 새로운 경영진이 뭔가 빅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은 있었어요.”
“경영진 여러분께서 좀 당황스러우시겠군.”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재무제표 외에 다른 부분, 특히 게임 제작 쪽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래서야 어디 경영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애초에 엘리시온을 제외한 대내외적인 귀찮은 일을 맡기려고 선임한 경영진인 것도 사실이다. 당장 사원들 월급이나 게임 내에 포함된 컨텐츠들의 정산, 광고 유치 같은 일 같은 것만 해도 어딘가. 게임 회사라고 해서 게임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니 그들의 역할도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래서 흑막이란 건 참 무서운 것 같아.”
“그런가요.”
그동안 푹 쉬었던 개발진들은 물론이고, 엘리시온의 운영 정상화를 기뻐하는 유저들로부터도 갖가지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꽤 괜찮은데, 어딘가의 여왕님 같은 유모가 쓰고 다니는 우산 같아.”
“코스튬과 한 세트인건가요?”
“비행할 때만 모습이 바뀌는 컨셉인 모양이야.”
그렇게 쏟아져 나온 디자인들은 곧바로 미엘의 손을 거쳐 시험 생산된 후 왕성 라이언하트에서 형진이 직접 아바타를 사용해 시험 비행을 해보았다. 일단 양산 전에 게임 안에서 유저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게임에 적용하기 전에도 시험은 필요했다.
“와… 신기하네요. 이게 뭐죠?”
“또 뭔가 새로운 걸 만드신 겁니까?”
막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프리이와 기젤이 우산을 든 채 신사복 차림으로 유유히 하늘을 나는 형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일단 조심스럽게 지면에 내려선 다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비행형 장비를 만들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하.”
어쩐지 기젤이 쓰고 있는 외알 안경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쩐지 시험해 보라고 권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묘한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한 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기회를 주신다면 크나큰 영광일 겁니다.”
“그럼… 여기.”
시험 전에 우선 보호와 균형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일이 끝나고 나서야 기젤은 비로소 우산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전신에 말쑥한 신사복이 입혀졌고 동시에 머리와 손목, 발목 등에 빛나는 띠 같은 것이 생겨난다. 모양은 바뀌었어도 기본적인 컨트롤 방식은 바뀌지 않은 탓이다.
“어떻게 조작하면 됩니까.”
“음… 이 제품의 경우엔 하늘을 산책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느낌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산책하는 느낌… 알겠습니다.”
기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원래부터도 신사의 표본 같았던 그인지라 하늘을 나는 모습이 상당히 멋지다.
“빠앗!”
“어이쿠, 우리 공주님들 오셨어요?”
“꺄하하하!”
그때 형진의 아기 공주 일곱이 우르르 몰려왔다. 잠시 아빠의 몸에 매달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정기를 만끽하던 아기 공주들은 우산을 들고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기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빠아! 저게 머에여?”
“음… 날아다니는 우산?”
“우산이 왜 날아다녀여?”
“어, 그러니까…”
가끔 아기들의 질문은 대답하기가 영 애매한 경우가 있다. 뭔가 허를 찔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형진이 그렇게 버벅거리고 있자니, 문득 어디선가 서로 꼭 닮은 쌍둥이 두 명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형진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닿자 아이들은 손을 맞잡고 요정 메이드들이 하는 배꼽 인사를 해 보였다.
“응? 이 아이들은…”
형진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미엘이 조심스럽게 알려준다.
“아란님의 아이들이에요.”
“아…”
형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이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란웰에서 살았을 때조차도 아이들과는 접촉을 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뭔가 아란도 자신도 은연중에 아이들과 접촉하는 일을 피해왔다고나 할까. 사실 멀리서 얼굴 정도는 본 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 아이들은 아주 잠깐 동안 옆집에 살았던 아저씨의 얼굴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아란은 임무를 수행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 아이들끼리 요정이랑 놀다가 아기들을 발견하고는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 아닐까.
“귀엽구나. 이름이 뭐지?”
“아저씨는요?”
“응? 나?”
“누군가의 이름을 물을 때는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예의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형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웃으며 답했다.
“내 이름은 진이라고 한다. 이제 됐니?”
“네. 제 이름은 니샤에요.”
“전 니야.”
“좋은 이름이구나. 어느 쪽이 형이지?”
그 말에 쌍둥이들은 킥 하고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누나고, 니야는 남동생이에요.”
“아하.”
아란을 상당히 많이 닮은 데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성별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녀가 이 아이들을 애지중지하면서 밖에 잘 내보내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제대로 된 치안 병력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이방인들의 눈에 들기라도 하면 자칫 큰일이 날 수도 있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어떻게 보면 이렇게 왕성 안을 열심히 쏘다니고 있는 것도 그런 식으로 아란이 외출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이곳에서라면 요정 메이드나 토끼들도 항상 붙어있고, 이방인이라고 해봐야 자신과 같은 지부장급 집행자들이 전부니까. 물론 어딘가의 변태씨라는 아주 위험한 존재가 있기는 해도.
그렇게 아란의 아이들과 친분을 다지고 있는데, 문득 공포와 죽음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긴급 사태다.] “네?”[아란이 위험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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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그럼 또 내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