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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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확장
이제 어지간히 미디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늘’호의 여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들르는 곳마다 이슈를 몰고 다니고, 그때마다 ‘하늘’호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느끼며 환호했다.
몇몇 언론들은 ‘하늘’호의 이번 여정이 몰고 온 경제 효과를 추산하다가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현실감이 없는 숫자는 물론이고,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침체되었던 엘리시온은 새로운 신규 가입자들은 물론이고, 기존에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 또한 다시 복귀하며 마을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진풍경이 이루어졌다. 호버 보드나 포션 같은 것을 살펴보며 그것이 실제로 현실에서 상용화되었을 때를 대비하고자 시험 삼아 접속했던 사람들이, 엘리시온이 지닌 현실감에 도취되어 밤을 새고 게임에 몰두하는 일이 시시각각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라지 코어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상종가를 쳤다. 당연한 일이다. 사겠다는 사람은 계속 나오는데, 아무도 팔지 않으니 계속해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미라지 코어의 주가가 아직도 저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보통은 이런 식의 분석이 나오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품지 않고 있었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그러게요.”
미라지 코어의 전체 주식 가운데 과반이 넘는 분량을 보유한 형진과 요안나는 며칠 사이에 돈벼락을 맞았다. 무서운 것은 이런 상승세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 과연 언제쯤 주가가 조정 국면에 들어설지, 아니 들어서기는 할지조차 의문이다.
그렇게 세계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하늘’호는 흑해를 거슬러 올라가 크림반도로부터 북상해 모스크바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스크바에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하늘’호에 오르기를 기대하며 대기하는 중이다.
“도대체 저게 몇 명이야?”
“못해도 백명은 될 것 같아요.”
“헐… 나라 큰 걸 이런 식으로 과시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사실 터키와 비교해도 러시아가 준비한 인원은 과도하게 많았다. 인구수로만 따져 봐도, 러시아의 인구는 터키의 두 배에 못 미치는 수준이니까.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의 메시지에요.”
“뭐래?”
“땅이 넓어서 아이들을 모으느라 힘들었다네요. 불러온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들여 달라고.”
“헐?”
“그리고 뒤에 한 마디 덧붙여 놨네요.”
“뭐라고?”
“화가 나도 천벌은 내리지 말아달래요.”
“…”
형진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천벌. 그것은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명백하게 죽음의 천사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그 단어를 지금 상황에서 썼다는 것은, 러시아가 미라지 코어와 죽음의 천사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야 지금까지 드러난 기술을 보더라도 그런 의심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외계인을 고문했네 어쩌네 하는 식의 농담을 하긴 해도, 지금 드러난 기술들은 그런 식의 외부 개입을 논외로 치면 도무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그런 식의 추론을 하기 시작하면 현재도 지구 여기저기서 범죄자를 처단하고 있는 집행자들이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흥. 넘겨짚기는.”
사실 러시아 정부가 어떤 증거가 있어서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다. 증거가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떠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왔을 테니까.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무리 하늘호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어도,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무리에요.”
“흠… 어쩐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프리츠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보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말해 봐.”[아이들과 승객 중 일부가 이쯤에서 내리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뭐?”
형진과 요안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이유가 뭔데?”
[아이들은… 이미 포션을 먹었으니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싶다고 하고 있고, 몇몇 승객들 역시 충분히 즐겼다면서 이만 내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허… 사람들 참…”
프리츠와 형진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요안나는 다시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형진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의 새로운 메시지에요. 만약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다면, 러시아의 이름을 걸고 내린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한 다음, 원래 살고 있는 장소로 안전하게 보내주겠대요.”
형진은 그 말을 듣고는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아주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난리네.”
“…”
요안나는 그런 형진의 모습에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다 알아채 버린 것이다.
“요안나.”
“네.”
“그런 표정으로 웃지마. 기분 나빠.”
“그런가요?”
“그래. 벌을 주고 싶어질 만큼.”
형진이 그렇게 으르렁대며 말했지만, 요안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의 당신이 내리는 벌이라면 기꺼이 받을게요.”
“쳇. 말이나 못하면.”
결국 투덜대던 형진은 명령을 내렸다.
“람. ‘세연’호 비우고 이리 넘어와.”
“네? 하지만…”
“얼른 못 와!”
“아, 알겠습니다. 왕이시여.”
“올 때 깨끗이 청소하는 거 잊지 말고.”
“네…”
곧바로 ‘세연’호를 장악한 채 흥청망청 놀고 있던 요정들은 투덜거리며 ‘이슬’호로 넘어왔고, 배가 비워지자 형진은 지금껏 모습을 감춘 해 항해 중이던 ‘세연’호의 모습을 마침내 모스크바 상공에 드러냈다.
“어?”
“저, 저, 저건!”
혹시라도 미라지 코어에서 거절하면 어쩌나 싶어 안절부절 하던 아이의 부모들은 물론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전 세계의 사람들은 흐린 모스크바 상공에서 갑자기 한줄기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또 한 척의 새하얀 범선을 보고는 얼이 빠졌다.
“맙소사! 지금까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세계는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혀 버렸다. 당연히 ‘하늘’호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갑자기 영문 모를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하늘’호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레이더와 위성을 비롯한 각종 탐지 장비로 그 경로와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국가도, ‘하늘’호의 근처에 또 다른 배가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청… 나군.”
러시아 대통령은 고작 그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스텔스? 그런 것은 비교할 수도 없다. 스텔스는 어디까지나 레이더에 대한 피탐지율을 줄이는 기술이지, 아예 모습을 감추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위성이나 적외선부터 시작해서 자기 탐지기 등 수많은 기기들이 ‘하늘’호 주위를 탐지하고 있었고, 그 어떤 것도 이 새로운 범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바꿔 말하면.
“또다른 무언가가 저 하늘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인가.”
러시아 대통령의 그 말에, 옆에 있던 측근이 조심스럽게 한 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어쩌면… 엘리시온의 서버가 있는 장소도…”
“과연. 그런 거였군.”
그런 거라면 확실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치를 들키지 않은 채 서버를 숨겨둘 수 있다. 물론 틀린 추론이긴 하지만, 이것만큼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추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백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돌보기 위한 의료진들은 모두의 환호 속에 ‘세연’호에 탑승했고, 두 척의 범선은 유유히 하늘을 가로지르며 북극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러시아 대통령은 멀어져 가는 두 척의 하얀 범선을 바라보며 측근에게 말했다.
“미라지 코어에 전하도록.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함께 차를 나누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형진은 그즈음 요안나에게 열심히 벌을 주느라 그 메시지를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뒤늦게 그 메시지를 전해 받고는 펄쩍 뛰었다.
“농담이지? 방사능 홍차 따위 즐기는 취미는 없다고!”
“쿡!”
물론 그 대답은 전해지지 못했다.
이제 두 척의 범선은 뱃머리를 나란히 한 채 북극에 접어들었다. 배에 타기가 무섭게 포션부터 마신 아이들은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북극의 오로라를 지켜보았다.
북극 주위를 돌며 잠시 그렇게 아름다운 오로라를 감상하던 두 척의 범선은, 예정했던 대로 다시 남하를 시작했다.
베링해를 거쳐 캄차카 반도와 홋카이도에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아이들 좀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져 왔다.
“이럴 때만 아주 죽이 척척 맞네.”
“그러게요.”
일본은 열한 명, 한국은 아홉 명, 북한은 무려 스물두 명이다. 계산해 보니 적당히 나누어 태우면 ‘하늘’호와 ‘세연’호에 충분히 탑승시킬 수 있는 숫자다.
“앞으로가 문제네요.”
“뭐… 정 안되면 방 하나에 몇 명씩 끼워 넣으면 되는 거지. 연회장에도 이불 깔아 놓고 재우고. 어차피 침대도 가지고 올라오니 상관없나.”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아직 조립중인 ‘사랑’호를 가져올 수도 없잖아. 게다가 이렇게 꾸역꾸역 아이들을 들이민 책임도 있으니 그 정도는 참으라고 해야지.”
아무리 아이들이 불쌍해도 ‘이슬’호까지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진도 그렇게까지 자비심이 넘치진 않는다. 사실 팀마다 제공되는 스위트룸이라면 열 명 정도는 끼어들어가 자도 공간이 넉넉하다 못해 충분한 수준이기도 하고.
형진은 도쿄와 서울을 들러 차례로 아이들을 태우고는 평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탑승대를 내리자, 침대에 누운 아이들과 의료진들이 그곳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다른 나라에서 거쳐왔던 과정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손들어! 모두 꼼짝 마!”
“헉!”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의료진들이 갑자기 총기를 꺼내들고는 탑승을 돕고 있던 승객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그 광경은 곧바로 전세계에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고 말았다.
“저 미친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졸린 눈으로 지켜보던 미국 대통령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훗.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차를 마시고 있던 러시아 대통령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얼씨구?”
물론 두 척의 머리 위에 떠있는 ‘이슬’호에서 승선 장면을 지켜보던 형진 또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버린다.
“어서 착륙시켜라! 빨랑 움직이지 못 해! 다 죽여야 말을 듣겠나?”
아마도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총으로 승객들을 위협하며 그렇게 외치자, 프리츠가 느긋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참…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정말로 실행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닥쳐! 얼른 착륙시키라 하지 않았나!”
“아, 그러십니까.”
흰 가운을 입은 지휘관은 다시금 그렇게 소리를 쳤지만, 프리츠는 일순 모습을 감추더니 갑자기 지휘관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턱을 올려쳤다.
“컥! 어어? 으아아아악!”
지휘관은 각종 격투기에 숙련된 인물이었고, 갑작스럽게 프리츠가 기습을 가했음에도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해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프리츠의 주먹으로부터 터져 나온 강렬한 바람에 휩쓸리며 선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원래대로라면 그런 식으로 배에서 떨어질 경우 어느 시점에서 둥실 떠오르며 다시 배안으로 돌아와야 옳다. 하지만 지휘관에게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대로 콘크리트가 깔린 광장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지휘관은 뼈가 뒤틀리고 살이 짓이겨지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탕!
그것을 목격한 간호사 하나가 프리츠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프리츠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그의 능력으로는 총알을 피하는 것이 무리였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았다.
툭! 데구르르…
프리츠의 등에 맞은 탄환은 힘없이 튕겨지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이건…”
프리츠는 자신에게 총을 쏜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알아서 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내리게 해드릴까요.”
“…”
그가 말을 꺼내는 순간, ‘하늘’호와 ‘세연’호는 천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척의 범선을 대신해 또다른 한 척의 범선이 하늘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며 주석궁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형진이 타고 있는 ‘이슬’호는 다른 두 척의 배와 명백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비무장인 다른 두 척의 배와는 달리, ‘이슬’호는 명백하게 무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차이였다.
곧바로 주석궁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화기들이 ‘이슬’호를 향해 발사되기 시작한다. 미사일과 기관포 세례가 마치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아로새기며 날아들었지만, ‘이슬’호는 그 모든 공격을 무시한 채 주석궁 위에 자리 잡았고, 차가운 형진의 명령이 뒤를 이었다.
“집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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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