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73
00573 130. 대결 =========================
화아악!
라이언하트가 극성으로 발동하며 몸 주위에 돌풍이 일어난다. 온통 검은 빛으로 물들어 무채색으로 빛나는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 오직 한 사람만이 색이라는 것을 몸에 지닌 채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신성력을 품은 채 전신을 감도는 회오리는 이 세계의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작게 폭발하고 있었다. 타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주위에서 피어나는 금빛 회오리와 다채로운 불꽃의 향연은, 해골 병사들에게 포위된 채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던 그림자 종족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퍽!
형진의 손이 미친 듯이 발광하는 해골 병사를 가리키자, 어김없이 폭음과 함께 약점을 파괴당하고 한줌의 먼지로 변화한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를 그렇게 쓰러뜨린 형진은 폭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해골 병사들의 방진으로 뛰어들었다.
캬아아아아!
눈구멍에서 붉은 불길을 뿜어내는 해골 병사가 형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길게 휘어진 만도를 휘두른다. 비록 통제를 잃어 폭주하는 상태이긴 했어도 살의를 있는 대로 뿜어내는 그 공격은 충분히 위력적이어서, 어지간한 상대는 단숨에 반토막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라이언하트를 극성으로 펼친 형진의 눈에는 그런 살벌한 해골 병사의 공격 따위 허우적거리는 춤사위나 마찬가지.
영혼포식자는 권총에서 봉의 형태로 변화하며 해골 병사의 만도를 후려쳤다.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강력한 물리력에 만도는 방향을 잃고 튕겨져 나갔으며, 동시에 그 안에 스며있던 신의 힘이 작용하며 내부로부터 파괴해 버렸다.
순식간에 무기를 잃어버린 해골 병사의 반동으로 인해 치켜올려지자, 영혼포식자는 다시 채찍의 모양으로 변화하며 놈의 품 안쪽에 위치한 약점을 정확히 찔러 버린다.
와르르.
찰나의 순간 해골 병사 하나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린다.
하나로 뭉쳐 단합되어 있는 군대라면 몰라도, 단일 개체로서 형진에게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그것은 지금 폭주하고 있는 해골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
형진의 난입과 함께 상황이 급반전을 이루자, 그림자들은 자신들을 뒤얽어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그물을 찢고 나와 폭주하는 해골 병사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조직을 갖추지 못해 병진을 이룬 해골 병사들에게 대응하기 힘들었을 뿐, 그림자 종족들 개개인의 전투력은 오히려 해골 병사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지금처럼 폭주하며 미쳐 날뛰는 해골 병사들과의 난전은 오히려 그들의 전투 스타일에 최적화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포위망이 붕괴되며 해골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사냥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림자 종족들은 예의 낙엽 굴러가는 듯한 소리를 연신 외치며 해골 병사들을 박살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도 금빛 회오리로 몸을 감싼 채 해골 병사들을 때려잡고 있는 형진의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색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바로 불태워 버려야할 매우 불길한 것. 하지만 그림자 종족 가운데 누구도 감히 형진에게 접근하여 그같은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은연중에, 형진이 자신들을 초월한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형진과 그림자 종족 사이에 낀 해골 병사들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궤멸 당하고 말았다. 잠시나마 그림자 종족을 모조리 포획할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얼핏 허무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전투가 끝났어도,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형진의 존재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림자 종족들로서는 노예사냥에 저항해 싸우는 와중에 갑자기 마왕 같은 존재가 툭 튀어나와 자신을 구출해 준 듯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구해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두렵고 무서워서 감히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형진으로서도 그러한 상황은 어렵지 않게 이해했기 때문에 그냥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고자 했다. 단순히 파괴와 재생의 손길이 닿은 것 뿐인지, 아니면 놈의 근거지가 이 근처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파괴된 해골들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자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인 세계에서라면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을 사냥개의 코장식이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군대 규모의 해골 들이 움직였으니 흔적이 남아 있기야 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그것을 되짚어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사냥개의 코장식이 너무 우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던 탓에 다른 추적 기술을 익히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형진은 자신을 잔뜩 경계하고 있는 그림자 종족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사냥감을 추적하던 모습이라던가, 느닷없이 무인기를 격추해 버리던 모습 같은 것이 떠오른 탓이다.
“혹시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나?”
밑져야 본전. 안 통하면 마는 거고, 통하면 적당히 구슬려서 길 안내를 받으면 되는 일이고.
형진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흘러나오자, 그림자 종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다른 그림자 종족들에 비해 커다란 몸집을 한 존재 하나가 앞으로 나오더니 스아아아 거리며 손짓 발짓을 하기 시작한다. 넷이나 되는 팔로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좀 웃기다.
“안다고?”
스하아아…
“맞으면, 음… 머리를 이런 식으로 끄덕여 봐.”
스하아아…
역시 반신의 위계에 오른 값은 하는 모양이다. 반쪽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인지 그림자가 어색하고 느릿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만.”
형진은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는 품에서 휴대용 위성 발사기를 꺼내고는 그것을 사용했다. 그러나 다섯 개의 인공 위성이 둥실 떠오른다.
“부수지 마.”
그림자 종족은 그의 손으로부터 둥그런 공 같은 것이 흘러나와 공중으로 둥실 떠올라 가기 시작하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형진이 그렇게 엄포를 놓자 머뭇거리며 그것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위성들은 곧바로 주변 지역의 정보를 형진에게 보내주기 시작했다. 현재 위치한 곳의 대략적인 지형을 파악하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근처 지역의 평면적인 지형도를 눈앞에 띄웠다.
스하아아! 스아아아아!
갑자기 눈앞에 지형도가 홀로그램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림자 종족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놀랄 것 없어. 이건 근처의 땅을 간단하게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 이곳이 우리가 있는 장소. 그렇다면 해골들이 온 방향은 어느 쪽이지?”
다시 그림자 종족들이 웅성거리며 자기들끼리 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섰던 그림자 종족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지도와 형진을 번갈아 보며 뭔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뒤쪽을 바라보며 뭐라 소리치고는 지도의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림자 종족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형진은 눈앞의 그림자가 가리킨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그쯤인가. 알려 줘서 고맙다. 그럼 난 이만.”
그리고는 지도를 지우고 그림자가 알려준 장소를 향해 움직이려 했다. 그림자 종족들은 그렇게 떠나가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섰던 그림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형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뭐야? 뭔가 할 말이라도?”
그림자는 스하아아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안내라도 해주려고?”
그러자 그림자는 다시 한 번 스하아아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뭘까. 은혜라도 갚겠다 이건가.
“흠…”
하지만 역시 별로 내키지 않는다. 선의라는 건 알고 있어도, 역시 좀 꺼림칙한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고 은밀한 것도 사실이고.
“마음은 고맙지만 난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그럼.”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호버 보드를 활성화시켜 하늘로 떠올랐다. 그림자 종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난리가 났지만, 이제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하지만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났다. 앞으로 나섰던 그림자가 갑자기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다른 그림자 종족들은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이 녀석 혼자의 행동인 듯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녀석의 이동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호버 보드를 탄 형진과 비교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차피 그래봐야 얼마 못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겠거니 했다. 이쪽 세계라고 해도 저런 식의 전력질주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저런 그림자 종족들이 이동 스킬 같은 걸 익혔을 리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끈질기게 계속 그를 쫓아왔고, 결국 해골 병사의 주둔지로 보이는 흔적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질주는 계속 이어졌다.
이쯤 되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체력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다.
“이름이 뭐냐?”
역시나 지쳤던 모양인지 형진이 멈춰 서자 근처까지 다가와 헉헉거리며 널브러지듯 바닥을 구르는 녀석을 보며 그렇게 말을 걸어 보았다.
스하아아…
물론 녀석의 대답은 아주 일관된 것이었다. 하긴 뭐 다른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다만.
“원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스하라고 밖에 들리지 않으니 일단은 그 이름으로 부르겠다. 괜찮지?”
스하아아…
대답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괜찮다는 의미인 것 같다.
형진은 그렇게 스하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위성을 이용해 주둔지로 보이는 장소를 살폈다. 그곳은 의외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딱 봐도 목책인지 뭔지 모를 벽을 둘러 세우고 시설을 갖춰둔 모양새가 제법 그럴 듯 하다.
앞서의 전투에서 꽤 많은 해골들을 처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둔지 안쪽에는 꽤 많은 해골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식은 아니고,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양새가 마치 장식품처럼 느껴질 정도. 하지만 모습은 그래도 지휘관에게서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다시 병사로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저런 병사들을 저렇게 쌓아두고 있으면, 다른 건 몰라도 식량 보급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보급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병력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가만히 위성을 통해 지켜보고 있자니, 주둔지 안에 자리잡은 천막으로부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전신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는 날렵한 체구의 그 인물은 근처에 지어져 있는 허름한 막사로 곧장 모습을 감추었다.
형진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사실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앞서의 전투를 비롯해, 현재의 상황을 종합하면 애초에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형진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그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 스하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괜히 소란피우지 말고. 다시 부를 테니까. 괜히 소란 피우고 그러면 너부터 처치해 버릴 거다. 알았어?”
그러자 스하는 잠시 망설이더니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진은 그런 그림자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버릇처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버리고 말았다.
뭐랄까. 감촉이 참 미묘하다. 차갑긴 한데 물과는 다르고, 닿는 순간 뭔가 파지직거리는 느낌이 꼭 정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스하는 그의 손이 머리에 닿자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나쁜 의미는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음… 친밀감의 표시랄까.”
스하는 별로 믿기지 않는지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지만, 형진은 그런 녀석에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이내 모습을 감추고 해골들의 주둔지로 향했다.
얼핏 돌아보니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당황한 스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경고를 했으니 소란을 피우지는 않겠지. 사실 소란을 피워도 딱히 상관은 없다. 놈이 소란을 피워주면 지휘관을 구분하기가 그만큼 더 쉬워질 테니까.
============================ 작품 후기 ============================
두편째.
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