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93
00593 134. 돌격! =========================
조개는 원래 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이유는 해감 때문인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몇 시간은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는 존재한다.
형진은 여자들이 왁자지껄한 수다소리와 함께 샤워장으로 향하자, 조개를 담은 대야로 다가가 그 안에 식초를 조금 떨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이내 뽀글거리는 기포와 함께 조개들이 몸 안에 머금고 있던 불순물을 내뱉기 시작한다.
해감은 기본적으로 요리하고자 하는 조개가 사는 환경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조개가 사는 바닷물이 가장 최적. 뚜껑을 덮어 어둡게 만들어 주는 것도 결국 이와 같은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조개에게 자극을 가해 뻘이나 모래를 토해내도록 만든다. 식초나 구리 같은 금속을 넣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인데, 특히 식초를 넣으면 물이 약산성으로 변하며 조개껍질을 구성하는 탄산칼슘과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게 된다. 즉, 뽀글거리는 기포는 조개가 호흡하면서 내뿜는 것이 아니라, 식초와 조개껍질의 탄산칼슘이 반응하여 생성된 이산화탄소인 셈이다.
식초는 약산성인데다, 투입한 양도 얼마 되지 않으므로 조개가 죽을 정도의 자극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개도 생명인 이상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숨을 쉬는 동안에 내부로 들어간 바닷물이 조개껍질 안쪽에서 반응을 일으켜 생겨난 이산화탄소가 문제다. 조개는 껍질 안에 들어찬 이산화탄소를 뱉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숨을 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해감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형진은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자 일단 대야 위를 검은 천으로 덮어 그대로 놔두었다. 아무리 식초를 넣었어도 해감이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여신들이 샤워를 마치기 전까지 다른 재료들의 준비를 마치고 애피타이저를 만들기로 했다.
신선한 야채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다음 간단한 소스를 뿌려 샐러드를 만든다. 그 다음은 수프 만들기. 모처럼이니 조갯살이 듬뿍 들어간 클램 차우더를 만들기로 한다. 여신들이 잡아온 조개를 쓰면 좋겠지만, 해감에 시간이 걸리니 수프는 그냥 이전에 마련해둔 조개를 쓰기로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해감이 끝난 조개를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중불에서 살짝 끓여 국물을 내는 것. 국물을 우리는 동안 야채와 베이컨을 잘게 썰어 두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조개를 건져내서 잘게 썰어 와인에 재워두고 국물은 면보에 걸러 맑은 육수를 낸다. 이것으로 기본적인 재료의 준비는 끝. 이제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이다.
우선 팬에 버터를 두른 다음 베이컨을 익힌다. 그렇게 잘 볶다가, 바삭하게 익었을 즈음 건져 내고 베이컨에서 나온 기름과 버터의 풍미가 그대로 남아 있는 팬에 잘 안 익는 야채부터 차례대로 넣어서 달달 볶는다. 그렇게 모든 야채를 볶는 일이 끝나면 조개 육수를 넣어 주고는 야채가 뭉개지는 느낌이 날 때까지 푹 끓인다. 이때 취향에 맞게 허브를 약간 넣어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나는데, 형진은 월계수 잎과 오레가노를 넣어 주었다.
야채가 완전히 익으면, 이제 와인에 재워둔 조갯살과 생크림, 우유를 넣어 5분쯤 약한 불에 끓이다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으음… 좋은 냄새. 뭐에요?”
샤워를 먼저 마친 아름이가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다가와 묻는다.
“클램 차우더입니다. 조개 육수로 끓인 미국식 수프라고 하면 되겠군요.”
“냄새가 너무 좋아요.”
“금방 끝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잠시 기다리자 마눌들이 여신들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화덕 주위의 테이블로 모여든다. 형진은 그들이 도착하자 사워도우 빵의 위쪽을 썰고 안을 파낸 다음, 뜨끈한 클램 차우더를 한 국자씩 퍼 담는다. 여기에 파낸 빵과 앞서 볶았던 베이컨을 잘게 썰어 토핑으로 얹으면, 클램 차우더와 사워도우 빵으로 만든 빠네 스프가 완성된다.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십시오.”
“감사히 먹겠습니다!”
막 만들어 따뜻한 빠네 스프. 여기에 싱싱함이 살아있는 샐러드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다.
머리가 살짝 젖은 채 살짝 상기된 표정의 미녀들이 호호 불어가며 따뜻한 스프를 먹는 모습에 형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이 그렇게 애피타이저를 즐기는 동안, 형진은 대야를 덮어 두었던 천을 걷고는 해감이 된 조개를 건져 내어 찬물에 바락바락 씻기 시작한다. 요안나의 말대로 한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탓인지, 조개들이 죄다 주먹만 하다.
몇 번에 걸쳐 더 이상 구정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박박 씻어낸 다음, 화덕에 철망을 덮고 그 위에서 직접 조개를 굽기 시작했다.
“와아!”
“조개다!”
스프를 담은 사워도우 빵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속 있던 여신들은 철망 위에서 조개들이 구워지기 시작하자 탄성을 터뜨렸다.
“알이 상당히 굵네요. 여신님들이 힘들게 캐오신 조개들이니 최선을 다해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화덕에 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조개들의 입이 떡떡 벌어지기 시작한다. 형진은 입이 벌어진 조개들 가운데 큰 놈들을 일단 집어내서 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고 내장을 빼낸 다음 다시 껍데기에 살을 담고 와인을 살짝 뿌렸다. 여기에 고추와 양파, 버터 조각을 얹고 칠리소스를 살짝 뿌려 다시 화덕에 올린다.
화덕에 올리자 보글거리며 조개 육수가 끓기 시작하더니 버터와 어우러져 주위를 향긋한 냄새로 가득 채워버린다.
“아우…”
눈앞에서 보글거리며 익어가는 조개 버터 구이의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여배우답게 우아한 모습으로 자기 몫의 스프를 맛보고 있던 희망과 생명은 그런 동료 여신의 모습에 혀를 찼다.
“너 어디 가서 여신이라고 하지 마. 누가 보면 한 열흘은 굶은 줄 알겠다.”
“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걸.”
“어휴. 내가 못 살아.”
형진은 그런 여신들의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뭐랄까. 음식 하나를 먹어도 성격이 바로 드러난달까. 보호와 균형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홀딱 빠져서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쪽이고, 희망과 생명은 조금씩 음미하며 아껴 먹는 쪽이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아마도 희망과 생명은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먹는 쪽이리라.
아무래도 더 이상 놔뒀다가는 정말로 침이 흐를 기세라 형진은 크기가 작은 조개들을 집게로 잡아 접시에 담아 주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네!”
눈독을 들이고 있는 버터 구이는 아니지만, 잘 구워진 조개가 눈앞에 놓여지자 보호와 균형은 얼른 포크와 집게를 써서 솜씨 좋게 살을 발라내고는 소스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후! 하후흐!”
“킥킥.”
하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역시나 뜨거워서 혀를 데고 말았다. 희망과 생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녀에게 회복을 걸어주었고, 보호와 균형은 눈물을 찔끔 흘리고 나서야 비로소 조개 구이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딱히 특별한 요리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니고, 그냥 해감을 시켜서 불에 굽기만 했을 뿐인데도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보호와 균형의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조심스럽게 살을 발라서 호호 불어 식힌 다음 소스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매콤한 칠리 소스부터 시작해서, 한국적인 초장에 이르기까지. 소스 또한 취향에 맞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다.
“음, 맛있어요.”
“굽는 사람의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걸까. 예전에 먹었던 조개구이랑은 어쩐지 맛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새름의 말에 이어 이번엔 아름이 묻는다.
“저도 요리를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뭔가 비법이라도 있나요?”
“흠… 비법이라.”
형진은 조개를 손질하며 대답했다.
“우선, 양념은 설탕, 소금, 식초, 간장의 순서. 이것만 외우고 있어도 기본은 됩니다.”
“이유가 있나요?”
“소금은 재료 내의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때문에 먼저 소금을 뿌리면 설탕 같은 다른 조미료의 맛이 재료에 배어들지 못하게 되죠. 식초나 간장은 오래 가열되면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마지막에 넣는 것이 좋습니다.”
“아하.”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집게를 써서 완성된 버터 구이를 각자의 접시에 올려 놓았다.
“와아…”
그냥 굽기만 한 조개와는 풍미 자체가 다르다. 자르르 녹아내린 버터의 향기가 시원한 조개 육수와 어우러진 그 향기라니.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여신들은 포크로 조심스럽게 껍질 안에서 노릇하게 익은 조갯살을 떠내 입으로 가져갔다.
“우으으음!”
“아우으으으…”
쫄깃한 조갯살이 입안에서 씹히는 순간, 맛의 향연이 파도치듯 밀려든다. 여신들은 물론이고 쌍둥이 자매와 마눌들까지도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떻습니까.”
형진이 웃으며 묻자, 잠시 바둥거리며 아무 말도 못하던 그녀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맛있어요!”
“그렇습니까.”
흐뭇한 표정으로 형진은 다시 조개들을 화덕에 올렸다. 이번엔 피망과 양송이를 곁들이고 여기에 모짜렐라 치즈를 얹는다. 피자 풍이라고 해야 하나. 살짝 토마토 소스까지 곁들이니 이것 역시 풍미가 끝장이다.
그런 식으로 포장마차풍 대합 구이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이 요리를 즐기고, 마지막은 작은 조개들을 듬뿍 넣은 조개탕과 함께 와인을 곁들이자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처음에는 조신하게 음식을 즐기던 희망과 생명도 어느 시점이 되자 정신없이 형진의 요리에 빠져들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가 끝나자, 형진은 모래 사장에 장작들을 높이 쌓아 올린 다음 커다란 모닥불을 피웠다. 타닥거리며 하늘 높이 타오르는 커다란 모닥불의 모습은 다른 것 없이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도 뭔가 취하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보호와 균형! 노래하겠습니다!”
“여신님 최고!”
“화이팅!”
와인 몇 잔에 취해버렸는지, 보호와 균형이 앞장서서 노래 자랑을 시작했고, 뒤를 이어 쌍둥이들과 다른 여신들도 가세했다. 희망과 생명이 소개해준 보이스 트레이너의 솜씨가 제법 훌륭했던 모양인지, 그녀들의 노래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이제는 그럭저럭 가수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흥겹게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희망과 생명이 어디서 났는지 술병 하나를 들고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잔을 권한다.
“마셔.”
“네?”
“마시라고.”
“…”
희망과 생명은 다짜고짜 술잔을 그에게 떠넘기고는 잔을 채워주었다. 왜 이러나 싶어 바라보니 살짝 눈이 살짝 풀려있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취해 버린 건 보호와 균형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형진이 그렇게 말하고 잔을 비우자, 희망과 생명은 어디서 났는지 조개 구이를 집어 그의 입에 내민다.
“먹어.”
“…”
설마… 술주정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형진은 말없이 그녀가 건네주는 조개 구이를 받아먹었다.
문득 느낌이 뭔가 싸하길래 슬쩍 돌아보니, 제랄딘과 요안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와 여신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급히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형진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어쩌지?]버스 안에서의 일도 있고, 아무래도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반쯤 도움 요청이나 다름없는 느낌으로 말을 건넸지만, 마눌들은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여신님께서 아무래도 쌓인 것이 많으신가 보네요. 서운하지 않도록 잘 받아 주세요. 괜히 버티거나 도망가다가 천벌 받지 마시고.] [요안나님. 진이 여신님한테 뭔 짓 했어요?] [했죠. 아주 많이.] [흐음…]내막을 모르는 제랄딘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형진을 노려보더니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아마도 그가 여신에게까지 손을 뻗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워낙 전과가 많다보니 변명조차 쉽지 않았다.
“끙…”
형진은 앓는 소리를 냈다. 공포와 죽음의 성녀인지라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있는 요안나는 그렇다 쳐도, 다른 이에게는 여신의 현재 상태를 말하기가 좀 곤란하다.
희망과 생명은 그런 형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그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채워.”
“네…”
그냥 먹여서 재우는 편이 낫겠다.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희망과 생명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