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2
00622 142. 본선 =========================
일단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와 더불어 상견례가 끝나자, 형진은 화이트 보드 하나를 꺼내더니 선을 죽죽 긋기 시작한다.
“이것은 인간세계에서 내기 등에 주로 쓰이는 고전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히 사다리 타기라고 부르죠.”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질문했다.
“내기요? 혹시 그걸로 본선 탈락자를 결정하려는 겁니까?”
운도 실력이다 하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모양이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형진은 중간 부분을 가린 채 사다리를 완성 시키면서 다시 말했다.
“이건 앞으로의 본선을 위한 것입니다. 자, 이제 한분씩 나오셔서 위쪽에 자신의 이름을 써주십시오.”
“…”
이번 오디션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것은 바로 형진이다. 연습생이 된 신들은 의문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하라는 대로 자신의 이름을 각자 그곳에 기입했다.
“자, 다음은 심사위원 여러분 차례입니다. 아래쪽에 각자 1부터 4까지의 숫자를 한번씩 써주십시오.”
심사위원들 역시 형진이 시키는 대로 숫자를 기입했고, 그 일이 끝나자 형진은 꼬맹이 여신들을 불러 각자의 이름이 어떤 숫자와 연결되는 지를 확인했다.
“성장과 질주, 1번입니다.”
“벗과 추억님, 4번입니다.”
“이슬과 서릿발님. 3번입니다.”
차례로 번호가 주어지자, 형진은 같은 번호끼리 짝을 짓도록 했다. 이로써 세 명의 신으로 구성된 네 개의 조가 만들어졌다.
“앞으로 이렇게 한 조가 되어 미션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동고동락하게 될 동료이니 서로 인사를 나누십시오.”
형진의 말에 그제서야 신들은 쭈뼛거리며 같은 조에 속하게 된 인물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성장과 질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청렴과 절조입니다.”
“견고와 인내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조는 그럭저럭 남녀가 적당히 섞인 느낌인데, 첫 번째 조는 온통 시커먼 남신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나마 귀여운 소년의 모습인 성장과 질주가 섞여 있긴 했지만, 다른 조에 비해서는 역시 분위기가 좀 무겁다고 해야 하나.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진주와 장미님.”
이름도 그렇지만 모습 또한 영롱한 느낌을 지닌 여신이 형진을 홀리기라도 할 생각인지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길, 대상은 오직 한 명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여기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서로가 경쟁자인 셈이죠. 그런데 이렇게 조를 나누신 것은, 토너먼트 같은 걸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만약 미션에서 패배하거나 할 경우, 한 조의 인원이 모두 탈락하는 경우도 생기나요?”
이것은 꽤나 민감한 문제기 때문에 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형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렇게 답할 뿐이다.
“자세한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진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지금은 밝힐 수 없습니다. 다만 저와 세 분의 심사위원이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공정한 방식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장 저기 신뢰와 헌신께서 앉아 계시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첨언할 필요가 없겠죠.”
“그, 그렇겠네요.”
진주와 장미는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신뢰와 헌신의 시선을 느끼자 찔끔하며 얼른 물러섰다.
더 이상 질문이 없음을 확인한 형진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바타를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분씩 나와서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헛! 벌써?”
“세상에…”
아바타를 준다고는 했어도 이렇게 곧바로 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탓에 신들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본선 참가자의 수는 모두 열두 명. 그들 모두에게 아바타를 지급한다면 총 백이십 만이나 되는 공헌도를 필요로 한다. 전부 합치면 대상 상급보다도 많은 금액을 이제 막 뽑힌 참가자들에게 선뜻 지불하는 형진의 배포에 그들은 모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바타를 수령하신 분들은 바로 사용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신이 나서 바로 아바타를 활용해 자신의 모습을 꾸며본다. 이 중에는 바깥 세계에 나가봤던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아바타라는 고가의 선물을 손에 넣은 것은 모두 처음이다. 괜히 아바타가 성공한 신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요.”
“그렇군. 또 다른 나라니.”
“이거… 꽤 재미있네요. 하하.”
자신의 아바타를 앞에 두고 신기해하던 신들은 형진이 가볍게 박수를 치자,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본신은 이 자리에 남아계시고, 아바타만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청렴과 절조가 질문했다.
“설마… 지금 당장 바깥 세계로 나가려는 겁니까?”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부터 아바타를 지급할 이유가 없었겠죠.”
“아…”
“본선 기간 동안 여러분은 안과 밖에서 철저한 관리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느닷없이 바깥 세계로 나간다는 말에 잠시 당황해 하던 신들은 그제서야 주춤주춤 아바타들로 하여금 형진의 뒤를 따르게 했다.
경계를 넘어 바깥 세계로 한 걸음 내딛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었다. 하늘로부터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영롱한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바다와 깨끗한 모래사장이 보인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붉은 지붕이 씌워진 그럴 듯한 집이 서 있었다.
“우와아…”
신들에게 있어 바깥세상이란, 흉악한 괴물들이 설치고 헐벗은 인간들이 야만스러운 행위를 일삼는 그런 식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신들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관념이 그런 생각을 만들어 버리는 셈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바깥 세계로 발을 내딛고 보니, 자신들이 생각해 왔던 그런 세상과는 너무 달라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여기는… 어디죠?”
너무나 놀란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성장과 질주의 말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지구라는 행성에 위치한 셰이셸이라는 나라입니다. 이곳은 셰이셸의 수도에 위치한 에덴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인공섬이죠.”
“인공섬? 설마… 지금 이곳이 만들어진 섬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셰이셸 제도는 네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최고의 해변에서 1위에 선정된 곳으로서 인도양의 보석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셰이셸은 다소 특이한 이민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에덴 섬의 주민들에게 허용된다.
에덴 섬에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직계 가족 6인까지 영주권이 발급된다. 법인 소유도 가능한데, 이때는 주주의 가족들에게 영주권이 발급된다. 각 주택의 소유자에게는 전용의 요트 정박장과 전용 항구, 그리고 무공해 전동차가 제공된다.
섬 내의 주택은 크게 아파트, 메종, 빌라의 세 가지로 구분이 되며, 빌라에는 개인 수영장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부동산 소유에 대한 세금 또한 없으며, 모든 주택의 소유주에게 섬 내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동차가 제공되므로 자동차로 인한 매연이나 공해도 없다. 괜히 섬 이름에 지상 낙원의 대명사인 에덴의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라고나 할까.
여러 세계들 가운데서도 특히 발달한 문명권인 지구, 그 중에서도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보니 신들은 연심 감탄을 터트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한 발 내딛은 것만으로도, 그들이 바깥 세계에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이 단숨에 날아가 버리는 느낌마저 줄 정도다.
“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형진의 인도를 받은 신들은 이내 널찍한 빌라안의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습니까. 처음으로 보게 된 바깥 세계의 모습은.”
먼저 그렇게 운을 띄우자, 그렇지 않아도 잔뜩 흥분해 있던 신들은 열심히 자신의 감상을 털어 놓았다.
“정말 대단해요! 전 솔직히 바깥 세계로 나간다고 하면 일단 괴물과 싸움부터 해야만 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멋져요. 왜 지금까지 이런 곳을 알지 못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합니다. 하지만 굳이 이런 곳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제가 듣기로 바깥 세상이 모두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름다운 휴양지의 모습에 홀딱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신들이 있는가 하면, 굳이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온 형진의 저의를 의심하는 신들도 있었다.
형진은 그런 모두를 향해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말씀하신대로, 세상 모두가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은 아닙니다. 당장 이 섬 밖으로만 나가도, 월등한 빈부 격차로 인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형국이니까요. 세상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겠습니다만.”
“…”
그 말에 신들은 그제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은 침착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방금 형진이 한 말은 자신들을 빗댄 것일 수도 있었다. 수백만의 공헌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고 인간 세상에서 이런 멋진 장소를 향유하고 있는 형진과는 달리, 그들은 당장 추종자는 물론이고 신도 하나 조차 변변하게 거느리지 못한 그런 빈곤한 신들이기 때문이다.
살짝 분위기가 가라앉자, 형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마침내 첫 번째 미션을 전달했다.
“자, 그럼 첫 번째 미션입니다.”
“…”
“지금 바로 이 섬을 나가서 친구를 만들어 보십시오. 근처에 사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십시오. 시간제한은 해질녘까지. 그럼 여러분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갑작스런 미션 하달에 신들은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친구라고요? 신도나 추종자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참고로 이 세계에서는 얼마 전까지 저희들과 같은 신의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느닷없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내가 신이다 라고 말을 걸거나 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기 딱 좋다는 정도만 알려드리도록 하죠. 여러분이 하실 일은, 문자 그대로 친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 그럼 시작하십시오.”
“헐…”
뜬금없는 것도 유분수지.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 모인 신들은 지금껏 친구란 걸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애초에 엘리시온은 그런 식으로 누군가와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보호와 균형이 다른 여신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친구로 지냈던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일단 나갑시다.”
신들 가운데 하나인 벗과 추억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속한 4조의 신들도 비로소 그의 신격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누가 보더라도, 이 미션은 벗이라는 신격을 지닌 그에게 너무나 유리했다.
4조가 급히 밖으로 나가자, 다른 조의 신이 급히 형진에게 의견을 개진했다.
“이건 공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말씀이십니까.”
“당장 벗이라는 신격을 지닌 신이 있는 마당에 이런 미션이라뇨. 이건 답을 이미 알려주고 문제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글쎄요.”
형진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반문했다.
“그 답이 정답일 거라고, 누가 정한 겁니까?”
그 말에 신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렇다. 애초에 이 오디션은 단순히 신격의 높고 낮음을 살피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그저 형진의 마음에 드는 신격을 가진 신으로 고르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얘기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보기 위해 이런 미션을 낸 것일까.
형진은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를 지우며 다시 말했다.
“이미 미션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럴 틈이 있다면, 나가서 친구를 찾아보는 것이 이롭지 않겠습니까?”
“…”
“앞으로의 수많은 다른 미션들을 위해서도 말이죠.”
그 말이 떨어지자, 신들은 더 이상 눈치 보는 일을 그만두고 모두 함께 밖으로 뛰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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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젠장… 나도 가고 싶다. 에덴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