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6
00626 143. 트레이드 =========================
두 번째 미션마저 실패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단박에 탈락시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형진을 바라보던 2조의 신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형진에게 항의했다.
“이, 이런 말씀은 없었잖아요. 이번 미션을 실패하면 탈락한다는 말이 사전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갑자기 탈락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물론 그건 진주와 장미님의 말씀대로입니다만, 명백하게 순위가 갈린 시점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물론이고 심사위원 여러분도 저마다의 일이 바쁘신 분들이라, 언제까지고 본선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크윽…”
말인즉슨, 다음에도 명백한 꼴찌가 나오게 되면 이번처럼 가차없이 탈락이 확정된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첫 번째 미션을 1조가 유일하게 성공한 시점에서 그대로 다른 세 조를 탈락시켰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사실 2조의 탈락은 자업자득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덴 아일랜드는 의외로 좁은 곳이다. 1조처럼 아예 멀리 바다로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은 섬 안에서 상대가 뭘 하는지 뻔히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2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섬을 돌며 일거리가 없는지 살피는 와중에,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4조를 발견했다. 그 시점에서 그들도 얼른 4조를 따라하기만 했어도 이런 식으로 단박에 탈락하는 경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해변을 청소하는 것이 좀 그렇다면 선착장이나 도로 주위의 쓰레기를 줍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구차한 그들의 행동을 비웃었다.
형진과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하는지 초소형 인공위성을 통해 모조리 확인하고 있었다. 당연히 2조가 했던 행동이나 말도 여과 없이 모두 전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2조의 여러분께는 절박함이 부족합니다. 당장 이번 본선에서 떨어지더라도 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더군요. 저희는 가급적이면 좀 더 절박한 심정을 지닌 분들을 후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원하지도 않는 억지로 떠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바라는 이가 있다면, 다른 분들보다는 먼저 그 분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저희들은 생각합니다.”
“…”
형진의 말에 2조의 신들은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 되도 좋고 안되도 좋고 하는 식으로 이번 본선에 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절실함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 절실함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컸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 차이로 인해 4조는 남고 2조는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축 처진 느낌으로 그렇게 말하는 진주와 장미를 향해 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은 본선 참가자로 선발되신 시점에서 연습생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사실 어제 오늘 인간들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느끼신 바가 조금쯤은 있으실 겁니다. 그들의 문화나 문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으며, 저 역시 그런 인간들 중에서 신의 반열에 오른 자입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인간과 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
“게다가, 신의 힘이란 건 결국 인간과 같은 지성체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자신의 힘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에 대해 알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저는 당분간 여러분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인간들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다시 엘리시온에 처박혀 있어야 하나 싶었던 2조의 신들은 반색하며 얼른 형진의 말에 반응했다.
“특정한 공간이라면 어떤 곳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곳과 비슷한 곳인가요?”
방금 전까지 풀이 죽어 있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빛을 반짝이는 그들의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형진은 손을 들어 하나의 영상을 그들 앞에 보여 주었다.
“지금 보시는 이 공간은 허세와 망상께서 희망과 생명으로부터 힘을 빌려 꾸민 공간입니다. 인간들은 이 공간을 엘리시온이라고 부르는데, 저희들은 실제의 엘리시온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거짓된 천국이라고 호칭하곤 합니다.”
“거짓된 천국…”
신들은 프로모션용으로 제작된 엘리시온의 동영상을 보며 감탄했다. 너무나 발달해서 이전에 그들이 알고 있던 세계와는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지구의 모습과는 달리, 그곳은 흔히 신들이 인간계라고 하면 상상하는 그런 모습이 여실하게 남아 있었다. 하긴 제작자가 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현재 허세와 망상께서는 이곳에서 세상을 이롭게 할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으십니다. 여러분은 일단 그 분의 휘하에서 일을 도우면서, 또한 그곳을 드나드는 인간들로부터 인간 세계를 배우셔야 합니다. 물론 일한 만큼의 보상은 당연히 공헌도나 그 외 원하는 방법으로 지급이 될 겁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계약을 통해 명확하게 정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주와 장미를 비롯한 2조의 신들은 작게 환호성마저 터트렸다. 본선에서 어이없이 탈락한 덕분에 연습생이 된다 해도 별 의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훌륭한 조건이 제시되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반응이 튀어나온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곳에서 이상한 미션 같은 것을 계속하느니, 일단 일을 하면서 인간 세계에 대해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1조가 갑자기 월등한 성적으로 치고 나오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백만이라는 엄청난 양의 공헌도가 아쉽긴 해도 수상할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일찍 나가서 공헌도를 버는 게 훨씬 이득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할게요! 어떻게 하면 되죠?”
“자세한 얘기는 엘리시온에서 개별적으로 하도록 하죠. 계약은 민감한 사안이니까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네요. 가요. 갈게요! 지금 당장!”
2조에 속했던 신들은 가장 먼저 탈락했다는 사실로 인해 방금 전까지 침울해 있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얼른 계약을 맺기 위해 엘리시온으로 향했다.
진주와 장미를 비롯한 2조의 신들이 그렇게 모습을 감추자, 형진은 다른 신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풍성한 저녁이 될 것 같군요. 오랜만에 실력을 좀 뽐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요리 실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자, 가시죠.”
“네!”
형진은 일단 정원에 조리대를 설치하고는 막 잡아서 펄떡거리는 참치를 그 자리에서 해체하는 쇼를 보여주었다. 모처럼 형진이 직접 요리 솜씨를 뽐내기 시작하자, 엘리시온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심사위원이나 꼬맹이 여신들도 참지 못하고 뛰쳐 나와 그의 요리를 도우며 함께 만찬을 즐겼다.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되면 다음에 탈락한 사람들이 가장 손해를 보는 것 아닐까?”
유아의 몸 안에 봉인된 상태로 구경을 많이 한 덕분인지, 희망과 생명은 식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아주 수월하게 해내고 있었다. 물론 유아처럼 처음부터 다듬어서 생명력을 뿌려 마무리하는 것까지 일체의 모든 동작이 물흐르듯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형진이 손질한 시재료에 마지막으로 생명력을 뿌리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지금 상황만 보자면 말이야. 하지만… 알다시피 허세와 망상이 하고 있는 일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니잖아. 게다가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다음에 탈락한 이들이 그 밑에 들어가면 먼저 들어간 이들이 선임이 되는 거잖아. 그렇다고 나중에 들어간 이들이 선임이 되면 그것도 불만을 초래할만한 일이고.”
아무래도 인간 세상을 오래 경험한 덕분인지 희망과 생명은 이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만히 형진이 요리하는 모습을 애정어린 모습으로 지켜보던 공포와 죽음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형진은 다음 탈락자도 그곳으로 보낸다고는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응?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네.”
희망과 생명이 놀란 표정을 짓자, 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야. 사실 신쯤 되면 상당한 고급 노동력이고, 일차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라면 그런 허드렛일 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일에 투입하는 것이 옳겠지.”
“아하…”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들이 맡을 일은 단순히 허세와 망상을 돕는 역할 정도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뭔가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책임감이 필요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보면 2조의 신들은 스스로 용의 머리가 될 기회를 놓치고 뱀의 꼬리가 된 것에 만족하며 기뻐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디션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안팎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우선 지구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역시 티폰의 사체를 탐사하는 인원들에 대한 것이다. 탐사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테라포밍의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 전체가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일로 들썩거리고 있는 중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역시 중국입니다. 대만을 비롯해 위구르나 티벳처럼 독립적 성향이 강한 곳들이 일제히 단체 이주를 희망하고 나섰기 때문이죠.”
“원래대로라면 군사력을 써서라도 억눌렀겠지만, 지금의 중국은 그런 강경한 수단을 사용할 수도 없는 처지에요. 자칫하면 궤도 상에 주둔하고 있는 미라지 코어의 군사력이 직접 투입될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죠.”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끄러운 소수민족을 모두 털어내고, 온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 테니.”
“문제는 중국이 사실 엄청난 다민족 국가라는 점입니다. 이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면, 자칫 체제 자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석이 와병중이라는 소문마저 솔솔 들려오는 중입니다. 일각에서는 책임 회피를 위한 쇼라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솔직히 지금 중국의 입장은 제가 주석 입장이라도 뒷목 잡고 쓰러질 만 합니다.”
하지만 중국 주석이 정말로 뒷목 잡고 쓰러질 만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저희 미라지 코어는 금일부터 달에 물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이 작업은 약 한달간 진행될 예정이며, 모든 작업이 완료되면 달표면의 절반 가량은 거대한 바다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달에는 이전에 세계 각국에서 발사했던 탐사 장비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인류의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달에 물이 공급되면 그것들의 상당수가 바다 속에 잠기게 될 텐데, 그에 대한 대책은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범선에 장착된 보호 설비가 달 표면에 설치되어 그러한 유물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게 될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곧바로 다른 기자가 좀 더 민감한 문제를 꺼냈다.
“달의 개발이 완료되면 그곳에 이주할 주민들은 어떻게 선별하실 생각이십니까.”
“달은 상징적으로도, 그리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미라지 코어는 달의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그 장소를 한 국가가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영세중립권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중립지역으로 선포되더라도 운영을 하자면 그에 걸맞는 행정 조직이 필요할 텐데요? 그 행정조직이 국가 권력으로 탈바꿈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미라지 코어가 책임지고 그러한 일이 없도록 조율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주 시점을 언제쯤으로 예상하십니까?”
“물의 공급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곧바로 식물의 재배가 시작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환경 평가 등의 일을 거치게 되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첫 이주민이 달에 발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헉!”
질문을 한 당사자도 미처 이와 같은 대답은 예상 밖이었는지 생방송 중에 헛숨을 들이키는 모습이 전 세계에 그대로 전해지고 말았다.
“너무 급한 거 아니야?”
“급하긴. 최대한 느긋하게 잡은 거라고.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그런가.”
사실 좀 더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물의 투하를 시작함과 동시에 바로 나무를 식재하는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큰 나무를 심는 대신, 이끼나 녹조류 같은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식으로. 만약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한다면, 올해 안으로 달에 대한 테라포밍을 완료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시, 유아의 출산 예정일에 맞추려는 거야?”
공포와 죽음의 말에 형진은 움찔하며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의 긍정이나 마찬가지다.
“흥. 탄생 기념 선물치고는 거창하네. 지구 사람들은 알려나 몰라. 사실은 자기들의 달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소유로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하하…”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