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38
00638 144. 재격돌 =========================
-도대체… 이게 어떻게.
파괴와 재생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금 날아든 균형 붕괴의 힘으로 잠시 감각이 흐트러진 사이, 다시 한 번 새하얀 꼬리를 이끌며 혜성이 날아든 것이다.
-크윽.
균형 붕괴로 인해 뼈마디가 어긋나고 살점이 짓이겨지는 그 고통은 결코 쉽게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파괴와 재생은 신격의 손상으로 인해 문자 그대로 영혼이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상태. 순간 아찔한 느낌이 올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정면에서 얻어맞으면 고통이고 뭐고 거대한 티폰의 육체 자체가 박살나 버릴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힘을 끌어 보아 쏘아낸다. 얼굴 모습으로 형상화된 티폰의 입으로부터 마치 브레스를 쏘는 듯한 느낌으로 검은 불꽃이 날아가 혜성에 작렬한다. 부서진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기는 하지만, 무지막지한 가속도로 날아드는 혜성에 직격하는 것보다는 낫다.
-헉!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시. 파괴와 재생은 부서진 혜성의 뒤쪽에 숨은 채 날아드는 또다른 혜성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고통마저 잠시 잊을 정도로 크게 놀라버리고 말았다.
“하나가 안 되면, 둘을 쓰면 되는 일.”
어떻게 보면 일견 쓸 데 없어 보이는 수많은 일들을 하는 이유도 결국 이래서다. 당연한 얘기지만, 혜성 같은 천체를 몇 개씩이나 성수화 시키는 건 아무리 신이라도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 엄청난 일에 소모되는 신앙이나 공헌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그저 지금 거느리고 있는 신도들을 잘 이끄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신들에게 있어 돈이라 할 만한 것은 결국 신앙과 공헌도. 더구나 상대가 타락한 신이라면, 이런 물량전은 당연히 감안을 해야만 하는 사안이다.
파괴와 재생은 급히 힘을 끌어 모아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혜성을 박살내려 했지만, 미처 그 시도가 완성되기도 전에 날아든 혜성이 미간에 작렬하고 말았다.
혜성이 지닌 질량과 운동 에너지는 그대로 이루 형용할 길이 없는 막대한 충돌 에너지로 변환되었고, 그 과정에서 혜성을 이루고 있는 성수는 기화하며 끊임없이 재생되는 티폰의 외피를 문자 그대로 증발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균형 붕괴의 여파로 어긋나 있던 골격은 그 한 번의 공격에 무너져 내렸고, 증발해버린 외피로부터 쏟아져 내린 막대한 양의 성수와 마주치는 순간 마치 물질과 반물질이 마주 친 것 같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크.”
형진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폭발의 여파로부터 몸을 피했다. 그냥 보통의 혜성조차 다른 천체와 충돌할 때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는데, 하물며 성수로 변화된 상태에서 언데드의 힘과 정면으로 충돌했으니 그 파괴력이 오죽하겠는가.
-끄아아아아아아!
폭발의 여파가 지나가자, 여전의 밤의 권능에 갇힌 채 울부짖고 있는 티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티폰은 이미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공격에 피격 당하는 순간 급히 회피를 시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몸의 절반이 날아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폰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맹렬한 속도로 재생을 시작했다.
물론, 형진이 그것을 그냥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미엘! 하엘!”
“왜 안 불러주나 하고 기다렸어요.”
“나, 나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두 흑요호는 형진이 목표를 지정하자, 자신들에게 전달되는 신의 힘을 브레스로 전환시켜 발사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공작의 깃털처럼 활짝 펼친 흑요호들의 입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와 재생되기 시작한 티폰의 몸을 불태워 버린다. 파괴와 재생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지만, 지금 이곳 주위에 쳐져 있는 황혼의 결계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파괴와 재생을 상대로 싸울 때를 상정하고 만든 물건. 온전한 상태라면 혹시 모르지만, 지금처럼 커다란 타격을 받고 이성이 날아가 버린 상태의 미친 신이 가볍게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흑요호들의 공격으로 약점 주변의 재생 속도가 둔화되자, 비로소 형진이 나섰다.
양손을 펼치자 그곳에 각각 하나씩의 영혼 포식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가만히 양손으로 합치자, 마치 뱀이 서로의 몸을 휘감는 것처럼 나선 형태로 합쳐진다.
지푸라기도 서로 꼬아 놓으면 튼튼한 밧줄이 되는데, 하물며 영혼 포식자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은빛의 거대한 창이 그렇게 완성되자, 형진은 눈앞에 드러난 티폰의 약점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그렇게 내리 꽂힌 한 줄기 빛은 약점을 단숨에 꿰뚫었고, 그 순간까지도 발악하며 허우적거리던 티폰은 그대로 우뚝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마치 석화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중심으로부터 하얗게 탈색되어 가기 시작한다.
형진은 죽어버린 티폰의 사체로 다가가 그곳에 남아 있는 룻을 챙겨 들었다.
하나는 영혼 포식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파괴와 재생의 파편.
그대로 파편을 흡수할까 했지만, 일단 놔두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만에 하나 불의의 일격을 당하게 되면 자신 역시 파괴와 재생이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파편을 떨구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여분의 파편을 가지고 있으면, 보다 빨리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 터. 이를테면, 이것은 그런 만약의 사태를 위한 보험이 되는 셈이다.
“수고하셨어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한 미엘이 하엘을 데리고 다가섰다. 형진은 둘에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안아주며 말했다.
“미엘과 하엘이야 말로 수고했어. 일단 돌아가 있도록 해.”
그 말에 미엘은 무언가를 예감했는지 바로 되물었다.
“진은요. 돌아가지 않을 건가요?”
혹시 이 거대한 티폰의 사체 외에 달리 뭔가 남아있는 건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이대로 파괴와 재생의 본거지들을 들이칠 거야.”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미엘과 하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대로 역공을 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그런 두 마눌을 보며 형진은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전투의 피해로 인해, 놈은 당분간 제대로 운신하기 어려울 거야. 예전에는 놈의 본거지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기회가 있어도 역공을 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지. 안식과 동굴을 통해 충분한 정보를 모은 뒤니까.”
모든 전쟁에 있어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하는 시점은 바로 패배하여 후퇴하는 시점이다.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그렇지 않아도 안식과 동굴에게 정보를 얻고 역공을 준비하고 있던 형진으로서는 파고와 재생이 타격을 입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지금이야 말로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일단 미엘과 하엘을 돌려보낸 형진은 죽어버린 티폰의 사체 주위를 위성으로 감싸 보존 조치를 취한 다음, 곧바로 아바타 둘을 더 꺼내 영혼 포식자를 하나씩 쥐어 주고는 사전에 파악해 두었던 파괴와 재생의 거점들을 들이쳤다. 한꺼번에 세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역공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기도 해라.”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곳에는 수많은 언데드들이 음침한 성 앞에 도열한 채 모여있었다. 어딘가의 다른 세계를 침공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형진의 내습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집결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공중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형진에게는 무엇보다도 먹음직스러운 먹이감이 아닐 수 없다.
형진의 등 뒤에서 거대한 함선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잠수함의 형태를 지닌 그것은, 대 티폰용의 결전 병기로 만들어진 균형 붕괴포. 하지만 본래 행성급의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대량 파괴용의 병기로 전용될 수 있었다.
번쩍 하며 한 줄기 빛이 지표를 향해 내리꽂힌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잠시 후 지각의 균형이 붕괴하며 거대한 지진이 대지를 휩쓸기 시작했다. 갈라지고 무너지는 대지 위에 집결해 있던 언데드들 가운데 지면에 땅을 딛고 서야만 움직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은 그 한번의 공격에 군대로서의 기능을 잃고 와해되어 버렸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적의 군세를 향해 무인기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제이디엠이 쏟아지면 그나마 버티고 서 있던 언데드들의 머리 위에 불벼락을 떨어트렸다. 물론 파괴와 재생의 가호를 받는 언데드들에게 일반적인 불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지만, 폭탄으로부터 가해지는 강력한 폭발력은 놈들의 썩어문드러진 몸을 박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폭격이 가해지자, 뒤늦게서야 날개가 날려있거나 정신체의 형태를 지닌 언데드들이 역습을 위해 날아올랐다.
“즈라탈.”
“부르셨습니까. 나의 신이시여.”
“날파리들이 시끄럽게 구는구나. 치워버려라.”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위대하신 밤의 신이시여.”
형진의 그림자로부터 불려 나온 주시자들이 호버 보드를 이용해 허공을 질주하며 쏟아져 내린다. 언데드들을 새롭게 나타난 이 강력한 적을 향해 포효하며 공격을 가하려 했지만,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밤의 권능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도 별의 빛으로 강화된 새로운 밤의 권능이.
파괴와 재생은 쏟아지는 별빛을 견뎌냈지만, 여기 모인 언데드들은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주시자들이 할 일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별 빛으로 인해 아비규환에 빠진 언데드들을 끝장내는 것이 전부였다.
주시자들이 그렇게 남은 언데드들을 정리하는 동안, 형진은 위성을 띄워 자신이 도착한 지역의 정보를 살폈다. 역시나 언데드의 영역에 존재하는 곳인지라 별다른 생명의 징후는 찾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밤의 종족마저도 이곳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주시자들이 일차적으로 언데드들의 정리를 마치자, 형진은 다시 밤의 종족을 불러 혹시 이 행성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언데드의 잔재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기고는 다시 새로운 거점을 찾아 이동했다.
첫 번째 아바타는 그렇게 수월하게 자신의 역할을 마쳤지만, 두 번째 아바타는 과거 안식과 동굴의 추종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가 파괴와 재생에 의해 탈취당한 거점에 도착하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본래 그곳에 있어야 할 세계는 온데 간데 없고, 이미 누군가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워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새카만 허공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폰의 짓인가.”
정확히는 티폰과 결합한 파괴와 재생의 짓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터. 형진은 일단 그곳에 정찰용으로 위성 몇 개를 남겨둔 다음 다른 거점을 향해 움직였다.
“크흐윽…”
또다시 신격이 찢겨나간 고통 속에서도, 파괴와 재생은 형진이 그런 식으로 대대적인 역공을 시작한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벌써 두 번이나 연속으로 당해버린 탓인지, 아니면 새롭게 신격이 찢겨 나가버린 고통 때문인지, 파괴와 재생은 감히 나서서 형진을 맞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대로는 당하고 만다.
파괴와 재생은 진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형진을 경시하는 마음이 어느 새인가 사라져 있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평범한 보통의 인간이 자신에게 이토록 통렬한 타격을 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찢겨진 신격으로 인해 영혼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고통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파괴와 재생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어딘가로부터 기억의 편린이 마치 그런 그의 심정에 호응하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싶어 당황하던 파괴와 재생은, 이내 그것이 앞서 자신의 아바타와 결합했던 티폰으로부터 넘어온 기억임을 깨달았다.
“이거다.”
파괴와 재생은 고통을 눌러 참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부터 떠오른 한 존재를 찾아 나섰다.
언데드의 세계에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안에서 마치 신과 같은 지위로 군림하는 존재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 파괴와 재생이 발견한 것은 바로 그러한 존재들 가운데서도 특히 모든 티폰들의 모태가 되는 자, 포트니아 테론이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