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41
00641 145. 폭풍 속의 고요 =========================
아바타를 활용하는 정도라면 사실 이미 기반 기술이 존재한다. 거짓된 천국을 그냥 평범한 게임으로 알고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바로 그 좋은 예다. 그들은 이전에도 게임 상에서 제공되는 아바타를 활용해 언데드의 범람으로 혼란에 빠진 타나토스를 구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그저 게임 상에서 벌어진 특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상은 그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엘리시온으로의 출입도 마찬가지다. 원래부터도 집행자나 다른 추종자들 중 스스로 원하는 자에 한에서 신격을 지니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라도 엘리시온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는 일이 허용되고 있었다. 실제로 형진에게 집행자의 문양을 건네준 이도 그런 식으로 엘리시온으로 들어가 안식 중이다. 무조건 신격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셈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유사 파편의 생산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들은 이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았다.
파편을 소유하게 되는 순간, 그 인간은 반신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그렇게 파편을 얻었다고 해서 바로 반신이 되는 건 아니다. 형진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여러 신들을 통해 인정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그 자격이 활성화 되어 반신으로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이 적용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신들은 과연 형진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그런 부분을 위해 이 일을 제안 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형진은 자기 가족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역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가족들 대부분이 평범한 인간이거나 그에 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스스로는 신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는데, 과연 자신의 가족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모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까.
물론 이것까지도 정상을 참작한다면 어떻게든 허용범위다. 하지만 아예 유사 파편을 만들어 내어 불특정 대상에게 반신으로 오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또한 별개의 문제다.
신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반신의 자격을 얻고 마침내 신격을 얻어 신이 되는 과정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일 자체가 매우 드물게 일어날 정도인 것도 사실이고,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포기했을 여러 가지들을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폄하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특정 다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얻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형진의 대두 이후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이 극렬하게 반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엘리시온에만 틀어박혀 있던 신들이 그런 식의 반발을 한다고 해봐야 형진에게는 앵앵 거리는 모기 정도의 귀찮은 일에 불과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별 거 아니라고 대수롭게 여겼다가는 오히려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유사 이래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곤충이 무엇이던가. 바로 그 귀찮기 그지없는 모기다.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희망과 생명의 말에 다른 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반신과 비슷한 격을 보통의 인간에게 부여하는 물건이라니, 그것만큼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응?”
갑자기 다른 모든 신들이 그렇게 좋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형진 역시 조금 놀라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에 포함된 어떤 내용이 이들의 경계심을 자극한 것인지 되새겨 보았다.
아차.
형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반신의 격을 부여하는 물건이라는 말이 신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을.
사실 거짓이라고 하긴 힘들다. 간단하게 자신의 가족들을 반신의 위계에 올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 신격의 파편을 보고 떠올리지 않았다고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앞선 탓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본래의 형진이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다. 어딘가로 숨어버린 파괴와 재생의 일 때문에 잠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 하기도 어렵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진의 가족이 좀 많은가. 방법이 달리 없다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신격이라도 쪼개야 할 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앞서서 말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유사 파편은 단순히 그런 용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얘기의 논점을 돌릴 수밖에 없다.
“우리들을 위해서요?”
보호와 균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형진은 푸근하게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간단한 얘깁니다. 이것을 만들면, 만에 하나라도 인간 세상에서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을 당해 아바타가 소멸하더라도 안전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의 가장 큰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이죠.”
허세와 망상은 형진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파편을 떨어뜨린 전력이 있는 그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군. 만에 하나 아바타나 본신에 타격을 받아 파편을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유사 파편이 완충 장치가 되어 주거나 대신 떨어지거나 하는 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이건 확실히 나쁘지 않은 얘기다.
사실 아바타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들이 엘리시온에만 콕 틀어박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바타라는 것 자체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인 것도 문제지만, 설령 가지고 있어도 엘리시온 밖에서 뭘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추종자라도 있으면 일이라도 시킬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신격에 타격을 입어 파편이라도 떨구는 날에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엘리시온에 장기간 틀어박혀 있어야만 한다. 어차피 처박혀 있을 거라면, 나가서 고생하고 고통 받고 하느니 그냥 처음부터 틀어박혀 있는 편이 낫겠다 싶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 번 그와 같은 일을 당하고도 다시 밖으로 나설 기회를 얻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 견고와 인내는 참으로 대단한 신인 셈이다.
하지만 유사 파편이 그런 위험성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신들도 보다 자유롭게 엘리시온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된다. 위험성이야 마찬가지지만, 그 위험성으로 입게 될 피해 자체가 비교 불가라고나 할까.
이미 한 번 그와 같은 일을 겪어본 허세와 망상은 물론이고, 그래도 혹시나 싶어 되도록 안전한 곳에만 머물게 되는 꼬맹이 여신들에게도 이건 대단히 솔깃한 얘기였다.
원래부터 인간 세상에서의 활동에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별로 없었던 희망과 생명이나 공포와 죽음 같은 경우엔 얘기가 조금 달랐다. 혼자서 언데드의 영역에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형진에게 큰 도움이 되리란 사실과 더불어, 자신들 역시 그의 곁에서 직접 그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마저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러겠다고 넌지시 의견을 꺼내도, 위험하다며 형진이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런 거라면 한 번 해봄직한 얘기라고 생각해. 사실 아바타나 엘리시온의 출입 문제는 굳이 파편이 없어도 이미 가능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고.”
희망과 생명의 말에, 공포와 죽음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반신의 경우엔, 사실 파편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위계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 무조건적으로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렇네요.”
형진은 옆에서 슬쩍 도움을 주는 공포와 죽음을 향해 속으로 감사의 뜻을 보냈다. 희망과 생명은 그런 둘의 기색에 조금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가 다시 앞으로 나서서 반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반신의 문제가 지금까지처럼 신들의 총의에 따르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자, 개발에 대한 얘기는 곧바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아까 희망과 생명도 말했지만, 아바타나 엘리시온 출입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신격의 파편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신들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사실상 개발에 동의하는 허세와 망상의 말에 형진은 반색했다.
“그럼 명칭을 좀 바꾸어 볼까요.”
이름이야 어찌되든 무슨 상관인가. 성능만 확실하면 그뿐이지.
“그게 좋겠어. 적당한 이름이 있을까?”
허세와 망상의 말에 희망과 생명이 바로 말했다.
“아바타 라이센스 정도면 되지 않겠어? 굳이 복잡하게 이름을 만들 필요 있나. 직관적인게 최고지.”
“훌륭해. 단숨에 의미도 파악되고, 다른 신들을 자극하지도 않을테니.”
“그럼 이름은 그 정도로 해두지.”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지만, 문제는 그것을 과연 어떻게 구현하는가 하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신격의 파편이라고 해도 사념체와 크게 다를 건 없지. 다만 좀 더 복잡하고,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니까. 물론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째서요?”
꽃과 바람의 질문에 허세와 망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간단한 얘기야. 사념체와는 달리, 신의 파편은 달리 손에 넣을 방법이 없었거든. 그렇다고 아무 신이나 붙잡고 파편 하나 내놔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하…”
그렇다. 애초에 연구든 뭐든 샘플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물론 허세와 망상이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연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신이었다면 얘기는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신격이라도 찢어내서 연구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은근히 겁이 많은 성격이라 일부러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신격을 찢는 행위 따위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겪어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직접 겪어 본 상태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인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아무리 샘플이 있어도 이건 역시 나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
“그럼…”
허세와 망상은 희망과 생명, 그리고 공포와 죽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너희 둘이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아니, 둘 만이 아니지. 신격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니, 보호와 균형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고… 경계에 관련된 일이니 황혼과 망각의 힘도 필요할 것 같아.”
“어느 신이든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군요.”
형진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야. 하긴 이게 어느 신 하나의 힘으로 가능한 일 같았으면 벌써부터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고도 남았겠지.”
하기야 보통의 것도 아니고 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격의 일부를 흉내 내는 일이다. 유사품이라 해도 그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닌 셈이다.
“할 수 없지. 게다가, 이런 중요한 샘플을 너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고.”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말하며 참가의 뜻을 표하자, 허세와 망상은 발끈하며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설마 이걸 가지고 도망이라도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혹시 모르지. 네 귀여운 인간 조수 녀석에게 이걸 줘서 반신으로 만들려고 들지도 모르잖아.”
“그, 그건…”
“그러기만 해봐. 나는 둘째 치고 진이 가만히 안 있을 걸. 녀석이 이걸 바로 흡수하지 않고 이렇게 고이 모셔온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아마도 허세와 망상은 끔찍이 따르는 아유무에 대한 얘기겠지만, 허세와 망상이 좀 개념 없는 신이라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형진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말로 아유무한테 먹여 놓고 이미 먹어 버린 걸 어쩌겠어 같은 헛소리를 하면 바로 아바타를 사용하게 한다음 인스턴트 킬을 먹여서 토해내게 만들겠지만.
“크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 도대체 날 어떤 신으로 보는 거야?”
“어떤 신이긴. 무개념에 무책임, 그리고 무모함의 삼박자를 갖춘 신이지.”
“뭐라?”
허세와 망상, 그리고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형진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하면 가족들에게 반신의 위계를 나눠주기 위한 계획 자체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뻔했기 때문이다.
“고마워.”
“말로만?”
형진은 다른 신들이 전부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도 은근하게 자신의 뜻을 지지해준 공포와 죽음을 품으로 끌어들여 답례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었다.
============================ 작품 후기 ============================
일돤 한편.
주말이군요.
하지만 전 글을 써야겠지요. 주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