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47
00647 147. 생존자 =========================
형진은 우선 채취한 구조물의 잔해를 황혼의 권능을 이용해 거짓된 천국으로 보냈다.
“응? 이게 뭐야?”
긴장한 상태로 포트니아 테론이나 그것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을까 싶어 노심초사하고 있던 신들은 엉뚱한 잔해가 전해지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좀 경황이 없어서. 그러니까… 음, 일단 말로 설명 드리는 것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낫겠군요.”
형진의 연락을 받자 신들은 그가 언데드의 영역이 아닌 다른 엉뚱한 곳으로 넘어갔음을 이해했다. 언데드의 영역에서는 사기로 인해 신들이라 해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형진은 환상의 형태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다른 신들에게 전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하게 깜빡이는 태양. 그리고 그것을 몇 겹으로 둘러싼 고리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방금 막 죽어 사체로 변해 버린 티폰에 이르기까지.
“자, 잠깐. 저게 뭐야?”
“티폰은 그렇다 치고… 저 거대한 구조물은 도대체?”
다른 신들은 이게 뭔가 싶은 표정이었지만, 지구 쪽의 문물을 그럭저럭 다양하게 접한 허세와 망상, 그리고 희망과 생명은 영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사멸한 문명의 잔해인 것 같습니다.”
“문명? 저걸… 저 말도 안 되는 걸… 지금 필멸자가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확실한 건 더 탐색을 해봐야겠지만, 아마도…”
“허…”
허세와 망상은 비록 패배해서 이렇게 거짓된 천국 안에서 공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으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드러난 저 구조물은 뭔가. 그냥 단순히 외양만 보더라도 그가 지금 지구에서 하고 있는 일 따위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말도 안 돼… 저런 것이… 가능할 리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다시 형진의 말이 들려온다.
“방금 전에 보낸 잔해가 바로 이 구조물로부터 채취한 것입니다. 분석을 해봤으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허세와 망상이 발끈했다.
“가능하냐고? 지금 날 뭘로 보는 건가! 난 신이야! 신이라고!”
“아, 예. 그럼 뭐… 부탁드리겠습니다.”
딱히 하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다면서 화를 내는 것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 버린다. 솔직히 티폰의 사체만으로도 난리 법석을 떠는 과학자들에게 저런 걸 보여줬다가는 어찌 될까 싶은 것도 사실이고.
“따로 지원은 필요 없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그렇게 물었다. 아직 유사 파편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언데드의 영역만 아니라면 직접 가서 돕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래? 안으로 들어가서 탐사를 해볼 생각인데.”
티폰이 나타나면서 사기를 전부 흡수해 버렸기 때문에 다시 언데드가 출현하거나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잔해 내부에 보안 장치 같은 것이 살아있을 가능성도 낮은 것 같고.
“갈게.”
“그럼, 나도.”
공포와 죽음만 보낼 수는 없었는지 희망과 생명 역시 나섰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이 얼른 손을 들며 외친다.
“저, 저도요!”
“너도?”
“아, 안되나요?”
“…”
희망과 생명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자신이야 거의 반 강제로 조교 당하다시피 했지만, 얘는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형진에게 목을 매나 싶다고나 할까. 하긴 의존증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긴 해도.
“오는 건 상관없는데,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작은 사이즈로 왔으면 싶어. 그래야 내가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 들어.”
“쳇.”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혀를 찼지만, 툴툴거리면서도 그가 보호해 준다는 말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이내 작은 사이즈로 모습을 변화시킨다.
희망과 생명이 먼저 그렇게 모습을 변화시키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공포와 죽음 역시 작은 사이즈로 변했다.
“그럼, 넘어간다.”
“응.”
곧바로 희망과 생명, 공포와 죽음, 그리고 보호와 균형이 차례대로 황혼의 경계를 넘어 형진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우와…”
“대, 대단한데.”
실제로 이 거대한 구조물의 모습을 보니, 형진이 보는 것을 전해 받은 것과는 문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이런 엄청난 것을 만드는데 관여한 신이 있다면 허세와 망상의 예를 보더라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엘리시온 내에 그런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허세와 망상이 뜨악한 표정으로 필멸자 운운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무인기랑 인공위성을 근처에 뿌려놓긴 했는데, 워낙 규모가 커서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직접 다 확인해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은. 그래서 오라고 한 거야.”
“그래서라고?”
“응. 혹시라도 생명체가 남아 있을까 싶어서.”
“아하. 그런 거라면 맡겨줘!”
희망과 생명은 그제서야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제격이다. 정확히는 공포와 죽음에게 먼저 오라고 했었지만, 그런 사실 따위 이미 그녀의 머리에서는 지워진 뒤다.
“그럼, 간다.”
“응!”
작은 사이즈의 여신들을 어깨 위에 앉혀 둔 채로, 형진은 부양형 자동차를 꺼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호버 보드도 부양형 자동차도 원리는 마찬가지이므로 우주에서의 활동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물론 우주에서 활동하자면 그에 걸맞은 보호 장치가 필요하기 마련이지만, 성역과 결계로 보호받는 이상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진이 여신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하자, 곧바로 무인기 셋이 자동차를 호위하듯 늘어선다. 혹시라도 모를 위협이 있을 경우 그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시동을 걸자 부양형 자동차는 유유히 허공을 가로 질러 거대한 고리 모양의 구조물 위로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도 거대하다고 느꼈지만, 가까이 다가서니 또 느낌이 다르다. 좀 더 가까이 접근하자 양 옆으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그냥 한 번 훑어보는 걸로는 어림도 없겠어.”
“그, 그러게.”
자신만만하게 맡겨두라고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놀랍다. 원근감이 뭉개질 정도의 크기라니. 정말 필멸자가 만든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내 생각이 짧았어. 이래서는 그냥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이틀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
“정말… 그러네.”
어차피 생존자가 있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별로 하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밀한 탐색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대략의 구조를 확인하는 정도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처음에는 구조물 전체를 최고 속도로 한 바퀴 빙 돌아볼까도 싶었지만, 그런 식의 탐색조차도 하루 이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방향을 틀어 지평선을 넘어 태양 방향으로 향한다. 고리 형태의 구조물을 한 바퀴 도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안쪽으로 가로지르며 대략적인 형태를 살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모르긴 해도 제대로 이 잔해를 탐색하려면 한두 해는커녕 백년 단위의 시간 정도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응? 저게 뭐에요?”
“네?”
그렇게 조금 질린 느낌으로 잔해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문득 보호와 균형이 무언가를 가리켜 보인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뭔가 깜박이는 빛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기권 안쪽이라면 산란 현상으로 인해 별빛 같은 것이 깜박이는 것이 관측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것과는 관련 없는 우주 공간. 게다가 빛이 깜박이고 있는 것은 바깥으로부터 세 번째 정도에 위치한 구조물이다.
“뭔가의… 신호?”
“그렇게 보는 편이 맞겠지.”
형진이 바로 핸들을 꺾자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경고했다.
“혹시 함정 같은 것일지도 몰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함정보다는 구난 신호 같은 것을 떠올리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조심할게.”
“응.”
부양형 자동차를 몰고 접근해서 살펴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인위적인 발광 장치가 맞았다. 약 5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신호가 맞는 것 같군요. 잘 하셨습니다.”
“헤헤, 별 말씀을요.”
칭찬을 들은 것이 기쁜지 보호와 균형이 살짝 얼굴을 붉힌다. 형진은 그런 여신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희망과 생명을 향해 물었다.
“어때.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
“그게… 아리송하네.”
“아리송하다고?”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살아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너무 미약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
희망과 생명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형진은 대충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동면은 비교적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방법이다.
실제로 지구에서만 하더라도 죽은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을 냉동수면시키는 서비스 같은 것이 존재한다. 물론 그 과정을 보면 과연 저런 식으로 해서 사람이 살아날까 싶은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구조물을 만들 정도라면, 만에 하나라도 구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생명체를 보존시켜 놓았을 수도 있다. 만약 형진이 티폰을 생포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뒤늦게 나타난 티폰을 처치하지 않았다면,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숫자는?”
“하나.”
“흠…”
고작 하나.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구조의 기회가 왔으니 운이 좋은 것이긴 하겠지만, 동족들이 모조리 죽어버린 시점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을 생각하면 그저 좋게만 볼 일도 아니다.
어쨌든 미약하나마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일단 구출하고 보는 것이 맞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 종족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잘하면 이들의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부양형 자동차에서 내린 형진은 우선 출입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식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군.”
길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일. 마침 그에게는 인스턴트 킬이라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 존재한다.
양손에 하나씩 영혼 포식자를 손에 들고 대략의 위치를 가늠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물의 일부가 박살나 부서진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형진이 딛고 있는 외벽은 몇 겹의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탓에 그것을 일일이 다 부숴야만 했다.
그렇데 몇 겹의 외벽을 부수고 나자, 비로소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형진이 들어선 공간은 일종의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곳이었고, 그 안쪽에 다시 몇 겹의 내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몇 개인가의 벽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형진은 내부로 완전히 진입할 수 있었다. 안과 밖의 기압차나 대기 조성의 차이를 고려해서 부순 벽마다 결계를 배치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저쪽.”
제법 널찍한, 비로소 제대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희망과 생명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형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역시나 격벽 같은 것이 나타나자 별 생각없이 그것을 부쉈다.
단숨에 장애물을 파괴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뭔가 번쩍하는 빛이 날아든다.
“응?”
불의의 일격이긴 했지만, 몸에 두르고 있던 황혼의 결계와 보호의 권능 덕분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것이 단순한 조명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광학 병기임을 알아차렸다.
쿠르르르르.
녹슨 기계가 힘들게 움직이는 느낌 같기도 하고, 성난 맹견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소리. 시선을 돌리자, 마치 그대로 형진을 압사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커다란 구형의 물체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