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54
00654 147-1. 데이트 =========================
보호와 균형은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너… 정말로 그 사람과 맺어질 생각이야?”
머리를 만져주며 꽃과 바람이 묻는다. 그러자 보호와 균형은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다.
꽃과 바람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았다. 친구의 의존증이야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중증으로 치달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자기가 좋다니 어쩌겠는가 싶긴 해도, 상대는 이미 반려가 몇인지 세는 것조차 골치 아플 정도의 문어발이다. 뿐인가. 왕성 라이언하트를 바쁘게 쏘다니는 아이만 열둘이고, 그 숫자는 아마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을 애정의 대상으로 삼는 건 여러모로 좀 곤란한 일 아닐까.
영원에 가까운 신의 삶 속에서 한번쯤 그런 식으로 연애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어차피 애정이라는 것은 한번쯤 열병처럼 나타났다 사라져 가는 것이니, 지금 저렇게 들떠하는 것도 신이라는 존재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기 같은 증상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이란 건 그만큼 중요한 법이다. 신에게 있어서도 그건 마찬가지. 더구나 보호와 균형은 한번 뭔가에 빠지면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그런 속성마저 지니고 있다. 괜히 토끼들이 그런 흉폭한 맹수가 되어 버렸겠는가.
그래서 꽃과 바람의 생각엔 기왕이면 좀 더 평범한 상대가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의 애정사에 함부로 참견하는 것은 더욱 좋지 못한 일이다. 차라리 형진이 여자 인생을 망가뜨리는 그런 질 나쁜 난봉꾼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은 간섭할 명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다 됐어.”
“와아…”
머리 손질이 끝나자, 잠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감탄을 터트렸다. 살짝 구불거리게 땋은 머리가 귀여우면서도 발랄한 그녀의 이미지를 아주 잘 살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그래. 데이트 잘 해.”
“응!”
보호와 균형은 꽃과 바람을 꼭 끌어안고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혼과 망각의 도움을 받아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여신님!”
“여기 저희가 아주 귀한 꽃을…”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문이 열리며 작은 몸집의 존재들이 꽃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나름대로 존재감을 되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몽마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모시는 여신은 이미 데이트 장소로 가버린 뒤다.
“수고했어. 일단 여기에 놔두렴.”
“네…”
몽마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주인에게 눈도장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에 실망하여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일단 꽃과 바람의 말대로 꽃바구니를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그들은 다시 터덜터덜 걸으며 그곳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간발의 차이로 몽마들이 놓쳐버린 보호와 균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인 피어 39 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황혼과 망각의 권능으로 인해, 사람들은 바로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가 서서히 자연스럽게 그 존재감을 인식했다.
“여깁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형진이 손을 들어 보이자, 보호와 균형은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달려가는 모양새는 그대로 품안에 돌진할 것 같은 기세였지만,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주춤주춤 속도를 줄이며 다가서는 모양새가 역시 그녀답다.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이거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형진이 건네준 것은 산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것을 건네어 주며 손을 내밀자, 보호와 균형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그 손을 맞잡는다.
오늘 형진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심연의 눈가리개 대신 레이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머리색이라든지 얼굴 모습도 약간 달라져 있다. 이미 헐리웃의 여신과 스캔들이 나있는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여성과 공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자, 갈까요.”
“네.”
누가 봐도 그들의 모습은 막 데이트를 시작한 풋내기 연인의 모습 그대로다. 주위를 둘러보면 허리나 어깨를 감싸 안고 다니는 건 기본이고, 서로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다니는 커플마저 보일 정도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개방적인 곳이다 보니 커플들의 애정 행각도 상당히 노골적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풋풋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들의 모습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저 남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지? 나도 그 생각했는데.”
“누구지?”
“글쎄.”
이미 형진의 얼굴은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라지 코어의 경영진으로서 심연의 눈가리개를 쓴 채 드러낸 모습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외모를 바꾼 상태에서는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보호와 균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그녀는 산뜻한 느낌의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발랄하게 땋아내린 갈색 머리카락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어렸을 적 한번쯤은 꿈꿔 봤을 첫사랑의 소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랄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쩐지 그녀의 모습을 인식하는 순간 절로 흐뭇한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여기부터 들러보죠.”
“네.”
형진이 가장 먼저 그녀를 이끈 곳은 다름 아닌 피어 39 입구에 위치한 아쿠아리움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산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파란 색으로 칠해진 간판 아래 입구로 들어가자, 팔목에 불가사리 모양의 도장을 찍어준다. 당일에 한해 재입장 가능한 스탬프이다.
사이좋게 스탬프를 손목에 찍고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작은 물고기들이 담겨져 있는 원통형의 수족관이 보인다.
“와아…”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찬 채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동그래진 눈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사실 왕성 라이언하트에서 물속으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녀에게는 반짝거리는 작은 물고기들이 수조 안에서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한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그리 큰 규모의 수족관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는 느낌이다. 형진은 보호와 균형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해저 터널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반구형의 터널 안을 통과하며 주위의 물고기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다.
“꺅!”
빠른 속도로 터널 주위를 지나치는 상어의 모습에 놀라 형진의 팔에 매달렸다가,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쭈뼛거리며 다시 떨어지려고 한다. 형진은 그런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 빙긋 웃고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손을 그대로 재킷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형진의 그와 같은 행동에 보호와 균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못 이긴 척 그에게 몸을 기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체험 공간이 나타난다. 바다 거북이나 가오리, 불가사리 같은 해양 생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곳이다.
“공주님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런가요.”
아기 공주들이야 오늘도 빨빨거리며 왕성 이곳 저곳을 뒤집어 놓고 다닌다. 당연히 그 범위에는 왕성 안쪽에 위치한 산호초 해변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자연은 자연 상태 그대로를 보는 것이 좋겠다 싶긴 하지만, 아까 같은 해저 통로 같은 건 한번쯤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산호초 안쪽에 위치한 별궁들을 연결하는 느낌으로.
그런 식으로 수족관을 주욱 돌아보자 마지막에 기념품 상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진은 그곳에서 그녀의 머리카락 빛깔을 닮은 수달 인형 하나를 사서 보호와 균형에게 안겨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수족관 관람을 마친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을 조금 걷다보니 피어 39의 명물인 회전목마가 눈에 들어온다.
“타볼래요?”
“아뇨.”
형진의 제안에 보호와 균형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번쯤 타보고도 싶었지만, 사람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그와 함께 회전목마를 탈 정도의 자신감은 아직 그녀에게 없었던 탓이다.
회전목마를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또다른 피어 39의 명물인 바다사자들이 보인다. 나무판 위에 올라와 배를 드러내고 늘어져 있는 바다사자들의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다시금 놀란 토끼눈이 되었지만, 자기들끼리 뒤치다꺼리다가 가장자리에 있던 바다사자가 바다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바다사자의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다가 살짝 배가 고파져서 새우 로고가 새겨진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맥주로 잡내를 없앤 새우튀김과 숯불로 구운 치킨을 밥 위에 얹은 치킨라이스로 배를 채운 그들은 다시 부둣가를 돌며 둘 만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 벤치에 기대 앉아 있는데, 문득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커플 하나가 서로 입을 맞추는 모습이 들어온다. 새가 쪼는 듯한 느낌으로 가볍게 입술을 맞부딪히는 그들의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뭐라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수그릴 뿐이다.
“우리도 할까요?”
“네?”
보호와 균형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았고, 형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
보호와 균형은 살짝 스치고 지나간 입술의 감촉에 놀란 표정을 지우지도 못한 채로 그를 멍하니 올려다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놀라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그, 그게… 죄, 죄송…”
“그렇다고 죄송할 것까지는 없구요.”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번에는 그녀의 턱을 살짝 받쳐 든 채로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져 버렸지만, 이번에는 보호와 균형도 눈을 감은 채 맞닿은 형진의 입술로부터 전해져 오는 감촉을 음미했다.
천천히 그렇게 몇 번 입술을 마주하자, 이내 그들의 호흡은 점차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장소를 옮길까요?”
“…”
보호와 균형은 살짝 달뜬 표정으로 대답조차 못하고 얼결에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경황중에 형진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딘지조차 모를 외딴 산속의 산장이었다. 단숨에 공간을 넘어 그곳에 도착하자, 형진은 바로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쌀쌀한 바깥의 공기 때문인지 제법 싸늘한 느낌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햇살 가득한 따뜻한 해안가에 앉아 있었던 보호와 균형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며 그의 팔에 달라붙었고,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다시 한 번 빙긋 웃어버린 형진은 가볍게 손을 튕겨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훈훈한 온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다. 형진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겨 촛불을 켠 다음, 벽난로 앞에 놓여진 커다란 소파로 그녀를 이끌었다.
“…”
밀폐된 공간. 그 안에 남겨진 두 남녀.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자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이 상황을 고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자 보호와 균형은 이런 저런 잡념으로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의 시간도 다시금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어오자 그대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떠올랐던 그 많은 잡념들이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지워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새하얗게 지워진 백짓장 같은 공간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입술을 통해 전해져 오는 그의 체온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입술을 가만히 맞대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그 입맞춤은 조금 더 뜨겁고 격렬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서 헉헉거리고 있는데, 문득 형진의 손이 그녀를 이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마주보는 자세로 앉혔다. 보호와 균형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작은 희열마저 느끼며 스스로 그와 입술을 맞댔다.
다시금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지다가 문득 그의 손이 자신의 원피스 자락을 들어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호와 균형은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지만, 이제와서 그 손길을 거부하거나 하지는 않앗다. 오히려 가만히 팔을 들어올려, 그가 자신의 원피스를 벗기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원피스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보호와 균형은 부드러운 면 소재의 속옷만 입은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은 형진이 입고 있던 셔츠 차례다. 긴장되고 흥분한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길로 단추를 풀고 그의 셔츠를 벗기자 잘 단련된 근육이 여과없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 다음. 셔츠 아래 입고 있는 바지다. 보호와 균형은 잠시 어쩔 줄 몰라하며 망설이다가, 벨트로 손을 가져갔다.
============================ 작품 후기 ============================
두 편째.
이번에야 말로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