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83
00683 155. 방문자 =========================
토너먼트가 열렸을 때 손님으로 방문했었던 형진에 대한 일은 브라드로슈 공작가문에서는 거의 전설이나 다름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형진이 공작가문의 저택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시녀들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공녀님이 머무시는 동안 수발을 들 시녀들이 필요할 거야.”
“아… 좋겠다. 매일 같이 그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거잖아.”
“정말 그렇게 맛있어?”
“그건 말로는 표현 못해. 먹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고.”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빛이 몽롱해지며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동료의 모습에, 시녀들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나 싶은 생각을 떠올리며 기대를 키워갔다.
하지만 수발을 들기 위한 시녀의 숫자는 정해져 있었고, 그나마도 본래 제랄딘을 모시던 인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중을 받는 입장에서도 낯선 인물보다는 익숙한 인물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
“살이나 팍팍 쪄버려라.”
“괜찮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그렇게 가문에서 일하는 시녀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으며, 제랄딘의 시중을 들기 위한 시녀 열 명이 도착했다.
“어서 와요. 한동안 신세를 좀 질게요.”
“신세라뇨. 아가씨도 참…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가요. 이쪽은 아란님이에요. 요리 대회에 참가하실 예정이니까,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써 주세요.”
“네. 아가씨.”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제랄딘이 아란을 시녀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이 뭔가 재미있다. 자기가 자신의 다른 모습을 소개하는 모습이라니, 스스로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한켠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자니, 인사를 마친 시녀들이 방 밖으로 조심스럽게 빠져 나간다.
“난 소개시켜 주지 않는 건가?”
형진의 말에 제랄딘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그의 곁에 앉으며 답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걸요. 게다가 신분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애매하고.”
“그런가.”
그냥 평범한 요리사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엘 파르드의 국왕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집행자도 아니게 되었으니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만에 하나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왕실에서 난리가 날 테니 그것도 좀 문제가 있다. 그러니 결국 직접적인 소개는 피하는 수밖에.
“이렇게 되면 여자 하나 잘 잡아서 호강하는 제비족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형진의 모습에 아란이 옆으로 와서 앉으며 물었다.
“싫어요?”
“아니. 그런 것도 의외로 꽤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꺄앗! 자, 잠깐…”
그렇게 안에서 잠시 노닥거리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주방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왜 안 나오나 싶어 안절부절하며 식재료들을 가져다 놓은 채 기다리고 있는 시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처럼 처갓집에서 아늑한 신혼 느낌을 누리려 했던 형진으로서는 시녀들의 그런 모습이 어쩐지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왜 기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심술이 부리고 싶어진다. 영문모를 침입자 때문에 한달 가까이 잠도 제대로 못 잔 것에 대한 원한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린 셈이다.
“모처럼 날도 더운데 여름철 별미를 한번 먹어볼까.”
그러고 보니 일전에 괴물 전복을 먹은 것도 이곳에서의 일이었던가. 보존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비싸긴 해도 나름 해산물을 어느 정도 잘 먹는 동네라는 점을 떠올린 형진의 입가에 씨익 하고 미소가 지어진다.
“야채들 좀 손질해 주겠어?”
“어떻게요?”
“씻어서… 잎사귀 채소 위주로 잘게 썰어줘. 한 사람당 한주먹 정도 돌아가도록.”
“네.”
야채의 손질을 아란에게 맡긴 형진은 큼지막한 도마를 꺼내고, 다시 그 옆에 냉장용 아이스 박스를 하나 꺼내 놓았다.
“뭘 하려고요?”
“보기만 해.”
어쩐지 장난꾸러기를 연상시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형진의 모습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형진은 아이스박스로부터 큼지막한 생선을 꺼내더니 그대로 회를 치기 시작한다.
“…”
커다란 생선의 피를 뽑고 비늘을 벗겨낸 뒤 내장을 들어낸다. 반으로 갈라 뼈를 발라내고 살을 발라내는 모습이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시녀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형진이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한번씩 형진의 음식을 경험한 시녀들인데도, 스스로도 어느 정도 요리에 실력이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놀란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형진의 손놀림은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생선 한 마리가 한 접시의 회로 만들어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큼지막한 괴물 전복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역시나 순식간에 손질을 마치고 마찬가지로 회쳐진 상태로 생선과 함께 담겨졌다.
여기까지는 시녀들도 그런가보다 했지만, 뒤이어 나온 식재료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붉은 빛의 열매 같은 모양을 지닌 기이한 생명체. 해산물 중에서도 이국인들이 가장 먹기 힘들어 한다는 바로 그 멍게다.
밑 부분을 잘라내고 안쪽의 알맹이를 빼내어 손질한 뒤 내장을 빼내고 잘 씻어 전복 옆에 따로 담아놓는다.
“…”
“…”
기대에 차서 지켜보던 시녀들은 이제 침묵에 잠겼다. 익히거나 하면 또 모르겠는데, 분위기를 봐서는 그대로 음식에 사용하거나 먹을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이쯤되자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어째 오늘 이 남자가 선보일 요리는 그녀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재료 손질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윽…”
다음에 형진이 꺼낸 식재료를 보는 순간 시녀들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 소리가 나온다. 시커멓고 돌기가 우둘투둘하게 나있는데다, 척 보기에도 미끄덩한 겉표면. 실로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그대로 실물로 형상화한 듯한 모습의 생물인 해삼이 등판한 탓이다.
“못 말려.”
어쩐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을 때부터 뭔가 불안하더라니. 식탁에 앉은 채 그 모든 모습을 빠짐없이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랄딘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마 공포와 죽음이라는 본질을 깨닫기 전의 제랄딘이라면 점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는 다른 시녀들 같은 모습이 되었겠지만, 그나마 지구의 이런 저런 문물을 본 전력이 있는지라 그렇게까지 반응하지는 않고 있었다.
“으…”
크고 검고 구불텅거리는 무언가가 거침없이 잘려나간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들이건만, 그 모습에는 움찔움찔하며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해삼을 손질해서 썰어 넣는 일을 마쳤지만, 아직도 악몽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윽!”
시녀들은 다시 한 번 억눌린 비명 소리를 내야만 했다.
해삼의 뒤를 이은 식재료는 무려 개불이었다. 뭐랄까. 얼핏 보면 창자를 그대로 들어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뭔가 아주 망측한 것을 연상시키는 그런 생명체. 그런 놈이 싱싱하게 살아서 구불텅거리고 있으니 이제 시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마저 칠 정도다.
게다가 이 놈은 손질하는 광경조차도 비범하다.
가시가 있는 입쪽을 잘라내는 순간 붉은 피가 확 하고 도마에 퍼져 나간다. 얼핏 잘못 보면 손질하다가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
그 모습을 본 시녀 가운데 하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풀썩 쓰러져 버린다. 모양만으로도 이미 끔찍한데 끄트머리를 잘라내는 순간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는 광경까지 목격하자 감당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기절한 건 아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을 뿐. 하지만 그 시녀는 더 이상 형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모르긴 해도 이쯤되면 트라우마가 남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이제 시녀들은 두려움 가득한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시녀들의 시선을 즐기며 계속해서 재료 손질을 이어갔다. 변태가 작정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개불마저 손질을 꺼내 접시에 담아둔 형진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식재료는 다름 아닌 낙지. 물론 이번에도 싱싱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놈이다.
“…”
앞서의 기괴막측한 생명체들에 비한다면 낙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안도했던 시녀들이지만, 손질을 마친 낙지의 다리들이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그런 기분은 다시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토막이 나서 접시에 담겨진 주제에, 꿈틀거리며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시녀들은 오들오들 떨며 제발 그만 멈춰달라고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 없는 외침이 전해진 것일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던 지옥같은 식재료 소질은 마침내 끝을 맺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완성시키는 일 뿐이다.
“룰룰룰루…”
해산물의 손질이 끝나자 커다란 냉면 사발을 꺼내서 식재료들을 담아 넣는다. 야채를 깔고 생선회와 멍게, 해삼, 전복, 개불, 낙지 손질한 것을 수북하게 담은 뒤에 마지막으로 양념장을 풀어 놓은 붉은 국물을 얼음 몇 조각과 함께 부어 넣는다.
온갖 싱싱한 해산물을 수북하게 담아놓은 맛있는 모듬물회가 완성된 것이다.
“…”
보통 이렇게 요리가 완성되면 환호성을 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이 일반적이 반응이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식재료들인데, 불을 써서 익히지도 않고 그대로 담아 넣더니 붉은 국물을 부어 넣는다. 이쯤 되면 지옥의 괴물들이 용암 속을 뚫고 나오려는 형상이나 마찬가지. 음식으로 지옥을 표현한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야말로 사발 안에 담겨진 용암 지옥이다. 아니, 사발 안에서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지옥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 드세요. 몸에 아주 좋은 영양식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시녀들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몸에 좋은지 어떤지는 몰라도, 자신 앞에 떡하니 놓여진 음식을 보니 도저히 스푼이 움직이질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아직까지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저 움직임만큼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아아, 누가 좀 저것만이라도 멈춰줘!
“아직 뭔가 남았어요?”
“물론.”
어느 틈엔가 화덕 위에 올려둔 냄비 안에서 물이 끓고 있다. 형진은 즉석에서 소면을 뽑아 삶은 뒤 찬물로 씻어 채반에 받쳐둔 다음에야 식탁에 앉았다. 안에 담겨진 회를 다 먹은 다음에 말아먹을 소면이다.
“왜 그러고 있어?”
“그게…”
아무리 지구쪽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제랄딘이라도 이건 역시 손을 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시녀들처럼 새파랗게 질려서 굳어 있지는 않았지만, 입으로 가져가기엔 뭔가 난감하다고 해야 하나. 특히나 빨간 국물 안에서 구불텅거리며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저 낙지 다리는 특히 더.
하지만 형진은 보란 듯이 스푼을 들어서 물회를 떠먹기 시작한다. 누가 손질했는지는 모르지만, 식감이 아주 죽여준다. 탱글탱글하고 오독거리는 그 식감이라니.
형진이 먼저 그렇게 선을 보이자, 제랄딘과 아란도 마지못한 채 스푼을 들었다.
“…”
뭐랄까.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용암 지옥인데, 입안에 넣고 보니 바다향기가 물씬 풍긴다. 여러 가지 식재료가 저마다의 식감을 가지고 있는 탓에 씹는 느낌이 실로 재미있다. 회 본연의 맛이나 향기는 좀 죽어버리는 느낌이지만, 이런 식의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콤달콤한 양념장의 맛도 그리 나쁘지 않다.
“어때?”
“맛… 있네요.”
무려 달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모듬물회다. 어찌 맛이 없겠는가. 하지만 역시… 사발 안에 담겨진 음식의 모습을 보는 건 좀 괴롭다.
제랄딘과 아란이 먹는 모습을 본 시녀들은 그제서야 울상을 지은 채 눈을 질끈 감고 스푼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
“으음…”
역시 맛은 있는지 곧바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역시나 눈을 뜰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형진이 선보인 요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