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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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버그 유저라고?
-안녕하세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상향, 엘리시온입니다.
저희 엘리시온은 쾌적한 게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꾸준하게 시스템 및 운영정책을 정비하고, 게임 내에서 감지된 이상 현상 및 신고센터로 접수되는 여러 가지 신고 등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진행하여 운영정책 위반으로 확인된 계정을 지속적으로 조치해 왔습니다.
먼저, 금번의 사건으로 인해 모험가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 깊은 사과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사건은 조사 결과 버그 사용자의 소행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해당 플레이어는 게임 상에 존재하는 인스턴트 킬 시스템을 임의로 발동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그것을 통해 부정적인 재화를 축적하였으며, 또한 다른 플레이어가 소유한 아이템을 임의로 파괴하는 짓까지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시스템 악용이며, 또한 게임 내 파워밸런스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저희 운영진은 이와 같은 사항이 확인된 즉시 해당 계정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다행히 해당 플레이어가 획득한 재화는 아직 거래소 등을 통해 유통되지 않았으며 보유한 재화역시 일괄 회수 조치 되었다는 사실 또한 알려드립니다.
구체적인 조치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버그 사용자 1명 (돌깨러간다) – 영구 계정 정지 및 캐릭터 삭제.
: 피해보상 1명 (익명-개인 정보 문제로 비공개 처리합니다.) – 아이템 복구.
이후에도 저희 엘리시온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시스템 보완을 통해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일련의 일들로 모험가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 다시 한 번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저희 엘리시온은 여러분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소통하는 게임으로 거듭나 항상 쾌적한 게임 환경을 누리실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엘리시온 드림.
공지에 박혀 있는 자신의 캐릭터명을 보는 순간 그는 다시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인게임 공지와는 달리,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에는 단순히 영구 계정 정지만이 아니라 캐릭터까지 삭제되어 버렸다고 확정적으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지 아래 달린 덧글은 더 가관이다.
-그럼 그렇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역시 버그 사용자였네.
-그게 인스턴트 킬이었구나.
-근데 인스턴트 킬이 뭐죠?
-그런 거 있어. 몰라도 돼.
-말하는 싸가지 보소.
-시스템상에 존재하기는 하는데,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님. 걍 운 좋게 터지면 로또 맞았다고 생각하고 떨어진 레어 아이템 맛있게 냠냠 먹으면 됨.
-멍청하네. 나 같았으면 초보존에서 기웃거릴 시간에 곧바로 월드 보스한테 뛰어 갔겠다.
-니가 더 멍청하다. 족제비한테도 맞아죽는데, 월드 보스한테 이빨이나 들어가겠냐?
-병신. 월드 보스를 혼자 잡냐? 대충 아무데나 묻어가서 딴 애들 칠 때 칼침 한 방 놓으면 되는 건데.
-이게 누굴 보고 병신이래?
-내가 홍길동이냐? 병신을 병신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와, 싸움 났다. 여기 팝콘 하나 추가요!
“후우…”
허탈하다.
내가 그 캐릭터를 어떻게 키웠는데.
비록 생활을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값비싼 아이템 같은 걸 착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 공들여 랭크를 올려둔 각종 생활 스킬과 명장의 칭호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있던 캐릭터가 뭘 어떻게 손 써볼 틈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황망한 기분에 휩싸여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는 이내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키웠는데. 게다가 버그라니. 그게 어딜 봐서 버그란 말인가. 엄연히 존재하는 시스템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척했을 뿐인데, 그것을 두고 버그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곧바로 전화를 걸어 상담원 문의를 신청했다. 벨 소리가 울리고 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자신이 방금 영구 정지 당한 플레이어임을 밝히고 이것이 잘못된 조치임을 언급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더니, 이내 다른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다.
“운영팀장 XXX입니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 때문에 한 번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만나 뵙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아예 회사로 찾아가 볼까 벼르던 참이었던지라 그는 허락하고 바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다음 약속 장소로 나가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말쑥한 차림의 남자 하나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전화로 말씀드렸던 엘리시온 제4운영팀장 XXX입니다. 날씨가 쌀쌀하니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서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그럼 가시죠.”
그들은 곧바로 길가에 있는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마주 보고 앉았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그는 본론부터 말했다. 이런 저런 사족을 달 수 있을 정도로 지금 그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난 버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팀장은 점원에게 간단한 주문을 하고는 탁자 위에 담배갑처럼 보이는 상자 하나를 꺼내 놓은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압니다.”
“…”
그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변명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안다고 즉답이 나오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란 말인가.
“안다고 그랬습니까?”
“네.”
“그런데 어째서…”
그렇지 않아도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던 그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팀장은 한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으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유형진씨. 당신은 존재 자체가 버그입니다.”
“뭐?”
이게 무슨 소린가. 존재 자체가 버그라니.
해명을 요구하는 그의 시선을 바라보며 팀장은 천천히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버그 사용자라는 말은, 버그를 쓰는 사용자라는 말이 아니라 버그 같은 사용자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뭐… 받아들이기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말이죠.”
“…”
그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개소리다. 이게 개소리가 아니면 뭐가 개소리란 말인가. 이따위 말장난을 이렇게 뻔뻔하게 언급하는 상대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팀장은 다시 말했다.
“그리고, 톡 까놓고 말해서… 버그 악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스템 악용인 건 맞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것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자칫 게임 내의 모든 밸런스가 다 뭉개질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는 얘기죠.”
그는 으르렁거리듯 말을 받았다.
“그 쪽의 실수를 나에게 뒤집어씌운 것은 아니고?”
하지만 팀장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따지면 버그 사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사용자님께서 그와 같은 상황을 인지했을 때, 무작정 그걸 써먹으려 들지 않고 저희에게 한 마디 귀띔만 해주셨어도 이런 불상사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 점원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팀장은 그것을 받아 설탕을 넣고는 휘휘 저으면서 한숨 섞어 말했다.
“후… 사실 제재 논의가 나왔을 때, 저는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무작정 제재를 하기보다는 가급적 좋게 마무리를 짓자는 쪽이었죠. 하지만 그때 총괄 팀장이 자료 하나를 보여주더군요. 그게 뭐였을까요.”
“…”
아무런 대답이 없는 형진을 향해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과금 현황이었습니다. 부서진 갑옷의 소유자이며 또한 신고자이기도 한 그 분와 바로 사용자님의 과금 현황이었죠.”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 드리면 기분이 나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팀장은 커피로 입술을 축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커피 맛이 쓴 건지, 아니면 지금부터 자신이 내뱉을 말이 쓴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객이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매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물에 빠졌을 때 누굴 먼저 건지겠냐는 식의 질문이 있죠?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아니라 구매자에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
“그렇게 억울하면 캐시 좀 쓰지 그러셨어요. 사용자님.”
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팀장이 꺼내놓은 상자가 담배갑이 아니라 도청 방지용 물품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굳이 전화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을 택한 이유도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녹취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음 역시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부터 팀장은 사과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입장을 그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만남을 청했을 뿐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혼자였다. 커피숍을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그래도 커피값까지 부담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지 계산은 팀장이 했단다. 망할.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문득 포장마차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맨정신으로는 아무래도 있을 수가 없었다. 술이라도 마셔야 이 들끓는 속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을 마지막으로 마셨던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이토록 술이 쓰게 느껴지는 건 단지 그래서만은 아닐 것 같다.
고작해야 게임 캐릭터 하나 가지고 뭔 청승이냐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저며드는 상실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가슴 한켠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그 기분을 메우려는 듯이 그는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아, 기억났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을 때도 지금 같은 기분이었다. 뭐였더라.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였던가. 첫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을 때였던가. 아니면 둘 다였던가.
젠장.
고소다. 고소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다. 그런데 사유를 뭘로 해야 하나. 버그 사용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버그 사용자로 몰려서 공지에 캐릭명이 언급되었으니 명예 훼손으로 해야 하나. 아니면 뼈 빠지게 키운 캐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삭제되어 버렸으니 손해 배상으로 해야 하나.
망할. 한심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 것만 같다. 악을 쓰든 트집을 잡든 억지를 부리든 뭐라고 말은 해봤어야 할 것 아닌가.
아, 정말 한심하다.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타는 듯한 속에 술을 들이붓는 것 뿐이다. 그래서 더 한심하다. 그래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큭… 큭큭…”
그렇게 혼자 미친 것처럼 자조하며 웃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조용한 목소리.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그렇게 풀린 눈으로 바라보자 한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뭐랄까. 첫눈에 아 참 선하게 생겼다라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면 뭔가 설명하기가 애매하지만, 어쨌든 선하다는 느낌이다. 뭔가 흐릿한 것 같은데, 어쨌든 간에 뭐든 털어놓고 고해성사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제 정신이라면 이런 느낌 자체가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을 법도 하건만, 이미 술이 꼭지까지 올라온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신에게 있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저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게임이었나 보군요.”
“그럴 수가. 참 나쁜 회사가 아닙니까.”
“캐릭터란 것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나 봅니다.”
“명장이라. 호칭만 들어도 뭔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허어… 그런 일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
“참으로 안타깝군요.”
“바보 같은 회사입니다. 이런 능력이라면 달리 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혹시 당신의 그 재능, 저에게 맡겨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환영합니다. 이제 당신도 타…”
뭔가 중요한 얘기가 오갔던 것 같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알지 못한 채 계속 대화를 이어가다가, 결국 술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탁자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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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인간적으로 너무 찌질한 것 같지 않아?
작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주인공: 뭐?
작가: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귀염둥이 악당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라고 생각해!
주인공: (술은 내가 먹은 거 아니었나?)
2017-01-05 10:39 @BlueRuiN: 주인공의 말투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