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9
00729 164. 연수 =========================
곧바로 조리대가 마련되고 흐르는 물에 잘 씻은 도마 위에 펄떡이는 생선이 놓여진다. 싱싱한 생선이 눈앞에 놓여지자 형진은 회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잘 관리되어 양식된 생선이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기생충이 있으니 무턱대고 회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 정도야 손질할 때 공포와 죽음의 힘을 빌리면 될 일이긴 하지만, 식구들끼리 먹는 것도 아니고 여러 신들에게 요리 시범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곤란한 일이다. 감자 요리처럼 아무렇게나 막 따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지만, 이대로는 먹을 수 없으니 먼저 손질을 해야 합니다. 먼저 이런 식으로 피를 빼주세요.”
사람들이 횟감을 고를 때 죽은 고기를 선호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맛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있을 때 피를 빼냈느냐는 점이다. 꼭 살아있을 때 피를 빼내야 하는 이유는, 죽는 순간 혈관 속의 피들이 응고되어 그대로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남아있는 피들은 비린내의 원인이 되며, 또한 신선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도록 만든다.
아가미를 벌려서 등과 배 사이의 중앙 위치에 칼을 밀어 넣는다. 물고기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서다. 여신이 잡아온 물고기들은 상당히 몸집이 크기 때문에 꼬리 쪽에도 칼집을 내주고는 물을 담아둔 통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물고기들이 서서히 죽어가면서 피를 뿜어내게 된다.
“윽…”
몇몇 신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일반적인 동물과는 다르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데다 붉은 피까지 나오니 아무래도 비위가 상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잔인한 장면이다. 심장을 찔린 상태에서 서서히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셈이니까. 사실 구이나 찜 같은 걸 한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아가미와 내장을 빼낸 다음 조리하면 그뿐이니까.
통에 담아둔 물이 붉은 피로 물들어가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형진은 서서히 생선의 움직임이 멈추자 곧바로 비늘을 쳐내고는 내장과 아가미를 단숨에 빼냈다. 일반적으로 기생충은 내장 부위에 자리를 잡는데, 생선이 죽으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버린다. 때문에 생선을 손질할 때는 가급적 빠르게 내장을 제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장이 제거된 생선은 다시 한 번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준 다음 지느러미를 자르고 반으로 갈라서 뼈를 발라냈다.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키친 타올로 물기를 적당히 빼내자 비로소 생선 손질이 모두 끝났다.
“일단 간단하게 구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진은 손질이 끝난 물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식초를 살짝 바르고 전분을 묻혔다. 살이 단단한 고기라면 그냥 구워도 상관없지만, 살이 무른 경우에는 이렇게 전분 같은 것을 묻혀서 구워야 살이 흩어지지 않고 예쁘게 구워진다. 식초를 바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인데,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른 다음 충분히 달궈지자 토막이 난 채 전분 가루를 묻힌 생선살을 올려놓는다. 기름이 튀거나 냄새가 주위에 퍼지는 것을 막고 싶다면 종이 호일로 생선살을 감싸주면 좋지만 딱히 문제될 것이 없는 야외이므로 그냥 굽기로 했다.
곧바로 타닥거리며 기름 튀는 소리와 함께 생선이 구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강한 불로, 나중엔 중간 불로 조절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곧바로 조리대 근처에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생선 손질하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던 신들조차도, 화악 퍼져 나오는 생선 구이 냄새에는 절로 솟아나는 군침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식으로 노릇하게 구워주시면 됩니다. 참 쉽죠?”
“그, 그렇네요.”
신들은 형진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다. 눈앞에서 보여지는 시범은 엄청나게 간단해 보여도 막상 실제로 해보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어제 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고 싶다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형진은 다시 야채를 다듬기 시작했다. 감자 두 개, 양파 반개, 버섯 한줌, 고추 하나, 그리고 대파 한줌.
야채의 손질이 끝나자 이번에는 양념을 만든다. 간장과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설탕, 맛술 등을 넣고 잘 버무려 준비가 끝나자 냄비에 손질된 야채들을 깔고 그 위에 잘 구워진 생선을 올린다음 양념을 부어넣는다.
“원래 조림은 굽지 않은 생선으로 해도 괜찮습니다만, 이렇게 구워서 넣으면 양념도 잘 배이고 식감도 좋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놓고 중불로 천천히 조리기 시작하자 아까와는 다른 매콤한 향기가 조리대 근처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요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생선 구이나 조림은 밥이랑 같이 먹어야 제맛이죠.”
생선이 졸여지는 동안 형진은 압력솥 하나를 꺼내서 쌀을 씻고 밥을 앉히는 것을 알려주었다. 솥밥은 아무래도 난이도가 좀 있는데다, 압력솥이라는 좋은 물건이 있는데 굳이 고생을 시킬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신들이 가져온 식재료들의 손질법과 요리법을 가르치고 배우다 보니 어느새 또 어두운 밤이 되었다. 조개 같은 것은 해감도 해야 하고, 낚시로 월척을 건진 것은 1조의 귀여운 여신 정도 밖에 없었던 데다 통발의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배운 요리법을 실습하는 건 나중으로 돌리기로 했고, 대신 그날은 형진이 만든 음식으로 모두 포식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맛있다. 배불러.”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 누우려던 여신은 1번을 가슴에 단 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설마 하는 생각에 말을 건넸다.
“너… 설마 또 연습하려고?”
“응. 오늘 배운 건 오늘 확실하게 익히고 넘어가야지.”
“못 말려. 그렇게 요리가 재미있어?”
“요리가 재미있다기 보다는 뭔가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
동료 여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렇게 탐구심이 넘치는 여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바깥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엘리시온에 머물러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금까지 바깥에 나가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니?”
“글쎄…”
1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사실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신격이 워낙 하찮고 보잘 것 없어서, 엘리시온 밖에 나가더라도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신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1번의 신격이 뭔지 알아냈어.”
“그래?”
이틀째의 일과를 끝내자, 형진은 1번의 신격을 알아보게 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연수에 임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좀.”
“뭐길래?”
“너도 몇 번 들어본 이름이야.”
“들어봤다고?”
“응.”
희망과 생명은 그렇게 말하며 1번의 이름과 간단한 신상명세가 적힌 서류를 형진에게 보여주었다.
“물벼룩과 클로렐라. 맙소사. 그 여신이 이 신이라고?”
“맞아.”
일반적인 신이 아닌 수호신 계통, 그것도 물속에서 사는 무언가라는 것은 예측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여신이 바로 그 당사자였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월척을 쉽게 낚은 것인가.”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물속의 생태계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생물들이다. 이것을 권속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그들을 먹고 사는 작은 물고기부터 시작해서, 그 물고기들을 먹고 사는 큰 물고기까지도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일전에 했던 오디션에서도 가장 먼저 와서 신청했었던 모양이에요.”
“하긴 이번에 주어진 번호는 접수순으로 주어진 번호니까.”
1조가 다른 조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이들처럼 간을 보다가 천천히 접수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움직여서 신청한 장본인들이니까. 그 중에서도 1번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이번 면접이나 연수에 열의가 충만한 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여신에게는 어찌 보면 엘리시온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 이런 신격으로는 추종자는커녕 신도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재미있군.”
공포와 죽음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형진은 가만히 그녀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렇지 않아도 슬슬 다시 게을러지는 신들을 번쩍 정신 들게 만들 촉매제가 필요하던 참이니까.”
“어쩌려고?”
신뢰와 헌신의 말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특채.”
“특채? 그게 뭐지?”
“특별 채용. 일반적인 과정과는 다른 방법으로 필요한 인원을 뽑는 방식이지.”
“호오. 바로 정직원으로 올린다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그 말대로야.”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말했다.
“혹시, 달 개발에 투입하려고?”
“맞아. 그녀의 능력이라면, 생태계를 조성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
확실히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물벼룩과 클로렐라 같은 신이 인간 세상에서 빛을 보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형진은 수많은 세계를 영향력 하에 두고 있었고, 그만큼 많은 수의 행성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물벼룩과 클로렐라 같은 신의 활용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행성 개발 외에도 쓸모는 얼마든지 있다. 하천의 녹조를 조절하는 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녹조를 조절하는 것을 넘어 그것의 원인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능력이 단순히 민물만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단순히 그에 대칭되는 한 종의 생명체 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분화된 다른 비슷한 생명체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봐야한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양식업과 같은 분야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보통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녀의 경우엔 그 진가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고 해야 할 거야. 이를테면 긁지 않은 복권 같은 신인 셈이지.”
“그런가요.”
보호와 균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물벼룩과 클로렐라 역시 자신처럼 그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형진은 그녀가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 오직 형진 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물벼룩과 클로렐라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진은 곧바로 1조를 관리하고 있는 벗과 추억을 불러들여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1번 참가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세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뭔가 사고라도 친 건가 싶어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벗과 추억을 향해 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
벗과 추억은 형진의 말에 속으로 작게 안도했다. 정직원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는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형진은 신상필벌이 확실한 만큼, 자칫 이번 연수에서 큰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을 자신이 지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한다. 자신이 관리하는 조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 반대급부로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마련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벗과 추억은 1조가 머물고 있는 펜션으로 가서 펄떡거리는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작은 여신을 찾아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네? 그, 그게… 생선 손질을 좀 해보려고…”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어도 막상 생선을 손질하려니 칼을 휘두를 엄두가 안나서 노려보기만 하던 여신은 화들짝 놀라버렸다.
“크흠. 일단 그건 나중에 하시고, 저를 따라 오십시오.”
“네? 무슨…”
“밤의 신이 부르십니다.”
“밤의 신께서요?”
여신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밤중에 갑자기 자신을 찾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는 언질이 있으셨으니까요.”
“그, 그런가요.”
여신은 얼른 다시 생선을 수조에 옮겨두고 칼과 도마를 정리한 뒤 벗과 추억을 따라 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쉬시는데 갑자기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벗과 추억이 좋은 일이라고는 했지만, 역시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표정이다. 형진은 그런 여신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물벼룩과 클로렐라님. 저를 좀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여신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밝히지 않고 있던 신명이 갑자기 그의 입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랄 일인데, 정중하게 도와달라는 말까지 들은 탓이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딩가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