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43
00743 168. 큰 숲 =========================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알콩달콩한 시간까지 보내고 나니 흑요호들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생각보다 더 지체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다른 환수들이야 어찌되었든 흑요호에 대한 일은 대략이나마 마쳤으니 이대로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 일어나요.”
“쳇. 애정이 식었어.”
“얼른요.”
“네, 알겠습니다.”
제랄딘이 살짝 눈을 흘기자 그제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형진이 제랄딘과 함께 다시 흑요호들의 마을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다.
“꺄하하하!”
“어푸! 어푸!”
그네나 미끄럼틀은 물론이고, 야외 욕조인 자쿠지도 덩치가 작은 아이들에게는 풀장이나 다름없다. 싱그러운 자연 속의 한적한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달리 뭔가 즐길 거리가 없는 심심한 시골 마을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 형진의 꼬마 공주들이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문명의 혜택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말 작은 것들이지만,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바, 밤의 신을 뵙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흑요호 하나가 둘의 기척을 뒤늦게 깨닫고는 얼른 고개를 조아린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뜻이라고는 해도 여러 가지로 미심쩍은 느낌이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그럴 듯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엄마들의 경계심도 한결 누그러진 모양이다.
“어떤가요. 새로운 집과 마을은 마음에 드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다행이군요.”
흑요호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형진도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자기들끼리만 식사를 하고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네? 아뇨. 경황이 없어서.”
새로운 집의 세간을 구경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다보니 미처 식사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흑요호들은 정기를 주로 다루는 존재들이라 인간들처럼 꼬박꼬박 식사를 챙길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저런. 잘됐군요. 주방을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드릴 겸, 식사준비를 해봅시다. 가시죠.”
“네? 아니… 그게…”
흑요호들은 당황했다. 사실 그럴 듯한 주방이 있어도 대부분의 흑요호들은 요리란 것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렇게 신이 발 벗고 나서는 상황에서는 실로 난감할 뿐이다.
“일단… 냉장고부터 채워놔야겠군요.”
형진은 흑요호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냉장고 안에 신선한 식재료들을 가득 채워 놓았다.
“조만간 희망과 생명 신전의 사제들 몇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식재료는 그들을 통해 전해 받으면 될 겁니다.”
그러나 흑요호들은 형진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저희들은 지불할 만한 것이…”
물론 여행중에 모은 돈이라면 어느 정도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이 이곳에서 통할지조차도 사실 의문이다.
“아,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는 추종자들 몇 명도 먹여 살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신이 아닙니다.”
형진은 넉넉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그저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는 일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흑요호들은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크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포트니아 테론이 그들을 떠맡긴 시점에서, 형진이 어떤 식으로 그들을 대접하든 그것은 그의 뜻에 달린 일이었다. 추종자라는 것은 결국 신의 뜻을 받드는 자. 다소 무리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일단 추종자가 되고 나면 그것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그 신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흑요호들은 여지껏 불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형진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그러나 지금 이순간 그녀들은 형진이 정말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단순히 자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너무나 귀엽고 귀여워서 베풀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그런 신임을 비로소 알아본 것이다.
형진은 곧바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단한 요리 몇 가지를 만들어서 흑요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바깥에서 열심히 뛰어 놀고 있던 흑요호 아이들은 주방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금새 모여들었고, 하나 같이 형진이 만들어낸 달콤한 갖가지 디저트들에 흠뻑 빠져 들고 말았다.
“이게 뭐에요?”
“과일 크레이프라는 음식이다. 먹을만 하니?”
“네! 아주 맛있어요!”
흑요호들에게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던지네스 크랩을 통째로 쪄서 내놓았다. 어지간한 사람 머리통만한 초대형 게인 이 녀석의 모습에 흑요호들은 크게 놀랐지만, 이내 맛을 보자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물론 이미 발정기가 끝난 흑요호들이라 형진의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몸의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거나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래봐야 달뜬 호흡을 내뱉으며 멍한 표정을 짓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형진은 그렇게 모두가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말했다.
“흑요호들은 딱히 음식을 반드시 섭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즐거움을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서 드시기 바랍니다.”
흑요호들은 정신을 화들짝 차렸다.
“네? 하지만… 저희들은 요리는 해본 적이…”
“앞서 말씀드린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에게 말하시면 기본적인 것들은 가르쳐 줄 겁니다. 필요하면 이곳에 김밥천국을 열 수도 있고요.”
“김밥천국이요?”
김밥천국에 대한 것은 최근 마을에 들어온 이들에 의해 이 마을에서도 꽤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다. 얼마 안되는 비용으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호구스러운 음식점에 대한 얘기는 타나토스 전역에 걸쳐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네. 그것도 사실은 제가 운영하는 것들이거든요.”
“세, 세상에…”
흑요호들은 그제서야 밤의 신이라는 이름의 존재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형진은 그렇게 흑요호들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먹이고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무슨…”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게, 열심히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깜빡했지 뭡니까.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다시 뭔가를 시작하려는 그의 모습에 흑요호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불러세웠다.
“자, 잠시만요.”
“네?”
바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형진이 밖으로 나서려는데, 문득 흑요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직… 저희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는데요.”
“아, 그거요?”
형진은 빙긋 웃었다.
“어차피 그런 건 형식이니까요. 장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추종자란 건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내키지 않아 하는 이들을 억지로 추종자로 만드는 것도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흑요호들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의논을 했던 참입니다. 하지만 역시 밤의 신 같은 분이라면 저희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맡겨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더구나 밤의 신께서는 일족을 맞이하여 아이까지 낳으신 몸이니 남도 아니고요.”
“하하, 쑥스럽군요.”
흑요호들은 가만히 형진의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밤의 신이시여. 부디 저희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형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자, 한 사람씩 제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곧바로 흑요호들을 추종자로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과자를 먹으며 떠들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엄마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엄마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려는 심산이었던 모양이지만 형진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신에게 귀엽게 머리를 조아리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음… 아이들은 안 돼.”
“왜요?”
“아직 너희들은 어려서 안 돼. 어른이 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렴.”
“히잉…”
“대신 이걸 주마.”
형진은 아이들의 손목에 팔찌 하나씩을 채워주었다.
“보호의 권능이 담긴 팔찌다. 그리고, 그것이 있으면 엄마나 다른 아이들과 언제든 연락할 수도 있지.”
“정말요?”
“물론.”
“그럼 신 아저씨랑도요?”
“나랑?”
“네.”
“물론. 원한다면 언제든.”
“와! 감사합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는다든가 하는 식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물건인 셈이다. 위성으로 항상 확인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란 잠시 한눈을 팔면 쥐도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런 식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자체적으로 보호와 균형의 힘이 담겨져 있어서 어지간한 위협은 팔찌만으로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흑요호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마을 한쪽에 커다란 워터파크를 만들어 버렸다. 작은 하천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를 흐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있는지라 제대로 된 초대형 워터파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것 역시 마을을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인지라, 흑요호들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안에서는 사시사철 같은 기온이 유지됩니다. 폭풍우나 눈보라 같은 것이 몰아치더라도 언제나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것이 특징이죠.”
“…”
도대체 뭘 얼마나 더 만들어야 성이 차는 걸까. 흑요호들은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다. 오히려 추종자가 되었다고 이런 것까지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렇게 마을 한켠에 실내 워터파크라는 전대미문의 구조물을 완성시키고 나자 이미 날이 완전히 지고 난 뒤였다.
“자, 이제 아이들은 잘 시간이다.”
“히잉…”
“그래야 빨리 어른이 되지.”
그 말에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은 그제서야 엄마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건 흑요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좋아요?”
“당연하지.”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즉답하는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은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물론이고 형진 역시도 마을 밖에서 무엇인가가 무리지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이건…”
형진과 제랄딘은 다가오는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해 얼른 마을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 앞에 한 사람이 다가와 고개를 조아린다.
“당신은…”
날이 많이 어둑해지긴 했지만, 형진은 발목까지 치렁거리는 긴 흑발을 보는 순간 눈앞의 인물이 앞서 흑요호의 마을을 방문했던 산군 아가씨임을 알아보았다.
“밤의 신을 뵙습니다.”
그녀는 공손하게 형진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저들은… 당신이 데리고 온 겁니까?”
“네. 모두 저의 일족들입니다.”
“…”
산군 아가씨의 말에 형진은 뒤따르는 무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산군이라기에 호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형진이 알고있는 호랑이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구름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형상 가운데 붉은 눈동자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마치 벼락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호랑이는 호랑이인데,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와 눈빛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형진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뒤따르고 있던 산군들로부터 마치 천둥이 치듯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이 울려퍼진다.
“산군이 밤의 신을 뵙습니다!”
“산군이 밤의 신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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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12시입니다. 밥먹을 시간이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