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57
00757 171. 도약 =========================
왕성 라이언하트에 찾아온 신들은 자연스럽게 두 부류로 갈렸다.
하나는 거짓된 천국에서 아바타를 사용해 기존 인턴들의 일을 돕는 이들이며, 또 하나는 왕성 라이언하트에 남는 이들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신들은 거짓된 천국에서의 일을 돕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일이 불가능한 신들, 이를테면 물벼룩과 클로렐라 같은 수호신 계열들은 거짓된 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상대적으로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절 수 없이 왕성의 일을 돕는 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왕성의 일을 돕는다고 해서 기존에 요정들이 하던 잡무를 하는 건 아니다. 신이라서 편의를 봐준다기 보다는, 아무리 하찮은 신격이라 해도 명색이 신인데 잡무 따위에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형진의 아기 공주들이나 유모 역할을 하느라 데리고 있는 다른 흑요호 아이들, 또는 왕성에 잠시 머물게 된 앙그릴의 왕족 나부랭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왕성 라이언하트 주위의 바다나 얼마 되지 않는 육지에서 본래 그들이 수호해야 하는 생물들을 데려다 놓고 돌보는 것이 이렇게 왕성에 남은 수호신들의 주된 업무였다.
곧바로 왕성 라이언하트가 위치한 행성은 여러 세계에서 모여진 갖가지 생물들의 보고로 변화했다. 이 모든 생물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의 역할에 맞게 각각의 세계에 투입하여 생태계를 조성하면, 비로소 완벽한 테라포밍이 완료된다.
잡신들의 배치가 끝나자, 형진은 그동안 미뤄뒀던 일에 비로소 손을 뻗었다.
“다희야. 착하지.”
“우웅… 하지만.”
드디어 비와 낭만에게도 해방의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엘리시온에 웅크리고 있던 수호신들이 대거 형진의 일을 돕게 되면서 생태계의 조성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바다가 생명의 보고라면, 비는 태양과 함께 육지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양의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비와 낭만의 권능은 모처럼 힘들게 조성된 생태계를 가장 이상적인 환경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강력한 힘인 셈이다.
하지만 비와 낭만이 제대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관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시도 그를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 다희라는 이름의 강력한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다희야. 아빠가 이렇게 부탁해도 안 돼?”
“우우웅…”
하지만 형진이 몇 번이고 그렇게 부탁하자, 다희는 결국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비와 낭만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형진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다희. 어쩜 이렇게 예쁠까. 자, 아빠랑 뻐뻐.”
“꺄하하하하!”
형진이 다희를 품에 안고 볼에 마구 뽀뽀하자 다희는 간지럽다는 듯이 자지러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비와 낭만은 그 틈을 타서 무사히 다른 여신들의 손에 이끌려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 다희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돌봐주긴요. 하… 하하…”
아기 괴수의 손에서 마침내 해방되었지만 비와 낭만 역시 뭔가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마냥 괴롭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정말로 괴롭고 고달팠다면 일찌감치 엘리시온으로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저는 비를 관리하면 되는 건가요?”
사실 비와 낭만의 힘은 이미 타나토스에서 시험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위주로 신도의 수 역시 천천히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최근에는 전문적으로 한 지역의 강우량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추종자도 생겨났을 정도다. 비와 낭만은 아마도 그와 같은 일을 좀 더 광범위한 규모로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비와 낭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단순히 그런 식의 일이라면 비와 낭만님을 이렇게 직접 모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네? 그럼…”
비와 낭만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형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간략하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라고 하면 단순히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좀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시각을 확대해 보면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현상입니다.”
형진은 행성의 모습 하나를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내었다.
“지금 보시는 이것은 왕성 라이언하트가 위치한 행성의 전체 모습입니다. 보시면, 수많은 구름들이 푸른 바다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이죠?”
“그렇군요.”
“이 구름들은 항상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움직입니다. 이 구름들은 이렇게 움직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특정한 지점에 지니고 있던 물방울들을 떨어뜨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라는 기상현상인 셈이죠.”
형진은 다시 홀로그램에 변화를 주었다.
“지금 보시는 이것은 왕성 라이언하트가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관측된 구름들의 이동 방향을 도식화 한 것입니다. 잘 보시면 규칙성이 느껴지실 겁니다.”
“그렇군요.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비와 낭만은 홀린 듯이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그가 잊혀지기 전에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틈조차 없었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행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어느 때 비가 많이 오고 어느 때는 적게 온다는 규칙성 정도는 알고 있었어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틈이 없었다. 그저 인간들의 요구에 휘둘려 비를 내리게 하고 그치게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물의 순환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물의 순환은 행성 전체의 열평형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요.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 따뜻한 곳의 열이 차가운 곳으로 옮겨가 행성 전체가 어느 정도 비슷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행성들. 이를테면 물과 공기가 없는 행성들은 햇빛이 비치는 곳은 드러난 모든 것이 타버릴 정도로 뜨겁고, 그렇지 않은 곳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상태를 유지하게 되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곳에서는 생명이 살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열평형은 생명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아…”
이제껏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 제대로 고찰할 기회가 없었던 비와 낭만은 작게 감탄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비의 권능을 발현함에 있어서 제한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깨달았다. 행성 전체를 통한 물의 순환에 있어서, 임의로 비를 내리고 그치는 행위는 자칫 한도를 넘을 경우 그 행성 전체의 열평형을 깨뜨릴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제한조차 없이 자신이 힘을 마구 발휘할 수 있었다면, 타나토스가 과연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될 수나 있었을까. 비와 낭만은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저는 여러 신들을 살피고 그 분들의 능력을 통해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신격이라는 것이 그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발전하고 개화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비와 낭만님께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요?”
“그렇습니다. 비는 본래 단순히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기상 현상만을 칭하는 말이 아닌 겁니다. 그것은 행성 전체의 열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바다와 함께 생명 활동을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의 신격은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아…”
신격의 확장. 그것에 대한 것이라면 비와 낭만도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다. 다만 자신 역시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뿐.
“물론 당장 변화가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만약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당신은 단순히 정해진 강우량 내에서 비를 내리는 능력을 가진 신을 넘어, 행성 전체의 열평형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강력한 권능이 되겠지요. 제가 어째서 당신을 따로 불러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진지한 형진의 말에 비와 낭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밤의 신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이해했습니다.”
형진은 빙긋 웃으며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앞으로 수많은 세계에 생명의 씨앗을 뿌릴 것이고, 그 모든 과정들이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비와 낭만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와 낭만의 진지한 다짐에 형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보자. 일단 아바타부터 장만을 해야겠군요. 자, 받으십시오.”
“아…”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서두릅시다.”
“네!”
형진은 아바타를 사용해 인간 사이즈로 모습이 바뀐 비와 낭만을 데리고 달을 찾았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본래 지구라는 곳의 위성이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물을 채워 넣고 기본적인 생태계 조성이 막 시작된 상태지요.”
“세상에…”
밤의 신이 하고 있는 일들은 비와 낭만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결과물을 보게 되니 실로 놀라운 마음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은 이곳에서 시험적으로 능력을 활용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직접적으로 힘을 활용해 보시는 것도 오랜 만이실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목표는 행성 전체의 열평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힘에 확신을 갖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함의를 확장하게 되면, 비로소 신격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단하게 해야할 일을 설명한 형진은 비와 낭만을 이미 달의 생태계 조성에 투입되어 있던 물벼룩과 클로렐라와 그녀가 새롭게 받아들인 추종자들에게 소개시켰다.
“비와 낭만님이십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달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안정시키는 일에 참여하게 되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물론이고, 그녀가 새로 받아들인 추종자들 역시 새로운 신이라는 형진의 말에 긴장한 기색을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로서는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직속 상사보다도 한 단계 높은 직책을 맡은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비와 낭만님을 굳이 이곳으로 모신 또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물벼룩과 클로렐라님입니다.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최근에 신격의 확장을 이룩한 분이시니, 비와 낭만님께서 나아갈 길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도움 바랍니다.”
“저, 저야말로…”
형진 때문인지, 아니면 새롭게 만난 신 때문인지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물벼룩과 클로렐라와의 인사가 끝나자 형진이 다시 말했다.
“당분간 공헌도에 대한 부담은 잊으시고 신격의 확장에만 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하신다면, 비와 낭만께서는 다른 어떤 신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강대한 힘과 존재감을 가진 신으로 거듭나실 수 있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별 말씀을요.”
사실 다른 신들에 비해 과하게 신경을 써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일부러 신격 확장에 대한 실마리까지 쥐어주고, 가장 최근에 그것을 경험한 이까지 옆에 붙여준 데다, 마음껏 권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헌도까지 지원해줄 정도다. 아바타 사줄 공헌도가 아까워서 게임용 아바타를 쥐어준 잡신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만한 대우인 셈이다.
“미안해서 그런 거죠?”
“크흠. 뭐가.”
“비와 낭만이요.”
“하하…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언제나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형진을 따라 움직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그가 모른 척 말을 돌리자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 가운데 하나인 비와 낭만이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내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휴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