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70
00770 175. 개변 =========================
악의에 찬 할로윈은 그렇게 실행자들과 주모자들이 제거되며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한 종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와 그것을 구성하는 인원들의 사상이 복잡해질수록, 어디서 어떤 식의 돌출행동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후…”
연이어 실종되는 중동의 권력자들 때문에 세상은 한 번 더 시끄러워졌다.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보호되고 있던 권력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어 버린 일은 처음에는 쉬쉬하며 불문에 붙여졌지만, 한 나라의 권력을 손 안에 넣고 흔들던 인물들의 갑작스런 실종 사태는 간단하게 무마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라도 밝혀지면 장례를 치르고 다음 대의 후계자에게 권력이 이양되기라도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함부로 일을 진행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대행 체제로 국정이 전환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국이 불안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일이었고, 각국의 민중들은 지금까지 억눌려져 있던 의지를 서서히 표출하기 시작했다.
절대 권력의 붕괴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혼란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비어버린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 역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그냥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중동 지역은 머지않아 피로 피를 씻는 대혼란의 시대가 개막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강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던 독재자를 몰아낸 시점에서 쿠데타나 다른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거대한 혼란을 맞이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한동안은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겠군.”
한동안 느슨하게 진행되고 있던 ‘선언’의 집행을 이번에 권력자들이 사라진 국가들에 대해 한정적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 중동에서는 벼락이 내리치는 광경을 꽤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라진 권력자들이 민중들을 지배하던 방식과 그리 다를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형진이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도 사실 그래서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사라진 권력자들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힘드세요?”
조금 지친 표정으로 주시자들에게 임무를 하달하는 형진의 옆에 유아가 다가와 앉으며 그렇게 물었다.
형진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주시자나 다른 측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맞이한 여러 반려들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지친 모습을 직접 마주한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옆으로 다가와 앉은, 이제는 덜렁이 메이드가 아니라 완연한 어머니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 유아의 모습에 형진은 작게 미소 지었다.
“당장은 괜찮아. 하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를 생각하니 그저 골치가 아플 뿐.”
그러자 유아 역시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을 거에요. 당신이라면.”
“그럴까.”
“네. 당신은 좋은 아버지니까요.”
“…”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지금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의 의의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단순히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권력자에 불과하다면, 자신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권력자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고작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손에 의해 세계가 넓혀지고 생명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제국의 출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건 어찌 보면 이 시점에서 형진이 당연히 거쳐 가야만 하는 딜레마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손에 의해 확장되고 육성될 거대한 우주를, 어떤 식으로 보살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유아의 말에 불현듯 확하고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내가… 과연 좋은 아버지일까.”
되묻는 형진에게 유아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불안한 기분이 자꾸만 들어서.”
“그래서 당신은 좋은 아버지에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그런가.”
“네.”
유아와 나눈 대화는 거기까지였지만, 형진은 침대에 누운 그녀가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계속해서 그녀가 던진 화두에 대해 생각했다.
옛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것이 있다. 먼저 심신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한다는 이 말은, 동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8조목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케케묵은 고전을 들먹이며 그것을 탐구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단지, 유아가 했던 말을 되새기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말이 떠오른 것일 뿐.
사실 좋은 아버지라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지배자나 신이 되라는 법은 없다. 역사 속에서는 악랄한 독재자이며 학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식에게는 너무나 좋은 아버지였던 자도 있고, 자식에게만큼은 너무나도 헌신적인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으로서는 무능의 극치를 달리던 인물도 있다. 오히려 최악의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긴 쪽이 더 찾기 쉬울 정도다. 옛 고전의 내용을 따라서 모든 걸 똑같이 보살피기에는, 이미 사회가 너무나 복잡하게 바뀌어 버린 탓이다.
“빠아?”
“응? 왜?”
“졸려여?”
“아니. 왜? 그래 보여? 세연아.”
“음… 모르겠어요.”
피곤해 보인다든가, 걱정이 있어 보인다든가 하는 식의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 사제들에게 배운 노래라면서 열심히 형진 앞에서 노래를 하고 있던 세연이는, 어쩐지 딴 생각에 빠진 듯한 형진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미안. 아빠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이마저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던 건가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하자, 세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음… 그럼 세연이가 토닥토닥 해줄게요.”
“그럴래?”
고사리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토닥거리는 귀여운 딸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직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기분이 된다.
“저기… 이거요.”
“응?”
그렇게 세연이가 작은 손으로 토닥거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조금 덩치가 큰 아이들 둘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고 후다닥 도망쳐 버린다. 바로 아란이 데려온 두 아이들인 니샤와 니야다.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한 모습으로 후다닥 도망쳐 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형진은 그들이 건네주고 간 무언가를 살폈다.
그것은 종이로 만든 꽃이었다. 붉은 색과 파란 색. 마치 한 쌍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것에는 리본이 하나 달려 있었고,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 힘내세요.’
뭐랄까. 그걸 보는 순간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이 찡하고 울리는 어떤 기분을 느꼈다.
니샤와 니야는 지금껏 형진을 제대로 호칭하지 않고 있었다. 아란이 형진과 재혼하면서 사실상 그 아이들도 형진의 자식이 되었지만, 왕비가 아닌 시녀장의 직분을 맡고 있는 아란의 입장 같은 것 때문에라도 아빠라는 말은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여기에 적힌 아빠라는 말은, 그 아이들로서는 정말로 큰 용기를 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니샤와 니야가 이것을 건네주고 도망쳐 버린 것은, 만에 하나라도 형진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 두려웠던 것이리라.
니샤와 니야는 파괴와 재생의 아이들이다. 자신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찌 보면 실질적으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아이들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형진은 더욱더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데 힘을 기울였다. 자칫 그 아이들이 파괴와 재생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가 마침내 이런 식으로 돌아온 셈이다.
형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근처의 나무 둥치에 내밀어져 있던 작은 머리 둘이 마치 달팽이 눈 숨듯이 쏙 들어가 버린다. 건네주고 바로 도망치긴 했어도, 역시 반응이 궁금했었던 모양이다.
“니샤, 니야. 이리 오렴.”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두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예쁜 꽃 고맙다. 기왕이면 아빠한테 직접 달아주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자, 니샤와 니야의 얼굴이 확 하고 밝아진다. 자신들의 마음을 그가 받아들였음을 확실하게 이해한 것이다.
“네! 아빠!”
“그럴게요! 아빠!”
그렇게 니샤와 니야가 작은 손으로 꼬물거리며 그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있자니, 갑자기 다른 곳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형진에게 몰려든다.
“빠하하하하!”
“빠앗!”
맥락 없이 그냥 무작정 돌진해 형진에게 뺨을 부비는 것 뿐이지만, 형진은 어쩐지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은 충만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저렇게 좋을까.”
“그러게요.”
뒤따르던 미엘과 하엘이 아이들 속에 파묻힌 형진의 모습을 보고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진은 그렇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함께 놀아주었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조심스럽게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는 잠이 들 때까지 지켜보다가, 비로소 포트니아 테론을 찾아 나섰다.
겉으로만 봐서는 도무지 그 기색을 알 수 없는 검은 소용돌이와도 같은 존재. 하지만 형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바로 반응하며 말을 걸어왔다.
“왔군. 그래, 일은 잘 되어 가고 있는가.”
“네. 뭐… 그럭저럭.”
형진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한줄기 빛과 함께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
“보아하니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군. 나라도 괜찮다면, 들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형진은 부양형 자동차 하나를 꺼내어 포트니아 테론을 맞이했다. 이전에 쌍둥이 자매를 맞이하러 공항에 갔을 때 타고 갔던 대형 캠핑카 사양의 차량이다.
테이블을 마주 하고 앉자, 형진은 간단한 다과를 차려놓은 채 이번에 있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가 따라준 차를 가만히 음미하며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포트니아 테론은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온 것이군.”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나도 그다지 충고해 줄 만한 내용이 없어. 뭐라 해도, 나 역시 우주를 제대로 보살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까. 최악의 사태는 막았다고 하지만, 때로는 어머니라 불리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야. 이를테면, 자네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더욱더.”
“그렇습니까.”
하긴 그럴 법한 얘기다. 어찌 보면 이런 식으로 그녀를 찾아와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포트니아 테론으로서는 상처를 후비고 거기에 다시 소금을 부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친 입장에서 한 마디 하자면, 아이들은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정도겠지. 내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망각했다는 것에 있네. 그들이 저마다 다양성을 지니도록 만들어 놓고는, 그것이 발휘되어 내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지.”
포트니아 테론은 이런 저런 일들이 떠올랐는지 작은 한숨을 지었다.
“자네가 이번에 겪은 일들도 어찌 보면 그런 과정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는 일이야. 적어도 자네는 나보다 훨씬 잘 해나가고 있어.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까.”
“적어도 나는 내 자식들에게조차 좋은 어머니라 불린 적이 없으니까. 그건 틀림없는 일이야.”
“…”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밥먹고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