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30
00830 191. 진수 =========================
진수식에 갔다가 잠수함 두 척을 받았다. 건조 중인 군함의 소유권이 넘어가는 건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고 곧바로 언론에 의해 일반에 그 사실이 공개되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미국 정부와 미라지 코어의 이름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정부로서는 구세대의 유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한 잠수함을 더 이상 손해 보기 전에 적정한 가격에 넘기는 것이니 이득이다. 무기 체계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었겠지만, 형진은 그런 것은 필요 없다면서 깨끗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딱히 트집을 잡을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렇게 미라지 코어의 잠수함 선체 구입은 조용히 묻혀 가는 듯 했지만, 여기서 의외의 변수가 등장했다.
“잠수함이라면 러시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마침 저희들에게도 건조중인 원자력 잠수함 5척이 있습니다. 미라지 코어가 원한다면,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프로젝트 955A라고 불리는 보레이2급 잠수함이다. 이 잠수함들은 2012년부터 기공이 시작되었는데, 다섯 척의 자매함 가운데 아직 진수가 이루어진 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 하지만 그쪽 잠수함들은 좀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공식석상이 아닌 관계로 형진의 말투는 평대로 돌아와 있었으나, 러시아 대통령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열렬한 말투로 반론을 펼쳤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해군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입니다. 더구나 함대의 주전력 또한 수상함이 아닌 잠수함이죠. 물론 과거에는 원자로 같은 것에 결함이 있어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것도 옛날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러시아 대통령이 미리 마련해 온 카달로그를 살펴보았다. 아예 미국 잠수함을 미라지 코어가 구매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작정하고 팔아먹으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꽤 상세하게 성능이 기록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대로라면 꽤 훌륭하군.”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선전용으로 스펙을 과장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가능한 부분만 추려낸 내용입니다. 특히 저희 러시아의 잠수함들은 주 활동무대가 북극해이기 때문에 유사시 빙산을 뚫고 올라가기 위해 매우 튼튼한 선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차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전함들에 버금갈 정도죠.”
“대단하군.”
과장처럼 들리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운용중인 아쿨라급의 복각식 선체는 미국의 전함이었던 아이오와급보다도 두꺼울 정도다. 크고 아름다운 나라답게, 아쿨라급은 세계 최대의 잠수함 타이틀 또한 가지고 있다.
카달로그를 살펴보고 있던 형진에게 문득 요안나가 다른 서류 하나를 건넨다. 형진은 그 서류를 잠시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쿨라급은 한 척만 남은 건가?”
“네? 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 퇴역할 예정입니다.”
“그래? 잘 됐군. 이것도 사도록 하지.”
“네? 이걸요?”
러시아 대통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형진은 담담하게 주문을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무장은 필요 없어, 전부 철거해. 깔끔하게. 원자로도 들어내. 선체만 있으면 돼. 음… 적당히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거라고 발표하면 되겠군. 가격은 충분하게 쳐주도록 하겠다.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저희로서야 감지덕지일 뿐이죠.”
워낙 큰 함선이다 보니 해체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현재 운용중인 한 척을 제외한 나머지 두 척도 2015년에 해체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작업이 끝나지 않았을 정도다. 애물단지가 되버릴 처지에 놓여있는 신형 잠수함들은 물론이고, 해체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고물 잠수함까지 팔아먹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금성 개발에 들어갈 돈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그저 감지덕지할 뿐이다.
러시아 대통령은 부랴부랴 돌아가서 아쿨라의 퇴역과 매각 소식을 발표했다. 각국 언론들은 미라지 코어가 연이어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원잠을 사들이는 것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건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어째서인가요.”
“현재 세계는 우주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무기는 여전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죠. 그 중에서도 전략원잠은 어떻게 보면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무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미라지 코어는 돈의 힘으로 각국의 전략무기 감축을 선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방송을 지켜보던 형진은 피식 웃으며 옆에 앉아 있는 요안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손을 쓴 거야?”
“네.”
“굳이 이런 식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는 일인데.”
“굳이 사람들에게 불안을 안길 필요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건 요안나의 말대로다. 알맹이를 뺀 선체만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대 병기를 손에 넣는 일이다. 트집을 잡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그런 식으로 조성된 불안을 이용하려는 누군가를 차단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구입한 선체들은 언제쯤 인도될 예정이지?”
“연말부터 선체 건조가 완료되는 함선부터 차례로 인도될 예정이에요. 아쿨라급은 이미 무장과 원자로의 해체를 시작한 모양이구요.”
“좋아. 일이 진행되는 대로 경과를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형진은 곧바로 거짓된 천국으로 가서 허세와 망상을 만났다.
“끙… 정말 끊임없이 일을 물어오는군.”
“하하.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세와 망상은 투덜거리는 기색을 지우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고물들을 살 필요가 있나.”
“물론 설계도만 가져와도 비슷하게 만드는 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물에는 도면 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것들도 많은 법이죠. 적어도 잠수함에 사용된 고장력강 소재들이라든가, 정숙성을 위한 여러 가지 구조들, 그리고 튼튼한 복각식 선체 같은 것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긴.”
단순히 우주선을 만드는 것뿐이라면 이미 미라지 코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선 부양선들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호를 비롯한 부양선들은 사실 제대로 된 군용 함선이라기 보다는 미라지 코어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함선들에 가깝다.
프리츠의 말대로 현존하는 지구상의 함선 가운데, 우주선에 가장 가까운 설계 사상을 가진 것은 역시 잠수함이라 할 수 있고, 이번에 구매한 미국과 러시아의 잠수함들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도 앞선 기술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 선체들에 녹아 있는 기술을 받아들인다면, 보다 빠르게 보다 강력한 우주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확실히 그런 견고한 선체를 지닌 함선이라면 알큐비에레 드라이브 같은 것을 운용하기도 좋겠지.”
“이 구조에 티폰의 사체로부터 얻은 재료들을 합친다면, 훨씬 강력한 내구도를 지닌 선체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재미있군. 한 번 해 볼만 하겠어.”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던 허세와 망상도 점차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어뢰라는 무기 말인데.”
“왜요. 뭔가 문제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잘 하면 꽤 효율적인 무기 체계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어뢰가… 말입니까?”
전략원잠들에게 있어서 어뢰는 사실 자함 방어용의 무기에 가깝다. 공격원잠이라면 몰라도, 전략원잠들은 애초에 잠수함끼리의 전투보다는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한 타격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서 어뢰라… 별로 효율적일 것 같지 않은데요.”
“어째서인가.”
“시야 안에서의 물리적 타격만을 위해서라면 기존의 화약 무기나 레일 건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야 밖에서의 타격을 노린다면 미사일을 사용하는 편이 옳겠죠. 또한 우주라는 광대한 영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광학 무기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 속에서의 운용을 염두에 둔 어뢰는 우주 공간에서는 딱히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보통은 우주에서 쓸만한 무기라고 하면 레이저빔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가장 사용하기 쉬운 무기는 이른바 화약무기라고 불리는 총이나 포 종류다. 진공 또는 무한히 그것에 가까운 우주 공간은 산소가 없기 때문에 화약이 폭발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약은 그 자체로 산소 화합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외부의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사용의 편이성을 생각하면 기존의 화약무기를 그대로 사용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시야 밖의 원거리에서의 공격을 염두에 둔다면, 자체적인 항법 시스템을 탑재한 미사일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 이것 역시 자체적으로 필요한 연료를 내부에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도 장치만 우주에 맞게 적당히 손보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형진이 굳이 군함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민간에서 부양선을 운용할 경우 마음만 먹으면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무장이 가능한 상황 때문이다.
보호의 권능이나 황혼의 결계로 막아낼 수 있다 쳐도 전투란 건 본래 막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는 법이고, 효율적인 무장을 위해서는 그것에 걸맞은 효율적인 선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역시 필요한 법이다.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틀림없이 자네가 말한 대로야. 하지만 말이지,”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 어뢰라는 병기에 알큐비에레 드라이브가 장착되면 어떨까.”
“네?”
형진은 깜짝 놀랐다.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라니. 어뢰에 그것을 장착한단 말인가!
우주 공간에서 광학 무기가 효율적으로 판단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 빛의 속도를 지닌 무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화약 무기라도 그 속도는 고작해야 음속의 몇 배를 겨우 넘는 수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빛의 속도는 다른 어떤 무기도 지닐 수 없는 강력한 이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를 장착한 어뢰라면?
광학무기가 지닌 가장 커다란 장점을 추진 장치를 바꿔 다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압살해 버리게 된다. 따로 탄두 같은 걸 달 필요도 없다. 알큐비에레 드라이브가 가진 공간 왜곡에 초광속이 합쳐지는 순간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맙소사. 이건… 말도 안 되는 무기가 되겠군요.”
“정말로 이 무기가 만들어진다면, 아마 보호의 권능이나 황혼의 결계로도 막아내기 어려울 거야.”
“허…”
사실 이 아이디어는 허세와 망상이 그의 유일한 추종자인 아유무와 초광속 항해 성공 뉴스를 보고 나눈 대화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초광속이면 빛보다도 빠르다는 건가요?”
“맞아.”
“그럼 총알보다도 빠르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럼 미사일은?”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네.”
“…”
사실 아유무와의 대화는 이렇게 어이없게 끝을 맺고 말았지만, 허세와 망상은 이 대화로부터 한 가지 영감을 얻었다. 그것은 총알보다도 미사일보다도 그리고 빛보다도 빠른 병기를 실제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게 필요한 일이 있을까 싶긴 하다만.”
이미 우주는 형진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무기는 자칫 그런 형진의 권위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를 깨뜨릴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자칫 인간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과거 민중이 총을 손에 넣었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형진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허세와 망상의 생각과는 달리 조금 흥분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필요합니다. 당장 개발을 시작하십시오.”
“정말?”
사실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기존에 사용되던 탐사선을 어뢰 사이즈로 축소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생각이 있다면 그냥 탐사선 그 자체를 어뢰 용도로 쓸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은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형진은 우주 바깥의 다른 초월적인 존재와의 대립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보호의 성역이나 황혼의 결계마저 꿰뚫을 수 있는 무기라는 건 바꿔 말하자면 그런 존재들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신과 신의 대결이라면 보통은 장렬한 일대일의 승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형진은 그런 식의 뻔한 싸움은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네. 바로 연구를 시작해 주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이 어뢰라는 병기에 알큐비에레 드라이브가 장착되면 어떨까.
알!
큐!
비!
에!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