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9
00849 197. 진입 =========================
왕성 라이언하트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 보는 순간 참 인자하구나 싶은 인상의, 후덕하다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쩐지 푸근한 인상을 주는 그런 아주머니다. 얼핏 보기에 따라서는 희망과 생명의 신전에서 최고 사제라도 파견 나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저 같은 것이 정말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엄연히 가족이 아닙니까.”
“그래도…”
아주머니의 정체는 바로 포트니아 테론이다. 태초의 어머니인 그녀에게 있어 결국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은 자식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넓은 뜻으로의 의미이지 직접적으로 혈연이 있다거나 하다는 뜻은 아니다. 좁은 의미의 자식이라면 엘리시온의 신들 정도가 그녀의 자식에 해당하겠지만, 정작 그 신들은 대부분 자신들에게 포트니아 테론 같은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굳이 여기에 머물게 할 이유가 있어? 차라리 엘리시온에 가면 모를까.”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신 가운데 한 명인 희망과 생명은 포트니아 테론이 왕성에 머물게 되자 대뜸 싫은 기색을 보였다. 차라리 멀리 있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이제 와서 어머니란 존재를 코앞에서 마주쳐야 하는 현실이 영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행여라도 있는데서 그런 소리 하지 마.”
하지만 형진이 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이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안 해. 나도 눈치 정도는 있다고.”
그러자 이번엔 공포와 죽음이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포트니아 테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녀를 왕성에 불러들여 함께 살게 되자 뭔가 일이 있었음을 알아챈 것이다.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곳에 혼자만 놔두기가 그렇잖아. 그래서 아이들 돌보는 일이라도 좀 도와 달라 그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를 다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엘리시온이 사실은 요람이 아니고, 신이라는 존재도 사실은 자살의 도구로서 만들어진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어찌 대놓고 말하겠는가. 입 밖으로 흘러나가는 순간 오히려 더 큰 분란만 일으킬 뿐이니, 이런 건 차라리 알리지 않느니만 못한 일이다.
“흐응…”
하지만 공포와 죽음에게 그 정도 얼버무림이 통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녀는 대뜸 뭔가 숨기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기색을 보였지만, 가볍게 콧소리만 낼 뿐 굳이 따져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왕성으로 끌어들인 건 그렇다 쳐도, 침실로 끌어들이는 건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았으면 해.”
“무, 무슨 소리야! 침실이라니. 날 뭘로 보고.”
그러자 희망과 생명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받는다.
“뭐긴 변태지. 천하에 둘도 없는, 우주 최강 변태.”
“끙…”
형진은 앓는 소리를 내고는 이 순간에도 자신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있는 보호와 균형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니라는 말을 해달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하지만 보호와 균형은 슬그머니 얼굴을 붉히더니 시선을 피했다.
“쳇.”
보호와 균형마저 그런 태도를 보이자 형진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좋다고 더 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러자 이번에는 세 여신의 얼굴이 확 하고 붉어진다.
“그,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당황한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반박했지만, 형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긴. 어젯밤만 해도 내가 XX를 XX하니까…”
“그, 그만!”
희망과 생명은 다급하게 형진의 입을 막았고, 다른 두 여신은 그녀를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뭔가 문제라도 있어?”
“흠… 그랬군. 그런 걸 좋아했군.”
“아니거든? 그건 그냥…”
“그건 그냥…”
“몰라! 그 얘기는 그만! 남자가 치사하게 침실에서 있었던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막 하고… 정말 최악이야!”
“그거야 나보고만 변태라고 하니까…”
뭔가 혼란스럽고 민망한 부부싸움이 잠시 이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포트니아 테론은 왕성에 무사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를 받아들였을 때는 내키지 않는 기색을 보였지만, 정작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 가운데 한 명인 아란은 포트니아 테론이 왕성의 생활에 탈 없이 적응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이애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별궁에 머물고 있는 중입니다. 들러보시겠습니까?”
“그래야겠죠. 그 아이의 경우엔 내가 억지로 맺어지게 만든 경우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포트니아 테론이 형진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확실하게 변화했다. 말투만해도 전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하게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반존대를, 단둘이 있을 때는 손윗사람을 대하듯 존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묻자 포트니아 테론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이 모든 우주를 지켜보는 주신의 위에 오르신 분입니다. 어찌 하찮은 제가 감히 함부로 말을 낮추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은 일입니다.”
“…”
틀린 말도 아니고, 당사자가 그렇게 하겠다는 데야 더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결국 형진은 편한 대로 하라고 말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포트니아 테론이 자신의 궁을 방문하자, 다이애나는 기쁘면서도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잘 있었니.”
“네…”
따지고 보면 자신을 형진에게 시험의 제물로 던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고, 그 결과 형진과 맺어지긴 했지만 바꿔 말하면 이것은 또한 포트니아 테론을 저버린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건 결국 그런 의미이므로, 그녀로서는 서먹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포트니아 테론은 다이애나와 그녀의 몸속에 자리 잡은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다행히 산모도 태아도 모두 건강했다.
“저… 그런데, 그 모습은…”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포트니아 테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다이애나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형진조차도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처음 포트니아 테론이 다이애나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이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인자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언젠가 형진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젊고 매혹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취하고 있는 모습은 요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에 가깝다. 이 모습보다는 젊고 매혹적인 모습에 더 익숙한 다이애나로서는 굳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글쎄…”
포트니아 테론은 씁쓸하게 웃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분명 신들의 정점에 선 최고의 신이지만, 아직은 인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 이라고 해둬야겠군.”
“…”
아직 신이니 인간이니 하는 식의 경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다이애나로서는 무슨 말인가 싶은 대답. 하지만 굳이 포트니아 테론이 젊고 매혹적인 모습이 아닌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 정도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것도 같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굳이 별궁을 받아서 이렇게 왕성 밖에 머물고 있는 이유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고나 할까.
포트니아 테론은 왕성 안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주로 맡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아이들은 손자 손녀라고 해야할지, 자식이라고 해야할지 뭔가 구분 자체가 미묘한 입장이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는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도 한수 접어줄 정도의 실력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넌 아주 특별한 아이로구나.”
“제가요?”
“그래. 이름이 다희라고 했던가?”
“잘 알아보시네요? 다른 분들은 헷갈려 하시던데.”
“네 아버지가 너희들을 헷갈려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란다.”
“흐음.”
어쨌든 커다란 일들이 그렇게 마무리 되자, 형진은 다음 단계의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다른 우주를 살피고 싶다고요?”
“그렇습니다.”
왕성에서의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기 시작한 어느 날. 공주들에게 줄 과자를 굽고 있던 포트니아 테론은 형진에게 그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필요한 일이기도 하죠.”
“음…”
다른 우주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허덕거리던 포트니아 테론으로서는 감히 떠올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던 발상이다.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판에, 오히려 다른 우주를 살피다니. 힘이 부족해서 언데드의 힘까지 받아들인 판에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달리 도울 만한 이가 있었다면 모를까. 형진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자신과 비견될 만한 존재가 이 우주에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과는 입장이나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는 이미 엘리시온에 속한 신들을 그곳으로부터 끌어내서 성장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도 계약을 통해 그들의 힘을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는 상태. 그것은 곧 수많은 신격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어찌 보면 형진이 나머지 하나의 신격을 얻어 신으로서 완성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다른 수많은 신격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마당에, 굳이 신격을 완성하여 자신의 능력을 한정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이 우주에 속한 존재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이 우주 안에서의 일. 그 바깥의 존재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국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상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보다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는 이정표로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뒤떨어졌다면 얼마나 어느 만큼 뒤떨어졌는지, 우리가 앞선다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앞서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만 제대로 저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
포트니아 테론은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젊은 신은, 자신처럼 단순히 이 우주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바깥으로 더욱더 뻗어나가려 하고 있었다.
관점 자체가 다르다.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사실 이전의 포트니아 테론이었다면 형진의 의도를 이해했더라도 이렇게 쉽게 허락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허덕거리는 판에, 잠시라도 외부와의 연결이 이루어졌을 때의 뒷일을 수습할 엄두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힘이라도 정제된 언데드의 힘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채굴된 원유를 그냥 가져다 때는 것과, 충분히 잘 정제하여 용도에 맞는 연료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같은 효율을 낸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아지고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껏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좀먹어 가고 있던 수많은 찌꺼기들이 정제라는 과정을 통해 씻겨 내려가면서 그녀의 존재 자체도 처음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보다 정순한 상태로 변화해 가고 있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다 헐어서 완전히 폐기 직전의 중고품이나 다름없었던 상태에서, 공장에서 막 만들어진 상태로 출고된 신제품 같은 상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어 제대로 길조차 들여지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완숙한 상태로 충분히 길이 들여져 사용하기 쉬워진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그만큼 현재의 포트니아 테론의 컨디션은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보다 좋은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준비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우주 바깥으로의 탐사에는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어떤 우주와 연결될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 역시도 이쪽만큼 경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탐사대를 밀어넣었다가는 형진에게 죽어버린 애벌레 같은 꼴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이쪽의 장비나 다른 여러 가지 정보가 넘어가게 되면, 차라리 시도를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어 버린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식곤증이… 후아암.